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히든 퀘스트
막타를 꽂으려는 순간 빛과 함께 약탈자 녀석이 사라졌고, 난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
진짜 위험했다. 놈이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5 희생의 롱소드와 진(眞) 광폭화…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쥐어짜 ‘피를 머금은 칼날’을 쓰지 않았다면 녀석의 마나 실드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무려 1,000%까지 증폭된 공격력으로도 한 방에 깨지 못하다니…….
“젠장, 내가 미쳤지.”
내 능력을 과신했고, 채팅창의 시청자가 말한 30레벨쯤이라는 추측을 숫자로만 이해했다. 게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며칠밖에 안 된 놈이 다른 사람이 못한 업적 하나 먹었다고 엄청난 재능이라며 추켜세워 주니 콧대가 높아져 고레벨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멍청한 새끼, 당해도 싸다.”
속으로 계산만 열심히 했다. 불명예 점수가 높은 약탈자는 죽었을 때 많은 아이템을 토해 낸다. 운만 따라 주면 단숨에 떡상각 아닌가. 물론 나도 리스크가 있긴 했다. 죽으면 스킬이터로 얻은 보스 스킬이 날아가고, 재수 없으면 장비나 소지품이 랜덤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급소 공격만 제대로 맞추면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즉사 판정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세이온의 시스템을 믿고 모험을 걸었다. 뭐, 결국 이 꼴이 되었지만……. 다시는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납검을 하는데 옆에서 꼬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무서운 아저씨가 말 안 들으면 죽인다고 해서… 흑…….”
내 가방을 털고 도망쳤다가 약탈자에게 다리가 부러진 NPC 꼬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고개를 조아린다.
“아, 그래. 퀘스트…….”
난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돌발 퀘스트를 떠올렸다.
“너, 다리는 괜찮니?”
“괘, 괜찮습니다. 나으리… 아아악!”
괜찮다고 말하는 꼬마의 다리를 슬쩍 건드리자 자지러지듯 비명을 지른다.
“기다려 봐.”
난 가방에서 소형 포션을 꺼내 꼬마의 부러진 다리에 뿌렸다.
“아으윽… 윽… 어?”
고통의 신음을 흘리던 꼬마는 아픔이 가시는지 눈물이 흐른 땟자국을 더러운 소매로 문지르며 자신의 다리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음… 다행히 소형 포션 하나로 되네.
“괜찮냐?”
“예? 예.”
“그럼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 고맙습니다.”
절뚝이며 일어서고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 이거… 나으리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아…….”
내가 손을 휘휘 젓자 우물쭈물거리던 꼬마가 작은 가죽 주머니를 내게 내민다.
약탈자 녀석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이 괘씸한 꼬마 소매치기의 머리를 한 대 때려 주고는 돈을 되찾았을 것이다. 무려 20골드였으니까. 그런데 왠지 기분이 꿉꿉하다.
“꼬마야.”
“네?”
“왜 소매치기를 하니? 집에 어른은 없어?”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일 것이다. NPC에게 이런 것을 묻다니… 그러나 내 물음에 꼬마가 멈칫거리더니 이내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엄마랑 동생이 있는데 엄마는… 아파서 못 일어나시고, 동생은 너무… 어리구……. 근데 돈 벌고 싶어도 제가 너무 어리다고 어른들이… 흑… 흐윽…….”
말을 하던 꼬마가 훌쩍이기 시작한다.
“쩝…….”
단지 NPC일 뿐이지만 매정하게 빼앗고 싶지 않다. 그것이 설령 내 어릴 적의 아픔으로 인한 단순한 자기 위안일 뿐이더라도 말이다.
“뚝하고… 너 이름이 뭐냐?”
“흐흑… 레, 레미요.”
“그래, 레미야. 너 나랑 거래 하나 할래?”
“예?”
난 주머니에서 금화 다섯 닢을 꺼내 꼬마에게 내밀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무덤까지 가져가는 조건으로 네게 주마.”
“예? 어째서…….”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어쩔 테냐. 이 돈 받고 입 다물래?”
