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떡잎부터 밟는다 >
“전화로는 고소한다고 협박을 하시더니, 이젠 대놓고 음모론입니까?”
오 기자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깍지를 꼈다. 편안해 보이는 자세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깡따구를 가진 사람들이다. 협박이나 분위기에 쉽게 당하질 않는다.
“잘 들으세요. 오 기자님. 탑 걸은 무조건 성공합니다. 전 1년 안에 큰 부를 쌓을 거예요.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이 되겠죠.”
“돈 자랑은 친구들 불러서 하시고요.”
진모는 이틀 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처음으로 기습을 당했다. 물론 육체적으로 어디가 다쳤다는 게 아니다.
여느 날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을 보는데, 기사 하나가 1면에 뜬 거다.
다른 모든 신문은 자투리에도 다루지 않는 것을 오직 한 곳에서만 엄청나게 부각했다는 것.
물론 임상에 젊은 학생들을 높은 시급을 주는 것으로 끌어들여 암암리에 모르모트로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왜 이 타이밍에?
탑 걸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시험을 끝내고 이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1을 막 들어간 상태다.
임상1이 끝나면 더 많은 사람을 써서 긴 시간 임상2를 시행하고, 임상3까지 마쳐야 비로소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기사가 터져?
심지어 그 기사엔 ‘현재 임상 중인 정체불명의 진통제’라고까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임상에 참여한 학생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후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조명했다.
미래를 알지만, 이건 없는 미래다.
진모가 이 신약을 만들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
당연히 이 일은 헬파고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이틀 전에 본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래 그날 1면에 실려야 했을 기사는 정부의 술값 인상에 관한 것.
그런데 그게 진모의 신약으로 대체되어버린 거다.
우선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일을 오 기자가 독단으로 했는가, 아니면 국장이 움직였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전자라면 일은 간단하지만, 후자라면 아주 골치가 아프다. 더 큰 세력이 개입했다는 뜻이니까.
“입사 3년 차시더군요.”
“그래서요?”
“그간 취재하셨던 기사들을 쭉 살펴봤습니다.”
진모의 말에 오 기자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것부터가 웃긴 거다. 기자란 사회의 부조리나 객관적인 사실을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그게 자랑스럽다면 자랑스러웠지 불편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재작년엔 청년실업 문제로 정부를 비판하셨다가, 작년엔 요즘 청년들이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기사를 쓰셨더군요.”
“뭐, 둘 다 사실이니까요.”
“활동범위가 아주 넓으시던데, 자동차 관련 블로그도 운영하시죠?”
“취밉니다. 취미.”
진모는 끄덕였다. 하지만 녀석의 말에 동조해서가 아니다.
미래에 나쁜 놈이 된다고 해서 아직 25년이나 남았는데 그 사람을 타박할 수 있을까?
진모가 생각한 결론은 아니다였다.
미래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매국노도 애국자로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여기엔 예외도 있는 법.
25년 동안 꾸준히 나쁜 놈이었다면 기다릴 필욘 없다.
전과 1범과, 25범은 분명히 다른 거니까.
“2015년 1월에 출시한 대한 자동차의 중형차 시승기를 쓰셨네요. 아주 심한 악평으로 대단히 관심을 끄셨더군요. 그러다가 딱 보름 후에 같은 차종 같은 연식의 모델을 호평하는 기사를 내셨고요. 그 이후론 쭉 그 회사의 차량을 마치 광고하듯..”
“여보세요!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진모는 이를 악물었다.
이놈이 뒷돈을 받고 기사를 쓰던, 뇌물을 받아 시승기를 쓰던 그건 이놈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구더기가 시체를 뜯어먹고 산다고 짜증 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이런 놈들이 크면 파리가 된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웽웽- 귀찮게 달라붙고 시선을 잡아끄는..
그 찰나의 순간에 사람들을 알아야 할, 꼭 봐야만 할 사건들을 놓치게 되는 거다.
“맞아 당신과 뭘 좀 하려는 거야.”
진모가 두 번째 삶을 살기 시작하고 난 뒤로 처음 진심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왜 여자를 죽일까?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멀었는가!
-북한은 적이 아닌, 우리의 동반자!
핵미사일이 청와대로 떨어지던 날. 모든 언론이 이상을 감지하고 며칠 전부터 난리였는데 이놈이 장악한 언론만 이런 것들을 쏟아냈다.
아마 그때 어쩌면 이미 이놈은 해외로 튄 후일 거다.
대한민국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베트남도 그렇게 망했고, 한국 역시 같은 방법에 당했다.
간첩이 그 일을 전부 다 이뤘다는 게 아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돼.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생각을 가진 도둑놈들.
그놈들은 아주 지속적이고 장기간 대한민국을 갉아먹었다.
언론, 교직, 운송, CEO, 군대.. 거기에 국회까지 도둑놈은 넘쳐흘렀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탑 걸은 성공할 테니까. 하지만 잘 들어. 당신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것만 명심하면 돼. 나를 지켜봐. 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꼭 보라고.”
