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소매치기 꼬마
“어디 보자.”
난 상태창을 열었다. 참고로 방송 설정을 해 둬서 시청자에게는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 상태창]
이름: 케이
레벨: 11
종족: 인간
직업: 무직
신분: 평민
명예: 0
능력치
근력: 40 (+5)(+5)
민첩: 20 (+5)(+5)
지능: 10 (+5)
의지: 25 (+5)(+5)
생명력: 144/350
마나: 150/150
미분배 능력치: 5
저항
화염 저항: 3
빙결 저항: 3
감전 저항: 3
맹독 저항: 3
스킬
스킬이터 [신화급] [1티어]
-진(眞) 광폭화 [1레벨]
업적
1. 거대 황금쥐 헌터 [희귀급]
“생명력이 단숨에 2/3가 날아갔네.”
안 맞으면 안 닳지만 한 대 한 대가 치명적이다. 아직 초반이고 캐릭터의 성장 컨셉도 어느 정도 잡혀 있으니 나중 되면 나아지겠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건강에 안 좋다. 난 미분배 능력치를 전부 의지에 넣었다. 본래는 근력을 올리려 했지만 희생의 롱소드로 공격력을 어느 정도 채웠으니 생명력과 저항을 담당하는 의지를 올려야 한다.
‘생존기 스킬을 구해야 하는데…….’
10레벨이 되어 스킬 슬롯이 하나 더 생겼는데 난 이걸 생존기로 채울 참이다. 생존기에는 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마나를 기반으로 한 마법 계열 생존기. 경매장에서 최소 고급 등급의 스킬북을 구매하면 된다. 물론 내가 돈이 없어서 안산 건 아니다. 혜미 누나가 우편을 통해 100골드를 보내 줘서 현재 내 잔고는 136골드였으니까. 단지 구매를 미룬 건 어떤 놈들 소행인지 쓸만한 고급 등급 생존기 시세가 모두 미쳐 날뛰었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마당에 웃돈을 주고 사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좀 아쉽지만…….
“파밍이나 하자.”
난 놀 스트라이더의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네모난 창 가운데 붉은빛을 내뿜는 보석이 보인다.
[강화석]
-강화석을 소진하여 장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석 나왔네.”
비싸지는 않지만 필수품이라 경매장에서 개당 1골드 정도의 평균 시세를 유지하는 소모품이다. 세이온에서는 무기나 방어구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 강화였다.
“발라 볼까?”
강화라는 건 실패를 확률을 가지고 있고, 실패는 당연히 아이템의 증발이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박살 나는 건 아니고 안전 강화 등급이라는 게 있어서 일반은 5까지, 고급은 3까지는 아이템이 증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희귀 등급은 1 이후부터 아이템이 증발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는 대성공이라는 게 있는데, 아주 희귀한 확률로 3단계나 5단계까지도 강화가 된다.
“운빨존망깸아. 3단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운 좋아야 2단계다. 더 좋은 걸 바라기는 욕심일 뿐…….
흔히 연속으로 실패한 후 도전한다느니 특정 루틴을 실행하거나 특정 장소에서만 강화를 진행하거나 모두 헛짓거리다. 마치 로또 사는데 명당 찾아다니는 사람의 심리와 비슷하달까. 난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음… 기도라도 할까?
아무튼…….
초보자 가방에서 강화석을 꺼낸 난 그것을 희생의 롱소드에 가져다 댔다.
[강화하시겠습니까?]
그래.
강화석은 표면에 흐르던 붉은 빛이 강해지더니 맞닿아 있던 희생의 롱소드 또한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
찌지직!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희생의 롱소드에서 얕은 하얀 번개가 피어오른 것. 위튜브에서 본 바에 따르면 강화를 할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보통 최소 2단계에서 3단계까지 강화가 된다고 한다. 근데 이게 심상치 않다. 번개 치는 숫자에 따라 강화 단계가 상승한다는데 벌써 4번째!
“제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채 기도하고 있다. 열 살 때 친구 손에 이끌려 교회 갔다가 고아 새끼가 초코파이 5개 먹었다고 뒤통수를 후려 맞은 후로는 신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신을 찾으며 간청하는 중이다. 제발! 제발! 이거 뜨면 제가 꼭 착하게!
[대성공!]
[축하합니다! +5 희생의 롱소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우와아!”
대박이 떴다.
+5 [희생의 롱소드] [희귀급]
-귀한 흑철을 사용하여 장인의 손에 탄생한 명검이다.
