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나한테 이러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3/130)


3. 나한테 이러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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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 참.”

서연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헛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재킷의 단추를 풀다 말고 천장을 바라봤다. 서연의 구겨진 얼굴이 명품 조명의 아크릴 구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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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기가 막혀서.”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어이없는 한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서연을 만난 남자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다들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거나, 귀찮을 정도로 사랑꾼이거나.

연락처조차 묻지 않은 건, 권율이 처음이었다.

분명 호감이 맞았는데…….

손수건을 가져다 대던 그의 손길은 따스했고, 술을 주지 못 하게 말리던 손등은 배려였다.

게다가 주차장에서는 어떻고.

호진에게 옷을 벗어줘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던 목소리는 감미롭기까지 했었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걸까?

불편한 허물을 벗어버리듯, 서연이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욕실로 들어가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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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 주름 좀 봐. 얼굴이 주민등록증이야, 뭐야. 내년에 서른 된다고…… 잠깐! 이게 뭐야?”

검은 머리칼 사이로 반짝이는 새치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자 서연은 자신의 화려한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절망스러운 손가락이 새치를 조심히 뽑아버리고는 다른 것이 있는지, 머리를 헤집기 시작했다.

미친 사람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게슴츠레하게 뜬 눈, 그 밑에 거무스름한 다크서클까지.

인기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시그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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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렇게 한꺼번이냐. 한 놈씩 와. 그래야 정신 차리고 상대하지.”

권율이 연락처를 묻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신이 아득할 지경인데, 난데없이 나타난 새치와 탄력을 잃은 피부를 마주하자 서연은 암담하기까지 했다.

입매를 삐뚜름하게 내린 서연이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화장을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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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니블랙은 론칭해선. 2년 동안 연애는커녕 골머리만 썩이다 좋은 시절 다 보냈네.”

촉촉하게 세안을 마쳤는데도 불만족스러운지, 온몸에 팩이랑 영양제를 코팅하듯 발랐다.

아무래도 권율이 관심을 보이다 달아난 건 이놈의 노화 때문이라고.

거절이나 다름없는 그의 행동과 노화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느라 서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나이의 앞자리가 곧 바뀐다는 불안감과 전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연애를 오래 쉬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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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대로는 안 되겠어. 무슨 수를 써야지.”

다음날. 불면의 밤을 보낸 서연의 몸은 아침부터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출근을 위해 꾸역꾸역 일어나 한층 생기 있어 보이는 화장과 유독 어려 보이는 옷을 골라 입었다.

예전 같으면 화사한 립스틱 하나만 발라도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 영 칙칙해 보이는 게.

기분 탓인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쪽 눈썹을 실룩거리던 서연이 마지못해 출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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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원흉은 권율. 다 너 때문이야!”

서연이 베이지색 하이힐에 발을 구겨 넣다 말고, 기어코 짜증을 쏟아냈다.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하면서도, 회사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급하게 끊은 고가의 피부과 관리실에서도.

서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오직 하나. 권율, 그 남자뿐이었다.
처음에는 연락처를 왜 묻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를 복습하며 어떤 의도와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결국 그를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어졌다.

현우 이사님을 좀 떠볼까?

그러기 위해서는 말이 되는 구실이 필요했다.

그래! 호진에게 벗어준 그 재킷.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서연은 바로 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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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아.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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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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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 옷, 그거 가져다주기로 했거든. 집에 있어?”

서연의 물음에 호진이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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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탁 의자에 걸쳐놓은 것 같기도…… 어. 맞을걸? 아닌가? 아아, 맞아!]

잔뜩 조바심이 난 서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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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아, 너 오늘도 야근이면 내가 직접 가져간다.”

서로의 집 비밀번호를 공유할 만큼 가족 같은 사이다 보니 호진이 그러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잠시 애간장을 태우던 서연은 퇴근하자마자 호진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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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호진의 식탁 의자에 비스듬하게 걸쳐진 그의 재킷을 본 순간 서연이 씩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좋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홈쇼핑 회의가 있는 금요일까지. 무려 몇 날 며칠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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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오늘인가.”

