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임져 > >
아주 가볍게는 모든 부대가 끼고 있는 소위 ‘깡’업자들.
TV 같은 것을 사고 싶다. 하지만 이건 허가되는 품목이 아니다. 그러니 허위 영수증이 필요하다.
그러면 전화 한 통에 OK!
상급부대에는 훈련에 필요한 비품이나 부대에 쓰일 장비로 보고되고, 내 집 안방에는 65인치 TV가 놓인다.
좀 더 파고들자면 전역한 장성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있을까?
“그분께서 지금 카이에 명예직으로 계시죠? 이 아파치 사업을 벌인 분 말입니다. 그전에는 수리온 사업에도 관여하셨고요.”
“말조심하시오. 모함도 정도가 있는 거요.”
진모는 장담할 수 있었다.
별을 단 사람치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은 이미 노후까지 다 닦아놨다.
군수업체, 납품업체, 공기업이나 예비군 동대장..
혹은 이런저런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브로커로 말이다.
“전쟁할 생각 자체가 없는 거죠. 아니, 내가 하는 전쟁 아니니까 이렇게 어이없게 일을 하는 거겠죠. 나는 그저 임기만 버티면서 최대한 쪽쪽 꿀이나 빨아먹으면 되는 거니까.”
“말이 심합니다!”
“맞소! 당신!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하는 겁니까?”
군대에만 가면 모든 게 비싸진다.
2천 원이면 만들 수 있는 아파치 교본이 20만 원에 팔린다. 교육생들은 이걸 무조건 사야 하고 말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입김이 없을까?
충성마트에 들어오는 수많은 품목이 과연 공정하고 올바르게 선정되었을까? 그리고 그 수익금은 어디에 쓰이고 있나?
아까 말했다.
모든 부대에는 ‘깡’업자가 따라다닌다고.
업자가 과연 깡업자만 있을까?
“······.”
침묵하는 사람들은 진모의 눈을 피한다. 그들의 생각은 모두 같다.
‘저놈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이건 지금 부대에서 교육받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조차 없는 정보다. 언론에 나와도 바로 묻혀버리는 종류고 말이다. 한데 GL의 총수라는 작자가 마치 지금 부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자세하게 꿰고 있지 않나?
“웃기지 마! 당신이 뭔데 날조야!”
“우리 수리온을 뭐? 짜깁기?”
날뛰는 사람들은 당장 잡아먹을 것처럼 성을 냈다.
그러나 진모가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들어 그들을 훑어보자 순식간에 싸늘한 정적이 감돈다.
“제가 국회의원들 비리 고발했던 거 아시는 분 계십니까? 그때 아마 열분 넘게 옷 벗었죠. 이 기회에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어디 한번 털어 볼까요?”
진모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사람도 입을 열진 못했다.
협박이다.
“후우.. 제가 이 자리에 싸우자고 온 건 아닙니다.”
진모는 정치가였다. 적당한 밀고 당기기는 이미 숙련됐고, 이제 당근을 줄 차례다. 생각 같아선 다 엎어버리고 싶지만 아직은 이들이 필요하니까. 국방에 공백이 생겨버리면 안 되니까.
더 안타까운 건 그놈이 그놈이라는 거다.
보고 배운 게 그거니까. 먼저 있던 놈이 잘려도 거기 새로 앉을 놈 역시 같은 핏줄.
“먼지를 터는 사람 몸에 가장 많은 먼지가 앉겠죠. 저 역시 깨끗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벌을 받을 것이고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일.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진모 자신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간, 언젠가는 용서를 구해야겠지.
우선 이 자리에서는 일종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나도 나쁜 놈이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응?
“수리온이 만들어지며 지금까지. 그리고 아파치가 도입되며 그 과정에서 떨어지는 콩고물들. 예. 압니다. 관련자들 이름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줄줄 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따지자고 온 자리가 아닌 만큼 이제 미래를 얘기합시다.”
