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하수로 던전
“지하수로 파티 구합니다!”
“힐 마법 가지신 분 모집합니다. 4/5”
“돌격 세이온 카페 231452글 파티 얼른 모이세요!”
“길 빠삭한 5회차 도적입니다!”
“2성 공격 스킬 보유자입니다! 클리어 할 파티 구합니다!”
포디나 빈민가의 지하수로 앞은 파티를 구하는 초보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세이온은 타 게임과 같은 파티 매칭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대부분 외부에서 파티를 맺고 오거나 혹은 직접 와서 파티를 구해야 했다. 유저 편의는커녕 마치 과거의 온라인 게임처럼 모든 것은 유저들이 직접 해결해 나가야 하는 세이온이다. 웃기는 건 또 그런 것이 매력이라며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법사 새끼 아직 안 왔어?”
“길 헤매나 봐.”
“아, 그 새끼 먼저 와 있겠다고 큰소리치더니…….”
“그냥 남쪽 수로 쪽으로 갈래?”
“시간 없어.”
나는 북적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포디나 지하수로- 북쪽 수로]
지하수로의 입구에는 호레이스라는 NPC 경비가 하나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나를 보며 대뜸 아는 척을 한다.
“케이 자네 왔군.”
“아… 네.”
“그래. 오늘도 쥐 잡으러 왔나?”
전 주인이 쌓아 놓은 호감도 때문인지 무척이나 살갑다. 퀘스트 창을 열자 할 수 있는 퀘스트가 주르륵 나타났다.
1- 쥐잡이
반복 퀘스트(1인)- 포디나 관청에서는 최근 늘어나기 시작한 쥐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쥐는 병균을 옳길 뿐 아니라 지하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좋은 식량이다. 쥐를 퇴치하여 경비병에게 확인을 받아라.
-쥐의 꼬리: 0/50 확인자: 호레이스
-보상: 100exp, 1실버
2- 지하수로의 몬스터 – 이벤트 3 [미완료]
지하수로에서 몬스터의 목격담이 늘고 있다. 지하수로에 나타났다는 몬스터를 확인하고 그 증거를 가져오시오.
-놀 서식처 확인
-놀의 귀: 0/100 확인자: 호레이스
-보상: 300exp, 5실버, 중급자 가방
3- 놀 서식지 소탕
지하수로 깊은 곳에서 놀의 군집이 확인되었다. 놀의 군집을 소탕하고 그 증거를 가져오시오.
-놀 족장의 귀: 0/1 확인자: 호레이스
-보상: 1000exp, 1골드, 명상의 반지*2
제한: [지하수로의 몬스터]를 완료하시오.
4- 놀 대족장 레이드
지하수로의 놀 대족장을 레이드 하시오.
-놀 대족장의 귀: 0/1 확인자: 호레이스
-보상: 5000exp, 10골드, 명상의 목걸이*1
지하수로는 총 네 개의 퀘스트가 있다. 그중 1번은 반복 퀘스트로 스킬 무료 쿠폰을 받을 수 있는 5레벨까지 키우는데 리세마라에서 자주 이용하는 퀘스트다.
“누나가 2번, 3번 퀘스트가 꿀이라고 했지.”
3번 퀘스트는 파티 퀘스트였는데 보스가 경멸의 망토라는 희귀급 아이템을 떨어뜨린다. 드물게 뜨긴 하지만 이것 하나면 30렙까지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3번을 하기 위해서는 2번 퀘스트를 먼저 완료해야 한다. 참고로 4번 퀘스트는 지하수로 2층에 랜덤하게 나오는 필드보스인데 기척이라도 느끼면 곧바로 튀라고 공략집에 별까지 세 개 그려 가며 강조해 놨다.
“보자… 2번 퀘스트에는 이벤트가 걸려 있고…….”
2번 퀘스트는 일반~전설 아이템 뽑기권 3장을 주는 이벤트가 걸려 있다. 물론 이 아이템 뽑기권에서 전설급을 뽑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 일반이나 고급 등급이고 가뭄에 콩 나듯 희귀급이 떴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아이템 또한 3번 미션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계획을 정리한 난 퀘스트창을 닫은 뒤 호레이스를 향해 입을 떼었다.
“제가 쥐를 잡으면서 몬스터를 본 것 같아 확인하러 왔습니다”
“뭐? 몬스터?”
“예. 놀 같더군요.”
놀이라는 퀘스트 키워드에 호레이스라는 경비병의 얼굴에 살짝 두려움의 빛이 어렸다. 놀은 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흉악한 몬스터였다.
“확실한 건가?”
“저도 긴가민가해서 확인하러 온 겁니다.”
“제길, 지하수로가 외부와 통하니 가끔 그런 놈들이 꼬여들지. 그렇지만 네 말만 듣고 그걸 상부에 보고할 수는 없어.”
