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되찾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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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되찾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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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되찾은 평화
202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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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나 참. 이럴 거면서.”
서연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11개의 숫자를 단숨에 외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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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빵 사러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하하. 나 참.”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문 서연이 종이의 가장자리를 문지르며 웃었다.
하지만 권율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진 않았다. 그러면 SNS에 바로 뜰 테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서연은 권율이 건넨 번호를 쳐다보며 행복함을 만끽할 뿐이었다.
빵을 다 먹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도 서연은 배시시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라고 했다가.
‘그럼 그렇지.’라며 과한 자신감을 뽐내다가.
‘그래도 센스는 있네. 냅킨 사이에 끼워 넣을 줄도 알고’라고도 했다.
그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고양이 주먹을 말아쥐고는 ‘흐흐’거렸다가 ‘히히’거리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건 뭐. 만만치 않은 상대를 쓰러트려 잔뜩 사기가 올라간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 같았다.
위풍당당한 서연의 태도는 다음날도 이어졌다.
어찌나 싱글벙글하는지. 아침부터 활기찬 서연의 모습에 다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냐며 물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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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월요일 아침이니까. 휘핑크림 잔뜩 올라간 달달한 커피 좀 쏠까요? 토핑 마구 추가해서.”
회의실에 앉은 서연이 긴 다리를 느긋하게 꼬며 말하자, 디자인 1팀 직원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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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먹고 싶은 걸로 시키세요. 최 비서님, 여기 쿠키랑 빵도 종류별로 넉넉하게 주문해주시고요.”
지금 서연의 마음 상태를 굳이 표현하자면 끝도 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에 서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경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서연의 모든 것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깟 전화번호가 뭐라고. 사람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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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디자인 회의가 끝나자마자, 김 실장이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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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하하. 나 참.”
서연의 입꼬리가 광대뼈까지 올라가자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 실장이 팔짱을 끼며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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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분이랑 무슨 진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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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쎄. 호감이 맞았더라고요. 하.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어요. 내가.”
서연은 자신의 촉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며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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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세포 죽어버린 아줌마 감질나게 하지 말고. 어서 말씀해보세요. 뭐가 어떻게 된 건데요?”
서연은 일요일에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권율이 냅킨 사이로 전화번호를 끼워 넣은 사실을 이야기할 때는 손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 얼굴이 벌게지기도 했다.
김 실장은 적절한 타이밍에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서연이 춤을 추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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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은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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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너무도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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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요? 기다리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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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남자도 기다려야죠. 그래야 공평해요.”
김 실장이 다시 이유를 물었지만, 서연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기쁨의 감정을 마구 표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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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으세요?”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6년이었다. 서연이 남자를 이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이라는 듯 김 실장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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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겠어요. 처음 연애하는 사람처럼 막 설레고 이상해요.”
서연은 김 실장과 자신의 기분에 대해 수다를 떨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창가로 다가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광합성을 하는 화초처럼 오전 햇살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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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고.”
스르륵 눈을 감자, 얇은 눈꺼풀 세상이 온통 오렌지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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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도 좋고.”
느긋하게 어깨를 돌리던 서연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발끝으로 까닥까닥 박자를 맞췄다.
디자인용 종이에 거침없이 선을 그려나가면서도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끊기질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책상 위에는 트렌디한 디자인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만족스러운 입꼬리로 어깨를 두드리던 서연이 책상 위 달력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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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음 주까지인데.’
문득 권율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남지 않은 전시회 티켓이 2장.
호진이한테 같이 가자고 할까 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준 첫 번째 선물인 만큼 의미 있게 혼자서만 쓰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던 서연이 최 비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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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비서님, 이번 주 수요일 오후 일정 하나 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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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정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최 비서가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두드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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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좀 다녀오려고요. 점심시간에 나가서 조금 여유 있게 돌아보고 올게요.”
가지고 있는 티켓이 2장이니 수요일과 토요일, 하루에 한 장씩 쓰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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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표님. 일정 변경하겠습니다.”
최 비서가 나가자 서연은 다시 집중 모드로 돌아갔다. 수요일 오후에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려면 미리 해야 할 일을 마쳐야 하니까.
행복한 꿈속을 걷듯,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기다리던 수요일이 되자 혼자서만 날아갈 듯 마음이 가벼웠다.
배우 오드리 헵번이라도 된 것처럼 검정 원피스를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었다.
서연이 기대에 찬 마음을 안고 출근하자 마주치는 직원마다 너무 우아해 보인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샌드위치로 이른 점심을 먹은 서연이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강렬한 색감이 서연의 시선을 사로잡고 도통 놓아주질 않았다.
그동안 의상디자인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눈동자가 다양한 색채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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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그러다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그림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잠시 잊고 있었던 감성이 빠르게 차오르는 걸 느끼며 서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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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마음에 든다. 토요일에 또 올게. 그땐 오랜만에 스케치북도 가져올 거야.”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선 서연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고는 몇 가지 기념품을 사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너무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에 권율이 생각났다. 같이 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전시회 티켓을 선물하려고 팝아트 책을 많이 읽었다는 남자. 그와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며 서연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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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앞서가시지.”
마음을 진정시키다 불쑥 그의 전화번호를 떠올렸다.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까?
