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쪼렙의 발악
“응?”
후원을 해 준 아이디가 어딘가 익숙하다. 설마 레온짱바라기에서 케이짱바라기로 바꾼 건가?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아, 음… 케이짱바라기 님 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며 채팅창을 들어가 보니 시청자들이 나눈 대화가 채팅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새로 온 낯선 아이디 하나가 한참 설명을 하는 중이다.
-저거 약탈자 퀘스트랑 겹치네요. 도시 안에서 사람 죽이는 퀘스트인데 저 레미라는 꼬맹이 협박해서 소매치기시킨 다음에 유저를 빈민가로 유인해서 시비 걸고 죽이려는 걸 거예요.
-뭔 그렇게 복잡한 짓을 한대요?
-경비병 피하려는 거죠. 걸리면 뒈지니까.
-아하!
-20렙 이하 5명 죽이기였나… 흐흐흐, 당하는 사람도 얼척 없을 거임. 이 퀘스트 받으려면 불명예 200은 넘겨야 하는데 불명예 200 평균이 레벨 30임. 물론 평균이 30이라는 거고 훨씬 높을 수도 있음.
-저는 저런 퀘스트 받은 적 없는데요.
-민첩 낮으면 소매치기당할 확률 높아짐. 케이 님이 민첩이 낮으신 듯…….
-회피 만렙 케이 님이 민첩이 낮아요?
-회피가 민첩 수치로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튼 저기 들어가면 개미지옥임. 퀘스트 포기 추천함. 세이온도 미쳤지, 왜 이딴 퀘가 있어서.
“아…….”
퀘스트 내용이 어째서 불량배를 처리하는 것이 아닌 꼬마를 구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애초에 30레벨이 넘을 약탈자를 이길 수 없으니 꼬마를 안전하게 구하는 것이 성공 조건이라는 뜻이다.
“참 지랄맞은 퀘스트네요.”
퀘스트가 유저와 유저를 싸우도록 부추긴다. PVP를 권장하는 거야 욕할 게 아니지만 그 방식이 욕 나온다. 포기할까도 생각되지만 짓밟히는 아이를 보니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30렙이 넘을 저 약탈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나도 내가 가진 걸 다 드러내야 한다.
“저기 죄송하지만 방송 잠시 끄겠습니다.”
-예? 아니, 왜요!
“저 새끼 잡아 보려는데 아직 공개할 수 없는 걸 꺼내야 해서요.”
-헉 미쳤어요? 죽으면 어쩌려고!
-와… 대체 자신감 무엇…….
-케이 님 파이팅!
-대신 나중에 소통 방송 한번 해 주세요~ 맨날 혼자 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청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방송을 끄고는 골목 안쪽을 바라봤다.
퍽! 퍽!
“악! 악!”
발길질을 가할 때마다 꼬마의 입에서는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발길질이 마치 어서 빨리 들어와서 자신을 막지 않으면 이 꼬마는 죽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 새끼가…….”
녀석의 행동이 묘하게 내 신경을 거슬린다. 보스 스킬? 씨발 다시 얻으면 된다.
기억 속에 덮어 놨던, 그다지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억지로 끌어올린 저 새끼를 죽여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좋아. 모험 한번 해 보지. 안 되면 큰 경험 한번 했다고 치지, 뭐.”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겠다, 하고 머릿속에 구상한 것이 있다.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있던 희생의 롱소드를 반쯤 빼든 난 검에 걸린 마법을 일으켰다.
[피를 머금은 칼날]
지이잉…….
검을 타고 찌르르한 감촉이 느껴진다. 마법이 발동한 것. 그러나 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재차 마법을 발동했다.
[피를 머금은 칼날]
[피를 머금은 칼날]
지이이잉!
순식간에 400이던 생명력이 250으로 떨어졌다. 생명력 회복량까지 고려해 팔을 슬쩍 베어 10 정도를 더 떨어뜨린 후 머릿속으로 리허설을 돌려본다.
“좋아. 준비 완료.”
던전을 나오며 풀어졌던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난 표정을 정리한 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하지?”
“넌 뭐야?”
날 바라보며 인상을 팍 찡그린다. 짜식, 연기 좀 할 줄 아네. 그럼 나도 받아쳐 줘야지.
“그 꼬마는 볼일이 있어서 내가 데려가야겠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내가 거만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말하자 놈이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아마 내가 퀘스트 내용을 모르는 초짜 유저로 보일 것이다. 감히 레벨 30이 넘는 약탈자인 자신도 못 알아보는 똥멍청이로 보겠지. 뭐, 바라던 바다.
“아, 그러셔.”
우직-
“아아악!”
녀석은 쓰러져 있던 꼬마의 다리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어쩌나 이 새끼 제 발로는 걷지 못할 것 같은데? 직접 와서 데려가 보시지?”
약탈자 녀석은 퀘스트 공략법을 아는지 꼬마가 자력으로 도망칠 가능성을 막아 버렸다.
이제 남은 방법은 내가 직접 꼬마를 구해 내는 것뿐이다.
“너 따끔한 맛을 봐야겠구나.”
“아이구, 무서워라.”
“이 새끼가…….”
놈의 도발에 내가 흥분한 듯 성큼성큼 다가가자 녀석 또한 꼬마를 교묘히 가린 채 나와 마주 본다.
“데려가 봐. 애송아.”
녀석은 무기도 뽑지 않은 채 나를 다시금 도발했다. 하긴 녀석 입장에서는 우습기만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냐. 난 지금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상태거든?
