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30화 (30/140)

< 된다고 말하는 사람 >

이달호가 ‘밝은 미래 사관학교’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늘 그렇듯 관심이 있는 특정 부류 외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흘러간다. 기사화가 되었고 포털 메인에도 올라가긴 했지만, 연예 기사에 밀려 끄트머리로..

‘이렇게 하나씩 풀어가면 돼. 조급하게 생각할 필욘 없어.’

그러나 진모는 실망하지 않았다.

보여주면 된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진짜 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면 사람들은 변할 것이다.

‘그것보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만화책, 소설,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 중국, 미국에 수출되었고 유럽권도 입질이 오고 있었다.

-지잉..

아니나다를까.

‘양반은 못 되는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집어 드는 진모.

“윤진몹니다.”

-저에요! 권이현! 대박이에요! 대박! 혹시 보셨어요?

“아마존이요?”

-네!

“봤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 장르소설 최초로 진모의 원고가 1위를 기록했다.

-종이책으로 찍자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죠? 좀 더 지켜봐요?

“팀장님께서 좋은 방향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보다 영화 쪽은 연락이 없던가요?”

-그렇지않아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영화는 아니지만 BNC에서 미팅을 잡자고 메일을 보내왔어요. 여기 되게 유명한 제작사에요. 왕좌의 게임 아시죠? 거기라고요!

예상했다는 듯 끄덕이는 진모.

당연히 소설 자체가 미국 감성으로 쓰인 것이었다. 그들은 아마 보자마자 알았을 것이다. 이건 영화다! 이건 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 라고..

“문파이 판매는 썩 좋지 않더군요.”

-예.. 요즘 독자들은 시원시원한 걸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전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어요! 아마존 매출만 해도 지금 장난이 아니라고요!

권이현은 잔뜩 흥분해서 외쳤지만, 진모는 그녀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오늘 차기작 보내겠습니다. 드라마 건은 최대한 업계 최고대우를 요구하세요. 차기작이 힘을 실어줄 겁니다.”

-꺄악! 차, 차차차기작이요? 벌써요?

전화기 너머에서 뒤집히는 소리가 난다.

“매출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권이현이 의자에서 넘어지든 말든 바로 용건을 묻는 진모.

-우선 일차적으로 4억 원 정도 입금될 거에요. 근데 오늘 1위를 찍었으니 앞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팔려나가겠죠? 광고효과가 대단하니까요.

‘4억이라..’

많은 돈이지만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드라마 제작사 쪽에 연락해서 빨리 일을 진행하게 하자고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어요. 노력해볼게요.

소설이 4억 원, 만화책이 약 12억 원. 애니메이션은 유투브에 찔끔찔끔 올렸더니 판권을 사겠다고 연락 온 사람이 부른 액수가 80억 원 정도.

80억이라니.. 완전 날로 먹겠다는 얘기다.

고작 4월이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이것들의 가치는 이 정도가 아니니까. 그나마 일본에서 만화책이 많이 팔려서 다행이었달까?

‘뭔가 단기간에 목돈을 벌 방법이 없을까? 사관학교가 굴러가려면 이벤트가 필요한데..’

과거로 돌아왔다고 쉽게 돈을 쓸어담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면 그쪽은 엄두도 못 내고, 부동산 투자를 하려고 해도 목돈은 필요하다. 그나마 헬파고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몸뚱이만 왔다면 복권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안다고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몸으로 뛰어야만 돈을 만질 수 있는 거고, 어떤 분야의 어떤 것을 사용할지는 기반지식이 없으면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당신은 컴퓨터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면 뭘 할 것인가?

진모는 틈만 나면 이런 물음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던지는 중인 것이다.

“저기.. 대표님.”

턱을 만지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진모의 옆에서 태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너무 골똘한 모습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 하하! 오시는 것도 못 봤군요.”

지금은 고작 오전 9시.

진모의 일정에 늘 동행해야 하는 태수였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출근 시간을 오전 9시로 고정해놓은 진모 때문에 이제야 나온 것이다. 사실 8시부터 준비는 끝마치고 경호실에서 죽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무슨 일 있습니까?”

평소와 다른 태수의 모습에 갸웃하는 진모.

“손님이 오셨습니다. 근데..”

“그런데요?”

태수가 머뭇거렸다.

“손님 이긴 손님인데..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찾아온 거라 꼭 만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진모는 태수와 함께 로비로 내려왔다.

이젠 제법 꽤 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다. 1층과 2층이 일종의 여가 공간이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충전을 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가 쏟아진다. 하지만 여느 회사와 달리 무척 자유롭고 친근한 분위기다. 오너가 나타나면 일렬로 줄을 쫙 서서 호흡조차 곤란할 정도로 각을 잡는 다른 곳에 비하면 생소한 광경이었다. 웃으며 응수하는 진모가 식당으로 이동한다.

“한빛 학생.”

태수에게 이미 누가 왔는지 들었기에 싱긋 웃으며 다가서는 진모.

“아! 아, 안녕하십니까!”

벌떡 일어나서 우렁차게 외치는 한빛.

“아침부터 어쩐 일입니까? 연락도 없이.”

진모는 한빛의 맞은편에 앉으며 묻는다. 굉장히 긴장한 모습의 한빛이 그대로 상체를 깊이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게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아직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던 직원들 몇이 한빛의 행동에 시선을 돌렸다.

“하하! 아침부터 부끄럽게 왜 이러십니까. 일단 앉으세요.”

녀석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까지 머리를 빼꼼 내밀 정도다.

