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120화 (120/122)

120화 두 여자(2)

백기만의 행동은 의도적이었다.

강력계 형사 출신답게 아무리 잘해줘도 솔직히 대답할 것 같지 않으니 시간 낭비 말고 해치워버리자는 엄포인데 통한 것이다.

“또…… 또 있어요. 내가 데이브 유라고 말하자 지배인의 표정이 변했어요. 틀림없냐고 재차 다그치듯 물었고 전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했어요.”

그녀는 뭔가 당시 있었던 일들은 절대 빠뜨릴 수 없다는 듯 구체적인 장소까지 설명했다.

울음까지 터뜨리며 설명하는데 살고자 하는 생존 본능에 사로잡힌 듯하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지나 지배인님이 보이지 않았어요. 항상 영업 끝날 때까지 가게를 관리하며 사고가 일어나면 수습하곤 하셨는데…….”

“지배인이 갈만한 곳이 있습니까?”

만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서울에 있다면 가게에 얼굴 한 번 정도 드러냈을 것인데 모든 연락과 행적이 끊겼다는 건 멀리 있다고 봐야 한다.

“모…… 몰라요.”

지이잉!

백기만이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차만대였다.

[사장님. 강릉에 있는 더 물리아(The Mulia) 콘도가 태극동지회 소유라고 합니다.]

“진짜야? 알았어.”

백기만이 재빨리 다가갔다.

“더 물리아 콘도가 태극동지회 소유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더 물리아 콘도에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물론 지배인님이 공짜로 방을 잡아 주었어요.”

엘리샤는 묻지도 않았는데 재빨리 설명을 늘어놓았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더 열어 보이려는 행동이다.

벤츠 한 대가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속도계 바늘이 160에서 170을 오르내리는데 뒷좌석에 유태수가 앉아 있었다.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는데 표정이 딱딱했다.

백기만은 오랫동안 데이브 유를 만나면서 그와 거래를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말이 없고 차가운 얼굴은 처음이다.

데이브는 소문난 애연가다.

그런데 출발해서 아직까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넣지 않는다.

“별일 있겠습니까?”

백기만이 약간 상체를 뒤로 돌려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면 몰라도 일가족을 몰살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력계 형사 경험을 들어 말했다.

한 명 죽이는데 두 명 죽이지 못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폭들이라고 하여 함부로 칼질을 할 듯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의 첫째 철칙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사건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 간의 다툼 와중에 일어난 살인은 언론에 보도도 되지 않고 조용히 묻힌다.

그들의 칼은 장애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될 뿐 살인은 최악의 경우다.

“내가 실수를 한 거요. 엘리샤가 이름을 묻기에 생각 없이 말해준 것뿐인데.”

만나는 사람 모두를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술집의 여자로 인해 이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줄은 전혀 예상 못한 것이다.

- 믿지 마라. 믿지 않을수록 죽지 않는다.

사이먼이 자신에게 귀가 아프도록 했던 말이다.

믿지 않는다는 건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고 거절하는 뜻도 있지만 자신의 신분이나 신변에 관한 얘기를 함부로, 부지불식간에라도 뱉지 않는 것이었다.

단 한 순간의 실수가 한 가족을 지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도록 만든 것이다.

부우웅!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거대한 콘도 건물이 있다.

더 물리아 (The Mulia).

더 물리아 리조트는 발리에서 가장 뛰어난 서비스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곳의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와 붙인 더 물리아 설악 콘도.

본격적인 휴가철도 아닌데 리조트는 밤늦도록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있었다.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도 멋지지만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해변은 또 하나의 더 물리아의 자랑이다.

그러나 화려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었다.

콘도에서 작은 산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철조망에 둘러싸인 2층 저택 한 채가 있었다.

담장 군데군데 가로등이 걸렸고 인적없는 산속인데도 CCTV가 설치되어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분명한 건 2층 저택도 더 물리아 소유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바위 뒤에 세 사람이 서 있다.

