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한 우리 집 >
“그래서 어쩌라고..”
누군가는 진모의 연설을 유심히 보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투정처럼 중얼거린다. 하지만 진모는 더욱 힘을 준다.
“여러분이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 이달호 시장님 한사람이 움직여서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은 학생 1만, 직원 3천 명 규모로 운영될 것이고 그들의 꿈과 희망의 요람이 될 겁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게 이달호 시장님이 하신 업적입니다.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자리의 모두가 함께 움직인다면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얘긴 그만두고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다 알만한 사람들이니 서론은 빼세.”
장 의원의 말에 진모는 크게 끄덕이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했다.
“사형을 시행합니다. 말뿐인 형이 아닌 직접 이뤄지는 사형!”
그놈의 인권이 뭔지 사람을 아무리 많이 죽여도, 여자를 수백 조각 회처럼 떠도 사형당하지 않는 대한민국.
그놈들도 도둑놈이다.
세금은 이런 곳에서도 낭비되고 있다.
“······.”
“음..”
거창하게 협박하기에 뭔 요구를 할까 싶었는데 뒤통수를 한 대씩 맞은 표정의 의원들이다.
갑자기 웬 사형?
그러나 진모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시작이었다.
“사기를 치려면 대한민국에서 해라.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꼭 술을 마셔라. 잡히면 어때? 싹 돌려놓고 몇 년 살다 나오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데? 이 모든 말들이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을 대변해줍니다. 범죄자 천국! 대한민국 만세!”
“······.”
“고작 그런 얘기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인 거요?”
누군가의 비아냥에 장 의원이 묵직하게 말한다.
“좀 더 들어봅시다.”
역시 장 의원.
진모는 끄덕이며 무서운 표정을 만들어냈다.
“중학생도 중고나라에서 사기 치고, 그게 나쁜 짓인 걸 알면서도 처벌받지 않을 거란 생각에 시시덕거립니다. 성폭행도 마찬가지죠. 그것도 아주 집단으로 일어나고 있고요.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까? 다들 아시잖아요. 보고 배운 겁니다. 아이는 어른을 따라 하거든요.”
진모가 어깨를 쭉 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진모가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작 서른도 안 된 사내.
그런 그가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을 선보인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허울뿐 아닌 진짜 전쟁!”
복지?
한다.
돈?
벌 거다.
하지만 그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안전.
열심히 돈 벌면 뭘 하는가? 다 털어가 버리는데.
내 집에서 불안해 죽겠다면 어떤 사람이 온전하게 살겠는가?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다가 자포자기하게 되겠지. 그래서 이민 이민 노래를 부르고, 헬조선 헬조선 하는 거다.
이걸 먼저 건드린다.
안락한 내 방 한 칸. 아버지의 든든한 품이 보호해주는 안전한 우리 집.
넓게 보면 우리의 대한민국.
“사기 사건 하나 처리되는데 평균 4개월. 온라인엔 소액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경찰은 인력이 없어 사이버수사관 한 명이 수십 개의 사건을 전담합니다. 다들 이걸 잘 알고 있어요. 오히려 범죄자들이 더 잘 압니다. 그거 아십니까? 애초부터 이런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많다는 거?”
보이스 피싱 조심하세요~
스미싱 주의하세요~
개뿔, 그걸 왜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살인 조심하세요~
강간 주의하세요~
뭐가 다른데?
처음부터 이런 걱정을 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게 바로 국가와 공권력 아닌가? 조심해야 할 건 막을 수 없는 호환과 마마 천재지변이지 이런 게 아닌 거다.
명백한 인재다!
“경찰력을 두 배로 키웁시다. 술 취한 사람들 꼬장이나 받아주고, SNS 잘했다고 진급시켜주는 그런 인원 말고! 현장에서 사기꾼 잡고 도둑놈 잡는 그런 훌륭한 병력을 늘리자 이겁니다!”
머엉..
