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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10화 (10/154)

10. 전뇌의 천재

“그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전지대를 해제한 파티는 다시금 탐험을 시작했고, 약 20여 분이 지난 후 파티는 지하수로가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로 진입했다. 곳곳에 인간의 해골이 뒹구는 음습한 동굴이다.

“크르르릉…….”

[놀 정찰병] [13레벨]

여섯 마리의 놀 순찰병이 걸어오고 있다. 지하수로에서 봤던 놀들과 키는 비슷하지만 덩치나 무장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특히 등에 멘 활과 활통이 인상적이다.

“좀 많네요.”

이전까지는 두 마리에서 세 마리 정도만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여섯 마리다. 문제는 붓산아이가 전문 탱커가 아니라서 안정적인 탱킹은 두 마리만 가능하다는 것이고, 힐러인 애랑을 제외하면 셋이서 네 마리를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여섯 마리가 감당하기 힘든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놀 족장이기에 최대한 사상자 없이 잡아야 했다.

“이렇게 하죠. 활로 일점사해서 한 마리 죽이고, 제가 두 마리를 맡고 있는 틈에 나머지 세 마리를 각각 처리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저한테 붙은 거 처리하는 겁니다.”

“네.”

“케이 님, 괜찮으시겠어요?”

붓산아이가 내게 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온전히 1인분을 하지 않았기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굳이 앞으로 나서지 않은 건 내가 낄 필요가 없어서 공부나 할 겸 소극적으로 싸웠을 뿐이다. 그러니 여기서 한 번쯤 믿음을 줘야 할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으음, 믿겠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옆에 있는 파티원2에게 눈짓을 하는 것을 보니 여차하면 나를 도우라고 지시하는 것 같다.

“신호하면 쏩니다.”

나와 애랑을 제외한 셋이 활을 꺼내 들었다. 활이라는 물건은 굳이 궁수가 아니더라도 쓰임새가 많아 웬만하면 다 한 자루씩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나야 뭐 게임 시작한 지 하루밖에 안 돼서 그런 것을 마련할 틈이 없었던 거고…….

드드드득…….

시위가 당겨지고 잠시 후.

“쏴!”

붓산아이의 외침과 함께 세 발의 화살이 가장 앞서 걸어오던 놀 정찰병의 얼굴에 명중했다.

“끼악!”

얼굴에 화살 세 개가 돋아난 놀 정찰병이 뒤로 날아갔다. 굳이 확인할 것도 없이 즉사 판정이다. 활을 거둔 우린 무기를 뽑아 들고 다섯 마리의 놀 정찰병을 향해 돌진했다.

카가각!

부산아이가 방패로 두 마리를 밀어붙이자 난 남은 세 마리 중 한 마리에게 숏소드를 휘둘렀다.

챙!

“크르릉!”

놀 정찰병은 들고 있던 활로 숏소드를 막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내 가슴을 찌르려 했다. 감탄스러울 정도로 기민한 대응이지만 나도 팔 하나는 논다. 그리고 근력도 내가 더 강하다.

츠컥!

“깨갱!”

단검을 뻗어오던 녀석의 손을 붙잡아 활을 든 반대편 팔에 심어 버리니 비명을 내지르며 단검을 놓친다. 숏소드를 회전시켜 녀석의 손에서 활을 떨어지게 만든 후 그대로 밀고 들어가 놈의 목을 그어 버렸다.

푸슉!

목을 완전히 베어 확인사살을 한 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한참 싸우고 있다. 난 쓰러진 녀석의 팔목에 꽂힌 단검을 빼 오른쪽에서 싸우고 있는 놀 정찰병을 향해 던진 후 왼쪽에 있는 놀 정찰병의 등판을 숏소드로 베어 버렸다.

깨갱!

조잡한 가죽 갑옷이 쫙 갈라지며 녀석이 비명을 내질렀다. 파티원2와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라 순간의 경직도 치명적이다.

“굿 어시스트!”

파티원2의 검이 놈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츠컥!

녀석의 목에서 피가 뿜어지는 것을 확인한 난 조금 전 단검을 던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아악!”

아무 곳이나 맞고 뒈져라 하고 던졌는데 운 좋게 목에 꽂혔나 보다. 파티원 1이 마무리하는 걸 지켜본 난 붓산아이 님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놀 정찰병들을 향해 다가갔다. 단순한 AI덩어리인 놈들의 눈에 공포가 어리는 것 같다.

* * *

전투가 끝나자 나에 대한 파티원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등을 돌린 채 있었기에 나의 활약(?)을 제대로 보지 못한 붓산아이 님은 다른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 활약상(?)에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타닥탁! 하니까 한 마리가 쫙~”

“와…….”

애랑의 손동작에 붓산아이가 경탄성을 터뜨렸다.

“붓산아이 님이 두 마리를 맡아 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죠.”

실제로 1:1과 2:1은 전투의 난이도에 있어 급을 달리한다. 흔히 다굴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도 두 마리였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해치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수를 몰라봤네요.”