서연이 조수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니블랙 티셔츠가 든 상자와 하니블랙 로고가 박힌 고급스러운 쇼핑백. 그 쇼핑백 안에 권율의 재킷이 들어 있었다.

서연은 미리 생각해둔 계획을 떠올리며, 신상품 상자만 챙겨 차에서 내렸다.

DN 홈쇼핑 4층 회의실.

현우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자 서연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고맙게도 그가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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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율이가 잘 모시던가요?”

지금껏 자신을 안달 나게 했던 남자의 이름이 나오자, 서연이 평소처럼 씽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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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격처럼 운전도 차분하게 잘하던데요.”

서연의 말에 현우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때는 이때다 싶어 서연이 생각해 둔 말을 쓱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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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율이 씨가 호진이한테 옷을 벗어줬거든요. 그걸 깜빡하고 못 돌려준 거 있죠. 그래서…….”

그러니까 권율이라는 남자에 대한 정보를 주든,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든 양자택일을 하라는 듯 서연이 말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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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안 그래도 오늘 율이한테 뭘 줄 게 있어서, 이따 만나기로 했는데.”

뭐! 오늘?

서연의 기다란 손가락이 회의실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준비한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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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님하고 저녁이나 먹을까 했는데.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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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율이랑 같이 식사하실래요? 어차피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낼 수 없었다. 서연은 상자에서 여니블랙 티셔츠를 무심하게 꺼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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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요? 뭐. 어차피 아는 사이니까.”

겉으로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기필코 그의 진심을 파악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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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생각하자.’

서연의 머릿속이 그로 가득하긴 했지만, 권율은 권율이고, 일은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서연이 회의에 무섭도록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반응이 좋았던 아이템과 단가를 조정하는 협상이 길게 이어졌다.

게다가 새롭게 론칭한 여니블랙의 티셔츠를 마지막에 끼워 넣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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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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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이사님 덕분에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니블랙도 함께 편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시간의 기획 회의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던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현우의 핸드폰이 ‘웅웅’거리자 서연의 눈길이 발신자를 빠르게 확인했다.

<권율>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마른침을 꿀꺽 삼킨 서연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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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율아. 도착했어?”

도착했다는 예의 바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가방을 싸던 서연의 손길이 더 분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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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의 끝났는데. 한 대표님이랑 저녁 같이 할래? 아. 차를 안 가져왔다고?”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내 차로 가시죠!’라고 외칠 뻔했다.

하지만 초인적인 자제력을 발휘해 말없이 가방을 뒤졌다. 그러곤 현우의 시선이 닿는 곳에 조용히 차 키를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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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만.”

핸드폰을 손바닥으로 막은 현우가 서연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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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 대표님 차 가져오셨어요? 제 차는 센터에 AS 들어갔고. 율이는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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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차로 가시죠.”

서연이 온화한 미소를 짓자, 현우가 잘됐다며 그에게 로비에서 만나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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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까요?”

현우의 말에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서연이 주차한 자리를 알려준 후 먼저 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 안에 있던 지저분한 쓰레기를 부리나케 치운 후 선바이저를 내려 외모를 점검했다.

그러곤 조수석에 놓여 있는 쇼핑백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걸 어쩐다…….

잠시 생각에 빠진 서연은 그의 옷이 선녀의 날개옷이라도 되는 듯 트렁크에 재빨리 숨겨버렸다. 여차하면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달라질 것 같아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90cm가 넘는 장신의 권율이 존재감을 뽐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저번과는 다르게 이마를 살짝 드러낸 헤어스타일. 거기에 짙은 남색 셔츠와 차콜 그레이 슬랙스가 몹시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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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전히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 권율은 서연과 눈이 마주치자 여전히 깍듯한 몸가짐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서연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흘렸다.