“제가 좀 알아볼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호레이스. 턱을 잡고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내 위아래를 훑는다.
“그런데 그런 무장으로 괜찮겠나?”
“제 무장이요?”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성인 팔뚝 굵기의 나무 몽둥이와 초보자 이벤트로 받은 초보자 세트였다. 방어구는 그럭저럭 쓸만하지만 무기가 너무 구리다.
“그래. 혹여 그런 무장으로 몬스터라도 마주치면 큰일이야.”
그 말과 함께 호레이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숏소드를 소드벨트째로 끌러 내게 내밀었다.
“일단 이번만 빌려줄 테니 받게나.”
“감사합니다.”
호레이스에게 소드벨트와 숏소드를 받은 케이는 그것을 허리에 찼다.
호레이스의 숏소드 [고급 등급] 대여: 지하수로의 몬스터 퀘스트 한정 (1회)
-호레이스가 아끼는 검이다. 특별한 마법적 힘은 없지만 잘 길들여져 일반적인 숏소드보다 강력하다.
공격력: 10~12
내구력: 40/40
옵션: 절삭력 3
‘오케이.’
누나의 공략집에서는 리세마라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1번 퀘스트만 주야장천 깨는데, 그렇게 되면 호레이스와 친밀도가 과하게 높아져 이렇게 일회성이지만 무기를 빌려준다고 했었다. 재미있는 건 그 1회라는 개념이 애매하다는 건데, 2번 퀘스트를 클리어만 하지 않으면 계속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1번 퀘스트인 쥐잡기 퀘스트로 전투의 감을 잡는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잡아 본 다음… 2번 도전은 8레벨 찍고…….’
세이온에 존재하는 ‘몬스터’라는 존재 중 최하위에 위치하는 쥐는 그 본능적인 거부감만 없다면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라는 말을 되새기며 난 지하수로의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지하수로 북쪽 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쾅… 차창!
지하수로 안은 한참 쥐를 잡고 있는 이들로 시끄러웠다. 아무리 채널로 나누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많은 이들이 즐기는 게임이다 보니 많을 수밖에 없다.
“남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지.”
남쪽에는 놀이 출몰하는 2층으로 내려가는 문이 있기에 상대적으로 강한 유저들의 이동 동선이었는데, 간혹 2층에서 약탈을 하던 약탈자들이 1층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약탈자.’
약탈자라는 건 간단히 말해 PK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이템을 빼앗는 유저들을 세이온 내에서 지칭하는 말이다. 세이온에서는 사망 시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떨어뜨리는데 이게 잘만 하면 대박을 칠 수 있었다. 당하는 사람이야 원망할 일이지만 웃기는 건 이 약탈이라는 것도 게임 내에 엄연한 컨텐츠 중 하나라 단적으로 말해서 ‘세이온은 약탈경제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론 약탈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페널티가 존재했다.
타인을 죽이면 명예 점수라는 것이 깎이는데, 이게 마이너스가 되면 전신에 붉은색의 문신이 새겨지며 두 눈도 붉게 변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NPC와 거래할 때 일정 이상의 호감도가 없으면 아예 거부당하고, 거래하더라도 페널티를 안고 거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다는 짜릿한 기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약탈자의 길을 걷는 게 세이온이었다.
“나도 슬슬 잡아 볼까.”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난 호레이스가 준 숏소드를 뽑아 들었다.
[일반][거대 잿빛 시궁쥐][2레벨]
이름에 거대라고 써진 대로 쥐치고는 무지하게 크다. 초보들의 설문 조사에서 게임 환불 사유를 물으면 총 세 가지를 언급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놈들이었다. 정신없이 물어뜯기며 이 게임이 플레이어들에게 원하는 정체성을 느끼다 보면 게임 고객센터에 전화해 울음 섞인 쌍욕을 내뱉는다나, 어쩐다나……. 웃기는 건 그렇게 당해 놓고도 끝내 환불은 하지 못하고 다음 날 다시 지하수로에 내려가 게임사를 저주하며 이놈들을 때려잡는단다.
“찌지직!”
게임 내 몇 안 되는 비선공 몬스터이니 만큼 호레이스의 숏소드까지 사용하게 되니 한 마리에 칼질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동족이 공격당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쥐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한다.
쫘악! 쫙!
난 뒤로 물러서며 달려드는 쥐들을 베어 넘겼다. 보통의 뉴비들이라면 당황하여 이리 물리고 저리 물리고 하겠지만 쥐 한정 사기급 무기인 호레이스의 숏소드를 든 만큼 한 마리당 두 방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내게도 위기는 왔다.
“윽!”
한참 정신없이 베고 있는데 다리 쪽이 뜨끔하다. 시선을 내리니 쥐 한 마리가 발목을 문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다리를 털어 떼어내려고 하니 쥐 한 마리가 가슴께까지 뛰어올라 덤벼들었다. 팔로 쳐 낸 후 다리에 매달린 녀석의 목을 찌르자 팔에 맞아 날아간 놈이 벽을 박차고 다시 덮쳐든다.
