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3화 (3/154)

3. 튜토리얼?

배달 온 짜장면을 상 위에 깔면서 티브이를 켜자 세이온과 관련된 방송이 흘러나왔다.

[위튜버 풍월이가 달린다!]

“지금 제가 점령하고 있는 곳은 일본 애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지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3시간 동안만 수성전에 성공하면 영지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주성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라고 할 수 있죠.”

“일본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서 더 재미있잖아요?”

백만 위튜버 풍월은 세이온을 전문적으로 하는 게임 스트리머였다. 세이온 초창기부터 게임을 시작한 그는,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전설급 스킬에 빵빵한 현질, 남들보다 우월한 전투 센스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이온의 네임드다.

“백만이면 돈 얼마나 버냐?”

“한 달에 이억 정도 뽑을걸.”

“이억?”

“어. 이것저것 광고 붙으면 더 벌겠지만 대략 그 정도 벌어.”

“의외로 잘 안다?”

“주위에서 너도 나도 위튜버 한다고 설레발치니까 모르는 게 이상하지.”

“하긴 티브이에서 밤톨만 한 꼬맹이들이 위튜버 한다고 난리 치는 세상이니까. 하, 나는 발에 땀나도록 뛰어도 한 달에 오백만 원 벌기도 힘든데… 돈 참 쉽게 버네.”

“에이 그건 아니지. 백만은 아무나 하나. 쟤 발밑에 깔린 구독자 100명도 안 되는 하꼬가 수만은 될 텐데…….”

“수만?”

“어. 형처럼 쉽게 생각하고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위튜버에 멋모르고 뛰어든 사람들이지. 그리고 99.99%는 거의 망한다고 보면 돼.”

“그러냐? 외모 좀 반반하고 잘 치면 다 뜨는 거 아냐? 들어보니까 현실에서 잘 싸우면 VR에서도 잘 싸운다고 하더만.”

“그럼 개나 소나 백만 위튜버하게. 얼굴만 반반하면 뭐해. 말도 잘해야지. 현실 싸움 실력 좋으면 VR에서도 잘 싸우는 건 맞는데, 그것도 동기화율이 따라 줄 때 이야기야. 막말로 싸움 실력은 훈련해서 높일 수 있지만 동기화율은 그냥 태생적 재능의 영역이거든.”

“태생적이라… 그렇구나.”

“어. 아무튼 밥 좀 먹자. 말하다가 다 불겠네.”

“그래.”

고개를 끄덕인 형이 묵묵히 짜장면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형이 식후땡을 한다며 베란다에서 담배 한 개비를 빼물고는 한참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무슨 고민 있나.’

깊은 생각을 하는지 담배에 불을 붙이지도 않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던 형은 이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들고 있던 담배를 꾸겨 버리고는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는 내게 말했다.

“정현아.”

“어?”

“너 세이온 위튜버 한번 해 볼래?”

“……?”

“위튜버 한번 해 보라고.”

“밥 잘 먹고 뭔 헛소리야.”

“헛소리가 아니고… 너 어차피 공장 취직한다며. 그런 거 할 바에야 세이온 위튜버 한번 도전해 보라는 거지. 너 게임은 작업장에서 많이 해 봤잖아.”

“해 보긴 했지만 그거랑 방송이 같아? 그리고 위튜버가 하고 싶다고 뚝딱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도전이라도 해 보라는 거잖아. 마침 캡슐도 있고.”

“답답하기는……. 캡슐만 있다고 방송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방송 장비는 물론이고, 방송 송출에 필요한 데스크탑도 있어야 해. 그리고 세이온을 했다고 쳐. 하는 건 무료지만 제대로 하려면 필수적으로 과금 해야 하는데 나 그런 것에 돈 투자할 생각 없어.”

“돈이라면 내가 빌려주면 되지. 우리 이제 돈 많잖아.”

“됐습니다.”

난 완강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위튜버? 물론 가능성이 보이면 해 볼 만한 직종이다. 구독자 10만 정도만 되어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으니까. 그러나 위튜버 중 10만 구독자도 안 되는 이들이 전체 위튜버에 99.99프로다. 딱히 내세울 것도 계획도 없는 자신이 위튜버에 도전한다는 건 오늘도 단 한 명의 구독자라도 끌어오기 위해 수십, 수백만 원을 투자하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위튜버들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다.

“아 모르겠고, 일단 가능성이라도 보자. 그리고 방송 장비 같은 건 걱정하지 마. 아는 동생이 지금 가져오기로 했으니까.”

“아는 동생?”

