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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끝까지 닿고 싶어서 (70/130)


70. 끝까지 닿고 싶어서
2022.10.02.



 


“어머!”

리나와 지연은 서희의 돌발행동에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딜요?”

호진이 서희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중요한 얘기를 여기서 할 수 없으니까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서희가 호진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그러자 호진의 몸이 순식간에 딸려 올라갔다.


“우리만요?”

“당연하죠.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갑시다.”

사실 서희는 행사장에서 호진을 발견한 순간부터 둘만의 시간을 기다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사건이 일어난 그날 이후부터였다.

그래서일까.

서희는 호진에게 다가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아찔하고도 뜨거웠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서희야…… 나는?”

갑자기 혼자 남게 된 현우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사님! 이사님은 저희랑 있어야죠. 중요한 얘기도 있고요.”

서연은 속으로 ‘붙잡지 마!’를 외치며 다급하게 현우를 달랬다.

자칫 두 사람의 달달한 분위기가 깨지면 안 됐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서희에게는 현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먼저 간다.”

그는 호진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율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현우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권율은 그에게 와인을 따라주며 예전에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던 일화를 털어놨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 만약에 말이야. 서연이랑 율이 씨랑 잘 되고, 호진이랑 서희 변호사님이랑 잘 되면…….”

“한 집안으로 사이좋게 시집가는 거지. 뭐.”

리나의 단순명료한 정리에 지연은 잘 하면 평생 엮이게 됐다며 신기해했다.


“서연아, 너무 잘됐다.”

“그러게. 우리 앞으로 남편들이랑 다 같이 만나서 놀면 진짜 재미있겠다.”

리나와 지연은 마치 결혼이 늦은 딸의 연애 소식을 반기는 엄마처럼 진심으로 좋아했다.


“꼭 초대해주세요. 저도 같이 만나고 싶어요.”

권율이 빙그레 웃으며 서연의 손을 부드럽게 포갰다.

네 사람이 다음 만날 약속을 정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홀로 남겨진 현우는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간 같은 처지의 서희가 있어 솔로 생활을 견딜 수 있었는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게 생겼다. 심지어 한참 어린 권율에게도 서연이 있었으니까.


“후우…….”

현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눈치 빠른 서연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사님.”

“아, 네.”

“요즘에도 피부관리 하세요?”

서연은 잡티 하나 없는 현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그렇죠. 남녀불문하고 피부는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역시, 우리 현우 이사님은 자기관리가 철저하시다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서연은 현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사실 권율을 만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현우였다.


“저랑 친한 피부과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피부과 전문의요?”

“네. 이분이에요. 저랑 굉장히 친해요.”

서연이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 이분은 TV에도 자주 나오는 분 같은데. 맞아요?”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간단한 이력을 덧붙였다.


“이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만남을 주선해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그러자 현우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바로 밝혔다.


“다음 주로 약속 잡았으니까 연락처 공유해드릴게요.”

뭘 재고 따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서연은 현우의 소개팅 약속을 그 자리에서 잡아버렸다.

이렇게 해서라도 현우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만약 잘 되면 다 한 대표님 덕분입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사님 덕분에 율이 씨를 알게 됐으니까요.”

서연의 말에 현우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났다.


“이번에 잘 안 되면 다른 분으로 또 소개해드릴게요. 인연을 만날 때까지요.”

어떻게 보면 이건, 서연에게 보험 같은 것이었다.

고마운 현우에게 그가 원하는 걸로 은혜를 갚고, 만약 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부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앞으로 홈쇼핑 일은 현우 이사님이랑 하자. 최 대표와 만나는 건 최대한 줄여야 해.’

사업가 아니랄까 봐. 서연은 혹시 모를 리스크를 대비하며 현우를 제 편으로 만들 큰 그림을 그렸다.

지금 당장 홈쇼핑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때 리나가 서연의 어깨를 툭 쳤다.


“서연아. 율이 씨 잔잔하게 재밌다.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아.”

서연은 킥킥거리는 친구들과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권율을 바라봤다.


“나이를 떠나 우리 율이랑 대화하면 재미있습니다.”

소개팅 약속이 잡혀서 그런지 현우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향긋한 와인과 맛있는 안주, 거기에 좋아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까지.

서연은 이 완벽한 평화에 행복했다.

***

친구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

권율의 차가 서연의 아파트 주차장에 서서히 멈춰 섰다.

그는 아까부터 둘만의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달칵―.

안전벨트 버클이 풀리자마자 그는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보였다.

커다란 상체를 기울여 서연의 입술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처음에는 천천히 다가와 가볍게 촉. 그러다 조금 더 깊고 부드럽게…….

결국에는 서연을 잡아먹을 기세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헤어지기 싫다.’

권율은 서연과 입술을 마주친 순간에도 그 생각뿐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요즘 ‘이만 그만 갈까요’라든가 ‘잘 가요’라는 말이 싫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연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단번에 거절하고 싶었다.

서연과 헤어져 집에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으니까.

