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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황소고집 (59/130)


59. 황소고집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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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있던 어떤 누구도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내키는 대로 떠드는 김 여사조차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조금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배달 오토바이의 엔진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경직됐던 분위기를 뚫고 석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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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달라니. 그게 다……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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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상의를 해야겠지만, 이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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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석구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어려운 시험을 끝낸 권율의 얼굴이나 보고 가려던 자리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가고 있었다.

권율은 명석하고, 진중한 만큼 한번 마음먹은 건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고민을 했다는 증거였다.

권율의 언행은 전혀 가볍지 않았고, 자신이 한 말은 어떻게든 책임지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천하의 석구도 말릴 수 없었다.

특히 진로를 결정할 때가 그랬었다. 모두가 의대 진학을 권유할 때 권율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달래도 보고, 다그쳐 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권율의 황소고집 버튼을 석구가 제대로 눌러버린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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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제 명의로 상속해주신 아파트가 비어 있습니다. 그쪽도 생각해볼게요.”

몇 년 전 돌아가신 권율의 할머니는 상당한 자산가였다.

그건 석구가 일군 재산과는 상관없이 친정에서 상속받은 것으로 장만한 것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재산이 분산되는 게 싫다는 이유로 모든 걸 권율에게만 상속했다.

그 당시 서희의 엄마인 재숙이 불만을 품었지만, 석구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일이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비록 어린 나이지만, 집안에서 권율의 재산은 석구 다음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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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상속세까지 낸 완벽한 제 집이고, 할아버지와는 별개인 재산이니까요.”

권율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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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부모님께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토해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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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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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건 나이가 어려서였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가족들처럼 금전적인 걸 바라지도, 고가의 선물을 준다고 해서 좋아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뭘 바란다면 그걸 미끼로 구워삶을 텐데.

워낙 가진 것이 많다 보니 재산과 관련해 절대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런 권율이 자신의 재산을 석구와 맞서기 위해 처음으로 행사하겠다니.

이건 뭐랄까.

가족들을 돈으로 쥐락펴락하는 석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독립 선언 같아 보였다.

그는 그럴 능력이 충분했고, 이미 모든 걸 생각해 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건 감정을 억누르며 참았던 것이지,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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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여긴데. 갑자기 이사는…….”

석구는 쏟아놓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 일단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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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본전이 생각나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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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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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보살펴주신 것에 비해 저희 가족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아요.”

그의 까만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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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참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서 각자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말해서 독립이지, 나쁘게 말하면 더는 석구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꼭두각시처럼 말 잘 듣는 아들 내외와 일등 손자를 한꺼번에 잃을 판이었다.

석구는 생각보다 일이 심각하게 흘러가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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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는 보라 일까지 어그러지게 생겼네.’

천천히 움직여야 할 보라 일까지 발각되자 석구는 슬슬 물러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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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렇게 감정적으로 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잘 넘어가야 했기에 석구는 권율을 살살 달래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권율은 석구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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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 취업이나 결혼도 제가 알아서 결정하겠습니다.”

단호할 정도로 꾹 다문 입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형형한 눈빛.

아무리 집안의 어른인 할아버지라도 선을 넘지 말라는 조용한 경고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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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그게 말이다…….”

석구는 자기도 모르게 변명을 시작하려다 이내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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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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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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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때 남대문에 첫 번째 가게를 얻으시고, 이미 결혼해서 고모를 가지셨다고요.”

석구가 돌림노래처럼 들려주던 성공담을 권율이 이렇게 써먹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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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제 다 큰 어른이고, 할아버지처럼 스스로 열심히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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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었기에 석구는 입만 벙긋거렸다.

아무리 기분이 언짢더라도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걸 토해내라는 그 말을 권율이 이미 들어버렸는데 말이다.

지금 석구는 권율의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말들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이사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권율의 빛나는 앞날에는 훈수조차 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 내외에게 말이 심했다며 사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석구가 눈치만 살피던 그때, 경쾌한 도어 록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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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석구는 마치 구세주가 온 것처럼 상현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참에 얼렁뚱땅 자리를 정리하고, 권율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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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할아버지 오셨어요?”

연희가 석구에게 붙잡혀 학원으로 데리러 가지 못하자 혼자 돌아온 상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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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우리 막둥이, 공부는 잘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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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만큼 아니지만, 저도 잘해요. 할아버지.”