“스파이더 쥐냐!”
짧게 욕설을 내뱉은 난 삼각 점프를 하며 날아드는 쥐를 폼멜로 쳐낸 후 숏소드를 휘둘러 발목에 달라붙어 있는 녀석까지 두 동강을 낸 뒤 주위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후우, 이거 게임 맞아?”
너무나도 현실감 있는 공격이다. 튜토리얼을 진행할 때도 느꼈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진다. 전에 해 봤던 그 조잡한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반으로 쪼개진 쥐의 몸에서 튀어나온 내장 쪼가리에서부터 피에 젖은 털가죽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죽은 몬스터의 몸 위에 나타난 아이템창이 이것을 현실과 구분지어 주는 역할을 해 준다는 점이다.
“쥐꼬리… 쥐고기… 더러운 붕대 4개… 쥐가죽… 쳇… 회복 물약은 안 나오나.”
쥐꼬리는 퀘스트 아이템으로 50개를 챙겨야 1번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 더러운 붕대는 출혈을 막아 주는 구급용품으로, 쥐들로 인해 받은 피해를 미량이나마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물약이 떨어진다는데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하긴 개당 1실버나 하는 회복 물약이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
죽어 널브러진 쥐들로부터 꼬리와 붕대를 챙긴 난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되기는 하지만 들었던 것처럼 힘들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 옷이 길드는 것처럼 행동이 자연스러워지자 세이온을 진즉 안 해 본 게 후회될 지경이다.
“일단은 회복을 하고…….”
일단은 붉게 물든 팔에 붕대를 감았다. 세이온의 체력 시스템에는 일정 생명력과 함께 FPS 게임처럼 부위별 피해에 따라 색이 변한다. 처음에는 핑크빛이었다가 점점 붉어지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검게 변하면 블랙아웃이 되어 쓰지 못하게 된다. 급소의 경우 치명타로 적용되어 단번에 블랙아웃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붕대가 아닌 회복 물약을 사용해야 한다. 잠시 후 붉게 변했던 팔이 다시금 온전한 색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
* * *
-와, 이 비제이 독하네. 6시간째 사냥만 해.
-6시간째요?
-네. 제가 방송 켜놓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요. 1시에 켰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사냥 중이네요.
-에이, 중간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거겠죠. 어떻게 여기서 노는 뉴비가 6시간 쉬지 않고 사냥을 해요.
-그래. 6시간 동안 사냥하는 애가 어떻게 뉴비냐 ㅋㅋㅋㅋ리세마라 하는 애겠지.
-아, 리세마라… 근데 리세마라 하는 애가 왜 방송을 켰대?
-도네 좀 받으려고 약 파는 거지 ㅋㅋㅋ
-하… 리세하는 애들 문제야 진짜… 확 신고해 버릴까. 어차피 불법 개조일 텐데…….
-놔둬요. 얘도 먹고 살겠다고 하는 건데.
-먹고 살기는 개뿔 아이템천국 보니까 떼돈 벌더만.
-그거 얘기 들어보니까 한 달 투자해서 고급 등급 뽑아도 대박이래요. 희귀는 진짜 로또고.
-그렇게 안 떠요? 난 일주일 투자해서 희귀 스킬 뽑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기고 있네. 일주일 희귀? 내가 천만 원 태워서 희귀 뽑았는데?
-둘 다 지랄이 풍년이네. ㅋㅋㅋㅋ 니들이 진짜 희귀급 스킬 가졌으면 내가 당장 아라미스 광장에서 똥 싸는 영상 찍어 올린다.
-그딴 걸 왜 보냐?
-그건 그렇고 영 소통을 안 하네. 채팅창 안 보나.
-어? 초보자 필드들에 이벤트 보스 떴대요! 지금 난리 남!
-이벤트 보스면, 아… 저번 달에 했다가 뉴비 떼몰살당해서 원성 엄청 먹고 접었던 그 이벤트요? 그거 다시 함?
-보스 너프해서 다시 한다고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네요.
-그렇구나. 아… 나도 뉴비였으면 보스 잡으러 바로 접속했을 텐데
-그러게요. 세트 아이템도 뱉는다고 하던데…….
-그럼 뭐함 또 몰살당할걸.
-ㅋㅋㅋㅋㅋㅋㅋㅋ쌉인정 어라? 저거 뭐지?
-이벤트 보스다!
-이벤트 보스? 여기 이벤트 보스 있음?
-저거 저번에 초보자 떼몰살 돼서 접었던 이벤트 보스몹인데… 다시 나왔네요.
-헐! 그런데 그런 보스랑 만났네! ㅋㅋㅋ!
-죽겠네. 리세마라 끝인가.
-죽겠네요. 미리 명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