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18화 (18/140)

< 최선을 다할 것 >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누세요.”

모두의 눈에 물음표가 생겨났다.

“아, 거창하게 하란 게 아닙니다. 한 달에 만 원, 혹은 천원이라도 타인을 돕는 습관을 기르자 이겁니다.”

먹고 살기 너무 힘겨워서 투표조차 못 하는 사람들. 그럼 사람들이 10%가 넘는다. 진모는 지금 그걸 겨냥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아직 우리 주변엔 어렵고 힘든 이웃이 너무도 많습니다. 해외까지 눈 돌릴 필요도 없어요. 소년 소녀 가장. 독거노인. 고아원.. 외면하고 싶은, 우리가 잊고 있는 사각에서 고통받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살자 이겁니다.”

그리고 이건 결정적인 순간에 ‘표’로 되돌아올 것이다.

모든 사원이 적지만 기부를 한다.

지금은 고작 몇십 명에 불과하지만, 훗날 몇천, 몇만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남을 돕는데 이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게 사악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떠한가? 서로 윈-윈 아닌가?

언제나 그렇지만 진모는 피식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제발 나만큼만 해라.

이 방법이 좋아 보이면 너희가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선행이라는 건,

미담이라는 것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언젠가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이건 가린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럭키펀치가 되어 상대를 쓰러뜨릴 무기가 될 것이다.

“와아아아!”

“대표님! 멋져요!”

연설이 끝나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내려가는 진모. 그를 가장 열광적으로 떠받드는 건, 청소를 하는 아줌마 집단과 경비를 서는 할아버지들이었다.

보통은 용역에 의뢰해서 최저 시급보다 못한 보수를 주며 부려먹는 직종이다. 하지만 진모는 약속했다.

열심히만 하면,

장기근속만 하면 다른 사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다고.

아직 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에게 약속한 주식이 나중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모든 사원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기업.

단 1주뿐이지만, 그게 퇴직할 때 얼마의 가치로 변환되는지 이들은 모를 거다.

‘나 역시 아직은 모르지만 말이야.’

진모는 사원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며 말이다.

다음 날부터 진모는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정말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말이다.

대학들을 찾아다녔고, 연구소들을 방문했다. 태수의 경호회사 김&김을 찾아가 경비 인력을 확충하고 그러면서도 밤에 틈틈이 헬파고에서 꺼낸 ‘라스트 가디언’의 2부를 썼다.

하루 24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지는 나날.

.

.

‘이 사람은 괴물인가..’

태수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진모를 뒤에서 보며 머리를 흔든다. 사람의 활동력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젊다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로봇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해야 할 일이 프로그램된 기계 말이다.

근데 웃긴 건 막힘이 없다는 거다. 사람 사는 일이 뜻대로 되는 게 절대 아닌데, 그는 언제나 차선, 그게 안 되면 또 다음 수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오늘일 역시 마찬가지.

툭툭, 노크 소리에 태수는 문고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문파이의 권이현 팀장이 웃으며 상큼하게 들어온다.

“대박이에요! 대박! 꺄악! 어떡해!”

자리에 앉지도 않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을 표현하는 권이현. 하지만 진모는 피식 웃으며 끄덕일 뿐이다. 그런 진모를 보며 태수가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놀라지 않는다. 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전화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고 권이현이 미리 말을 했다지만 지나치게 평온하지 않은가?

“이거 보세요! 여기요!”

권이현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도저히 못 참겠는지 진모에게 다가와 태블릿PC를 내밀었다.

아마존.

미국과 영어권 국가에 전자책을 유통하는 회사.

“흠.. 21위네요.”

진모가 심드렁하게 말했고 태수도 궁금한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빠끔히 내민다.

“흠이 아니라 무려 21위라고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시는 거죠? 그런 거죠?”

잔뜩 흥분한 권이현에게 끄덕이는 진모.