“그냥 급소 공격이 잘 먹혀서 그런 겁니다.”

“겸손하시기는…….”

“하하…….”

붓산아이는 겸손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냥 남이 나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다.

방송인을 목표로 한 비제이의 덕목으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낯간지러운 건 참기 힘들다.

“혹시 무술 따로 배우셨나요? 유단자는 몬스터를 더 쉽게 잡는다는데…….”

“맞다. 도장 어디 다니세요? 혹시 요즘 뜬다는 시스테마? 거합도? 서양 검술?”

무술은커녕 도장 근처에도 못 가 봤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 봐서 이러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움직일 뿐이다. 근데 아니라고 하자니 또 안 믿어 줄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배웠습니다.”

“오오오오… 이것저것… 역시 고수는 전부 다 잘하는구나.”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넷 모두 나를 가리키며 엄지를 척 올린다.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 같지만 귀찮은 것보다는 낫다.

“흠흠, 얼른 가죠.”

“예! 그럼 케이 님 실력을 확인했으니 좀 더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놀 소굴로 좀 더 깊숙이 진입하자 놀 정찰병을 비롯해 놀 전사, 놀 도적 등 좀 더 다양한 놀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특히 놀 도적들이 위협적이었는데 공격당하는 순간 잠시나마 은신 비슷한 것을 사용한 후 뒤로 돌아가 배후를 공격했다. 나도 한번 당했는데 생명력이 적은 탓에 단숨에 30%가 훅 빠져나갔다. 방어구를 제대로 갖춘 상체를 공격당했음에도 그 정도니 급소라도 맞았다간 즉사 판정이 뜰 것 같다.

그러나 붓산아이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전부 고려해 리딩을 진행했고 마침내 놀 족장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게르 비슷하게 생긴 건물 앞 인간과 몬스터의 뼈로 만든 커다란 의자에 다른 놀보다 머리 두 개는 큰 커다란 덩치의 놀 한 마리가 앉아 앞에 놓인 식탁에 차려진 정체불명의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중이다. 가죽과 뼈로 만든 방어구를 입고 있고, 한쪽에는 큼지막한 철퇴가 놓여 있었는데, 녀석을 호위하듯 6마리의 놀 전사들이 서 있었다.

“놀 족장이 처음이신 케이 님도 계시니 공략법 설명하겠습니다. 기본 골자는 제가 놀 전사 6마리를 끌고 도는 동안 나머지 네 분이 전력으로 족장을 처치하는 겁니다. 주의사항은 초반에 놀 족장에 너무 극딜 넣으면 놀 전사가 돌아갈 수 있으니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면 공격해야 한다는 거랑 애랑 님이 제게 힐 넣으면 어그로 엉뚱하게 튈 수 있으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네 분의 회복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네.”

“걱정 마세요.”

모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지 파티 분위기는 가벼운 긴장감만이 감돌 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쿠우웅!

“잡았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경쾌한 알림과 함께 내 숏소드에 목이 반쯤 잘린 놀 족장이 쓰러졌다.

“으아, 힘들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게요. 중간에 힐 어글 튀었을 때는 망했나 싶었는데, 케이 님이 어글 잡아주셔서 살았어요.”

“큭큭, 애랑 님 하마터면 역적 될 뻔했네.”

“끙, 놀리지 마세요. 놀 족장이 저한테 뛰어올 때는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구요.”

모두가 한마디씩 하며 전투의 여운을 즐긴다. 긴박하고 위험했던 순간을 이겨내며 보스를 클리어하니 어째서 사람들이 파티를 하여 레이드를 즐기는지 알 것 같다.

“놀 족장 잡을 때 꼭 한두 번은 부활을 했는데, 케이 님이 중간중간 잘 끊어 주셔서 살았습니다.”

“붓산아이 님이 리딩을 잘하신 덕분이죠.”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영상 잘 뽑혔으니 조회수 좀 기대해도 되겠네요.”

단 한 명의 죽음도 없이 놀 족장을 레이드했다. 부활이 있기는 하지만 막대한 경험치 페널티가 있다고 하니 안 죽고 끝내는 게 역시 좋다.

“빨리 루팅하고 좀 쉬죠. 피가 간당간당하네.”

“그래요.”

루팅 담당인 애랑님이 놀 족장의 사체를 향해 다가갈 때였다. 왠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천 로브를 걸친 사내가 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눈 채 서 있었고. 그가 쏜 것으로 추정되는 오렌지빛을 내뿜는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오고 있다.

“피해!”

콰과과과쾅!

“악!”

불덩이가 파티의 중심에 꽂힌 순간 폭발과 함께 몸이 휴지조각처럼 날았다. 엉망으로 구겨지는 시야 속에 불덩어리에 휩싸여 날아가는 붓산아이와 두 손을 높게 쳐 든 애랑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뜨겁지?’

세이온이 아무리 현실적이라고 해도 통각은 없다. 물론 비슷한 감각으로 뇌를 속이기에 통각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하여 더욱 몰입감을 주지만, 통각이라는 건 자칫 그 대상자에게 큰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이건 뭐지? 아픔인가? 분노인가? 혹은…….

