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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127화 (127/140)

< < 대청소 > >

-이건 말도 안 돼! 안 놔?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

태수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국방부 차관을 보며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게 뭔가?

완전 살얼음판 아닌가?

“저분께선 아파치 사업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겁니다. 그것도 아주 강도 높게요. 여기에 대해 이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

“······.”

누가 감히 대들까?

이건 폭거요! 월권에 반민주주의란 말이요! 외치고 싶지만, 잘못 걸렸다가는 목이 날아갈 것 같다.

“전시라는 말은 곧, 살면 모두가 함께 살고 죽으면 모두가 함께 죽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휴전은 끝났습니다. 여러분께서 명심하셔야 할 것은 우리가 살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 아시겠습니까? 이제까지처럼 어영부영 대충대충 넘기다가는..”

진모의 눈이 날카롭게 좌중을 훑었다.

그 눈이 얼마나 사나운지 슬금슬금 시선을 내리까는 사람들.

“국방부 장관님.”

“예.”

“18시부로 동원령을 선포하시고, 새로운 편람에 맞게 예비군 자원을 각 공장과 기업에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존 부대는 그대로 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진돗개 하나를 유지하시고 시가지에서 일어날 폭동이나 간첩들의 국가전복 시도를 막기 위해 5분대기를 전 부대에서 시행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란은 반역으로 간주합니다. 필요하다면 발포하세요.”

유일국은 침을 꿀꺽 삼키며 끄덕였다.

군대라는 것은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그 성능을 100% 발휘할 수도 있고 10%밖에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자리의 모두는 진모의 말이 계속될수록 실감하게 되었다.

‘아, 피곤하겠구나..’

‘주, 죽었다..’

까다로운 상관.

폭주에 가까운 무대포식 밀어붙이기.

“청장님.”

“예, 옛!”

“동원령에 응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군과 함께 색출하세요. 이 과정에서 어떤 비리나 봐주기가 있을 경우 나중에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그리고 이런 시기인 만큼 치안이 아주 중요합니다. 분명 혼란을 틈타 개인의 욕구나 부를 축적하려는 자들이 많을 겁니다. 강하게 밀고 나가세요. 지금은 전시입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꼼수를 부리는 자들은 적이나 마찬가지예요. 그에 맞게 대응하세요.”

“알겠습니다.”

“동원되는 헌병 자원이 많을 겁니다. 이 기회에 범죄자를 잡아들이세요. 검문검색이 쉽지 않겠습니까? 숨어있는 자들이 많을 겁니다. 고위 체납자들도 철저하게 재산 몰수하세요.”

“그..리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사살이라도 하라는 것 같은 진모의 눈빛을 보며 청장은 차마 확인할 생각을 못 했다. 반항하면 쏴버리세요. 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민간 의료기관은 24시간 응급상태로 가동합니다. 성형외과 같은 개인병원이 지금 필요하진 않겠죠? 종합병원으로 전부 출근시키세요. 구청, 시청, 관공서 같은 곳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급 상황에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세요.”

“하, 하지만 자칫 국민의 반발이.."

민정수석이 옆쪽에서 한 말인 것 같았으나 진모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전시라고요. 장난하자는 거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할말은 해야겠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내 진모의 고개를 돌리게 하는 민정수석.

“일본이 물러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18시 이전에 일본 해군이 독도에서 물러나면 만사가 평온하게 끝나는 가장 완벽한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진모는 알고 있다.

이미 일본 수뇌부를 감청했으니까. 물론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되는 일입니다. 준비조차 하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해주기만 바라고 있을 겁니까?”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난 상황에서 대처하는 요령이 최악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진행하던 수사 전부 마무리 하는 걸 목표로 움직입니다. 무서워서, 적이 너무 거대해서, 수사가 협조 되지 않아서 참아왔던 것들. 죄다 뿌리 뽑아버리세요.”

“현직 국회의원도 포함입니까?”

“물론입니다.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 소신껏 움직이세요!”

번뜩이는 그의 눈을 보라.

그간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는 너무도 유명하니까.

“빨리 움직입시다! 22시에 다시 한 번 이 자리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검토하겠습니다.”

행여 진모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이제 남아 있는 자들은 유일국과 레베카, 태수와 같은 진모의 측근들뿐이었다. 잠시 뜨거운 녹차로 목을 축이며 기다리자,

“어이쿠! 늦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이달호가 나타났다.

“하하! 아주 강하게 나가셨다고요?”

오면서 얘길 전해 들었는지 민망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달호. 벌써부터 야당의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나 보다.

“커피로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단의 주범인 진모는 빙긋 웃으며 이달호를 맞을 뿐이다.

맞은 편에 털썩 앉는 이달호.

“시원한 냉수면 됩니다. 좀 뛰었더니 목이 타네요.”

옆에서 지켜보던 유일국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통령을 저렇게 뛰게 만드는 남자라니..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얼핏 철없이 보이는 삼십 대 사회 초년생인 것 같은데 지금 온 나라가 그의 손에 휘둘리고 있다.

사실 비대위 위원장이라는 명함을 팠다고 해서 그 자리가 이렇게 무식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조차 이놈 저놈 눈치 보느라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하물며 낙하산이나 마찬가지인 어린 기업가가 갑자기 나타나서 위원장을 한다는데 누가 반길까?

그런데 진모는 시작부터 국방부 차관의 목을 날려버리며 자신의 권력을 모두에게 상기시켰다. 그걸 처음부터 노렸다고 하면 정말 무서운 심계가 아닐 수 없는 것. 뭐, 같은 편이라 참 다행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진모가 유일국에게 물었다.

