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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80화 (80/140)

< < 신호탄 > >

-허허! 젊은 친구가 너무 기고만장하는구먼.

이때의 진모는 비례대표로 선출되어 이제 막 여의도에 입성한 상태.

당연히 무시당하고 조롱당한다.

진모가 한 남자에게 손가락질했다.

여당의 당대표이자 북한에는 10번 넘게 다녀왔던 인물.

「강산표」

대부분 북한과의 협상엔 저 남자가 다녀온다.

-당신! 이거 전부 당신이 꾸민 짓이지?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작정이라도 했습니까!

-전쟁은 막아야 할 거 아니오? 지금 그들은 극한까지 몰렸어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이겁니다.

-그래서 돈을 퍼주면, 놈들이 그걸로 뭘 할 것 같습니까?

-급한 불은 끄겠지요.

-미친!

쾅! 나무망치가 테이블을 내려쳤다.

-윤 의원! 자중하세요!

SLBM을 완성단계로 구축한 북한은 전에 없던 도발을 시작했다. 연평도 인근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고, 우리 바다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에 알려진 사실 외에도 정부의 수뇌급만 알고 있는 것들도 여러 가지.

그중 하나는 북한이 곧 전쟁이 나면 중국에게 힘을 빌려달라는 특사를 보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연히 중국은 미국을 의식하며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조율할 것이라는 말을 지껄였고, 북한의 포병들이 휴전선 쪽으로 전진 배치되기 시작했다.

일반 병력이 움직이진 않았다. 하지만 수천 대의 장사포가 이전보다 더 정밀한 타격을 위해 자리 잡았고 그 끝은 서울을 향했다. 이쯤 되니 우리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분명 헬기와 전투기, 해상병력은 더 선진화되어있다. 하지만 SLBM과 핵. 장사포가 이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켜버렸다. 막을 방법이 없으니 손들고 항복을 할 수밖에.

-2조 원이면 싸게 먹히는 거요. 서울에 미사일 하나만 떨어져도 수십 배는 더 타격을 입을 거니까.

이번 지원의 취지는 이렇다.

북한의 정권이 무너지면 놈들은 반드시 전쟁을 일으킨다. 인민이 굶어 죽고, 미래가 불투명해 그들의 사상이 퇴색되는 지금. 긴급 수혈 방식으로 인민들의 배를 불려놓고 불만을 잠재우자는 것.

급하니까 일단 1년에 5천억 규모로 4년을 북한에 ‘빌려’준다는 게 골자인데 강도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게 말이 되나? 어떻게 돌려받겠다는 건데?

북한도 바보 멍청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통일?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고 쳐도 지금의 수뇌부가 그 이후에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민들이 반백 년 이상을 착취당했다는 것을 알면 목이 몇 개라도 모자랄 거다.

당연히 통일은 최악의 수단.

북한의 기득권들에게는 차라리 전쟁을 선택하면 했지 평화통일만큼 무서운 건 없다.

이처럼 놈들이 궁지에 몰렸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2조 원이 뉘 집 개 이름인가?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은 약 400조 원.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을 퍼주다니!

2조 원이 아니라 2천억이라 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판 아닌가?

-참, 답답한 양반이오. 어찌 생각이 그리 짧소? 상생하자는 게 뭐 그리 못마땅해서는. 쯧쯧.

통진당이 해산될 때 저놈들도 함께 잡아넣었어야 했는데, 뒤에 있는 거물들은 그대로 두고 잔챙이만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게 이런 결과를 낳게 될 줄이야.

친북. 자칭 진보.

그런 성향을 띈 사람들이 이번 정권에 대거 스며들었다. 선거에 이기려고 대통령이 그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한민족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그들이 잘 돼야 나중에 통일할 때 리스크도 적겠지요.

-이번 지원으로 북한도 이제 중국처럼 바뀔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했으니 그들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은 피가 흐르니까요.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이 필리핀을 두둔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지금 이놈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중국, 북한만 싸고돈다.

당신!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 김정은 개새끼 해봐! 외치고 싶었으나 진모는 어금니가 부서질 듯 깨물며 눈을 감았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은 대가 치곤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흘러갈지 벌써 두려움이 밀려들 지경이었다.

.

.

.

“후..”

아주 불쾌한 꿈. 일종의 악몽이리라.

“젠장.. 또 그 꿈인가.”

절로 욕이 나왔다.

진모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짝! 때리며 잠을 날려버린 뒤 욕실로 향했다. 아직 밖은 어둡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지 다시 누울 기분이 들지 않았다.

쏴아-

머리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그렇게 열불 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다행인 건가.’

사람은 누구나 개성이 있다.

성향과 사상이 모두 다르고 종교를 가질 수도 있다.

평소엔 이런 것들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국회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장이나 장관. 도지사나 기관장만 되어도 사견이 행동에 묻어날 수밖에 없는 건데, 특히 외교적인 부분에선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가 요즘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군.’

이런 꿈을 꾼다는 건 피곤하다는 뜻일 거다. 아마도 그건 진모에게 필요한 몇 가지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말이다.

머리를 탈탈 털며 욕실을 나와 TV를 켠다. 뉴스 채널로 고정되어 있었기에 아나운서의 얼굴이 보였다.

-이달호 대통령의 파격적인 인사권 남용에 대해 아직도 시끄러운 와중에 다시 국회가 뒤집혔는데요. 용준용 기자.

-예. 국회 앞에 나와 있는 용준용 기잡니다.