개 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의원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진모를 바라본다. 오직 한 사람. 장 의원만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진모는 더욱 강하게 외쳤다.
고작 이 열댓 명 설득하지 못한다면 훗날 5천만 국민을 어떻게 납득시킬까?
“고생하시는 소방관 장비 빵빵하게 지원해주고! 헌법을 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보다 형량을 두 배쯤 늘려야 합니다. 특히 전과 5범 이상이면 무조건 20년 이상씩 때려야 합니다. 그거 못 고쳐요. 그리고 청소년 범죄도 마찬가지. 요즘 고등학생이 예전과 같습니까? 무서워서 말도 못 걸어요. 저는 이런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을 바꾸자 말하는 겁니다.”
장 의원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말은 좋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돈이 문제다. 경찰이 많아지면 실업률도 줄어들고 좋긴 하겠지만, 사형이 시행되는 것도 반대하는 견해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독재자가 나오기 전엔 다 힘든 일이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근데 왜일까? 저 청년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그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만하면 여러분의 죄는 충분히 사면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4년. 여러분의 임기 안에 제가 반드시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뭔데 나서는 거요?”
“맞소! 그걸 왜 당신이 보여주겠다는 건데?”
이제 절반 정도는 입을 다물고 사태를 관망한다. 진모의 얘기가 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실현할 수 있을지는 묻어두고 말이다.
“국민이니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꼭 감투를 써야 하나?
“당연히 내 나라가 바로 서는 걸 보고 싶은 거 아닙니까!”
“허!”
“······.”
미쳤다.
이거 완전히 제대로 미친놈이다!
“예산은 충분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하죠. 돈이 있어야 정부를 설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말씀해 보시오.”
장 의원이 깍지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모두가 숨죽여 진모를 바라볼 때, 레베카에게 손을 내미는 진모.
“특별법을 하나 만들어주십시오.”
진모는 파일을 넘겨 의원들에게 보여주며 이를 갈았다.
“가장 많은 세금이 증발하는 곳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군이군..”
파일을 힐끔 보며 끄덕이는 장 의원.
‘하필..’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성역이나 마찬가지인 집단.
과거의 정권에서부터 이어지는 막강한 부패, 그게 너무 커서 들추긴커녕 파낼 수도 없는 그들만의 성지.
“맞습니다.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발의하고 동의하시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볏짚 같은 모포.
안에 뭐가 들었는지 의심스러운 침낭.
수십 년 된 수통과 반합에,
무겁기만 한 군장.
고작 이걸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있다.
수백, 수천억씩 해먹다가 걸려도!
-생계형으로..
대부분 징역조차 살지 않고 풀려나 버리는 기막힌 현실.
뭐? 군법은 4배가 강해?
영창 가면 지옥 같다고?
그건 줄도 빽도 없는 병들에게나 적용되는 얘기다. 뭔가 해 처먹을 위치에 있는 것들은 군법이란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것.
“전쟁이라 하셨소.”
“그랬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전쟁을 치러야 할 거요.”
“그게 필요하다면 할 겁니다.”
대한 그룹도 있다.
이달호도, 여론도 있다.
그리고 여기 현역의원 10여 명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어떻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한뜻이라면 세상 못할 게 뭐 있겠나?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야. 순진하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야.’
정의로운 건 윤진모라는 사람이 아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걸 만들기 위해서 얼마든지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되어있다.
독재?
그게 필요하다면 한다.
‘이런 내가 보기 싫다면..’
꼬우면 보지 말던가.
어차피 시궁창 아닌가? 오물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해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눈살 찌푸릴 일이 가득하니까.
“이런, 홀딱 넘어가 정신 팔리다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자넨 누군가?”
장 의원은 굳은 얼굴을 풀고 묻는다. 분위기를 좀 희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거다.
“저는 밝은 미래투자의 대표 윤진몹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여기 계신 여러분의 가장 강력하고 굳건한 후원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자네가 했던 말. 그게 외부로 흘러도 되나?”