「대한의 빛」

훗날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 날리게 될 한빛은 몇 달 전 진모가 다녀간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버지의 병원비가 해결되었고, 거기에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입금되고 있다. 이젠 황송하게도 매일 고기반찬을 먹고 있다.

돈 걱정이 사라진 집은 웃음꽃이 피었고 그런 분위기를 접할 때마다 한빛은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저 경기에 나가게 됐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는 녀석을 보며 진모는 응? 하는 표정이다. 축구선수가 당연히 경기에 나가야지?

“원톱으로요.”

“······.”

눈을 껌뻑이며 한빛을 보던 진모.

“공격수 말입니까?”

“예! 제가 스트라이커로 뛰는 첫 경기입니다!”

오싹 전율이 흘렀다. 정수리를 관통하는 그 느낌에 진모는 침을 삼킨다.

‘벌써?’

한빛이 빛을 보는 것은 월드컵이 끝나는 시점인데, 바뀌고 있다. 진모와 한빛의 만남이 미래를 앞당기고 있었다.

“사장님 말씀 듣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알바를 안 해도 돼서 그 시간에 슈팅 연습과 돌파력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어요. 그러다가 감독님 눈에 들었는데..”

한빛은 진모가 은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천성이 순하고 우직한 그는 자기가 진모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라고 생각했다.

노력 또 노력.

공격수가 잘 어울릴 거라 했다. 성격 탓에 양보하고, 줄도 없는 탓에 전방 공격수는 꿈도 꾸지 못했던 한빛이었지만,

“잘하면 주전으로 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활이 변하니 성격도 변해갔다. 자신감이 붙었고 가난 때문에 생긴 열등감도 사라졌다.

그 작은 차이가 운동선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0.1초를 가르는 승부에서 적을 베는 진검으로 사용되니까.

“그래서 이렇게 실례인 걸 알면서도 찾아 왔습니다. 사장님께서 꼭 오셔서, 봐주셨으면 하고요.”

두 장의 티켓을 내미는 한빛.

그걸 내미는 손도 떨리고 두 눈도 붉어졌다.

이러다 당장에라도 울겠다.

덩달아 울컥하는 진모.

이게 후원의 기쁨인가? 스승이나 교육자들이 느끼는 보람이 이런 걸까?

“축구, 재미있습니까?”

진모는 한빛을 지그시 바라보며 묻는다.

많은 것을 내포한 질문이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끄덕이는 한빛.

“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습니다!”

녀석, 목소리가 참..

진모는 흐뭇하게 웃어버린다. 전에 봤을 때와는 180도 변한 녀석을 보라.

‘이거, 어쩌면 조만간 축구 열풍이 불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의 호날두.

한국의 메시가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진모가 알던 한빛보다 훨씬 더 일찍 재능을 꽃피우게 될 이 녀석은 어디까지 성장할지 예측할 수조차 없다.

“가겠습니다. 꼭 갈 테니까 한빛 학생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리가 부러져도 뛸 겁니다!”

지켜보는 태수조차 환하게 아빠 미소를 짓고 있다. 이 한빛이라는 축구선수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진모가 뭘 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사람을 도와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에게 그걸 다시 돌려주는 남자.

‘진짜 이분이..’

어떤 생각을 떠올리다가 부르르 떠는 태수.

이런 사람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한다면? 모든 국민들을 저 축구선수처럼 하나하나 굽어살핀다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왜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다.

“태수씨. 한빛 학생 좀 태워줄래요? 오늘 오전 일정은 잡지 않을 겁니다.”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버스 타면 된다고 극구 사양하던 한빛은 결국 진모에게 졌다.

둘이 떠났지만, 진모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여운이 남았던 거다.

그래. 난 이걸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거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게 비현실적인 이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그렇게까지는 이룰 수 없더라도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식들은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다.

‘후원을 더 늘려야겠어.’

한빛처럼 미래의 스타가 예정된 아이들뿐 아니라 더 영역을 넓혀 많은 아이가 빛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

.

.

“좋은 아침이에요.”

탁-

그윽한 커피향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음성이 진모에게 들려왔다.

“아! 오셨습니까?”

레베카.

오늘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기로 한 그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아메리카노 맞죠?”

이전에 만났을 때 진모가 마시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 커피잔을 그의 앞에 밀어주며 싱긋 웃는다.

“고맙습니다.”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네요. 직원들 표정도 아주 밝고.”

“더 밝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머나, 좋은 CEO시네요.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랄게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레베카. 그녀의 등장에 근처에 있던 남자직원들의 눈초리가 떠나질 않는다. 익숙한 듯 시선을 진한 커피와 함께 마시며 진모를 바라보는 그녀.

“정확하게 제가 해야 할 업무가 뭔가요? 그 사관학교부터 하게 되는 건가요?”

이삿짐은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 이 빌딩의 오피스텔에 머물기로 한 그녀는 한번 정하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고작 이틀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진모의 곁으로 온 것이다.

피식 웃으며 레베카의 얼굴을 보는 진모. 그가 아까 한빛에게 받은 티켓을 내밀었다.

“이날 직원들 전부 응원 갈 겁니다. 티켓부터 확보해주세요. 단체로 이동해야 하니 버스도 전세해야겠군요. 아, 물론 ‘전부’입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도, 청소하시는 분도 모두요.”

앞으로 5일 후.

“평일인데요?”

경기는 오후 2시다.

“뭐, 어떻습니까? 하루쯤은 그런 날도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미래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데뷔하는 날.

어찌 가만히 있을까?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돈, 정치, 골치 아픈 업무를 모두 내려놓고 아주 잠깐 누군가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일.

좋지 아니한가?

비록 골을 넣지 못할지 모른다고 해도,

어쩌면 경쟁에 밀려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