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을 수 없다면 >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보내주신 파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부터 묻고 싶은데.. 설마 직접 프로그래밍하신 겁니까?”
태수는 아직까지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니요. 전 정외과를 나왔습니다. 하하! 그런 엄청난 물건을 제가 만들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꿀꺽!
침을 삼키는 중년인.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얼굴은 동안인데 머리칼은 지나치게 희다.
“그, 그럼 게임 회사를 운영하시고 계신 겁니까?”
“작은 투자회사입니다.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죠. 특허를 사고팔거나, 기술을 다루기도 합니다. 보내드렸던 그것 역시 우리 회사가 사들인 게임이고요.”
“아!”
지금 진모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
게임 업계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류 기업의 대표이사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굵직한 온라인 게임을 히트시켰고 최근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주식회사 JP소프트.
2016년 대한민국을 빛낸 100대 경영인으로 뽑히기도 한 인물.
안재순.
아, 뽑힐 예정인 인물이다.
‘대단한 사람인가?’
물론 태수처럼 이 분야를 모르면 말짱 허명이지만 말이다.
“드세요. 음식 식겠습니다.”
진모는 태수에게 불고기 뚝배기를 살짝 밀어주며 웃었다.
“네! 잘 먹겠습니다!”
잠시 후, 직원이 소주를 가지고 들어올 때, 진모는 밥을 한 공기 더 주문했다.
“윤 대표님. 그 게임, 꼭 좀 저희와 함께하실 수 없겠습니까? 보는 순간 알았습니다. 아! 이제 우리가 블리자드를 넘어설 수 있겠구나! 하고요.”
안재순은 소주병을 진모의 잔에 기울이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안달이 났나 보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소주병을 넘겨받으며 안재순의 잔을 채우기 시작하는 진모.
“아시다시피 제가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소주병을 내려놓는 진모다.
“그렇죠! 당연히 본분을 다하셔야죠!”
짠, 가볍게 잔이 부딪친다.
“사실, 구글 쪽에서도 답신이 왔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프읍!”
소주를 조금 마시려다 뿜어내는 안재순.
“크윽, 큭! 미,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진모는 티슈를 건네주며 살짝 웃었다.
물론 방금 그 말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빈말도 아닌 게, 그쪽에 보내면 아마 전용기를 띄워서라도 당장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모가 안재순의 회사 JP소프트에 하나의 메일을 보낸 건 사흘 전.
그건 일종의 데모이기도 했고,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만들어진 게임 플레이 영상 같은 게 아니라서 안재순까지 그 메일이 올라가기에 시간이 걸린 거다.
“안 대표님.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비록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무조건 돈만 생각하는 그런 놈은 아닙니다.”
“예..”
입을 닦으며 진모를 바라보는 안재순. 아까 구글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마인크래프트를 1조 원이 넘게 사들인 무식한 기업이다. 그런 구글과 경쟁을 한다는 건..
“돈을 우선시했다면 오늘 안 대표님을 만날 이유도 없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돈이 별겁니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죠.”
진모는 옆을 슬쩍 바라보며 웃는다.
“드세요.”
“아, 예예..”
태수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전 사실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2040년. 대한민국의 게임시장은 재기불능의 상태였다.
오직 단 한 종류의 게임만 넘쳐났고,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한 지점까지 추락했다.
“게임이 뭡니까?”
진모는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안 대표님께서 가장 처음 게임을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습니까?”
안재순은 가볍게 이마를 찡그렸다.
‘시작이라..’
갑자기 떠올리려니 머리가 하얗게 백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저는 기억합니다. 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 있던 오락기를요.”
진모의 말에 찡그린 안재순의 얼굴도 살며시 펴진다.
그도 어릴 때의 향수가 그려진 것.
“그땐 동전 하나로 참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그때의 게임이란 그랬다.
모든 아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잠깐 휴식처가 되어주는.
“그런데 지금은 도박이나 다름없죠.”
쿠웅.
안재순의 안색이 다시 굳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안 대표님. 지금의 한국 게임시장이 ‘사행성’으로 돌아갑니까? ‘게임성’으로 돌아갑니까?”