“보급 문제는 차질이 없겠습니까?”

“예. 쌀이 남아도니까요. 각 대형유통업자와 수입창구는 기존대로 열어두었습니다. 전처럼 자유롭게 외식은 못 하겠지만, 굶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가능할 것 같습니까?”

“뭐, 수입만 계속 가능하다면 6개월 이상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비축해둔 쌀이 꽤 많으니까요.”

전시 상황에서 감자나 고구마, 풀죽을 찾지 않아도 되는 나라. 이 얼마나 복 받는 것인가? 진모가 끄덕일 때 이달호는 이마를 찡그리며 묻는다.

“그렇게 오래 보고 계신 겁니까?”

진모가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그저 만일의 사태를 위해 확인한 것뿐입니다.”

“휴.. 난 또..”

“하하!”

진모가 유쾌하게 웃자 유일국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왠지 자신만 모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하신 기간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진모는 끄덕인다. 유일국이야 ‘내 사람’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으니 알아도 상관없을 듯하다.

“길어야 3개월이에요.”

“옛?”

진모와 이달호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는다.

“전쟁을 바라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왜..”

이런 엄청난 짓을 벌이냐는 얼굴이다.

“우린 불이 날 것을 대비해 훈련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찬가집니다.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다만 이건 불이 아닌 전쟁을 가정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이것도 늦은 거에요. 우린 북한과 반백 년이나 대치하고 있는 국가에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을 끼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간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지 않습니까?”

3개월.

전시 체제로 돌입해 전 국민이 가상의 전쟁 상황을 체험해본다. 그저 머리로만 ‘전쟁’을 떠올려보는 게 아닌 몸으로 직접 위기의식을 느끼고 안보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대국민 훈련.

“허..”

대국민 훈련이 아닌 대국민 사기 아닌가? 아니, 이래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이 잔뜩 묻은 유일국의 얼굴을 보며 진모가 슬며시 웃었다.

“전시이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린 이 3개월 동안 대청소를 할 겁니다.”

“청소요?”

“예. 겉으로는 똘똘 뭉쳐 외압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그러나 내부에서는 그간 곪아 왔던 고름을 쭉쭉 짜내는!”

이 과정에서 우린 많은 경제손실을 입게 되겠지만, 반대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국방력을 얻게 된다. 물질적으로는 기존의 두 배에 달하는 병기를 소유하게 될 것이고, 가장 큰 소득은 국민이 ‘경험자’자 된다는 거다. 마치 이스라엘의 그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만하고 싶다고 딱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칫 일본이 선제공격이라도 하는 날엔..”

“그건 미국이 걱정할 문제 아닙니까? 그러라고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천연덕스럽게 책임을 넘겨버리는 모습에 유일국은 허! 혀를 찼고, 이달호는 껄껄 웃어버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일본은 곧 물러날 거에요.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 있습니다. 세계 최강의 미 7함대까지 대한민국에서 기동 중이에요. 일본은 우릴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북한인데..”

“북한이요?”

조금 전에 그가 말하지 않았나?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이 와 있어서 건드릴 수 없을 거라고. 한데 북한이 움직인다?

유일국이 갸웃할 때,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때마침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진모가 그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국정원장은 이달호와 유일국에게 꾸벅꾸벅 머리를 숙이며 빠르게 착석했다.

유일국, 이달호, 그리고 국정원장.

이제 진정한 국가 비상대책 위원회의 핵심 구성원이 모두 모였다. 아까의 그 자리가 일종의 연출이었다면 이제는 진정으로 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떻습니까? 움직임이 있습니까?”

며칠 전부터 이미 진모가 국정원과 접촉하고 있었기에 사전에 지시해둔 것이 있다.

“그렇습니다. 시설물 파괴까지는 아니지만, 반대 집회와 시위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규모는요?”

“서울이 2만. 각 광역시에 수천 명입니다.”

유일국이 답답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진모가 서류를 살펴보며 설명해주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북한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볼 북한이 아니죠. 오히려 미국의 전력이 들어와 있기에 어떻게든 분란을 일으키려고 할 겁니다. 자신들을 세계에 알리기 좋은 기회니까요. 겉으론 상대가 안 되니 교묘한 방법들을 강구하겠죠. 늘 그래왔던 것처럼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의 유일국. 이마를 잔뜩 구겼다가 탁! 펴며 아! 외친다.

“사람들을 움직여 소요사태라도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북한의 인력들을 이용하려고 할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건 그들의 입장에선 최악이니까요. 게다가 우리의 대처에 따라 1만 중국 불법 어선의 운명이 갈리는 거에요. 다른 국가들도 우리의 케이스를 보며 그대로 답습하게 될 거니까요. 그래서 중국의 입김도 작용할 겁니다. 심지어 한국은 지금 모두가 주목하고 있어요. 이런 좋은 무대에 빠질 위인들이 아니겠죠.”

“아..”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던 진모는 단호하게 말했다.

“국정원장님.”

“예.”

“전부 잡아들이세요. 일만이든 이만이든. 국민의 눈을 멀게 하고 악마처럼 속삭이며 선동하는 자들. 대한민국에 살며 대한민국을 팔아먹으려는 자들.”

친일파, 친중파, 간첩, 그 외의 모든 유사 무리들.

“정신이상자 수준이라면 정신병원에, 모종의 의도가 있는 자들은 전부 감옥에. 제가 힘을 실어 드리겠습니다. 마음껏 움직이세요!”

“네!”

국정원장의 비장함이 모두에게 전해진다.

< < 대청소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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