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미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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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미 벌어진 일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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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해줄까요?”
커다란 손이 서연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물었다.
하지만 서연은 답이 없었다. 권율의 감미로운 말투와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그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러자 굵은 빗줄기가 풍성한 속눈썹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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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었죠?”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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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았어요.”
너무도 간절했던 말이 들려오자 뭉클해진 서연이 그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격하게 일렁이던 마음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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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질 거예요. 서연 씨는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니까.”
권율이 상체를 숙여 서연을 더 깊숙이 안았다. 그러자 그의 따끈한 뺨이 서연의 목덜미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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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어요?”
그가 말할 때마다 내뿜는 작은 숨에 서연의 잔머리들이 살랑거리며 움직였다. 서연은 어깨를 움츠렸다 펴며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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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잤어요?”
서연이 고개를 가로젓자 안타까운 마음이 권율의 한숨에 담겨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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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밥부터 먹어요. 뭐라도 먹어야 힘이 나죠.”
권율이 서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자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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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했어요? 안 나와서?”
갑작스러운 서연의 물음에 권율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다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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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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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바람맞혔다고 화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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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고민했어요.”
권율의 대답에 서연의 입매가 처음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다시 그의 가슴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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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가 실수한 게 어딨어요. 실수는 내가 하고 있죠. 지금…… 이렇게.”
얼굴을 감춘 서연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권율의 가슴에 따듯한 봄바람이 불었다.
권율은 서로가 맞닿아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거라고 서연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고마웠다고.
절대 실수가 아니라는 듯 권율이 서연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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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회사에서 밤샜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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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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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머리 못 감았어요. 두피도 지성이라 냄새날지도 모르고. 아주 지지예요.”
차츰 정신이 돌아온 서연의 말에 권율이 ‘풉’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는 서연의 경고에도 상관없다는 듯 긴 머리카락을 더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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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향기만 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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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얘기, 부끄럽지만…… 이따 손 꼭 씻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연도 그에게 머리를 맡기고 격하게 요동치던 감정을 서서히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권율은 서연의 머리를, 서연은 권율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서 있다 서연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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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배고파요. 밥 먹은 지……!”
서연이 고개를 들다 말고 흠칫 놀라 다시 그를 붙잡았다.
하. 이런…….
여기서 얼마나 더 못 볼 꼴을 보여야 속이 시원한 거야.
예쁘게 눈물만 또르르 흘려야지, 콧물 줄줄은…… 아니잖아!
사실 고개를 들려던 서연은 투명한 콧물이 실처럼 늘어지는 모습에 깜짝 놀라 다시 얼굴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슬쩍 본 그의 다크 그레이 셔츠에는 서연의 눈물과 콧물, 화장품과 검정 마스카라로 범벅이었다.
옷이 이 정도라면, 얼굴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황한 서연이 짧은 숨을 끊어 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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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 혹시, 손수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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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줄까요?”
권율이 팔을 풀고 손을 뒤로하자, 서연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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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갈게요. 잠깐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 크흐흠. 어느 쪽이에요?”
뭐 때문에 그러나 싶어 권율이 서연에게서 몸을 떼려 하자,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 럼 서연이 몸을 더 붙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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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해요.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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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뒷주머니요.”
팔을 길게 뻗은 서연의 손이 권율의 뒷주머니에 쑥 들어오자 얇은 천 사이로 느껴지는 권율의 근육이 빠르게 경직됐다.
조금 전이야 서연이 하도 우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지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자 빈틈없이 맞붙어 있는 자세가 영 곤란했다.
순간 당황스러운 권율이 고개를 높이 들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비상구 사인을 쳐다보며 바른 생각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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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없는데.”
서연의 손이 작은 주머니 안을 휘젓고 다니자 더 곤란해진 권율이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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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흠. 그럼, 왼쪽에 있나 봐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바꾼 서연이 왼쪽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꺼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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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율이 씨. 있잖아요.”
서연은 여전히 권율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정중하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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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좀 감고 있을래요? 내가 아무리 움직여도 절대 눈 뜨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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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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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게…… 정말 미안한데. 내가 너무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율이 씨 셔츠가 엉망이에요.”
손수건 하나로 수습이 될까 싶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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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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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그건 절대! 절대 안 돼요!”
단호한 서연이 그의 가슴팍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권율의 심장이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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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눈부터 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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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요.”
눈만 빼꼼하게 내놓은 서연이 그의 눈이 감겼는지 확인했다.
그의 눈 아래로 가지런한 속눈썹이 내려온 걸 확인한 서연이 그에게서 천천히 얼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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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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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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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눈 뜨지 말아요. 눈 뜨면 돌로 변해요. 진짜. 농담 아니고.”
주차장 형광등 불빛 아래 마주한 그의 셔츠는 엉망을 넘어 재앙 수준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서연이 온 얼굴을 비비고 문질러서인지, 서연과 닿았던 부분은 비를 맞은 듯 볼썽사납게 젖어 있었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어떻게 수습이 가능했을 텐데.