한국의 게임시장은 2019년부터 망조가 들기 시작한다. 그간 사행성과 도박성에 고혈을 쪽쪽 빨린 유저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돈을 쓸어담던 모바일 시장도 마찬가지.
가상현실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침몰한다.
“아시다시피 제가 보내드린 프로그램 데모는 VR을 기반으로 합니다.”
VR이 뭐지? 라는 표정으로 힐끔 돌아보는 태수.
그에겐 둘의 대화는 별나라 말이나 다름없었다.
“늦어도 2020년부터는 VR 시장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릴 겁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돈’을 위해 게임을 만드실 겁니까?”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회사들이 전부 다 썩어서 어떻게 도려낼 수준을 넘어버렸다.
이 지경까지 되었으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화하는 것.
“충고는.. 고맙게 듣겠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정부가 우릴 말려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게임은 마약처럼 중독이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정돈 맞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만든 건 바로 한국의 게임 업계다.
돈을 쓰게 만들고, 끝이 없게 늘려버렸다.
당연히 투자했으면 본전을 찾겠다는 게 사람 심리고, 끝없는 레벨업은 중독자를 양산한다.
“이 소주를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걸 10병씩 먹으면 문제가 되죠.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마시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계속 옆에서 따라주며 분위기를 몰아주면 주량을 넘겠죠. 안 그렇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안전장치는 만들어뒀습니다. 한 달에 결재할 수 있는 한도도 정해뒀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피로도 시스템도 도입해서 무리한 게임을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진모는 피식 웃었다.
“돈 주면 그 피로도도 풀 수 있고요?”
“······.”
2016년.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업들은 어차피 한탕 크게 하고 빠질 궁리나 하고 있었고, 대중은 모기에 물린 사람처럼 피를 쪽쪽 빨린다.
“양주에 게임 회사 한 곳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태수가 진모를 휙! 돌아본다. 그것 때문에 오늘 의정부를 다녀온 건가? 라는 표정.
“저는 그곳에서 젊음과 열정을 불태울 인재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줄 생각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둘. 작품성과 게임성. 오직 그것뿐이죠. 재미있으면 어떻게든 팔립니다. 흥미로우면 누구든 쳐다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 문방구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처럼요.”
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끄덕였다. 듣고 있다 보면 내용을 몰라도 정신이 쏘옥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게임 중독이요? 물론 문제입니다. 대한의 모든 젊은이들이 게임에만 빠져 있다면 그건 아주 심각한 거죠. 취미는 취미가 되어야 합니다. 낚시를 24시간 하거나, 등산을 온종일 하면 그건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으음..”
“그런데요, 대표님 회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은 그걸 부추기고 있죠.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다는 마음, 하루라도 못하면 왠지 내가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느낌. 그걸 조장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돈으로 채우게 하는..”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게임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거고, 바쁜 사람들은 돈을 투자해서라도 따라가는 게 맞지 않습니까?”
진모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그 박력에 태수와 두 남자가 움찔한다.
“저기.. 공깃밥..”
때마침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
진모는 한숨을 내쉬며 직원에게 그걸 받아 태수의 앞에 놓아주었다.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 태수.
‘이걸 왜 나한테..’
“안 대표님.”
“예, 윤 대표님.”
“간단한 얘기에요. 끝이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해결되는 아주 쉬운 문제에요.”
“참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우리라고 그걸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십니까?”
끝판왕이라는 말이 있다.
그건 게임용어다. 게임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게임엔 그 끝판왕은 없다.
무한대로 이어지는 게임.
그건 당연히 피로감을 늘리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몬스터가 아닌, 타인과 경쟁하게 한다.
“그래서 제가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말입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에요. 근데 말입니다. 윤 대표님. 가지고 계신 그 소프트 하나가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1년? 6개월? 보내주신 자료로 봤을 때 그건 길어 봐야 1달도 못 가요. 대한민국 유저를 너무 우습게 보시는군요.”
진모는 쓰게 웃으며 끄덕였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뭐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든다.
빨리 빨리가 생활화된 민족이다.
이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
잠도 안 자고 몰입한다.
학교도 안 가고 게임에 파고든다.
취업도 미루고,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한다.