물론 진모가 이걸 평생 덮어두진 않겠지만 우선 해왕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해왕은 아파치와 닮았지만, 우리 GL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헬기입니다. 보조연료탱크를 달고 일본까지 진출할 수도 있고 무장 상태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제공권을 장악해야만 활동할 수 있는 헬기의 특성상 내륙전에 주로 쓰이겠지만, 바다에서도 해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작전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진모는 유일국을 보며 말을 잇는다.
“좋은 건 써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암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유일국이 흥을 돋운다.
“해왕의 성능을 높여줄 레이더와 드론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정밀유도미사일은 아파치의 그것을 넘는 사거리를 가지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부분에서 해왕은 아파치를 넘어설 거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해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장성들도 있었다. 동해에서 북한의 잠수함을 침몰시킨 사건은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했었으니까.
“미국에서 350억짜리 깡통을 사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1천억 원짜리 완제를 들여올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에겐 기술력이 있고 그걸 주겠다는데 왜 마다하십니까?”
카이의 관계자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진모에게 물었다.
“그렇게 뛰어난 헬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예산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대당 얼마를 생각하시오?”
“300억 내외입니다.”
“예? 옛?”
“헬파이어 수준의 미사일과 드론, 롱보우와 필적하는 레이더와 모든 장비 일체가 포함된 가격입니다.”
“허억!”
다른 자들은 군인이라 세부적인 사항을 모르지만 카이는 수리온을 만드는 곳이다. 당연히 헬기 한 대를 제작하려면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다.
아파치급의 헬기를 300억?
그것도 완전무장 상태로?
그러나 이것도 진모는 많이 부른 거다. 헬기 제작에 참여할 직원들 월급을 빵빵하게 주려고 말이다.
“여러분께서 도와만 주시면 3년 안에 50대를 항공작전사령부에 인도하겠습니다. 추가로 지금 우리가 사온 36대의 아파치. 그거 물릴 수도 없고 완전한 애물단지죠? 저희가 해왕으로 개조하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겠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카이에서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렸다.
개조?
30년이 넘은 코브라의 부품을 만들지도 못해서 미국만 의지하다가 이 꼴이 났다. 자동차와는 상대도 할 수 없는 정밀한 부품들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게 맞물려야만 기동이 가능한 게 헬기인데. 개조? 코브라도 아닌 아파치를?
“흥분하지 마세요. 여러분께 이런 일은 익숙한 거 아닙니까? 잘되면 그만. 안되면 책임질 사람이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유일국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면 내 뒤에 서시오. 내가 총대 메리다.”
진모는 유일국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넨 뒤 장성들을 향해 일갈했다.
“단 한 번이라도 옳은 일을 하자 이겁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왜요? 떨어지는 콩고물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진급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서 헛수고로 느껴지십니까? 가끔은 그저 순수하게 이 나라를 위해! 이 군대를 위해 바른 일도 좀 해보자 이겁니다!”
정치, 경제, 군대.
삼박자로 썩은 대한민국은 작은 수술 메스로는 생채기도 못 낸다. 이 암 덩어리는 도끼로 단박에 쳐버려야 한다.
분통이 터져도 그때까지만..
‘그리 멀진 않을 거다.’
분노와 답답함.
그리고 벌레 보듯 한 시선까지 뒤섞인 진모의 눈을 보며 그 누구도 입을 열진 못했다.
.
.
.
-수리온도 건드리지 그러셨습니까?
양주로 돌아가는 차 안.
진모는 이달호와 통화 중이다.
이달호의 말에 피식 웃는 진모. 아까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는데 이 남자는 한술 더 뜬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차차 바꿔가야죠. 반발이 심할 테니까.”
2016년 8월.
대통령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졌다.
현 수리온 파일럿의 아내가 보낸 눈물겨운 투서.
우리 남편을 살려주세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그것엔 지금 헬기 조종사들의 심정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리온.
대한민국의 자랑.
하지만 그 어떤 조종사도 이걸 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그저 카이에서 발표한 스펙만 보며 이제 우리가 북한을 압도하네, 선진헬기로 육군을 무장했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보면 실무자들의 한숨만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빛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묻혔다.
