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상을 내놔라!
이럴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난 채팅창이 시끄럽든 말든 거대 황금쥐의 공격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미션이 성공할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아직 목표는 그대로다. 그리고 마지막에 더 강력한 광폭화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나름 이득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쓸데없는 잡념을 모두 몰아낸 난 마지막 남은 두 개의 물약 중 하나를 빨고는 더욱 강하게 거대 황금쥐를 몰아세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찌이이이익!”
어느 순간 뒷발로 번쩍 일어선 거대 황금쥐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털만 곤두서는 것이 아닌 실제로 몸집이 커지는 것이다. 그와 함께 거대 황금쥐의 두 눈에서 붉은 광채가 줄기줄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레온짱바라기가 말했던 마지막 진짜 광폭화가 시작된 것이다.
퍼어억!
“컥!”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휘둘러진 꼬리에 맞아 뒤로 날아갔다. 검을 세워 막는다고 막았는데 유연하게 휘어진 꼬리 끝에 어깨를 강타당했다.
“큭…….”
아프다. 접속할 때 통각 수치를 평균으로 해 놨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왼쪽 어깨가 붉은색을 넘어 핏빛으로 변해 버렸다. 핏빛으로 변하면 왼팔에 한해 힘이나 공격 속도가 거의 반으로 줄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생명력의 70%가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정타도 아닌데 이 정도 피해라면 이제 다음은 없다.
-으아! 이대로 실패하는가!
-케이 님 힘내요!
-돌아! 돌아!
‘앞으로 10대 정도…….’
마지막 순간에 터진다고 했으니 이제 막바지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이온은 몬스터의 생명력을 볼 수 없다. 마지막 물약을 빤 후 다시금 달려든다.
푸욱!
이제는 넝마가 되다시피 한 목을 숏소드로 찌르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본래라면 타격에 움찔하며 경직되어야 하건만 거대 황금쥐는 그것마저 사라졌는지 물러서는 나를 향해 박치기를 했다.
쩡!
공격은 막았지만 오히려 이쪽이 손해다.
검을 세워 막았는데 피가 꽤 깎인 것. 이제 남은 물약은 없다.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기에 당황하기보다는 광폭화에 걸려 날뛰는 거대 황금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츠컥! 쩡!
이전과는 다르게 위험을 감수하고서 강공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채팅창의 시청자들은 물러서서 광폭화 끝날 때까지 도망치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어야만 진짜 뜨는 비제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항상 더 큰 위기와 함께 몰려오기 마련이다.
“크으으윽!”
이번에는 뭐에 걸렸는지 찔러 넣은 숏소드가 뽑히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거대 황금쥐의 주둥이가 나를 씹기 위해 밀고 들어왔다. 검으로 거리를 억지로 벌린 채 버텨 보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덤프트럭에 받힌 것처럼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뒤에 벽, 벽!
-더 밀리면 안 돼!
-버텨요!
-아, 이대로 실패인가!
-검 놔요!
열 명도 되지 않는 시청자들이 한마음으로 나를 응원했다. 방송 내내 비아냥대던 이들도 이 순간만큼은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으으윽!”
상황은 속절없이 밀려나는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중이다. 검을 놓을 것인가 버틸 것인가.
츠컥!
“큭!”
휘둘러진 앞발에 왼팔이 완전히 블랙아웃되었다. 생명력은 10% 이하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는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런데 왜일까? 어째서 즐거운 것일까.
“재미있네. 진짜!”
왜 사람들이 이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 알 것 같다. 머릿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고양된 정신이 그를 한 차원 높은 존재로 이끌어 가는 기분이다. 조금 전까지는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빨랐던 거대 황금쥐의 공격이 순간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졌다.
츠칵!
“난 이긴다!”
거대 황금쥐의 물기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난 뒷벽을 디딤판 삼아 꽂아 넣은 숏소드를 있는 힘껏 밀었다. 어차피 뽑을 수도 없는 것! 이번 공격 실패하면 죽는다!
“찌이이익!”
역겨운 노린내가 섞인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거대 황금쥐가 내 머리를 물어온다. 그러나…….
“뒈져!”
젖 먹던 힘을 다해 검의 손잡이를 밀어 넣자 마침내 거대 황금쥐의 움직임이 멈췄다.
쿠웅!
[이벤트 보스 거대 황금쥐를 레이드 하셨습니다.]
[초보자 이벤트 2를 완료하셨습니다. 이벤트 NPC에게서 보상을 받으세요.]
[이벤트 보스 거대 황금쥐 1인 레이드에 최초 성공하셨습니다.]
[‘거대 황금쥐 헌터’ 업적을 획득하셨습니다.]
[4골드 3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토벌대 투구를 획득하셨습니다.]
[토벌대 흉갑을 획득하셨습니다.]
[토벌대 바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벤트 보스 거대 황금쥐의 보스 스킬 진(眞) 광폭화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 * *
“방송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리품도 좀 보여 주시지.
-재미있었어요.
-다음 방송 공지 안 하나요?
“죄송합니다. 캡슐이 지금 경고를 보내서… 그리고 오늘은 시험 방송이라 언제 다시 열지는 모르겠네요.”
-아쉽다. 재미있었는데…….
-즐겨찾기 알람 해 놓을게요!
시끌벅적한 채팅창. 카운터를 확인해 보니 오늘 최대 시청자 숫자는 11명이었다. 참고로 미션은 성공했지만 십만 원은 받지 못했다. 미션을 건 조카2020은 거대 황금쥐 레이드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방을 나가 버렸으니까.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1,000원짜리 후원이 3개나 터지고 즐겨찾기를 해 준 이는 무려 7명이고, 좋아요도 6개나 찍혔다. 첫날이고 방송 연습이니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캡슐에서 나온 내가 처음 맞이한 것은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압박이었다.
