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회사의 복지, 새 커피머신과 서진우 인턴 (12/80)


12 회사의 복지, 새 커피머신과 서진우 인턴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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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커피머신 왔네.”

커다란 박스를 끌고 들어오는 기사를 보며 지혜가 탄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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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분명, 3주 정도는 걸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의아함이 떠올랐지만 이내 지웠다. 오늘부터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설렘이 솟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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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탕비실에서 만나.”

지혜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이내 제 자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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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뒤에 회의하죠.”

도진의 목소리에 사무실 직원들의 키보드 치는 소리가 바빠졌다.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어떠한 꼬투리도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회의에 쓸 자료들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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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대리.”

평소보다 몇 배나 검토한 노력이 무색하게 날 선 도진의 목소리가 지나에게 쏟아졌다. 상석에 앉은 도진은 딱딱한 얼굴로 서류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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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자료 조사가 부족한 것 같은데, 요즘에 많이 바빠요?”

그의 입에서 살벌한 지적이 튀어나왔다. 여느 때와 다른 그의 태도에 주변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지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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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지나가 고개를 들자, 도진의 시선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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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다른 데 정신 팔려서 바쁜 거 같은데? 잘생긴 인턴 들어오니 회사 오는 게 막 설레고 기분 좋은가봐.”

도진의 비아냥거림에 지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치사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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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지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가 어디 부족한 건지 지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사적인 감정으로 그녀에게 복수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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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완전하지 않으면 기획서를 쓸 수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요즘 나태해진 것 같아서 그래요.”

도진의 얇은 입술 끝이 올라갔다. 그는 누가 봐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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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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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수정하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도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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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개발부서와 협업 미팅이 다음 주인데 굳이 오늘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나의 옆에 있던 유 대리가 조심스레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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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입니다.”

도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한 번 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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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리가 또 실수할 수 있으니까 부탁하는 겁니다. 자료조사가 늦어질수록 저희 팀이 손해니까요.”

겉으로는 마치 팀원들을 위한 것처럼 말하는 도진의 속셈을 지나는 뻔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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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감히 그에게 대들고 따질 수는 없었다. 지나는 입술을 꾹 물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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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자, 그럼 다음 파트로 넘어가죠.”

도진은 지나의 순순한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히 서류를 넘겼다. 지나는 이제야 전 남친이 상사가 되었을 때, 얼마나 지질하고 치졸하게 괴롭힐 수 있는지 깨달았다.

유치한 놈.

아주 잠시 이깟 회사 당장 관둘까도 생각했지만 저 새끼 때문에 제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버티자.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자 지나의 선배인 유 대리가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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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과장님이 엄청 깐깐하시네. 원래 안 그러시는데.”

원래부터 지질했어요.

지나는 속으로 대답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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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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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야근하게 생겼네.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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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유 대리가 걱정스레 지나를 챙겨주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지나는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노려보며 전의를 다졌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손가락을 맞잡고 꺾듯이 풀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야근 없이 제시간에 일을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중할 새도 없이 도진은 작정한 듯이 계속해서 지나를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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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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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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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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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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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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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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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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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니다!”

쓸데없는 일로 부르는 통에 결국 오전 시간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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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안 둬…….”

진척 없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지나가 이를 꽉 물었다. 이제 현기증이 일 지경이었다.

도진은 외근을 가려는지 서류를 챙기고 나갈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나는 오전 시간 내내 불려 다니느라 화장실도 못 간 걸 깨달았다.

생리적 현상까지 참아가며 불려 다녔다는 데에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닦는 지나는 간신히 화를 삭였다. 김도진의 머리통을 한 대만 때릴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 허윤주였다. 그녀는 입을 가린 채, 심상치 않은 얼굴로 칸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뒤이어, 토악질 소리가 들렸다.

어제 주말이라고 과음한 건지, 쯧. 지나는 신경 쓰지 않으려 수도꼭지를 잠그고 티슈를 톡, 뽑았다. 그녀와 마주친다면 기분이 두 배로 안 좋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도 부질없이, 허윤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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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님, 안녕하세요.”

핏기없는 얼굴로 입가를 닦으며 인사하는 윤주를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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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했나 봐요.”

‘과음했나 봐요’를 돌려 말한 지나가 젖은 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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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리님은 모르시겠구나.”