유태수 일행이다.

리조트에서 이곳으로 오는 소로가 있다.

그건 인위적으로 다듬어 놓은 길이었고 중간에 여긴 사유지이므로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

더 물리아 소유라는 뜻을 분명히 해 놓은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 바로 옆에 초일류 리조트가 있다는 건데 무슨 의미일까.

회의장도, 숙소도, 그 어떤 것도 리조트만 한 시설을 따라갈 수 없기에 이곳에 집을 지어 놓을 이유는 더욱 없다.

결국 생각이 미치는 건 의심이다.

철조망과 CCTV가 더욱 그걸 자극하고 있었다.

“지금 몇 시죠?”

“새벽 2시 30분입니다.”

백기만이 대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들어갑시다.”

“어떻게?”

대문을 통해 들어갈 수는 없다.

“일단 갑시다!”

유태수, 백기만, 하봉철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저택을 향해 내려갔다.

“촘촘히도 세워 놨네.”

직선으로 된 집 뒤 담장의 길이는 50미터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네 개의 CCTV를 세웠다.

하나면 충분히 커버가 되고 두 개면 백 퍼센트다.

확!

유태수가 윗도리를 벗었다.

속주머니에 있는 죽포자는 허리띠 사이로 빠지지 않게 단단히 끼웠다.

휘익!

벗은 상체를 던졌다.

잘 펴진 상의는 정확히 철조망 위를 덮는다.

“수고 좀 하시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기만이 엎드리고 그 위로 하봉철이 올라가려고 했다.

“아니죠. 하 부장이 쭈그리고 앉으세요. 내가 어깨를 밟고 올라서면 천천히 일어나는 거죠.”

“알겠습니다.”

하봉철이 쭈그리고 앉았다.

유태수는 하봉철의 어깨를 밟고 올라섰다.

하봉철이 백기만의 도움을 받아 흔들거리며 일어섰다.

CCTV가 작동하면 죽어도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새벽 2시 30분이면 군대 경계병들도 졸음에 시달릴 시간이다.

하물며 민간인이, 아무리 조폭들이라고 하지만 눈 빨개지도록 카메라 영상만 보고 앉아 있을 리는 없다.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거의 감시는 해체 상태라고 본다.

물론 들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유태수의 생각이었다.

삶은 운이다.

아무리 실력 좋은 놈도 운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꾸우욱!

양복 상의를 밟았다.

담장 끝을 밟기 위해서는 그 방법 말고는 없다.

투툭!

소리가 나면서 철조망의 가시가 옷을 뚫고 나오기도 했지만 효과는 있다.

옷을 깔지 않았다면 뾰쪽한 철조망 침들이 바지와 다리를 쑤셨을 것이지만 옷이 어느 정도 침을 막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휘익!

점프를 했다.

3미터 가까운 높이다.

뛰어내린 유태수는 지면에 두 발이 닿으면서 몸을 둥글게 말아 굴렀다.

전방 회전 낙법이다.

가볍게 몸을 일으켜 세운 유태수는 허리에 꽂아 놓은 죽포자를 뽑아 들었다.

자세를 낮추고 담벼락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척!

걸음을 세우고 고개를 내밀었다.

저택 측면이다.

창문 하나가 나 있지만 조용했고 불이 꺼졌다.

살금살금 창문 아래로 기어가 또다시 고개를 내민다.

잔디가 심어진 넓은 마당이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소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크고 작은 정원수가 잘 관리되어 있었다.

특히 바다가 보이는 담장 끝으로 붉은 꽃이 보인다.

초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지지 않는 배롱나무꽃이다.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굳게 잠긴 검은색 철 대문이 보인다.

사사삭!

잔디여서 천만다행이다.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인지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좁은 대문이 전부였다.

안에서 버튼을 눌렀다.

톡!

파도 소리가 있어 다행이다.