“물론입니다! 부끄러운 얘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하긴 그렇군. 나는 중요한 선약이 있어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네. 조만간 따로 시간을 잡지.”
‘재미있는 친구군.’
장 의원은 마치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막 검사가 되어 이 나라의 벌레를 모조리 잡겠다며 가슴 벅차던 그 시절.
자신은 버틸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어디보다 썩어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자신 있나?”
“없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두 남자의 손이 맞잡는다.
이달호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의원들은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를 살핀다.
초강수를 둔 진모.
그러나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 있는 이 사람조차 휘두르지 못한다면 여의도는 꿈도 못 꾼다. 대통령이 되어도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청와대에 가도 내 사람들이 없으면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금부터 밭을 간다.
여론엔 이달호가 서겠지만, 지금처럼 뒤에선 모든 이에게 윤진모라는 이름 석 자와 이 진지한 기상을 담을 얼굴을 확실하게 각인 시킬 거다.
씨를 뿌리고, 계속해서 거름을 주며 비옥할 수 있다고, 너는 뿌리 내릴 수 있다고 독려하면 언젠간 저들도 알게 될 것이다. 진정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그 유산이 바로 자기들이 거머쥔 그 힘이라는 것을.
국회의원은 장수다.
자국을 위해 외압과 싸우고, 국민을 위해 부조리를 베는 가장 선봉에서 전장을 누비는 사람.
그러라고 뽑아준 거다.
나가서 싸워 이기라고 대표로 만들어 준 거다.
칼 대신 권력이라는 무기를 쥐여줬으니,
너희들이 잡아야 할 건 서로의 멱살이 아닌, 적장의 목!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울 것이고, 쉽다고 생각하면 아주 쉬울 수도 있습니다. 전 이 일이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으니까.’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비하면 이건 시작도 안 한 거다. 손을 놓으며 말하는 진모를 보며 장 의원은 머리를 흔들며 웃었다.
“그 맘 변치 않길 바라네.”
“예.”
어찌 변하리.
한 번도 부족해서 두 번이나 하고 있는 일인데.
.
.
.
미래를 안다는 것.
그건 모를 때보다 오히려 더 가혹할 수도 있다.
조만간 영국이 EU를 탈퇴한다.
터키에서는 쿠테타가 일어날 것이고, 전 세계에 테러가 벌어질 거다.
유가는 쉐일에 의해 계속해서 하락하고 산유국들은 비명을 지를 거다.
이렇게 묵직한 일들을 앞두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세계평화?
아니다.
내 가족을, 내 친구를, 내 지인을 먼저 챙기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진모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그의 친구이자 가족이며 가장 먼저 도와야 할 녀석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골똘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잡음 없이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통을 최대한 줄이며 사업들을 관철할까?
경찰이 늘어나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 죄지은 사람들은 불안하겠지. 하지만 이건 옳은 일이다. 지금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놀고 있는 청년들이 아주 많다.
경찰이 되겠다고 시험 봐도 떨어지는 사람이 대다수다.
왜?
국가에 돈이 없으니까.
하겠다는데도 돈이 없어 못 시켜준다. 이 얼마나 맘 아픈 일인가?
그래서 줄줄 새는 곳부터 틀어막는다.
방산비리. 그리고,
“일을 너무 벌이시는 거 아닙니까..”
태수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한다.
운전석엔 태수. 조수석엔 윤석이 있다.
“대표님께서 생각이 있으시니 하시는 거지. 토 달지 마.”
윤석이 태수를 구박한다.
“내가 뭔 토를 달아! 걱정되니까 그렇지!”
아까 국회의원들 모아놓고 일갈할 땐 태수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또 험한 일 당하실까 봐..”
“야, 그걸 막는 게 우리 일이야. 니가 호들갑 떨면 어쩌자는 건데?”
뒷좌석에 앉아 피식 웃은 진모는 이번엔 윤석 편을 들었다. 그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각자 할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태수가 이러는 이유는 진모가 지금 가야 할 목적지와 연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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