온종일 날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 남자가 그랬으면……. 하고 바라다 서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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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또. 또. 오버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연은 권율을 생각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
행복한 주중을 보내서 그런지, 주말이 금방 찾아온 기분이었다.
서연은 A4 크기의 스케치북과 전문가용 색연필을 간단하게 챙겼다.
쇼퍼백에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넣고, 발목까지 오는 연 청바지에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색 브이넥 니트. 거기다 화려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트윌리 스카프를 멋스럽게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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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도 신나게 출발해볼까나.”
한 번 다녀와서인지 어디에 주차를 하고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면 좋을지 빠삭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녀의 걸음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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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까지 완벽하고.”
눈이 부시도록 쨍한 햇살에 한쪽 눈을 윙크하듯 감고선 손바닥을 이마에 붙여 가리개를 만들었다.
고풍스러운 건물 계단을 반쯤 오르자 산들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검은 비단결 같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나부꼈다.
시야를 가리는 긴 머리카락을 잡아 넘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서연에게서 달큰하고 상큼한 복숭아향이 났다.
모든 것이 완벽한 토요일 정오였다.
서연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 잘 있나 보기 위해 입구를 지나쳐 전시실 한가운데로 향했다.
어?
반듯하게 넓은 어깨, 탄탄한 등 근육이 하늘빛 스트라이프 셔츠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마.
그의 남다른 체격은 뒷모습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서연의 옅은 갈색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앞이야?
잠시 자리를 피했다 올까 고민하는 사이, 그의 몸이 천천히 돌아섰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그의 눈매가 매력적으로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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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여기서 다 만나네요.”
이미 만나기로 약속을 한 사람처럼 그는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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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떻게.”
두 사람은 서연이 좋아하는 그림 앞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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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와보고 싶어서요.”
관람객이 지나가자 권율이 서연을 가장자리로 안내했다. 구석 자리에 가까이 서자 그의 향기가 아찔하게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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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오셨어요?”
여전히 다정한 그의 눈빛이 서연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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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오늘, 시간도 나고. 율이 씨가 선물한 건데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요.”
애써 참았던 보람도 없이 그를 보자마자 속절없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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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할 기회를 놓쳤어요.”
멋쩍은 듯 권율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서연은 그를 올려다보며 고민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신기한데 같이 다닐까요? 아니면 좋은 관람 되세요. 하고 깨끗이 물러날까?
서연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가 먼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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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랑 같이 관람하면 안 될까요? 안 그래도 혼자라 좀 그랬는데.”
혼자 잘만 왔으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의 핑계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무심한 척, 아니 대수롭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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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뭐…… 그러든가요.”
서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권율의 얼굴빛이 그림을 빛나게 해주는 갤러리 조명보다 환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서연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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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왜 저렇게 반짝거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에서 전시회장을 돌았다.
권율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그러고는 서연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서연도 이야기를 들으려 그에게 몸을 가까이 붙였다.
두 사람이 만든 작은 공간 안에 그의 목소리가 일으키는 따듯한 실바람이 서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권율이 말을 걸 때마다 서연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성의껏 대답도 해주었다.
예상치 못한 그와의 동행이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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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는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그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흡’ 하고 숨을 짧게 들이마시다, 손바닥을 바지에 살짝 문지르기도 했다. 커다란 남자의 긴장한 모습이 순수해 보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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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를 만난 자리에 있던 그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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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너무 의도적인 것 같지만. 사실 저도 그 그림이 좋아서 한참을 서 있었어요.”
서연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자 어색함으로 붉어졌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제 빛깔을 찾아가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내놨다.
그의 말소리가 은은하게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 같았다. 천천히, 그렇지만 선명하고 감미롭게.
서연은 적막했던 수요일 전시보다 그와 함께한 토요일 전시가 더 좋았다.
두 사람이 본관을 한 바퀴 돌고 나자, 권율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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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커피, 어떠세요?”
서연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오케이를 만들어 보이자, 권율의 손가락이 입구 쪽을 두어 번 찔러댔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가자니 차가 문제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서연이 자판기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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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판기 음료수 마시고 싶어요. 위에서 두 번째 줄 젤리 들어 있는 걸로요.”
빙그레 웃은 권율이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캔 음료를 뽑았다.
그러고는 손수건으로 캔 입구를 쓱쓱 닦아 서연의 손에 쥐어 줬다. 떨어트리지 않게 건네는 손길에서 배려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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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는 말고, 저 앞 돌담길까지만 걸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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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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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오솔길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정문으로 향했다.
따가웠던 햇볕이 구름에 가려져 한결 걷기가 편했다. 예스러운 돌담길을 따라 속도를 맞추며 말없이 걸었다.
작은 꽃잎이 흩날리자 서연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그녀의 눈길이 닿은 곳에 그의 손이 있었다.
음료수를 들고 있는 왼손을 어찌나 꽉 쥐고 있는지 뼈들이 하얗게 돋아나 있었다.
게다가 주먹을 말아쥔 오른손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술 근처를 방황하다 이내 입을 막아버렸다.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까.
서연의 머리 위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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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어요. 서연 씨…… 전화.”
완연한 봄바람이 권율의 앞머리를 살랑 흔들고 지나간 자리에 서연의 눈길이 그대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