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거대 황금쥐 솔킬 레이드!
한참 무아지경으로 쥐를 잡던 난 통로의 음영을 뚫고 이쪽으로 접근하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보스][거대 황금쥐] [15레벨]
“뭐야, 저건? 거대… 황금쥐?”
이름 그대로 황금빛 털에 황소만 한 크기의 거대한 쥐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주위에 있던 쥐들은 그 거대 쥐를 보더니 부리나케 도망치기 바쁘다.
“여기 저런 게 나온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제대로 된 보스가 나오는 건 지하수로 2층부터라고 알고 있던 난 정보와 다른 몬스터의 출현에 당황했다.
“찌직! 찍!”
“찍!”
쥐들이 왜 도망치나 했더니 거대 황금쥐가 미처 도망치지 못한 거대 쥐 한 마리를 그대로 물어 죽였다.
우드득… 드득.
거대 쥐를 두 손으로 붙잡고 간단히 찢어 삼켜 버리는데, 사람 팔다리 정도는 쉽사리 분리시킬 것 같다. 비록 게임이라지만 실시간 동족 먹방을 본 난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상황이 별로 안 좋은데…….”
준비가 되었다면 한번 도전해 보겠지만 정확한 스펙도, 공략법도 모르는 보스에게 덤비는 것은 무모를 넘어서 자살행위. 게다가 죽으면 무려 3일의 페널티까지 있다. 나는 주위에 있는 거대 쥐의 시체를 빠르게 파밍한 후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내가 코너를 돌아 뛰려 할 찰나… 거대 황금쥐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찌익!”
“으앗!”
쉬이이잇! 퍼어엉!
거대 쥐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엄청난 속도의 공격이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내리꽂혔다. 황급히 몸을 앞으로 굴러 공격을 피했지만 곧이어 황금 거대쥐의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퍽! 퍼퍽!
순간적으로 막아선 오른팔의 상태가 붉게 물들었다. 생명력이 쭉 떨어짐과 동시에 상태 이상 출혈에 걸렸다는 표시가 시야 한쪽에 점멸하기 시작했다.
“젠장… 난감하네.”
출혈에 걸리면 상처 부위가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재빨리 처치를 해 줘야 악화를 막을 수 있는데 문제는 거대 황금쥐가 쉴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온짱바라기 님 100원 후원 감사합니다.]
-거대 황금쥐 급소 목이에요. 예전에 떴을 때 피가 3,000 정도라고 나왔는데 너프돼서 다시 나온 거라 얼마인지는 모름. 그리고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광폭화 스킬 쓰는데 1분 동안 공격 속도랑 공격력 올라감!
“어?”
뜻밖에 들려온 전자녀 목소리에 놀랐다. 방송용 채팅창을 한쪽에 띄우자 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보인다.
참여자: 3명
-그거 알려 주면 어뜨캄!
-어차피 못 잡음ㅋㅋㅋㅋㅋㅋ 급소 따려다가 역으로 따인 애들이 한 트럭임.
-그래도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것보다는 낫죠.
-무기는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데 방어구가 아웃임. 최소한 50번은 피하고 급소에 크리 박아야 하는데 ㅋㅋㅋ 광폭화 들어가면 한 방~ 컷~
‘세 명이나 보고 있었네.’
방송 쪽을 아예 닫아 놓고 신경을 안 썼는데 시청자가 무려 3명이다.
“급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온짱바라기 님.”
-오, 첫 소통인가. 케이 님. 목소리 좋네요.
-님님님! 케이라는 아이디 얼마에 사셨어요?
-아 쫌! 지금 죽게 생겼는데 꼭 아뒤 가격 물어봐야 함?
-그러게요,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차피 죽을 거 좀 물어볼 수도 있지.
-버티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어그로 밀고 튀면 되죠.
내 한마디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간다. 신기한 마음에 대화해 보고 싶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쿵!
벽을 박살 낼 듯한 거대 황금쥐의 돌격 공격을 피한 난 숏소드로 목을 베었다.
캬카카칵!
털로 뒤덮인 가죽에서 쇳소리가 터진다.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 공격력으로 베기 안 드감! 찌르기만 가능!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ㅋㅋㅋㅋ 님은 이미 사망각 씨게 잡힘.
-그냥 튀어요! 이거 못 잡아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확실히 채팅창이 조용한 것보다는 시끌시끌한 게 좋다. 다시금 공격을 준비하는 거대 황금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름 방송인다운 말을 해야 할 타이밍 같다.
