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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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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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롤러코스터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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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엄마 경숙은 빈 반찬통을 챙겨 든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멀끔한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서연을 보며 남편 태석을 다급하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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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 공주. 이분은 누구신데…….”
서연은 태석이 부르는 공주라는 호칭이 부끄러워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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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하는 생각 멈춰!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서연은 경숙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을 단번에 읽어냈다.
그것은 희망과 안도, 당장 날아갈 듯한 후련함과 반가움이었다.
거기다 연애를 잠정 휴업 중인 딸이 훤칠한 남자와 팔짱을 끼고 나타나자, 뭐부터 물어야 할지 매우 고심하는 눈치였다.
서연은 일단 민혁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슬그머니 팔을 뺀 서연이 그만 가라고 말하려는데, 민혁이 대뜸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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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DN 홈쇼핑 대표 최민혁입니다.”
너무도 번듯한 직함을 가진 민혁이 명함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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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안녕하세요. DN 홈쇼핑이면…….”
명함을 꼼꼼하게 살피던 경숙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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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수고했다고 직접 데려다주러 오셨나 보다. 안 그래요. 서연 아빠?”
경숙은 일부러 민혁에게 잘 들리도록 대놓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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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야. 내가 좀 다쳤어. 그래서 병원에서 같이 오는 길이야.”
금쪽같은 외동딸이 다쳤다는 말에 경숙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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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다가!”
태석은 한술 더 떠 당장 업히라며 서연에게 등을 내보였다.
서연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민망해 손으로 눈을 반쯤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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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정말. 부끄럽게 왜 이래. 심한 건 아니야.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서연은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멀뚱히 서 있는 민혁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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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부모님 계시니까 그만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아쉬운 표정의 민혁이 가방과 약봉지를 느릿하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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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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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꼭 챙겨 먹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주시고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경숙은 민혁의 다정한 말투와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다 민혁이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의 팔을 슬쩍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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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업하는 애가 그러면 못 써. 여기까지 오신 분을 어떻게 그냥 보내. 안 그래요. 서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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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경숙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자 태석이 반 박자 늦게 장단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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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그렇지. 병원도 데려다주셨다면서.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연이 정색하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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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이 늦은 시간에 대표님을 우리 집에 들어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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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데. 뭐 어때.”
아, 진짜. 날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려고.
서연이 미간을 구기자, 경숙은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가볍게 피하며 민혁을 살짝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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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표님께 차라도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민혁은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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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좋습니다.”
서연은 아까부터 이상하게 구는 민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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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우리 서연이가 겉으로만 저러지. 남한테 모진 소리도 못 해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자자.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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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한 대표님께 부탁드려야 할 정도입니다. 오늘 전 상품 매진이었습니다.”
경숙은 서연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 슬금슬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눈치 빠른 민혁이 보조를 맞추며 비서와 운전기사에게 그만 퇴근하라고 지시했다.
이 기가 막힌 상황에 서연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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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안 해서 안 된다고. 엄청 지저분해. 엄마!”
경숙은 서연의 외침에도 이미 민혁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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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르는 사람도 없는데 뭐가 지저분해. 그리고 아빠가 아까 청소기 다 돌려놓고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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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서연아. 얼른 타. 그리고 아빠가 너 좋아하는 거 냉장고에 꽉꽉 채워놨어.”
해맑은 태석의 미소에 서연은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화기애애한 세 사람과 어색한 집주인이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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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오세요.”
경숙은 서연의 뾰족한 시선을 막기 위해 민혁을 감싸며 옆에 섰다.
그러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민혁이 집안을 빙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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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도 센스가 넘치더니, 집은 더 좋네.’
갤러리 같이 깔끔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지, 민혁이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경숙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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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같이 그림이 많죠? 이게 다 우리 서연이 작품이에요.”
경숙은 큐레이터라도 된 것처럼 서연의 작품들을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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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 서연이가 무려 국전에서 입상한 작품이고요. 저쪽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각종 미술 대회에서 상 받은 거예요.”
민혁은 경숙의 설명을 들으며 거실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서연의 어린 시절 사진 앞에서는 더 오래 머물렀다.
서연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온종일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완판됐다고 좋아했더니, 등에서 피가 나질 않나, 거기다 20바늘을 꿰맨 것도 모자라서, 불편한 대표와 부모님이 자신의 추억을 나누다니…….
서연은 기가 막힌 하루에 짜증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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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차 준다면서. 대표님 빨리 가셔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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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모셔놓고. 하하. 한창 출출하실 시간인데 어떻게 육전 좀 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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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무슨 육전을 데워.”
정색하는 서연을 가볍게 건너뛴 경숙이 바로 인덕션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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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연이가 육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다가도 일어나서 한 접시를 다 먹어요. 허허.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부쳐 옵니다.”
즐거워하는 태석을 보며 서연은 몹시 난감했다.
자꾸만 피식거리는 민혁도,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정보를 쏟아내는 부모님도, 무척 거슬렸다.