오 기자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진모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 모든 걸 다 동원해서 당신을 파헤치기 시작할 거야. 당신도 알지? 돈이면 다 되는 거. 떳떳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거야. 참 간단한 논리지?”
오 기자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협박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느낀 거다.
고작 스물아홉짜리가 홧김에 내뱉는 게 아닌, 진짜 널 박살 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는 눈!
“지켜볼 거야. 당신에겐 마지막 기회니까 똑바로 살아. 알겠어? 앞으로 당신이 쓰는 모든 기사. 당신이 가진 계좌. 그리고 그 기사와 기업의 유착이나 거래. 전부 기록할 거니까.”
“지금 누굴 협박하는 겁니까? 당신 미쳤어? 콩밥 좀 먹고 싶은가 본데!”
오진호도 발악했다. 여기서 기에 눌리면 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녹음할 겁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말은 전부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아시겠습니까?”
당연히 기자니까 휴대용 녹음기쯤은 하나씩 들고 다닌다. 주머니에서 그걸 재빠르게 꺼내 무기처럼 쥐고 진모를 위협하는 오 기자.
‘너, 사람 잘못 봤어!’
그는 이때 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촤악!
진모가 상의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오 기자의 앞에 던져버렸다.
벚꽃처럼 흩날리며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종이들.
“외삼촌 통장으로 700만 원이 작년 5월에 입금되었더군요. 이때가 ST에서 스마트폰이 새로 출시되었던 달이었죠? 아버님 명의로는 올해 1월에 파주의 땅이 이전되었더군요. 이건 더 파볼까요? 월급이 300만 원이 못 되는 거로 아는데 지난달 카드 값이 900만 원이 넘게 나오셨고요? 능력이 참 좋으십니다?”
진모가 던진 종이들에는 각종 계좌명세와 영수증, 통화기록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허어어억!”
오진모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바닥의 종이들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일 때, 그의 앞에 바짝 다가서는 진모!
“분명히 경고했어. 난 두 번 기회를 주진 않아. 잘 생각해.”
녀석에게 바짝 붙어 귓가에 속삭이며 말을 한다.
싸아아악-
소름이 돋아나는 오진호는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진모는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45분 됐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진호 기자님.”
일어선 진모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예의 바르게 오 기자에게 인사를 했다.
“자, 잠깐만요!”
막 진모가 떠나려는데 오 기자가 급하게 불렀다.
한 20년쯤 지나면 모를까, 이 녀석은 아직 3년 차 햇병아리.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진정하시고 제 얘길 좀 들어보세요!”
진모는 걸음을 멈추고 오 기자를 돌아본다.
“긴 얘깁니까?”
끄덕이는 오 기자.
녀석은 지금 갈등하고 있다. 어떻게 둘러댈까? 적당한 거짓말은? 저자가 얼마나 알고 있지?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표정.
진모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선약을 다음으로 미뤄야겠군요.”
진모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짧게 말한다.
“오성일보입니까? 저 오늘 국장님을 찾아뵙기로 했던 윤진모라고 합니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시간을 변경하고 싶은데 비서님께서 조율이 가능하십니까?”
진모의 통화를 들은 오 기자의 얼굴은 이제 시체처럼 참혹하게 일그러져버렸다.
.
.
“후우..”
진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자라면’ 사무실 의자에 앉아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거다.
‘어렵네. 하필..’
오 기자를 만나고 와서부터 계속 이 상태다.
녀석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알아냈다.
‘대한 그룹..’
오 기자는 국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자기는 사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왜 그 기사를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녀석의 표정과 말투는 분명했다. ‘내가 뒤집어쓰기 싫다.’ 노련한 기자 흉내를 내고 있긴 하지만 역시 녀석은 아직 풋내기. 좀 더 녀석을 조이자 대한 제약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대한 제약.
대한 그룹의 43개 계열사 중의 하나이며,
‘한국인의 두통약!’
‘생리통엔 뿅뿅!’
이라는 카피로 유명한 진통제를 판매하는 회사다.
국내 약품의 시장점유율 53%를 자랑하는 거대 공룡 제약회사.
사실 로열티만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대한 제약이 계열사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위에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돈을 벌어들이는 회사.
당연히 추종자도 많다.
그냥 약을 만드는 회사 아니냐? 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제약회사는 병원과 유착이 되어있다. 리베이트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왔을 것이다.
여기저기 평소에 달달한 콩고물을 왕창 뿌리고 다녔기 때문에 의사와 약사는 결정적일 때, 제약회사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개인이 아니다.
협회가 움직인다. 의사협회, 약사협회, 선진 의료단체..
이런 것들 말이다.
‘하필..’
“으음..”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
오 기자에겐 큰소릴 쳤지만, 이게 얼마나 거지 같냐면, 임상을 마친 탑 걸이 아무리 좋고 뛰어나도 의사와 약사가 그걸 쓰지 않으면 환자들은 구경도 못 해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래서 힘을 좀 더 키웠어야 하는 건데.’
후회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놈들은 공룡.
아니, 거대한 성이다.
‘이번엔 공성전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