-밤새 거기 계셨죠?

-그렇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현직 야당의원 4명과 90여 명의 시민이 8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오전 6시 41분을 지나는 지금. 해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투쟁하시는 분 중에 과반수가 여성분들이라죠?

-예. 여성가족부 해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해체는 아니지 않습니까? 일방적인 주장 같은데. 여성가족부에서 가족부로 이름만 바뀐다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실 지금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축소되는 것도 아니고 인사이동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만, 제 뒤에 보이는 현수막에 써진 것처럼 이들은 이번 일이 여성가족부 해체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보다는 가족부가 더 평등해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문제들이 있을지 앞으로가 주목되네요. 잘 들었습니다. 용준용 기자. 새로운 소식 들어오면 다시 알려주세요.

“쯧..”

진모는 TV를 보며 혀를 차다가 물을 한 컵 마셨다. 약간의 진통은 예상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올 초부터 이달호는 칼을 빼 들고 대대적인 수술을 시작했다.

첫 번째가 여성가족부를 손보는 것.

두 번째가 성매매방지특별법 개선이었다.

자잘할 것도 많았지만, 일단 큰 꼭지는 이 두 개였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TV를 틀면 이 문제가 계속 나올 정도로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다.

여성가족부는 일단 가족부로 이름부터 바꾸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조금씩 불필요한 부분은 정리하며 다듬어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매매방지특별법과 맞물리며 여성을 다시 성노예로 전락하려는 일종의 계략이라 떠들어대는 심각한 상황으로 변해갔다. 그걸 이달호가 조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조금만 믿고 기다려주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힘든 건가.’

물을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목구멍까지 차올랐기 때문일 거다.

진모는 핸드폰을 찾아 어디론가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이른 시간이라 연락 달라는 뜻을 전했는데,

“아,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잘 못 잡니다. 하하!

대한민국 대통령 이달호.

그 역시 불면증에 걸린 것이다.

“오늘 광화문에서 시위가 있다던데 서울 시장과 얘기는 해보셨습니까?”

-뭐, 제가 나서면 더 시끄러워질 게 뻔하니까 그의 재량에 맡겼습니다. 허가했다니 할 수 없는 일이죠.

각종 보수단체와 종교단체를 주축으로 2만 명 이상이 집회를 열 예정이란다.

「21세기에 위안부가 웬 말이냐!」

「더러운 정권! 물러가라!」

「성은 고결하고 아껴줘야 하는 것! 사고파는 것은 결사반대다!」

벌써 그들의 악다구니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대론 안 되겠습니다.”

진모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법안이 통과하지 못해서 중단된 사업과 공사가 한둘이 아니다. 공사라는 게 하루만 딜레이 되어도 돈이 깨지는데, 양주에 조성하는 유흥단지는 그 규모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이 줄줄 새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고견이 있습니까?

“순서를 바꿔서 진행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순서라 함은?

“성매매 특별구역을 지정하고, 그 후에 사법부를 손보려고 했지 않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눈 가리고 아웅.

이 말이 딱 어울린다.

매춘과 미성년 성매매가 판을 치는데 다들 모른 척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안마, 연예인 스폰, 원조교제, 원정 성매매, 오피스텔, 아파트까지. 매춘은 음지로 깊이 숨어들어 우리가 사는 옆집에서, 혹은 뒷집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걸 대놓고 말하길 꺼린다.

이달호는 이걸 양지로 끌어내려는 것이다. 정부에서 관리하니 세금도 걷히고, 인신매매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도 없다. 보건소와 연계해 성병도 방지하고, 지정된 곳에서만 허용해준다. 당연히 주택가와 학교 인근은 절대 불가하고 번화가의 일부, 상업지역 일부에서만 가능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또 너무 먼 곳에 있으면 음성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느니 지역에 한곳쯤은 열어준다.

-그게 쉽지 않기에 법안을 먼저 통과하려던 것 아니었습니까?

“이 지경까지 와 보니 차라리 그쪽이 더 낫겠습니다.”

-하하! 윤 대표님도 틀리는 경우가 있군요.

“그럼요. 저도 사람인데요.”

-좋습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진모는 묘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법대로 해야죠.”

.

.

2018년 6월 말.

사람들의 옷차림을 가볍게 하는 뜨거운 바람이 점차 한국을 찾기 시작할 때, 이달호는 돌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과거에도 대통령이 이런 카드를 사용한 적은 있었다.

조폭과 그러했고,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처음 시행됐을 때도 그랬다. 마약이나 인신매매 같은 것을 대대적으로 뿌리 뽑거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첩을 잡자며 국민에게 호소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겨냥한 것은 ‘매춘.’

그걸 양지로 끌어내겠다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미친 듯이 잡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남자들뿐 아니라 성을 판 여자들까지 가차 없이 말이다.

원래 한국의 성매매특별법은 구매자만 처벌한다. 판매자는 가벼운 벌금형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훈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양쪽이 똑같이 처벌받는다.

요즘 인신매매 당해 감금당하며 매춘을 하는 여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그걸 직업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짧게는 6개월, 길면 1년 정도만 돈 바짝 벌어 가게를 차리거나 학비를 대려는 경우, 혹은 집에 빚이 있어 그걸 탕감하려고 나오는 유부녀나 한부모 가정. 기본적으로 하루 50만 원은 벌어가던 수입원이 끊겨버리자 처음 며칠은 괜찮다가 점차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 < 신호탄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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