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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최선을 다해보고 (33/130)


33. 최선을 다해보고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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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던 걸 계속해봐. 결과에 상관없이 마무리한 경험이 중요하니까.”

행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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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처럼 공부하는 걸 좋아하면, 공무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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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할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엔 머리가 아깝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만, 애정이 가득한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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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정적인 걸 떠나서, 공무원이 너랑 성향도 맞고.”

매사 조심스럽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서희의 말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고시를 준비한다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바가 아닌 자신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이 아닌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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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같은 천재가 나라의 보배가 되어야지. 안 그러냐?”

서희가 권율의 문짝 같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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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 말이다. 파이팅!”

현우가 권율에게 주먹을 말아쥐며 외쳤다.

두 사람의 너무도 뜨거운 응원에 당황한 권율이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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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난다 긴다 하는 재벌들이 누굴 제일 신경 쓸 거 같아?”

갑작스러운 현우의 질문에 권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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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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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사람들의 역할도 있지.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벌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건 보이지 않는 실무진들이야.”

보이지 않는 손이라.

빛나진 않지만, 알고 보면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들.

명석한 두뇌라는 연장을 가지고 풀어줄 때와 조일 때를 결정하며, 각종 안전장치와 올가미 같은 규제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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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의 고위 공무원들이요?”

현우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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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을 가장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그쪽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 내리면 야심 찬 프로젝트도 한없이 밀리는 수가 있어.”

그만큼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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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천재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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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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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거 최연소로 행시 합격해서, 사무관부터 경제부총리까지 초고속으로 달려봐. 우리나라 최초 40대 기재부 장관. 어때?”

잔뜩 비행기를 태우는 현우의 말에 권율이 시선을 내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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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멋들어진 성공 신화 하나 뚝딱 만들어 봐. 나중에 인터뷰할 때 우리 덕분이라는 말 잊지 말고.”

과도한 칭찬과 격려는 지나칠 정도로 계속됐다.

권율은 무언가에 홀리듯 두 사람의 대화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관? 경제부총리? 내가?

할아버지의 강요로 시작한 시험이었다.

비록 타의였지만, 적성에 맞는다면? 이라고 생각하자, 뭔가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꼭 높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공부를 무기 삼아,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면 올해 남은 2차에 최선을 다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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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권율은 곧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드디어, 걸려들었어’라며 두 남자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권율은 마저 생각을 정리했다.

올해 시험이 안 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2년 안에 나아갈 미래를 결정하고, 졸업하자마자 잘할 수 있는 걸 쉼 없이 달려 나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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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앞에서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권율은 그 길의 끝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러자 너무도 선명한 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할 수 있을까?’와 ‘괜찮을까?’ 사이에서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세차게 흔들리던 마음이 막 안정을 찾아가려는데, 현우가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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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 먹기가 참 쉽지 않아. 그래도 같은 돈이면 나랏돈을 먹어야지. 한서연 대표 말이야.”

서연의 이름이 나오자, 권율의 상념이 저만치 도망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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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쇼핑몰 한다는 그 한서연?”

서희의 물음에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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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딱딱 하고, 당당한 사람도 별수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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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권율은 서연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현우에게로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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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회의하려고 준비하는데, 새 대표가 불쑥 들어왔거든.”

그날인가? 홈쇼핑 회의 간다고 했던 날.

권율은 서연의 지나간 스케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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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제압을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강력한 인상을 남기려고 했는지. 새 대표가 서연 씨한테 악수를 청하더라고.”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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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한 대표 손등이 빨개졌더라고.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웃는 낯으로 인사하더라. 어쨌든 하니블랙이 을이긴 하니까.”

서연의 손등이 빨개졌다는 말에 권율은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도대체 그 사람이 뭐라고. 서연 씨 손을 세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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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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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그래서 둘이 한판 붙었어?”

싸움이라도 나길 바라는 건지, 서희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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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새로운 대표가 서연 씨 반응을 은근 재밌어하더라고.”

재미?

너무 놀란 권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관심, 뭐 그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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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끼리 회사 앞에서 간단히 저녁이나 먹으려고 했거든. 굳이 자기도 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국엔 꼈지. 에이! 제멋대로인 놈. 내가 당장 그만둬야지.”

현우의 결론이 자꾸 퇴사로 기울자, 서희가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그럼,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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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들어가는 길이요. 저녁을 불편하게 먹었더니 답답해서 전화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서연과 통화했던 일이 떠올랐다.

권율이 우두커니 서 있자 서희가 손짓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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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왜 일어섰어? 일어난 김에 냉장고에서 맥주 좀 꺼내와라.”

권율은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영 찝찝했다.

그는 시원한 맥주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확인차 현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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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 이름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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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민혁.”

DN 그룹의…… 최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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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다. 반가워.’

친구 원준의 별채에서 만났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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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 사람, 미국에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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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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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친구의 막내 삼촌이자, 연애를 상담해주던 그 자신만만하던 사람?

몇 시간 전에도 인사를 나눴던 그 최민혁이 서연의 손등을 빨갛게 만들었다니.

권율의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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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날도 그랬었지.’