윤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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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입덧이 힘들어요.”

얼마 전 식당에서 임신 어쩌고 말한 윤주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지나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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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네요.”

혹시 도진의 아이냐고 물을 뻔 한 걸, 간신히 참았다. 이제 막 피를 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꼴이 될 뻔했다. 지금도 충분히 따끔거리는데. 뭐 하러 상처를 헤집을까.

지나는 이제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관심을 끊으려하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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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랑은 이제 완전히 끝난 거죠?”

거울에 비치는 윤주가 지나를 향해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시합에서 이긴 승자의 얼굴처럼 보였다.

기가 찬 얼굴로 헛숨을 들이마신 지나가 피식 웃었다. 유치한 윤주의 속마음이 얼굴과 행동에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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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감정한 시선으로 윤주를 똑바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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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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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너 가져.’

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지나의 표정에 윤주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자 지나는 마음 한구석이 통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화장실을 나오는데 도진이 서 있었다. 그는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지나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린 그는 곧 윤주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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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애달프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지나와 사귀면서 저런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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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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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 좋아서 어떻게 해.”

안절부절못하는 도진의 모습에 지나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회사에서 저러는 꼴을 보니 비밀로 할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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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 나갈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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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과장님이랑 같이 가는 건데 가야죠.”

도진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저 둘의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환승이별을 당한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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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둘이 사귀나?”

언제 왔는지 지혜의 은근한 목소리에 지나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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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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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분위기 장난 아닌데?”

지혜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둘의 모습을 지켜보자 지나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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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던가 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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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주, 쟤 소문이 돌던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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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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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과에 내 친구 있거든. 뭐 있다고 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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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딸? 조카? 뭐 그런 거 아니었어?”

허윤주 입사 초기에 돌았던 소문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옷차림과 가방 등이 불러일으킨 소문이었다. 정작 누구도 직설적으로 묻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다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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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회장님이랑 성도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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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 사생아? 이런 말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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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지나가 콧등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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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러 가자.”

지혜는 원래의 목적을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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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커피머신 진짜 좋아.”

그제야 아침에 새로 들어온 커피머신이 떠올랐다. 탕비실로 들어온 지나와 지혜는 새로운 커피머신이 내린 커피를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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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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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전에 모델이랑 너무 다른데. 갑자기 너무 업그레이드가 됐어.”

지나가 미심쩍은 눈길로 커피머신을 훑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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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뭐.”

지혜는 아무렴 어떻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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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복지지! 서 인턴과 새 커피머신. 완벽하다. 캬.”

지혜가 너스레에 지나가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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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탕비실 문이 언제 열렸는지도 모른 지나와 지혜가 깜짝 놀랐다. 입구에 진우가 서 있었다. 지혜의 말을 들은 건지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작게 한 그를 보고 지혜는 당황했는지 커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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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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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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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그럼. 그럼. 당연하지. 나 까먹은 게 있어서 먼저 갈게.”

지혜는 허둥거리며 탕비실을 먼저 빠져나갔다. 지나가 웃음을 참으며 진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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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지나가 종이컵을 여유롭게 들어 보이자 진우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조차 눈이 부실 정도로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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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러 온 건 아니라.”

그제야 지나는 진우 손에 들린 서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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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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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자료 제가 좀 더 모아봤어요.”

회의실에서 지나가 혼난 걸 보고서 따로 정리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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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나가 낮게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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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네가 왜.”

당황스러웠다. 또다시 그에게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걸 깨달았다. 회의시간 내내 도진에게 당하는 수치보다 진우의 시선을 더 의식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

고마움보다 민망함이 먼저였다. 그에게 또 보이고만 제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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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멋대로 굴어서.”

지나의 반응에 진우가 조심스레 사과했다. 누가 봐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제대로 일을 한 인턴에게 화내는 사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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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 시키지 않으셨지만 제가 대충 정리했습니다.”

지나를 배려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지나는 이마를 살짝 짚었다. 멋대로 구는 건 정작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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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알았어. 고마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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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챙겼어야 했는데, 오늘 정신이 없었어. 미안해.”

여러 가지 감정이 뒤죽박죽 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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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지 말아요.”

낮고 부드러운 저음이 지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래로 떨궜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저를 바라보는 진우의 시선이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유독 까맣게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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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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