“고작 2주 만에 21위라고요! 그것도 이제 막 둘째 주 시작했고요! 리뷰도 엄청나게 달리고 있어요! 저 솜털 곤두서는 거 안 보이세요?”

두 손을 모으고 부르르 떨기까지 하는 권이현을 보며 진모가 피식 웃는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21위가 아니라 2위를 했다고 해도 어깨 한번 으쓱거렸을 거다. 이 소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으니까.

“국내 반응은 어떻습니까?”

“설마 전혀 모니터도 안 하신 거예요?”

“아, 예. 바빠서요.”

“어머 어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권이현은 태블릿을 몇 번 두드려 문파이 창을 띄운다.

“아직 큰 반응은 아니지만, 꾸준히 따라붙고 있어요.”

진모는 라스트 가디언의 연재 목록을 보았다.

‘이게 본 사람 숫자인 건가?’

1화 조회수 5291.

오늘 아침에 올라온 최신화가 9화. 그 조회수가 4591이다.

“썩 좋진 않군요.”

1화와 2화에서 벌써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떠올린 진모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권이현의 반응은 달랐다.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이거 엄청나게 좋은 거라고요. 분명히 이거 떠요. 제가 장담할게요!”

“······.”

진모는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으로 한곳을 누른다.

“이게 독자들이 글을 남긴 겁니까?”

“아, 예.. 근데 그건 꼭 보실 필요는..”

연재 목록 옆에 작은 숫자들이 보이기에 그걸 누르는 진모.

-헐, 드디어 한국에도 대작이 나오나?

-그 정도는 아님. 근데 아직까진 볼만함.

-너무 답답합니다. 작가님. 앞으로 주인공 더 굴리면 하차할 겁니다.

“······.”

진모는 댓글을 읽다가 그만뒀다. 좋은 응원의 말도 있었지만 소위 말해 악플이라는 것들도 많았다.

“노잼이 뭡니까?”

진모의 물음에 권이현이 땀을 삐질 흘리며 태블릿을 냉큼 빼앗는다.

“저, 저도 모르겠네요.”

뭔가 숨기는 듯한 권이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데 뒤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태수였다.

“재미없다는 겁니다.”

“······.”

“······.”

말없이 태수를 바라보는 두 사람.

“크흠, 그렇군요.”

사실 이 소설 자체가 미국 사람이 쓴 거고, 미국에서 대박난 거다. 당연히 한국 정서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대놓고 ‘노잼’이라는 말을 들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호호!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사람 취향은 전부 다르잖아요? 그리고 1편은 그냥 찍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권이현은 재빠르게 말을 돌리며 다시 아마존 얘기로 넘어갔다.

“이대로만 계속 올라가면 한국 장르소설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지금까지의 성적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고요. 만약 다음 주쯤 10위권 안에만 든다면..”

“든다면?”

“초대박 터지는 거죠!”

슬쩍 웃으며 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어대는 진모.

“곧 2부도 원고 보내겠습니다.”

“아앗! 벌써요?”

진모는 끄덕이며 웃었다.

이것 하나로 끝낼 생각은 없다. 라스트 가디언이 끝나면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도 계속해서 뽑아낼 생각이다. 아직 추리, SF, 드라마, 문학까지 헬파고에 잠들어 있는 대단한 소설들이 산더미다. 그걸 전부 돈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도 이른 시일 안에 말이다.

‘나중엔 필요 없지.’

책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한계가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주공단엔 당장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막상 한 5년쯤 뒤엔 책을 쓰지 않아도 공단만으로 충분히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이렇게는 시간이 너무 걸려.’

헬파고를 보면서 노트북에 옮기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그럼 다음에 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찾아뵐게요! 작가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권이현이 나가자 진모는 태수도 보낸다.

“늦었습니다. 들어가서 쉬세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저야 여기서 자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GL빌딩으로 새롭게 이름을 바꾼 이곳은 이미 김&김에서 경호인력이 들어온 상태다.