‘쾌감인가?’

[진(眞) 광폭화]

-체력이 50% 이하일 때 공격 속도 1.25배 상승 공격력 300% 상승

* * *

“쯧, 내가 시간 정해 놓고 하라니까 아직도 게임 하고 있네.”

자신의 방송을 마치고 뭐하고 있나하고 와 본 혜미는 아직까지 캡슐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정현을 바라보며 낮게 혀를 찼다. 방송인이 되려면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수다. 특히 가상현실게임은 과거의 게임과는 다르게 게임 중 신체 변화에 둔감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철저히 몸관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 동안만 게임과 방송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적절한 수면을 취하거나 운동 등을 하는 것이다.

“에후, 형이나 동생이나 말 안 듣는 건 똑같구나.”

한숨을 내쉰 혜미는 캡슐 한쪽에 놓인 모니터 앞에 앉았다.

딸깍, 딸깍…….

“영상은 많이 찍었네.”

저장된 방송 영상 폴더를 열어보니 7시간 분량 정도의 영상이 들어 있다. 마음 같아서는 편집을 도와주고 싶지만 자신도 영상 편집하기 귀찮은 마당이라 영상이 좀 모이면 실력 좋은 편집자를 구해 주기로 약속했다.

“한번 볼까?”

첫날이니 그냥 저냥 버벅이며 게임에 적응하는 영상만 찍혀 있을 것이기에 별 기대는 않는다. 하지만 첫날이니 만큼 오히려 중요하다. 가장 날것의 모습에서 진짜 실력을 알 수 있으니까.

“흠, 내가 써 준 공략집대로 잘 움직이고 있고…….”

케이의 시선으로 플레이되는 게임 영상을 빠르게 넘기며 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수로 1층에서의 전투가 플레이 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혜미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바뀌었다. 튜토리얼에서 상위 0.001%를 달성했기에 싸움 실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현이 가진 또 다른 모습이었다.

딸칵, 딸칵…….

진행바를 움직여 시간을 앞으로 옮겼는데도 여전히 쥐를 잡고 있다. 쉬지도 않는다. 기계적인 움직임뿐이다.

“작업장 알바 했다더니 노가다 엄청 잘하네.”

가상현실에 숙련된 사람도 전투를 6시간 이상 지속하기는 힘들다. 전투의 긴장감을 그 정도 유지하면 뇌도 지쳐 버리기 때문에 3시간 정도면 손발이 꼬이게 된다. 그런데 정현은 정말 기계처럼 쥐를 잡아 대고 있었다. 이건 게이머에게 있어서 또 다른 재능이다.

“더 볼 건 없나.”

거의 끝까지 쥐 잡는 것만 나온다. 누가 보면 복사해서 붙여넣기로 길게 늘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그녀가 녹화 영상을 닫으려 할 때였다.

“어? 이게 뭐야?”

처음으로 쥐 외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거대 황금쥐라는 이벤트 보스는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여 이벤트 자체가 막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략집에도 넣지 않았는데 정현 혼자서 거대 황금쥐와 만나 버린 것이다. 정현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보스는 또 다른 문제다. 이건 말 그대로 사망 플래그 꽂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잠시 후 벌어진 상황에 그녀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대등… 해?”

정현은 거대 황금쥐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아주 가끔 한 대씩 허용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회피와 급소 공격으로 퍼펙트를 찍고 있다. 마치 거대 황금쥐 공략에 대해 완전히 숙지한 프로게이머가 공략 영상을 찍듯이 거대 황금쥐를 요리해 나가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광폭화를 전부 회피로 클리어?”

거대 황금쥐 이벤트가 막힌 근본적인 이유인 광폭화 구간을 회피만으로 넘긴다.

“뭐 이런!”

“찌이이익!”

그녀가 몰랐던 2차 광폭화까지 회피로 클리어하며 마침내 거대 황금쥐를 쓰러뜨렸다.

딸칵…….

“후아!”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숨을 참고 있던 혜미가 긴 호흡을 토해 냈다. 말도 안 된다. 거대 황금쥐를 솔로로 클리어했다. 쪼렙 구간이라고는 하지만 보스는 보스다. 공략 영상 찍으려고 레벨 제한 꽉 맞춰 덤빈 비제이 파티들도 떼몰살을 시켰던 거대 황금쥐를 10렙도 되지 않는 정현이 잡아 버린 것이다.

“너… 정체가 뭐야?”

날고 기는 프로게이머들도 처음 시작할 때 싹수가 달랐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이 영상을 프로게임단에 보낸다면 돈다발을 싸들고 계약하자고 달려올 것이다. 혜미가 그렇게 정현의 또 다른 재능에 놀라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삐삐삐삐삐!

그때였다. 캡슐에서 낮은 버프음이 들리며 화면 작업표시줄에 창이 하나 떠올랐다. 커서를 가져가 창을 클릭한 혜미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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