“적당히 하려니까…….”
주먹을 날리려는 자세로 과하게 허리를 돌린다. 그리고 녀석이 보지 못하도록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주제도 모르고……!”
발검과 동시에 오른발을 강하게 박차며 녀석을 향해 쏘아져 들어간다. 그리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피로 머금은 칼날]
[진(眞) 광폭화]
-생명력 50% 이하일 때 공격 속도 1.25배 상승 공격력 300% 상승
생명력이 절반이 되는 순간 보스 스킬 진 광폭화가 발현되었다. 뽑혀 나오던 희생의 롱소드에 2단 가속이 걸리며 놈의 목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어?”
놀란 놈의 눈이 부릅떠진다. 아마 예상 못 했을 것이다. 희생의 롱소드의 2배 데미지에 진 광폭화 300% 공격력 상승이다. 무려 600%! 기껏 쪼렙이 아무것도 모르고 휘두른 주먹으로 생각했을 텐데 뜬금없이 전력으로 휘두른 검격이라니……. 그러나 나 또한 예상 못한 것이 있었다.
파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검날이 녀석의 목 바로 앞에서 푸른 장막에 가로막혔다.
카칵! 카카칵!
베어 내려는 검날과 푸른 장막 사이에 스파크가 튄다. 놈은 자신의 목을 베려는 검날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깜짝 놀랐네.”
“젠장!”
이건 내가 경매장에서 사려고 했던 마나 실드다. 치명적 일격이 가해졌을 때 마나를 기반으로 한 방어막으로 자동 방어해 주는 방어 스킬!
“너 이 새끼! 영악하구나.”
놈의 손이 사라지더니 다시 나타났을 때에 날카로운 단검 한 자루가 들려 있다.
촤아아아아아악!
몇 번인지 셀도 수 없을 정도의 베기가 내 상반신에 작렬하며 100의 생명력이 단번에 날아가는 것도 모자라 상반신이 붉게 변하며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죽을 뻔했어.”
놈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드리웠다.
* * *
-레벨 50짜리가 쪼렙한테 뒈질 뻔했네.
-씨렉 오줌 지렸죠?
-ㅋㅋㅋㅋㅋ병신 새끼
-깝다! 씨레기 대가리 날아가는 걸 봐야 했는데…….
시청자 미션으로 묵혀 놨던 약탈자 퀘스트 하러 초보자 도시 포디나에 왔던 씨렉은 조금 전 깜찍한 방법으로 자신을 죽일 뻔했던 쪼렙 놈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50레벨에 20렙제 양학 퀘스트 하러 왔다고 시청자들한테 돈미새라고 욕을 처먹었는데, 까딱했으면 20레벨도 안 될 쪼렙한테 목이 썰릴 뻔했다.
우드득…….
손에 힘을 주자 녀석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큭…….”
“숨 막히지? 고통스럽지?”
놈을 끌어당겨 귀에 속삭인다.
게임이기에 통각이 반감되기는 하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 숨이 막혀 죽는 느낌에 가장 큰 거부감을 가진다. 본능적인 거부감을 주는 목이 조르면 실제로 호흡이 곤란하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상대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싶은 그에게 있어 이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처형 방식이다.
“그러게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튀지 왜 덤벼? 쪼렙아.”
“큭… 큭… 그러게… 난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지.”
“하핫.”
놈의 대답에 실소를 터졌다. 기습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 놈의 말을 더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가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지금도 이길 수 있어 보이냐?”
“크큭, 아마?”
“응?”
녀석이 스크롤 한 장을 들어 그의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게 뭔…….”
파아아앗!
“큭!”
바로 앞에서 터진 라이트가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실명시켰다. 반사적으로 목을 쥐고 있던 손으로 눈을 가리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의 큰 실수다.
“넌 실수한 거야.”
“웃기고 있네!”
뒤늦게 방어를 위해 단검으로 전방을 마구 베지만 걸리는 것이 없다. 이미 도망친 것! 그는 곧 시력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죽인다! 꼭 죽여 버린다!”
끝까지 놈을 쫓아 죽일 것이다. 도시를 지키는 NPC 경비병들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상관없다. 감히 어쭙잖은 쪼렙 주제에 자신을 농락했다. 그러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앞을 바라본 순간 그는 전혀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너나 죽어.”
파아아아앗!
놈은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두 눈에 줄기줄기 붉은 빛을 뿌리며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날을 바라보며 그는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텐데 놈은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검을 뿌리고 있다. 용기가 가상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엽기까지 하다.
“애쓴다.”
이런 검격 따위 굳이 막을 필요도 없다. 이미 그의 방어 스킬인 희귀 등급 마나 실드의 쿨타임은 다 돌아간 상황. 처음의 그 매서운 공격에도 마나 실드의 방어막은 70%가량밖에 깎이지 않았다.
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자신의 방어막을 뚫을 수는 없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파아아아아앙! 츠컥!
방어막이 박살 나며 마나의 잔영이 산란한다.
“뭐?”
그의 마나 실드를 깨끗이 박살 내며 날아든 검 날이 마침내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컥!”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너무 큰 충격에 몸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목을 향해 서슬 퍼런 검은 칼날이 다시금 날아온다.
“빌어먹을!”
그는 허리춤의 포켓에서 한 장의 금빛 주문서를 꺼냈다. 한 장에 무려 100골드나 하는 순간이동 주문서다. 치욕적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 가릴 때가 아니다.
“두고 보자!”
파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