-공격력 30(+15)~35(+17)
-내구력 80/80
-스킬 [피를 머금은 칼날]
-생명력 50을 희생하여 1회에 한하여 데미지 2배
강화로 얻은 공격력인 15~17은 방어 무시로 들어간다. 한 마디로 방어가 강한 몬스터일수록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희생의 롱소드는 강화되지 않은 것도 경매장가로 최하 300골드다. +5 정도라면 세배 정도 받을 수 있으니 거의 1,000골드……. 한화로 백만 원가량 되는 귀물이 된 것이다. 물론 모든 희귀급 무기가 이렇게 비싸지 않다. 희생의 롱소드가 특별히 비싼 이유는 고레벨에게는 생명력 50이 저렙보다 그리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고강화만 할 수 있다면 전설급에 준하는 성능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유리 대포면 어떤가. 포탄이 우라늄탄인데!
* * *
“지하수로 2층에 놀들이 그리 많았다니… 어서 빨리 경비대장님께 알려야겠군. 고생했네.”
“호레이스 님이 검을 빌려주신 덕분입니다.”
“하하, 그게 무기 덕분이겠나. 모두 자네가 뛰어난 덕분이지.”
초보자 가방에 들어 있던 호레이스의 숏소드와 놀의 귀 100개가 사라졌다.
-‘놀 서식지 소탕’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 경험치 300exp, 5실버, 중급자 가방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보상이 초보자 가방으로 들어왔다.
즉석에서 초보자 가방을 중급자 가방으로 교체하니 9칸이던 가방이 12칸으로 늘어났다.
‘좋네.’
이제 고작 12칸이지만 내 몸에 있던 초보자 딱지 붙은 것들을 모조리 털어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진짜 상쾌하다. 특히나 가방 한쪽에 번쩍이는 +5희생의 롱소드는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무려 백만 원짜리다. 백만 원!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고생하게.”
경비병 호레이스와 작별 인사를 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매장으로 향했다. 지금 기분 같으면 아무리 개호로 새끼가 올린 미친 가격의 스킬북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결제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전에 갈 곳이 있지?
“와! 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그럼 보상을 드릴게요.”
이벤트 npc 라넬다가 선물 꾸러미를 뒤적거리더니 전과 마찬가지인 붉은 바탕의 카드 세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대박 나세요~”
“오냐!”
리넬다에게 기분 좋게 인사한 난 손에 들린 카드 세 장을 바라보았다.
[일반~전설 아이템 뽑기권 *3]
저번에는 쓰레기와 쥐똥 따위만 나와 내 기분을 무참하게 짓밟았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엄청난 게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하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세 장을 한 번에 찢었다. 잠시 후 세 장의 카드에서 뻗어 오른 새하얀 빛이 허공중에 뭉치기 시작한다.
“좋아! 떠라!”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게 된다. 신이시여! 이번에도 아까처럼 대박 한 번만!
피시식…….
[젓가락] [일반]
[마법 스크롤- 라이트] [일반] [3레벨]
[장난감 목검] [일반]
헤븐즈게이트에서 사료처럼 뿌리는 뽑기권에 기대를 한 내가 병신이다. 저번에는 소형 물약 하나는 나오더니 염병……. 마법 스크롤은 소형 물약보다 더 흔한 소모품이었다. 물론 인첸트된 마법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단순히 빛을 밝히는 라이트 마법 따위가 인첸트 된 마법 스크롤은 3실버도 하지 않을 거다.
“스킬이나 사러 가야지.”
대로를 지나 3분여를 걷자 큼지막한 원형의 지붕을 지닌 경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경매장 주변 공터에 멍하니 앉아 있고 경매장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소리에 귀가 아프다.
“프레임 쫙쫙 떨어지는구나.”
아무리 최신의 가상현실게임이라도 사람 몰리는 것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특히나 내가 쓰는 캡슐은 구형이라서 더 심하게 영향을 받는다.
‘썩을 장사꾼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저것들에는 영 적응이 안 된다.
경매장의 시세를 조작해서 차익을 실현하는 놈들……. 세이온이 워낙 돈이 되니까.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나서서 억대의 돈으로 시세를 조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이 많은 곳이다.
경매장 안으로 들어간 난 경매창을 열어 내가 사고자 하는 것을 검색했다.
[구매]
48001156 마나실드 [고급]
-시작 가격: 95골드
-즉시 구매가: 99골드
-올린 이: 비공개
48002122 마나실드 [고급]
-시작 가격: 95골드
-즉시 구매가: 99골드
-올린 이: 비공개
48003844 마나실드 [고급]
-시작 가격: 95골드
-즉시 구매가: 99골드
-올린 이: 비공개
.