“그래. 걔도 방송하는 앤데 장비 챙겨 오기로 했으니까 기다렸다가 한번 평가만 받아 보자고…….”

“하아…….”

들어보니 이미 부른 모양이다. 상도형의 고질적인 문제… 목표를 하나 잡으면 개썅마이웨이라는 거…….

“알았어.”

“오케이!”

띵동-

잠시 후 현관문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왔나 보네.”

“누구?”

“방송하는 동생.”

“뭐 이렇게 빨리 와?”

“걔 이 빌라 5층에 살아.”

형이 현관문을 열자 큼지막한 종이상자가 밀고 들어온다.

“오빠! 좀 들어!”

“어어…….”

종이상자를 받아 들자 그제야 상자 뒤에 가려져 있던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건 풍만한 미드와 함께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나시에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돌핀팬츠다. 머리에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뒤로 묶은 말총머리는 허리에 닿을 듯하다. 새하얀 피부에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미녀다. 화장이 너무 짙어 나이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일단 나보다는 많아 보인다.

“부르면 받으러 올라갔을 텐데”

“어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오려고 해.”

“알았어. 그보다 전부 챙겨 온 거야?”

“대충은. 일단 돌릴 수 있을 정도만 챙겨왔어.”

“고맙다. 한참 잘 시간인데…….”

“뭘. 오빠한테 받은 게 있는데. 그보다 쟤가 오빠가 말한 동생이야?”

“그래. 내 동생 나정현이다. 정현아, 얘는 윗층 살고 너보다 다섯 살 많… 으아악!”

“어딜 여자 나이를 함부로 입에 담아!”

“끄그극!”

옆구리를 매섭게 꼬집는데 손맛이 장난 아니게 매워 보인다.

“안녕하세요. 나정현입니다.”

“어. 응. 유혜미. 혜미 누나라고 불러.”

“네.”

“오빠랑 다르게 인사성도 밝고 어디 보자… 일단 비주얼은 합격. 확실히 친동생은 아니네.”

“그게… 쓰읍, 무슨 소리야.”

“아니, 오빠는 고릴라가 형님 할 것처럼 생겼는데, 동생은 너무 곱상하잖아. 친동생이라고 하면 욕먹지.”

“야, 내가 고릴라야?”

“음, 아니… 그건 고릴라한테 너무 미안한 말인가. 키키킥.”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소동이 있은 후 난 혜미 누나와 함께 각종 장비들을 캡슐에 연결했다. 캡슐에서 영상을 받을 장치를 설치하며 혜미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무슨 방송 해요?”

“응? 나?”

“예.”

“나 세이온.”

“세이온이요?”

그녀의 말에 놀란 내가 반문했다. 여캠 할 것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게임 위튜버다.

“왜? 이상해?”

“아뇨. 그건 아니고 제가 알기로 세이온이 꽤 하드코어해서 여자 위튜버가 많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아아, 씨발… 맞아. 존나 하드코어 하지. 번 돈 죄다 쏟아부어서 좋은 장비 뽑아도 까딱 잘못해서 죽으면 약탈자 새끼들한테 털려 버리고, 복구하겠다고 또 돈 쓰고……. 악순환이야. 악순환…….”

쌓인 게 많은지 단숨에 쌍욕 섞인 한풀이가 튀어나온다.

“그래도 뭐 역으로 털었을 때는 그만큼 짭짤하고 방송도 나름 여자라는 희소성 때문에 충성팬 있어서 나쁘지 않아.”

“그래요?”

“그래. 자, 난 설치 끝났어. 넌?”

“저도 끝났어요.”

“그럼 일단 튜토리얼 하는 걸 보자.”

혜미 누나의 말에 난 VR기어를 눌러쓰고 시트에 몸을 뉘였다.

“전에 세이온 해 봤어?”

“아뇨. 한 1년 전에 다른 게임만 좀 해 봤어요.”

“1년 전이면 감 다 떨어졌겠는데…….”

“아무래도 그렇죠?”

“응. 세이온이 워낙 하드한 게임이라… 그래도 뭐 튜토리얼에 대해서는 대충 알지?”

“예.”

“긴장해. 최소 500점 넘지 못하면 위튜버는 꿈도 안 꾸는 게 좋아.”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VR기어 옆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시스템에 접속했고, 세이온을 찾아 실행시켰다.

[서버에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계정을 생성하지 않을 경우 게스트 계정으로 3일간 게임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그래.”

[새로운 계정이 생성되었습니다.]

[홍채 인식을 통해 사용자의 정보를 가져오는 중입니다.]