훗날 수리온에 얽힌 총체적인 비리가 만천하에 밝혀지기 전까지 말이다.
“유 장관님께서 새로 만든 부대에 인력을 차출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우선 인재를 모을 때에요. 파일럿 뿐 아니라 차기 대한민국의 군대를 이끌어갈 간부진도 말입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겠지만, 이런 개는 사냥하는 법을 잊는다.
군대라는 것은 나라를 지키고 적을 무찌르는 전투집단인데 지금 우리의 육군은 몇몇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당장 전장에 투입하기도 부끄럽다.
맨 윗물부터 썩었는데 뭘 기대하나?
그나마 2년도 못 채우고 전역하는 병사들이 가장 순수할 뿐, 그 이상 고인 것들은 죄다 썩는다.
-내가 도울 것은 없습니까?
“아마 미국에서 말이 많을 거에요. 그들의 아파치를 개조하는 문제 때문에 이런저런 조항을 들먹이며 막으려고 할 겁니다.”
-내가 사서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데 지들이 무슨 상관이라고?
“예. 그렇게 밀고 가세요. 깊이 들어가시면 골치만 아파집니다. 어차피 지금도 깡통 아닙니까?”
기술을 배우러 간 놈들이 죄다 진급하며 보직이 바뀐 것도 있지만, 애초에 우리 쪽에서 간 사람들이 배운 거라곤 기초 중의 기초뿐이었다. ABCD의 과정이 있다면 A와 B사이만 겉핥기로 교육받고 돌아왔다.
대만과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게 아파치를 구매했지만, 적어도 자체정비할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가진 걸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예산 부족이라며 교육 기간을 단축해 버린 게 우리 쪽이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너무 과격하게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어쨌든 우리에겐 미국은 필요합니다.”
-하하! 두테르테. 그 양반처럼 보이려나요?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우선 이달호는 자신의 색을 확실하게 정착했다.
쉽지 않은 놈.
저돌적이고 말이 안 통하는 놈.
이게 한 나라의 수장이 가져야 할 이미지인가 싶다가도 외교라는 큰 틀에서 보면,
‘착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니까.’
손해보다는 얻는 게 많다.
“수리온 쪽은 제가 차차 거둬보겠습니다.”
-윤 대표만 믿겠습니다.
이달호와의 전화를 끊고 진모는 잠깐 차창을 본다. 태수가 룸미러로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왜요?”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담아두면 병 됩니다.”
“하하! 심각한 건 아니고 제가 그쪽을 몰라서 그런데 그 사람들도 아파치가 깡통이라는 걸 알았다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왜 일을 사서 만드는 걸까요?”
진모는 쓰게 웃었다.
“그게 터질 때쯤이면 이미 내 소관이 아니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공무원도, 군대도 마찬가지.
보직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엔 장점도 있지만, 단점 또한 많다. 새로 부임해서 처음부터 새로 배우다 보면 어느 정도 숙달됐을 때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다. 이렇게 전천후 만능이 되어가지만, 하나를 깊이 팔 수는 없다.
담당자가 바뀌었는데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 라는 말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도 책임은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두 푼도 아닌데.”
지금은 그렇다.
몇몇 사건은 논쟁거리가 되어 전직 스타들이 법정에 서는 경우도 있지만, 그놈의 군법이란 것도 그들만의 필드에서 친목 도모하는 자리일 뿐이다.
책임지지 않는다.
눈먼 돈.
눈먼 공.
먹는 놈이 임자다.
“이제 해야죠. 할 겁니다.”
진모는 무서운 얼굴로 뭔가를 씹듯이 말했다.
도둑놈들..
잡아야 할 놈이 이 나라엔 너무나도 많다.
‘던져주지. 아주 달콤한 거로 말이야.’
죽을지도 모르고 자동차의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들처럼, 놈들도 기를 쓰고 몰려올 거다.
그것을 위한 판이 이제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다.
< < 책임져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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