권율은 ‘10분만 더’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1시간 넘도록 서연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작별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연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대로 가기 싫다.’

다른 날도 아닌 오늘만큼은 정말 가기 싫었다.

서연의 옆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 있다는 불안함 때문일까? 그녀와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서연 씨.”

권율이 뜨거워진 뺨을 서연의 목덜미에 비비며 중얼거렸다.


“나 올라가도 돼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권율은 원하는 바를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서연의 손바닥을 자신의 심장 위에 꾹 가져다 붙여 진심을 전달했다.

서연이 빠르게 내달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권율의 진심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그럴래요?”

서연은 권율의 손등 위에 말랑한 뺨을 기대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권율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건 내가 들게요. 무거워요.”

권율은 한 손으로는 거대한 꽃다발을, 다른 손으로는 서연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동안 그는 마치 더 깊은 물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가빠지는 숨을 꾹꾹 억누르자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15, 16…… 20.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그의 까만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드디어 25층.

땡 소리가 나는 순간 그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리자, 권율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그러고는 서연의 손을 빈틈없이 고쳐잡았다.

엷게 번져버린 서연의 입술, 분홍빛 얼룩이 생겨버린 하얀 목덜미, 거기다 약간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

열기로 가득한 권율의 시선이 도어 록을 누르는 서연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다.

삑, 삑삑―.

권율은 서연의 하얀 손가락이 참을 수 없이 예뻤다.

숫자가 하나씩 눌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가 서연의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하.”

서연의 흔들리는 어깨너머로 나른한 숨이 새어 나왔다.

삑삑삑― 철컥.

서연이 몸이 순식간에 문 안쪽으로 딸려갔다.

쿵.

권율은 한쪽 손에는 거대한 꽃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서연을 안았다.

권율의 팔에 매달리게 된 서연이 그의 목을 끌어안자 뜨거운 숨결이 어깨에 와닿았다.

탁―.

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꽃다발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서연을 그 옆에 살포시 내려놨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

서연은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어느새 상체를 비스듬하게 숙인 권율의 입술이 서연의 목덜미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너무 예뻐요.”

권율의 입술이 서연의 뺨과 귀의 경계를 맴돌자 그녀의 등줄기로 짜릿한 소름이 돋아났다.

서연은 부드러운 권율의 감촉이 닿을 듯 말 듯 밀당을 벌이자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

셔츠 아래로 사납게 솟아오른 어깨 근육이 마중을 나오듯 꿈틀거렸다.

서연은 두 팔로 그의 어깨에 매달리며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쿵쿵, 쿵쿵―.

박진감 넘치는 그의 심장박동이 서연의 뺨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권율은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서연의 어깨를 담뿍 베어 물었다.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어서인지, 하얗게 드러난 서연의 어깨가 너무도 예뻐 보였다.

그는 여린 어깨를 집요하게 탐했다.

그러다가도 목이 마른 사람처럼 서연의 입술을 머금고, 그녀의 둥근 어깨 끝을 잘게 깨물었다.


“율…… 하아.”

그럴 때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서연의 달콤한 숨이 흩어져 내렸다.

도대체 한서연이라는 사람은 뭐로 만들어졌기에 숨결마저 이리도 달콤한지.

권율은 단숨에 그녀를 삼켜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기분이…… 이상해요.”

핏줄이 잔뜩 불거진 권율의 커다란 손이 서연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어떻게요?”

권율은 서연의 목덜미에 촉촉하게 입술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더 가까이 가고 싶어요.”

진심이었다.

지금 권율의 머릿속에는 위협적인 민혁도, 골치 아픈 집안일도, 복잡한 현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인간 복숭아 같은 달콤한 서연을 베어물고 싶었다.


“밤새도록.”

마음속 진실을 내뱉고 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랑도 질투도, 강한 소유욕과 열망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제는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

이 모든 것이 권율을 더욱 솔직하게 만들었다.

툭―.

권율이 거추장스러운 재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답답하게 조이던 셔츠의 단추를 2개 풀어 버렸다.


“하아.”

달뜬 열망과 긴장으로 팽팽했던 몸이 풀어지자 나른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율이 씨.”

“서연 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끝까지.”

그러자 서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권율의 흩어진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너무 좋아서…….”

권율은 서연의 이마를 맞대며 기도하듯 읊조렸다.


“참고 싶지 않아요.”

서연은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나도요.”

권율은 서연과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이제는 진짜 서연의 남자인 것 같았다.


“사랑해요. 서연 씨.”

권율은 소중한 서연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하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이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고, 귀중한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어차피 밤은…… 길고 기니까.

권율은 감정 앞에서 너무도 솔직했고, 충분하고도 풍부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율이 씨. 꽃…….”

꽃다발 포장지가 눌리며 요란하게 바스락거렸다. 권율은 탁자를 짚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꽃 같이 앉아 있는 서연을 번쩍 안았다.


“방으로 가요.”

그는 서연과 입술을 맞붙인 채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침실 문이 스르륵 열리자마자, 서연의 드레스 지퍼가 함께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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