.

.

.

[나정현 님 세이온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슈욱-

화면이 전환되고 팬티 한 장 걸친, 평범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게임에서 사용할 아바타를 커스터마이징하는 단계. 본래라면 여기서 최소 한 시간은 잡아먹는다.

“모두 기본으로 설정하고…….”

그러나 어차피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에 외형을 변경하지 않은 채 완료를 눌렀다.

[사용하실 이름을 말해 주세요.]

“나정현.”

[사용 중인 이름입니다.]

“정현.”

[사용 중인 이름입니다.]

“아, 젠장…….”

[사용 중인 이름입니다.]

십여 개의 채널로 나뉘어 있지만 본질은 하나의 서버였다. 당연히 희귀 아이디는 모두 주인이 정해진 지 오래다.

“정현25.”

[사용하실 수 있는 이름입니다. 정현 25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모든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위잉-

튜토리얼을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사라지며 내 몸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이동되었다.

“와아아아!”

“죽여라!”

경기장을 채운 일천 명에 가까운 NPC들이 그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다.

“바로 본론인가?”

보통 튜토리얼이라면 유저에게 게임의 이동이나 공격 방법, 아이템 사용법 등을 가르쳐 주지만 세이온의 튜토리얼은 처음부터 유저를 극한에 밀어붙이기로 유명했다. 마치 ‘우리는 그런 시시한 건 안 가르쳐.’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철컹! 그그그긍-

원형 경기장 맞은편의 철문이 열리며 구릿빛 피부의 대머리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승모근이 인상적인 대머리 사내의 양 주먹에는 고대의 권투사처럼 가죽이 감겨 있다.

“크아아아!”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기며 함성을 토하는 야만인…….

[야만인을 쓰러뜨리세요.]

“만만치 않겠네.”

상태창도 열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맨몸으로 내던져진 것. 그 와중에 싸우란다.

“크아아!”

괴성을 지른 야만인이 정현에게 돌진해 들어왔다.

* * *

노트북 화면을 통해 정현의 시점으로 야만인을 바라보며 혜미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온의 튜토리얼은 맞아 죽으면서 시작하는 거지.”

튜토리얼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체감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야만인이 엄청나게 강한 건 아니지만 이동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자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신기한 건 이런 식으로 배우는 게 VR에서의 움직임을 익히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튜토리얼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고 들어온 초보자들도 이 야만인에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면서 VR 내에서의 이동과 전투를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데 죽어도 금방 다시 되살아나니 튜토리얼의 실패는 없지만 대신 죽을 때마다 점수가 깎인다. 참고로 이 점수는 튜토리얼 클리어 랭크에 남아 영원히 기록된다.

“확실히 세이온 처음 하는 게 맞네.”

미친 황소처럼 달려드는 야만인의 돌격에 어찌할 바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정현의 대처에 혜미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저 돌격에 걸려서 뒤로 날아가다 보면 벽에 부딪히고, 그때부터 야만인의 무자비한 주먹질이 시작된다.

퍼어억!

“아이고…….”

솔더챠지에 얻어맞은 정현이 뒤로 날아가자 혜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래서는 500점은커녕 100점도 힘들어 보인다. 세이온에서 방송을 하려면 최소한의 실력은 있어야 한다.

“오빠, 아무래도…….”

그녀가 방송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그렇지!”

상도가 경탄성을 터뜨리며 화면을 손가락질하자 그 손가락을 따라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 혜미의 눈이 커졌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야만인이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화면이 급격히 당겨지며 야만인의 턱에 어퍼컷이 꽂혔다. 그리고 점프!

파팍! 팍!

“컥!”

공중에서 내리꽂은 슈퍼맨 펀치에 야만인의 턱이 다시금 보기 좋게 돌아갔다.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란 야만인의 팔꿈치가 정현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지만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한 그는 비어 버린 야만인의 옆구리에 훅을 찔러 넣는다.

“켁!”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옆구리를 붙잡는 야만인의 가슴을 밀어 차서 오히려 벽에 밀어붙이는 정현의 무자비한 주먹질이 쏟아진다. 일방적인 공격!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왜?”

“저 야만인 거의 MMA 준프로급 선수 정도 설정이야.”

“정현이 싸움 잘해.”

“바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현실에서 싸움 잘한다고 게임에서도 싸움 잘하는 줄 알아?! VR 속에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면 프로 격투기 선수도 저 야만인한테는 두들겨 맞아.”

“프로 격투기 선수보다 잘 싸우나 보지.”

상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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