.
.
“씨발…….”
아침에 접속할 때보다 가격이 더 올라 있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요즘 초보자 도시들에 장사꾼이 몰려 돈 되는 건 죄다 시세를 올리는 중이란다. 내가 사려는 마나 실드는 마나를 기반으로 보호막을 형성하는 스킬이었는데 현재 내 스킬 중 마나를 소모하는 게 없는 터라 생존기 스킬 원픽으로 점찍은 상태였다.
문제는 가격……. 현재 내가 가진 전 재산은 156골드였는데, 그중 99골드라면 대량 출혈이다. 눈높이를 낮춰 일반 등급 마나 실드를 살 수도 있지만 성능 차이가 너무 커서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장사꾼 좀 빠지면 사자.”
어차피 마나 실드를 사려는 이유는 눈먼 공격에 끔살당하는 거나 막자는 것이었다. 목숨 거는 짓만 자제하면 며칠은 괜찮으리라. 퀘스트3은 붓산아이 파티와 함께 놀 족장을 레이드하기로 했으니 상관없고 그렇게 이삼 일 정도만 고생하면 얼추 15렙 찍고 지하수로를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면 시세가 정상이 될 테고…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며 경매장을 빠져나올 때였다.
탁!
누군가 내 허리를 치고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보니 누더기의 꼬마가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피해 뛰어가고 있다. 순간 불안한 감이 든 나는 황급히 중급자 가방을 열었다.
“염병…….”
가방 안에 든 골드가 싹 털려 있다.
띠링-
[돌발 퀘스트-1] “주머니를 조심해.”
-소매치기 꼬마를 잡아라!
-보상: ?
세이온의 퀘스트 시스템의 특징이라면 메인 퀘스트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월드 곳곳에 수많은 퀘스트들이 숨어 있었는데, 그 숫자만 무려 십만에 달하며 아직까지 그 퀘스트의 10%도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히든 퀘스트, NPC와 NPC 혹은 NPC와 플레이어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돌발 퀘스트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퀘스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퀘스트라고 무조건 좋아할 게 아닌 것이 퀘스트 중에는 플레이어에게 긍정적 보상이 아닌 부정적 보상만 잔뜩 들어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금 그런 퀘스트에 내가 걸린 것 같고…….
“이딴 속 편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닌데! 씨발! 환장하겠네.”
가방에 들어 있던 전부 골드가 사라졌다. 다행이랄 건 전 재산은 아니라는 것. 죽었을 때 랜덤하게 떨어지는 아이템 중에는 골드 또한 포함되기 때문에 항상 최소 금액만 가지고 다니라는 혜미 누나의 공략집에 따라 대부분 창고에 두고 다닌다. 문제는 방금 지하수로를 내려갔다 올라와서 잡템들을 처분한 상태라 거의 20골드가량을 가방에 넣어 뒀다는 것이다.
꼬마는 내가 쫓는 것을 눈치챘는지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어찌나 교묘하게 도망치는지 금세 잡을 줄 알았던 추격전은 거의 3분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주위의 풍경이 곧 무너질 것 같은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빈민 구역으로 변했다. 더러운 거적때기를 뒤집어쓴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은 경비병이 순찰을 하지 않으니 웬만하면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배운 곳이다.
꼬마가 좁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따라 들어가니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막다른 골목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척 봐도 후드를 눌러쓴 사내가 꼬마의 멱살을 움켜쥐는 게 보인다.
“뭐? 꼬리 붙었다고? 이 미친 새끼가!”
“죄, 죄송해요.”
“죄송한지 알면 처맞아야지.”
퍽!
“악!”
꼬마의 허리가 녀석의 주먹에 반으로 접혔다. 꼬마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자 녀석의 발이 꼬마의 전신을 짓밟는다.
띠링-
[돌발 퀘스트-1 “주머니를 조심해”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돌발 퀘스트-2 “위험한 골목”
[돌발 퀘스트-2] “위험한 골목”
-불량배에게서 소매치기 꼬마를 구해라.
-보상: ?
돌발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저 썩을 녀석을 구하라는 말이지.”
주머니를 털어간 못된 꼬마 놈이지만 돈만 찾으면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구하라고 했으니 저 녀석만 처리하면 꼬마 놈도 얌전히 돈을 돌려줄 것이다. 내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려 할 때였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후원 알람음과 함께 전자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케이짱바라기 님 1,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케이 님! 스톱~ 스톱~ 함정 함정!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