그와 처음 만났던 날, 자신에게 악수를 청했던 일이 떠올랐다.

손이 뻐근할 정도였는데. 서연 씨에게도 그랬다면…….

순하게 빛나던 그의 까만 눈동자가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

토요일 밤, DN 홈쇼핑 1 스튜디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조명이 빈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방송 스텝들과 대본을 보고 있는 쇼호스트들.

의상을 입고 대기 중인 패션모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서연이 서 있었다.

물론 생방송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로 말이다.

안 그래도 시원시원한 서연의 이목구비가 방송용 헤어와 메이크업에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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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보다 더 물량을 늘렸는데, 괜찮을까?’

서연은 디자인 도용 때문에 생긴 손해를 보상받을 때까지, 홈쇼핑 매출로 메꿀 생각이었다.

얼추 계산을 맞춰놓기는 했지만, 완판을 못 하면 어쩌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쫄 거 없어!

방송 전 미리 구매에서도 일단 목표치 이상은 팔았잖아.

홈쇼핑에서 준비한 파격적인 무이자 할부 혜택과 서연이 준비한 사진 상품평 이벤트까지.

그 모든 걸 활용해서 어떻게든 준비할 물량을 다 팔아치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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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가보자고!”

서연은 미리 받은 대본보다 자신이 생각한 멘트를 점검하며 복잡한 심경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니블랙의 클래식한 원피스를 입은 서연이 들릴 듯 말 듯 한 멘트를 중얼거리는 사이, 은은한 머스크 향이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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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너무 진심이라니까요.”

가깝게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서연이 흠칫 놀랐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자 상체를 숙인 민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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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대표님. 토요일 밤에 왜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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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은 연중무휴 아닙니까. 패션 부문 1위 브랜드의 생방인데 직접 참관해야죠.”

그가 눈매를 부드럽게 접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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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요. 커피 싸가지가 준비했습니다. 시원한 캐모마일 차.”

서연은 민혁이 내미는 일회용 컵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러자 작은 얼음들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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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가 심신에 안정을 준다고 해서요.”

너무도 맞는 말이었지만, 생방송 경력만 수년 차인 서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연이 들고 있던 컵을 민혁에게 다시 쥐여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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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방송이라서요.”

민혁은 그게 왜? 라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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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다 말고 화장실 뛰어갈 순 없으니까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가볍게 묵례를 건넨 서연이 그대로 민혁을 지나쳐 살랑 무대로 올라가 버렸다.

어두운 곳에 있던 민혁의 시선이 빛나는 서연을 따라 무대로 향했다.

제대로 조명을 받은 그녀의 봉긋한 이마와 오뚝한 코끝으로 빛이 모였다, 환하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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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 나쁘지가 않네.”

민혁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스튜디오를 빠져나가고, 정확히 20분 만에 생방송이 시작됐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 때문인지, 서연의 정수리와 어깨가 지글지글 익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경쾌한 쇼호스트의 인사가 시작되자, 주문량을 보여주는 모니터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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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교환이나 반품이 들어온다고 해도 일단 오늘 물량은 다 팔아야 해.’

제일 예뻐 보이는 포즈를 취한 서연이 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걸려 있는 원피스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량이 무섭게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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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사이즈 전체 매진입니다!”

남자 쇼호스트가 활기찬 목소리로 외치자, 당장 안 사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곧 사이즈별로 매진 임박 불이 일제히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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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나마 여유가 있는 건 오트밀 77 사이즈뿐입니다. 서둘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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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수량 빠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네요.”

잔뜩 신바람이 난 메인 쇼호스트의 말에 서연이 적절히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허리가 더 잘록해 보이도록 손을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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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해 보이고 싶은 날은, 여기에 스카프 하나, 벨트 하나 툭 걸치세요. 이렇게요.”

서연이 직접 코디를 해가며 설명하자, 옆에 서 있던 쇼호스트가 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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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지금 앱으로 결제 진행 중인 분과 수화기 드신 분까지만 주문 가능합니다.”

벌써?

기대에 찬 서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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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고객님. 이제 다음 상품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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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다 같이 외칠까요? 5, 4, 3, 2, 1. 전 사이즈 매진입니다. 하하.”

흐뭇한 얼굴의 서연이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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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블랙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 의상으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메인 카메라가 서연의 상반신을 풀로 잡자 서연이 윙크하듯 사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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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자 할부 혜택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자, 서연이 스튜디오 옆에 딸린 작은 탈의실로 바람같이 뛰어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코디가 원피스 지퍼를 내려주고, 마이크 줄을 빼줬다.

등을 돌린 서연이 걸려 있던 티셔츠를 먼저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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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만 입고 얼른 나갈게요.”

서연은 코디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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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3분 남았어요.”

마음이 급한 서연이 구두도 벗지 않은 채 청바지에 한쪽 다리를 끼워 넣었다.

스튜디오가 워낙 덥다 보니, 땀이 난 상태에서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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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이건 왜 이렇게 안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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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스탠바이 해주세요.”

서연이 있는 힘껏 바지를 잡아당긴 순간, 몸이 옆으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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