“윽…….”
괄약근을 풀어 버리면 당장에라도 쏟아질 것 같다.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화장실로 기어가다시피 하고는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화장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죽을 뻔했네.”
레이드가 끝나자마자 떠오른 시스템 경고 메시지에 숙소로 바로 달려와서 다행이다. 하드 게이머들이 왜 성인용 기저귀를 차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혜미 누나한테 몇 장 얻어 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말 꺼냈다가 뺨이라도 맞을 것 같다.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7시다. 접속한 것이 11시니까 거의 8시간 동안 게임을 한 것이다.
“형은 아직인가.”
흥신소를 하는 형의 퇴근 시간은 대중이 없었다. 전화해 볼까도 했지만 남자끼리 그런 것 꼬치꼬치 묻기도 귀찮아 관뒀다. 가볍게 샤워를 한 후 인스턴트 음식을 돌려 배를 채운 난 곧장 캡슐에 누웠다.
“들어가서 확인만 하고 나올까.”
거대 황금쥐에게 얻은 것들이 궁금하다. 정확히 말하면 보스 스킬이 너무 궁금해 죽겠다. 그렇지만 혜미 누나가 말하기를 방송인이 되고 싶으면 게임 시간도 철저히 지키라고 했다. 게임에 빠져 생활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건 그냥 게임 폐인일 뿐이라나 뭐라나…….
“다른 사람 방송 보면서 공부나 할까?”
쉬려 해도 딱히 할 게 없다. 노트북을 켜 위튜브에 들어가니 마침 거대 황금쥐와 관련된 영상이 몇 개 올라와 있다. 난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하젤이 초보팟! 거대 황금쥐 트라이!]
초보자 맵에서 노는 것치고는 구독자가 거의 십만 명에 달하는 중형 위튜버였다. 들어가 보니 3인 파티로 거대 황금쥐를 레이드를 하는 영상이다. 난 다른 이들이 거대 황금쥐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며 참고할 요량으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힐러님! 탱커님 힐 집중해 주세요! 탱커님은 붙지 말고 돌면서 물약 빠세요!”
15레벨 이하만 출입 가능한 지하수로기에 장비는 거의 고만고만하지만 탱딜힐의 가장 안정적인 파티 구성이다.
“이게 협동 레이드라는 거구나.”
각자가 역할을 분담하여 하나의 보스를 공략한다. 꽤나 멋지기는 한데 보다 보니 이상한 장면이 몇 개 들어왔다.
“근데 왜 저걸 저렇게 하지?”
탱커의 역할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거대 황금쥐의 공격을 방패로 우직스럽게 막는다. 뭐 막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굳이 막지 않아도 될 것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회피 타이밍? 쉽다. 거대 황금쥐의 뒷발만 보면 공격 타이밍 읽기는 식은 죽 먹기다. 공격 전 뒷발이 좌우로 살짝 벌어진다. 그러면서 왼발이 앞으로 나서면 오른쪽으로 공격을 하고,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면 왼쪽으로 공격한다. 두 발이 평행하면 돌격 공격을 한다는 소리고… 가장 성가신 게 꼬리 공격인데, 이건 순전히 피지컬의 영역이다. 아무튼…….
“설마 모르는 건가?”
세이온 초보에 거대 황금쥐를 처음 잡아 본 자신도 아는데? 오더를 맡은 딜러도 마찬가지다. 목을 찌르는 건 좋은데 공격 부위가 너무 난잡하다. 방어가 뚫린 곳을 공격하면 될 것을 아무 곳이나 무조건 찌르고 본다. 저렇게 하면 효율의 문제를 떠나서 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저러다가 큰일 나지.”
생명력이 얼마나 깎였는지는 모르지만 절대 광폭화는 넘지 못한다.
찌이이익!
거대 황금쥐의 황금빛 털이 곤두서며 두 눈이 붉게 빛난다. 광폭화가 시작된 것. 그리고 예견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악! 탱커님! 죽었다!”
“하젤 님! 힐로 감당 안 돼요!”
탱커의 방패가 거대 황금쥐에게 물리면서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쿠키처럼 바스러지는 방패를 버리지 못한 탱커가 돌격에 얻어맞아 아웃이 되어 버린 것이다.
“힐러님! 탱커 부활요!”
“지금 부활을 어떻게 해요!”
“젠장! 실패 실패! 뒤로 뒤로!”
탱커가 죽자 그들은 곧바로 후퇴를 택했다. 그리고 레이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목에 트라이라고 써져 있기에 클리어한 줄 알았는데, 썸네일 어그로였다. 댓글을 보니 고생했네. 분전했네. 아까웠네. 하는 말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진짜 시간 낭비다.
“배울 만한 것이 없네.”
불쌍하다며 쏟아지는 후원금에 리액션 하는 거나 좀 배울 만할까.
이딴 걸 보는데 시간 버린 게 아깝다.
“근데 그렇게 어렵나.”
셋이서도 공략 못한 걸 나 혼자 잡았다. 고생하기는 했지만 만약 내가 하젤이라는 위튜버처럼 동료들의 지원을 받았다면 훨씬 수월하게 잡았을 것이다. 아니, 앞으로는 더 손쉬워질 것이다. 보스를 죽이고 보스 스킬을 얻었으니까.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죽어서 보스 스킬을 다 떨구지 않는 이상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은 확실하다.
“도저히 못 참겠네.”
난 욕망에 져 버렸다.
[세이온에 접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