싸늘했던 집안 분위기가 상현으로 인해 금세 달라졌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직된 표정을 풀고 흐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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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다던 뭔 이어폰인가 뭔가. 이걸로 사거라.”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석구가 얼른 현금을 꺼내며 말했다.

환심을 사는 데 돈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갑작스러운 용돈에 잔뜩 신이 난 상현이 두 손을 얼른 내밀자 근엄한 목소리가 제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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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현, 그거 형이 사줄게. 할아버지께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려.”

해맑던 상현은 권율의 달라진 눈빛을 보고는 주춤했다.

권율은 한없이 착하고 다정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눈빛만으로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걸 너무도 잘 알기에 상현이 얼른 손을 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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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괜찮아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상현이 물러나자 석구는 현금다발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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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돈으로 책이라도 사 봐라. 응?”

석구는 권율이 돈을 돌려줄까 싶어 김 여사에게 빨리 나가자며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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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늦었는데, 인제 그만 가야지.”

꼭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석구는 배웅하려는 가족들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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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나올 거 없다. 율이 애미야. 상현이 배고프다. 얼른 밥 줘라.”

석구는 연희에게 세상 다정한 시아버지처럼 말하고는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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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님. 이렇게 가시게요? 잠시만요. 저희가 모셔다드릴…….”

얼마나 황급히 나갔는지, 재형과 연희가 차 키를 들고 바로 뒤따랐는데도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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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무슨 일 있었어?”

상현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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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아니야. 상현아. 갖고 싶은 거 형한테 링크 보내.”

권율은 상현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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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모님과 상의할 일 있으니까. 방에 좀 들어가 있을래?”

상현은 권율의 다정한 말투와 그렇지 못한 눈빛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정적만이 감도는 거실. 혼자 남겨진 권율이 힐끔 시계를 쳐다봤다.

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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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리고 있겠지?’

순간 권율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 짓고, 서연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하니까.

그때 둔탁한 현관문 소리와 함께 연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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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말씀이 있어요.”

권율의 말에 두 사람이 다가와 앉았다.

그는 오늘 시험을 본 것부터 이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모든 걸 빠른 호흡으로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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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이 학교는 이사 가도 상관없지만, 학원에서는 좀 멀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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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건 걱정하지 마. 엄마가 데리고 다니면 되니까.”

재형과 연희도 오늘 일로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이사를 하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 날짜를 조율하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권율은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서연에 대한 미안함과 크게 내지른 만큼 확실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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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간단하게 손을 봐야 하니까, 한 달 이상은 걸릴 것 같아요.”

권율은 달력과 시간을 수시로 확인하며 이사 날짜를 여유 있게 정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불쑥 진심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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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부터 고민했던 건데요. 시험이 붙으면 독립하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분가 선언에 그의 부모님은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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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겠다고?”

연희는 곧바로 ‘왜’라고 묻고 싶었지만, 권율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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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 같이 이사하고, 저는 다른 집을 천천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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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연희는 이사하는 건 상관없지만, 권율과 따로 살아야 할 이유가 궁금해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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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혼자서 살아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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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니?”

재형은 가족들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감이 권율을 지치게 만든 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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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자유롭게 지내보려고요.”

그의 말투에서는 진지하다 못해 단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재형과 연희는 권율의 행동이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까지 석구의 과도한 간섭으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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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 친구가 없었어도 보라는 절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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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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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괜한 일을 벌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명확하게 선을 긋는 권율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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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할아버지가 계속 고집을 부리시면, 제가 보라 부모님께 직접 말씀드릴게요.”

권율은 원래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할아버지나 보라가 여기서 더 나간다면 절대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시선이 권율의 반듯한 얼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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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는 여자 친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결혼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는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재형과 연희는 한꺼번에 터지는 폭탄 발언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게다가 권율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석구가 생각해둔 엉뚱한 사람과의 결혼을 추진할 뻔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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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네 의견을 묻지도 않고, 우리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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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실 것 없어요. 제가 여자 친구 있다는 건 모르셨잖아요. 그리고…….”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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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 상현이한테는 언제나 최고의 부모님이세요.”

권율은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탓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롤 모델 같다고나 할까.

그런 소중한 마음을 깨닫게 해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연희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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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네 여자 친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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