그의 넓은 가슴팍에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콧물이 여기저기 엉겨 붙어있었다. 게다가 파우더와 립스틱, 마스카라가 한 폭의 추상화처럼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하아. 어쩌지?
이건 손수건으로 닦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수습 불가능 그 자체였다.
긴 한숨을 내뱉은 서연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다 말고 자동차 앞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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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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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괜찮아요?”
아니.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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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나 눈 뜨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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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잠깐만. 일단 있어 봐요. 어떻게 정리 좀…… 하고요.”
길게 뺀 아이라인과 눈썹을 풍성하게 만들었던 마스카라는 까만 빗물처럼 흘러내려 턱까지 선명한 눈물 자국을 냈다.
치, 치타인 건가?
당황한 서연이 까맣게 변한 눈 밑을 문지르자 화장이 지워진 이마와 광대, 콧대의 붉은 기가 눈 뜨고 봐줄 수 없게 도드라졌다.
총체적 난국! 수습 불가!
이건…… 흘리고, 쏟고의 문제를 뛰어넘는 흑역사 중에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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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돌아버리겠네.
서연은 엉망인 그의 가슴팍과 치타 같은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나돌아다닐 수도 없고, 밥은커녕 지금 당장 헤어져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10시간을 기다린 남자를 콧물 범벅으로 만들어 집에 들여보낼 수도 없고.
생각……. 그래 생각이라는 걸 해보자.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해!
이마를 짚은 서연이 잠시 고민하다 일단 그의 셔츠에서 빛나고 있는 콧물 자국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닦이기는커녕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이대론 안 되겠어. 그렇다면 지금 갈 수 있는 곳은…….
답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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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율이 씨. 차에 혹시 모자 같은 거 있어요? 아니면 여벌의 옷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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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에 운동할 때 입으려고 가져다 놓은 게 있을 거예요.”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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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키는 어디 있어요? 앞주머니?”
서연의 손이 앞주머니로 향하는 걸 느낀 권율이 황급히 몸을 틀어 차 키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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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기요, 트렁크에 있어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권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서연이 발걸음을 옮겼다.
트렁크를 열자 가지런하게 정리된 상자 안에 검은 모자와 회색 후드집업이 눈에 들어왔다.
서연은 검은 모자를 재빨리 머리에 쓰고, 후드집업은 권율의 어깨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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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른쪽 팔 들어봐요. 옳지. 왼팔. 으, 팔이 왜 이렇게 무거워요. 흡. 다, 다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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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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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말할 때까지 입고 있어요. 알았죠? 이 지퍼 내리면 큰일 나요.”
서연은 지퍼를 목까지 올려주고는 검은 눈물 자국을 대충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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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요.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집? 집이라니!
당황한 권율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그의 귓가와 목덜미가 붉어졌지만, 얼굴을 가리려 모자를 눌러쓴 서연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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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너무 엉망이니까. 흐, 흐린 눈으로 봐요. 아예 안 보면 더 좋고.”
말 잘 듣는 권율의 시선이 곧바로 각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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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알죠? 지금 출발해요.”
서연은 들고 있던 차 키를 권율에게 건네며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얼떨결에 서연의 집에 가게 된 권율은 핸들을 잡은 손을 자꾸만 바지에 문질렀다.
권율의 차가 15분 만에 서연의 집 주차장에 도착하자, 권율은 목이 마른 사람처럼 자꾸만 마른침을 삼켜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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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모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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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15분 거리에 있는 주택에 사세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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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고개를 크게 끄덕인 권율은 손을 어디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손을 마주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후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서연을 힐끔 쳐다봤다.
서연은 엉망인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타 25층을 눌렀다.
‘위이이잉’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권율의 목덜미가 술에 취한 듯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권율의 심장이 주르륵 내려앉았다.
2501호를 가리킨 서연이 도어락을 누르자 비밀번호를 보지 않으려고 권율이 돌아섰다.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서연에게서 나는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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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요.”
삐걱거리며 서연을 따라 들어온 권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조각상에 거실에 들어서자 실물 크기인 서연의 사진이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장만 한 거실에는 명품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구와 소품들이 놓여 있어 흡사 유명 잡지의 표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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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누구 작품이에요?”
은은한 크림색 대리석 벽에 걸린 강렬한 그림을 가리키며 권율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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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그림이요. 나름 국전 수상작이라 버리기 아까워서 걸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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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데요.”
반짝거리는 까만 눈동자가 해주는 칭찬이 싫지 않은지 서연이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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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말고도 더 있으니까. 잠깐 구경하고 있어요.”
서연은 권율을 거실에 남겨둔 채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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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받아요.”
서연의 손엔 가지런하게 접힌 하얀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뭐냐는 권율의 눈빛에 서연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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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가운데 문 있죠. 거기가 욕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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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집 구경이라도 시켜주나 싶어 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연이 권율의 손에 티셔츠를 쥐여 주며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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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