오늘따라 파도가 거칠었고 대문 버튼 열리는 소리가 파도에 잠긴 것이다.

백기만과 하봉철이 들어섰는데 가스총과 테이저건을 쥐고 있다.

유태수가 선두에 섰고 세 사람은 현관을 향해 다가갔다.

휴대용 손전등을 켠 하봉철이 자물쇠 구멍을 보더니 주머니에서 두 개의 얇은 철사를 꺼냈다.

끝이 기역자로 휘어진 두 철사를 구멍에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좌우로 돌리며 작동했다.

철컥!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여닫이 통나무 유리문 한 개가 또 있다.

유리가 투명하여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마치 군대의 취침 등처럼 붉은 전등 하나가 천장에 있을 뿐 집안은 조용했다.

득!

드드드!

하봉철이 미닫이 원목 유리문을 최대한 느리고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일부러 파도 소리 도움을 얻기 위해 바깥 현관문은 열어 놓았지만 실내여서인지 확실히 구분된다.

겨우 사람 하나 모로 들어갈 정도 열리자 유태수부터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을 발견하면 무조건 쏴야 합니다.”

목소리를 최대한 죽여 말했다.

백기만과 하봉철은 1층을 맡았고 유태수는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도 거실에 켜진 빨간불이 전부다.

“콜!”

“나도 콜!”

이층 거실 오른쪽 방에서 들려온다.

문은 닫혔다.

유태수는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문으로 다가가 귀를 더욱 가까이 댔다.

“뭐야?”

“빽(백).”

“난 마운틴.”

포커를 치는 모양이다.

한 명은 A, 2, 3, 4, 5(백 스트레이트)를 잡았고 다른 한 명은 10, J, Q, K, A(스트레이트 중 가장 높은 패, 마운틴으로도 불림)를 잡았다.

한 끗발 차이로 백 스트레이트가 밀린다.

“아 젠장, 계속 한 끗 차이로 밟히냐? 안 되겠다. 화장실 가서 좆대가리 좀 만지고 와야겠다.”

유태수는 재빨리 거실 창문 커튼 뒤로 숨었다.

덜컹!

커튼 사이로 살펴보자 문이 열리고 정장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왼쪽 복도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고 사라진다.

스르르르!

빠르다.

순식간에 커튼에서 나와 복도를 가로질러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소변을 보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파악!

사내가 뭐라고 소릴 지르려는데 유태수의 왼손이 입을 막으며 오른손에 쥐어진 칼이 옆구리에 박혔다.

“꾸욱!”

사내의 눈이 커졌다.

사내를 거칠게 돌리며 눌렀다.

“앉아.”

속삭인다.

사내는 변기 위에 그냥 주저앉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아니면 한 방 더 먹어.”

유태수는 피 묻은 칼을 사내 면전에 들이댔다.

“모두 몇 명이 카드를 치지?”

“나까지 다섯!”

“1층에는 누가 있나?”

“비었습니다.”

“그럼 지금 이 집에 다섯?”

사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천수의 가족을 계산한다면 세 명이 더 있어야 한다.

유태수는 순간적으로 절망의 빛을 떠올렸다.

“기천수와 그 가족 어딨나?”

아는 사람처럼 다부지게 물었다.

움찔!

예상 못한 질문이라는 듯 사내가 몸을 떤다.

유태수는 안도했다.

사내의 반응은 여기 어디에 기천수와 가족이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살아있다.

푸푸푹!

빠르게 핸드폰 문자를 보낸다.

「1층 비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대기해요.」

백기만에게 문자를 보낸 뒤 다시 박는다.

푸우욱!

옆구리에 또 한 번 칼이 박혔다.

- 도법(刀法)에는 두 가지가 있어. 칼을 휘두르는 법(法)과 칼을 몸에 넣는 법(法).

네오의 설명이었다.

전자의 도법은 위력을 의미하고 후자의 도법은 생과 사를 결정짓는 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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