손이 빠른 경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뚝딱하고 내왔다.
따듯한 녹차에 노릇노릇 구워낸 육전, 그리고 서연이 좋아하는 딸기까지.
태석은 서연의 입에 육전 하나를 넣어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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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 어쩌다 다쳤어.”
서연이 별것 아니라고 설명하려는데, 민혁이 나서서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풀어놨다.
어찌나 실감 나게 설명하는지, 그가 말할 때마다 부모님의 입에선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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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이 따로 없으시네. 그렇지? 서연 아빠.”
경숙이 태석의 팔을 툭 치자, 또 반 박자 늦은 그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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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젊은 분이라 그런지, 대처 능력이 빠르네.”
태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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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장가는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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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흡. 캑캑.”
사레가 들렸는지 서연이 기침을 마구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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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창피하게 왜 자꾸 쓸데없는 걸 물어.”
육전 두 개를 한 입에 집어넣은 서연이 다람쥐 같은 볼을 움직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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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참. 대표님한테 물었는데, 왜 네가 창피해. 장가갔는지 물을 수도 있지.”
서연이 제대로 짜증을 부리자 태석이 그녀의 입에 얼른 물컵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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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부리면서 먹으면 체해. 물 마셔. 옳지.”
태석은 경숙에게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혁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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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물어보실 수 있죠. 저희 어머니도 제 또래만 보면 항상 물어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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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아휴. 요즘엔 다들 결혼이 늦으니까. 아니, 나는 그냥 궁금해서. 하하.”
경숙은 서연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민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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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안 갔습니다. 현재 여자 친구도 없고요.”
경숙은 이제 됐다는 듯, 손뼉을 ‘착’ 소리 나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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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러시구나. 하하. 그렇구나. 딸기가 어쩜 이렇게 단지. 자요, 어서 들어요.”
희망으로 가득 찬 경숙의 눈동자가 듬직한 민혁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제일 크고 빨간 딸기를 포크로 찍어 그에게 쥐여 줬다.
***
민혁은 30분을 더 앉아 있다가 눈치껏 먼저 일어났다.
서연의 부모님도 그녀가 씻는 걸 도와주고는 내일 다시 오겠다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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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한 서연이 한숨을 쏟아냈다.
침대에 엎드린 서연이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역시나 권율에게서 여러 개의 톡이 와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망설이던 서연이 권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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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신호가 2번도 울리기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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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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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연락 기다렸어요. 많이 피곤하죠?]
서연은 데이트를 미뤄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바로 꺼낼 수 없어 먼저 다른 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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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오늘 뭐 했어요?”
서연은 그가 들려주는 평범한 일상에 귀를 기울였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그의 숨소리를 느끼며, 서연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의 목소리에 한참을 기대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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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몇 시에 데리러 갈까요?]
권율이 슬슬 본론을 꺼내자, 서연도 미뤄뒀던 말을 슬쩍 꺼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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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 미안해요.”
다짜고짜 사과를 건네는 서연의 말에 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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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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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 중에 옷을 갈아입다가…… 좀 다쳤어요.”
순간 ‘쿵’ 하고 가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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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다쳤어요?]
서연은 왠지 모르게 흔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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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20바늘이나 꿰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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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예요? 어디든 바로 갈게요.]
그의 당황한 목소리, 세차게 떨리는 숨소리.
게다가 옷이라도 입는 건지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그러자 서연이 피식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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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에요. 아까 엄마가 도와줘서 겨우 씻고 엎드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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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팠어요? 나한테 전화하지 그랬어요. 그럼 바로 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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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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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서연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목소리에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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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다. 저 다정한 걱정.’
심야에 틀어놓은 잔잔한 음악처럼 마음이 편안해지자, 서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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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통제 먹어서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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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 불편한 곳은요? 말만 해요. 서연 씨.]
그는 모든 부탁을 들어줄 것처럼 애틋하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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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아! 바로 못 눕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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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못 눕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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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아파서 지금 엎드려 있거든요. 그랬더니 좀 불편해요. 이러다 잠결에 바로 누울까 봐 그것도 좀 걱정되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서연은 그가 너무 조용하자,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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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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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서연 씨.]
매우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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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워줄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서연의 눈이 전화기를 향해 또르르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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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씨 말대로 잠결에 바로 누우면 어떡해요. 상처가 눌려서 빨리 안 나을 수도 있고. 또…….]
권율은 자신이 밤새 간호해주고 싶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물론 너무도 정중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말이다.
그러고는 꽤 논리적인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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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설득력이 있어!’
만약 그가 밤새 옆에 있어 준다면 아프지 않고,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강한 확신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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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 않겠어요?”
단번에 허락할 수 없어 서연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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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요. 병원에도 같이 못 가주고.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제발’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매우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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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지난 번이야 얼떨결에 밤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합의 하에 대놓고 잠을 자려니 살짝 고민스러웠다.
서연은 ‘그럴까?’와 ‘그래도.’ 사이에서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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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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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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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준비해서 와요.”
그렇게 허락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