유독 한국에만 이런 중독증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꿈을 찾아야 할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 달려가야 할 청춘이,
끝나지 않는 게임에 몰입해 병들어가는 것..
“10개라면요?”
진모가 웃으며 안재순을 본다.
“그게 무슨..”
“제가 언제 하나라고 했습니까?”
덜컥! 식탁 위에 소주잔이 넘어졌다. 놀란 안재순이 손으로 소주잔을 쳐버린 거다.
그런데도 닦을 생각을 못 한다.
“여, 열 개요?”
“지금까진 그렇죠. 계속 개발되고 있으니 더 늘어날 예정이고요. 그 정도면 어떻습니까? 버텨 볼 시간이 될 것 같습니까?”
안재순은 대답하지 못했다. 식탁을 흘러내리는 소주가 그의 바지를 적시고 있는데도 말이다.
.
.
“저도 한 대 주시겠습니까?”
진모는 차에 기대 태수의 담배를 하나 빌렸다.
“담배는 안 태우시는 거로 알고 있는..”
“맞습니다. 평소엔 안 피웁니다.”
틱!
태수가 라이터를 켠다.
“푸우..”
진모는 연기를 하늘로 뿜어 올리며 밤하늘을 보았다.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그리고 게임 중독자..
2040년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가상현실게임이다.
압도적인 몰입감과 현실감.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청년층이 죄다 그걸 하고 앉아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런데 왜 그걸 헬파고에서 꺼냈냐고?
간단하다. 내가 하지 않아도 그건 언젠간 누군가 하니까.
벌써 VR의 초석은 만들어지고 있다. 아직은 큰 헬멧이 불편하고 하드웨어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일반에 퍼지지 않았지만, 10년 이내에 이 시장은 미친 듯이 성장한다.
‘차라리 막을 수 없다면 내가 선도하는 편이 낫겠지.’
전기차 시장을 뛰어넘을 정도로 말이다.
“중독이라.. 후..”
답답한지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는 진모.
그런 진모를 보며 태수가 물었다.
“방금 그분과는 어떻게 잘 되실 것 같습니까?”
“그건 두고 봐야죠.”
그가 제안을 모두 수렴하면 파트너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차하면 하나쯤 빼서 정말 구글에 파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저.. 대표님.”
진모는 태수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돌렸다.
“말씀하세요.”
“혹시, 계속 오늘처럼 동석해야 하는 겁니까?”
진모는 태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돌연 크게 웃어버렸다.
“하하! 그렇게 불편했습니까?”
“예, 뭐.. 음식도 고급스럽고 맛도 있었는데 그게 코로 들어가는 지, 귀로 들어가는지..”
일반적으로 경호원이 아까와 같은 자리까지 동석하는 경우는 없다. 신변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 모를까..
“시청일이 너무 길어져서 식사도 못 하시고 기다리셨잖습니까?”
진모는 웃으며 태수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다음부턴 식사하세요. 무작정 기다리지 마시고. 알겠습니까?”
태수는 멍하니 진모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라는 표정이다.
“저도 경황이 없다 보니 오늘은 미리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앞으론 늦어질 것 같으면 문자라도 하겠습니다.”
태수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리고 보통 아까 같은 자리는 음식이 거의 다 남습니다. 같이 먹으면 좋죠! 하하!”
‘나 때문에?’
그래서 밥도 두 공기나 주문한 건가?
눈을 두꺼비처럼 껌뻑이며 진모를 바라보는 태수는 가슴 안쪽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요즘 말이 한창 많지 않았나?
대기업 고위직 간부나 회장들이 경호원이나 운전기사를 노예처럼 다루고 심지어 때리기도 한다는 사건들 말이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참 힘든 직업이에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경호 일이라는 건 3살짜리 애 키우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다치지 않게 빈틈없이 돌보려면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두 공기는 기본이라고..”
태수는 진모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끄덕인다.
“그게 누가 한 말입니까? 처음 듣는데.”
“하하하!”
진모가 더 크게 웃었다.
‘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지.’
후우웅-
시원한 바람이 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도시의 밤풍경을 잠깐 넋 놓고 바라보던 태수가 문득 입을 다시 연다.
“근데 그게 대체 무슨 게임이기에 그런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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