뒤따라오던 현우는 이미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서연의 눈동자 속에는 오로지 권율만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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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세요.”

서연의 말에 권율이 자연스럽게 뒷자리로 가자, 센스있는 현우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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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네가 앞에 타. 이런 차는 뒷자리가 좁아서 네 다리도 안 들어갈걸.”

권율이 난감한 얼굴을 하자 서연이 자연스럽게 앞자리를 가리키며 어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연의 슈퍼카가 웅장한 엔진소리를 내며 현우가 단골로 가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속도를 올리거나 차선을 바꾸는 와중에도 서연의 눈길이 권율의 턱선과 어깨선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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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미식가답게 현우의 단골식당은 분위기가 좋았다. 편백나무로만 장식된 실내에선 은은하게 나무 향기가 났다.

게다가 음식의 맛도 훌륭했다. 물론 나란히 앉게 된 권율의 옆모습이 나무랄 것 없이 완벽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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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드셔보세요.”

권율이 도미가 올려진 접시를 서연에게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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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고소하고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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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차 가져오셨으니까. 여기 따듯한 녹차요.”

권율은 녹차가 든 잔을 두 손으로 매만지다 서연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올라가는 입꼬리가 서연의 목소리에만 반응했다. 그러자 정말 묻고 싶었다.

이럴 거면서, 저번엔 왜 그랬냐고.

서연은 말 잘 듣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권율이 내민 녹차를 한 모금 넘기며 조급한 마음을 일단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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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잠시 화장실 좀.”

현우가 자리를 비우자 권율의 몸짓이 더 가까워졌다.

그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그러고는 검은색 젓가락을 세게 쥐었다가 아예 접시 위에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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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혹시, 팝아트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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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죠. 왜요?”

서연의 입술이 느슨하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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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이 있는데…….”

‘그럼 그렇지.’를 외친 서연의 어깨 끝이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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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고 싶어서요.”

권율의 커다란 손이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기대에 찬 서연이 전시회 이름을 확인하려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영국 출신 유명 작가의 전시회 티켓이 2장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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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쪽은 잘 몰라서 기사를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서연 씨가 아주 유명한 분이더라고요.”

시간을 내 기사를 찾아봤다는 권율의 얘기에 서연의 자신감이 빠르게 회복됐다.

며칠 동안 혼자서만 그를 떠올리고, 안절부절못했던 시간들이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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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디자인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사실 현우 형한테 대신 전해달라고 가져왔는데. 이렇게 직접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권율은 그 말끝에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연어를 서연의 앞으로 또 밀어줬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했다.

전시회에 같이 가자는 건가?

뭔가 확실하지 않아 물어보려는데 화장실에 갔던 현우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부터였다. 서연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건.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 같은 음식들이 테이블을 채워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이 길고 긴 식사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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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 아쉽지만 집이 반대 방향이라, 저 먼저 갈게요. 우리 율이 잘 데려다주세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현우의 퇴장에, 두 사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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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알려주세요.”

차가 출발하자 권율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전히 다정한 그의 말투와 행동에선 진한 호감이 묻어 있었다.

그래. 이건 혼자만의 착각이 절대 아니야.

권율은 서연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으려는 듯 아예 몸을 옆으로 돌려 운전석만을 바라봤다.

그의 가지런한 속눈썹이 진하게 휘어질 때마다 서연의 마음이 ‘이건 찐이야’를 외치고 있었다.

어느덧 권율의 아파트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도, 그는 서연이 기다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과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서연의 속이 답답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창문을 살짝 연 서연이 먼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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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율이 씨 옷이요. 돌려줘야 하는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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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주세요.”

신호가 바뀌자 서연의 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

핸들을 세게 말아쥔 서연이 초록색 보행신호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초조하게 지켜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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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를 주면, 다음에 돌려주기 편할 것 같은데.”

처음이었다. 서연이 남자의 연락처를 먼저 물어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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