1층부터 8층까지 모든 CCTV를 감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9명의 우수한 직원이 24시간 모니터 중이다. 태수가 옆에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란 거다.

“그럼,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요즘 대표님을 보고 있으면 불안 불안 합니다.”

밀착경호라지만 진모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태수는 개인 시간이 전혀 없다. 그걸 아는 진모는 일부러 저녁 시간엔 이렇게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를 보냈다.

‘속 깊으신 분..’

태수도 물론 그걸 잘 알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갔나?’

태수가 완전히 사라지자 진모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도대체가 사생활이 없어. 사생활이..”

이제야 후련한 듯 늘어지게 기대 헬파고를 두드리는 진모.

아무리 사람들 앞에 서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게 숙명인 정치가 생활을 오래 했다지만 그게 계속되면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자유롭게 헬파고를 만지는 시간이 소중하다. 진모는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런 소음도 없이 고요하다.

주변은 아직 빈 공장들만 가득하고 도로엔 지나는 차량조차 없다.

톡톡.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헬파고를 음성모드로 변환하는 진모.

“정보를 출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어떤 방식을 원하십니까?

헬파고의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지만 말투는 아주 딱딱하다. 이게 대통령 전용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지는 모르겠다.

“헬파고의 자료를 문서로 출력한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미래엔 그저 명령만 내리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하드웨어가 전부 구식이라 호환이 되는지조차 모른다.

앞으로 25년 후.

헬파고는 모든 시스템과 연동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녀석이 알려주는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집에서 나갈 일이 생기면 차가 알아서 대기하고 있다.

헬파고는 자동차, 집의 모든 부분, 개인 정보, 계좌까지 관리했다.

-네트워크가 잡힙니다. 그것을 이용해 대통령께서 원하시는 작업을 하실 수 있습니다.

“된다고?”

진모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예. 호환되는 기기가 구형이긴 하지만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문서의 출력이 가능합니다.

바르르..

진모는 여러 가지 의미로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삽질인가? 당연히 안될 거로 생각하고 그동안 개고생하며 노트북에 소설을 옮겨적지 않았던가?

“하하.. 뭐야..”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했던 그는 기운이 쭉 빠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다.

지금에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그럼 우선..”

진모는 헛기침하며 긴장된 얼굴로 머릿속의 몇 가지를 떠올린다.

뭐가 좋을까?

우선 한국 이름으로는 밝은 미래. 미국 이름으로는 굿 라이트라는 가면을 뒤집어썼다. 투자회사로 만들었으니 뭘 해도 상관은 없다. 이미 그렇게 소설도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단기간에 목돈을 벌려면..’

소설도 좋지만, 더 파급력이 큰 게 필요하다.

‘우선 이걸.’

그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검을 노래하라.”

진모의 입에서 마법의 키워드가 흘러나왔다.

-검을 노래하라. 총 372,693,135개의 검색 결과가 있습니다.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숫자다. 그만큼 이건 라스트 가디언처럼 유명한 것이다.

“만화책.”

-검을 노래하라. 만화책. 1권. 출력합니다.

드드득. 드득.

진모는 워낙 조용하던 사무실에서 기계음이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프린터 기기가 전원이 들어오며 일을 해대고 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뛰어가는 진모. 그의 손이 작게 떨리며 막 인쇄되어 나온 따끈한 종이를 집어 든다.

앞으로 9년 후, 일본에서 나오게 될 만화.

그쪽에 관심이 전혀 없는 진모가 알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대작.

드르륵, 스응- 드르륵, 스응-

계속해서 뽑혀 나오는 종이를 보며 진모는 환하게 웃는다.

소설, 만화.

그리고,

번뜩!

그의 눈이 뭔가를 생각해내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기분 좋은 소름.

“후후후..”

왜 이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으하하하하!”

그의 웃음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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