“이제부터 거대 황금쥐 솔킬 레이드 시작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튀라고!
-케이 님 돌았?
-와, 패기 보소! 화이팅!
모두가 미쳤냐고 말했지만 단 한 명이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 준다. 자세를 잡은 난 거대 황금쥐를 노려봤다. 지금까지는 거대 쥐와 패턴은 대동소이. 크기가 다르고 보스 스킬을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한 방!”
“칵!”
점프 자세에서 목을 깊게 찔린 거대 황금쥐가 처음으로 비명다운 소리를 내며 머리를 뒤흔들었다. 좋아! 먹힌다!
-와우!
-와!
-헐! 저걸?
난 거대 황금쥐가 다시금 뛰어오르려는 찰나의 틈새를 비집고 급소를 찔렀다.
“찌이익!”
곧 고통을 털어내고 주둥이를 밀었지만 가장 정석적인 반 회피 후 다시금 강하게 내리쳤다.
“꺅!”
베기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거대 황금쥐가 비명을 내질렀다. 찌르기로 인해 벌어진 상처를 정확히 노려 내려치자 공격이 통한 것이다. 목에서 피가 튀어 오르자 거대 황금쥐가 발버둥을 치며 사방을 마구 할퀴어 댔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가 발버둥이 끝남과 동시에 빠르게 전진하여 벌어진 상처를 정확히 찔렀다.
-와; 운빨 죽인다! 그걸 연속으로 꽂네.
-이거 운빨 아닌데? 노리고 찌른 거 같은데?
-노리고? 아니, 쥐만 잡던 거 보면 10렙 이하라는 소린데, 그런 쪼렙이 보스몹 공격을 피해서 같은 곳을 세 번 연속으로 찌른다고요? 그게 말이 됨?
-10렙 기준 모든 보너스 능력치 근력 몰빵 하면 가능함.
-정말요? 근데 그거 따라갈 근력이 된다고 해도 민첩이 되나?
-장비 빨로 어찌어찌 될 거 같긴 한데… 아무리 봐도 초보자 세트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근데 맞췄다고 쳐도 말이 좀 안 되는 미친 짓이죠. 유리대포인 건 둘째치고 이 상태로는 두세 대만 제대로 맞아도 죽음.
“찌이이익!”
난 채팅창에 글이 올라오건 말건 신경 끄고 보스 공략에 집중했다.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거대 황금쥐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깎는 중이다.
쩡! 쩡! 쩌쩡!
연속해서 찌르며 거대 황금쥐의 상처를 늘려 나갔다.
‘어렵긴 하네.’
민첩이 낮아서인지 저들의 말대로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영 못할 건 아닌지라 억지로 공격을 꽂아 넣고 있다. 문제는 깎이는 체력이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난 초보자 가방에서 소형 물약을 꺼냈다. 여섯 시간 동안 거대 쥐를 사냥하면서 총 4개의 물약을 얻었는데, 개당 5실버나 하는 고가품이라 가급적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물약을 처음 공격당한 오른팔에 뿌리자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던 팔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한 병을 더 꺼내 마시자 조금씩 깎여 나가던 생명력도 쭉 차오른다. 소형 물약 두 병이면 무려 1골드다.
“손실보전…….”
내 생활 모토가 절대 손해 보고는 안 산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쥐새끼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 * *
거대 황금쥐 레이드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분이 지났다.
“찌이이익!”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는 거대 황금쥐의 목덜미는 피투성이가 된 지 오래다.
푹!
거대 황금쥐의 공격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나는 10분 동안 지겹도록 공략한 상처에 다시금 숏소드를 찔러 넣었다.
-진짜 잘 피하네.
-때린 곳만 계속 때리니까 방어가 무색하네요.
-뭔가 회피 방법도 신기해. 알고 움직이는 거 같아.
-여기 레이드 맛집이네.
“찌이익! 찌익!”
다시금 숏소드가 목을 찌르고 빠져나가자 갑자기 거대 황금쥐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전신의 털들이 일제히 곤두서며 두 눈이 붉게 빛났다.
-광폭화다!
-혼자 딜 넣은 것치고 10분이면 엄청 빨라!
-케이 님, 이제 잘 피하기만 하면 돼요!
-광폭화 1분, 1분!
거대 황금쥐의 레이드를 처음부터 지켜봤던 셋은 이젠 진심으로 나를 응원했고, 하나둘 들어온 사람들로 시청자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참가자: 8명
첫날이지만 벌써 여덟이다. 그리고 그들 중 다섯이 즐겨찾기를 했고, 세 명은 1,000원짜리 후원도 해 줬다.
[셔터맨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화이팅!
“셔터맨 님 감사합니다.”
-이대로 최소 거대 황금쥐 솔플 업적 달성하는가!
-에이 못 깬다니까. 지금 커뮤니티에 거대 황금쥐 스펙 떴는데 헤븐즈 게이트 미쳤음.
-거대 황금쥐 스펙 떴음?
-스킬만 떴어요. 광폭화는 1.25배 상승 공격력이 300%
-미친… 달라진 게 뭐야? 흐흐흐 공격력은 더 쎄진 듯.
-피만 좀 줄었대요. 케이 님은 스쳐도 사망각임.
-그러니 도망다녀야죠.
시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래 공략은 1분 동안 파티원들이 보스를 핸들링하며 스킬이 꺼질 때까지 도망 다니는 거라는데…….
슈슛! 쩍!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미 패턴은 파악했기에 좀 더 빠르게 대응하면 된다. 물론 그게 쉽다는 건 아니다. 나 또한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니까. 이 집중력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지속되길 빈다.
“캬아악!”
쿠우웅!
지하수로의 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진정하자.’
조급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 거대 황금쥐를 잡아낸다면 신화급 스킬인 스킬 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내 방송의 시청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고정 시청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레이드를 실패해서는 안 된다. 난 거대 황금쥐를 꾸준히 공격하며 1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 황금쥐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사라졌다.
-대박! 광폭화 1분을 딜하면서 버텼네.
-케이 님 대체 누구 부케임? 컨트롤이 장난 없네!
-부캐는 무슨 부캐임. 딱 봐도 초보자 세트구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뭘 그렇게 다큐맨터리로 따짐.
시청자들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후원을 알리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조카2020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처음이신 것 같은데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미션 가능하신가요?
방송을 시작하고 처음 받아 보는 미션이다. 난 미션에 대해 혜미에게 들은 것을 떠올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션을 거부하면 안 돼.’
하꼬 비제이의 덕목이라나 뭐라나…….
“예. 어떤 것이든 가능합니다. 조카 님”
조금의 집중력도 흐트러뜨려선 안 될 상황이지만 난 조금도 짜증 내지 않은 채 답했다.
-미션: 앞으로 7분 내에 솔로 클리어할 시 10만 원~ 클리어에 다른 사람 끼어들었을 경우 실패로 간주
미션 내용도 나쁘지 않다. 절반을 깎는데 10분이 걸렸으니 조금만 속도 높이면 7분 내에 가능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끼었을 경우 실패라는 페널티가 있지만 리스크가 없으니 말 그대로 혜자 미션이다.
“7분 내 솔로 클리어할 시 10만 원 접수! 도전!”
10만 원이면 아르바이트 하루 종일 뛰어야 벌 수 있는 금액. 난 도전을 외치며 거대 황금쥐의 대한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때 또 다른 전자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온짱바라기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 님! 지금 다른 채널 거대 황금쥐 잡는 파티 난리 났음! 거대 황금쥐 새로운 패턴 나왔는데 피가 줄어든 대신에 피 거의 다 깎으면 원래보다 강력한 광폭화 스킬 씀! 사람들 예전 이벤트몹 더 강해져서 나왔다고 난리임! 절대 7분 안에 못 잡아요!
내 1호 팬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온짱바라기였다. 그녀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금 들썩였다.
-거대 황금쥐 더 쎄짐?
-네. BJ레온 교육 방송에 거대 황금쥐 걸려서 3인 레이드 들어갔는데, 마지막에 몰살당했대요. 피가 엄청 줄어들어서 빨리 잡는다고 좋아했는데 마지막에 더 쎈 광폭화 한 번 더 걸리면서 끝장남.
-얼마나 더 쎈대요?
-공속은 두 배, 데미지도 기존 광폭화보다 더 올라간대요.
-우웩 듣기만 해도 토할 것 같네. 헤븐즈게이트 진짜 미쳤냐!
레온짱바라기의 말에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너무 강해서 사라졌다가 리뉴얼돼서 나타난 게 오히려 더 세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스운 것은 그것이 나에게 일부분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성공하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