“그, 그래도…….”
돈주머니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뭐해. 얼른 받아.”
“흑, 예.”
망설이던 레미가 5골드를 받아 품에 집어넣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돌발 퀘스트-2 “위험한 골목”을 ‘완벽하게’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한정 히든 퀘스트-1 “레미”
[히든 퀘스트-1 레미]
-레미의 집으로 이동하세요.
“히든 퀘스트?”
히든 퀘스트라는 문구에 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많은 퀘스트들이 그 습득 방법이 밝혀졌지만 히든 퀘스트라는 건 습득 방법 자체가 없는 퀘스트를 말한다. 게임 내 환경과 NPC 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퀘스트들 중에는 클리어하는 순간 사라지는 퀘스트들이 있는데, 그런 퀘스트들 중에는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보상들이 주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가는 레미에게 다가갔다.
“레미야.”
“네?”
“집에 데려다주마. 그런 발로는 걷지도 못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레미의 얼굴에 감격의 표정이 얽힌다. 퀘스트 때문에 따라가는 입장이라 속이 좀 따끔거리지만 뭐 어쩌라고……. 쯧.
* * *
“여기냐?”
“예.”
레미와 함께 냄새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다 썩은 나무판자들로 간신이 집의 형체만을 유지하고 있는 오두막이었다. 조금만 힘줘도 부서질 것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시큼한 썩은 내가 코를 찌른다. 오두막 한쪽에 놓인 허름한 침상에는 피골이 상접한 여인이 누워 있었는데 혈색이 푸르스름한 것이 마치 시체를 보는 것 같다.
“아들… 왔니?”
문 열리는 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돌린 여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려움이 물든다.
“누, 누구시죠?”
“엄마, 괜찮아.”
레미가 절뚝거리며 다가서자 여인의 눈이 더욱 커졌다.
“너 다리가 왜 그러니!”
다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뭔가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내… 내 아들을… 끅…….”
말을 하던 여인의 눈이 하얗게 돌아가며 침상 밑으로 떨어졌다. 아니 무슨 개복치야? 왜 보자마자 죽으려고 해. 최소한 알아듣게 대사를 쳐야 할 거 아냐!
“엄마!”
레미가 황급히 다가가 힘겹게 침상에 눕히고는 어깨를 흔들었지만 여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안 되겠네.
“젠장…….”
난 가방에서 소형 물약을 꺼내 뚜껑을 따서 여인의 입에 물렸다. 놀 스트라이더에게서 웬일로 소형 물약이 세 개나 떨어지나 싶었는데 여기서 다 쓰게 생겼다. 잠시 후 다행히 약효가 들었는지 여인이 천천히 눈을 뜬다.
“엄마, 정신이 들어?”
“으응… 그런데 너 다리가 왜 그런 거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레미는 그녀에게 자신이 다리를 왜 다쳤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소매치기를 지나가던, 으로 바꾸고, 약탈자는 그냥 건달 정도로 격하되었지만 아들을 건달에게서 구해 준 사람으로 소개하자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아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일단 누우세요.”
“예.”
여인이 침상에 몸을 누이는데 초가집의 문이 열리며 작은 인영이 걸어 들어온다.
“엄마아… 엄마아…….”
밀가루 포대의 윗부분을 잘라 머리를 끼운 것 같은 누더기를 걸친 조막만 한 더벅머리 꼬마 여자애다. 집 안에 들어선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레미를 발견하고는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오뿌아… 흑… 배고파.”
다섯 살이나 될 법한 꼬마가 울먹이면서 말하니 히든 퀘스트 때문에 레미를 따라온 게 미안해질 정도다.
[히든 퀘스트-1 “레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히든 퀘스트-2 “소년가장 레미”
[히든 퀘스트-2 소년가장 레미]
-레미를 도우세요.
-보상: 중급 물약 x3, 10골드, 일반~전설 스킬 뽑기권 x1
마침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난 자리에서 일어나 레미에게 말했다.
“레미야. 나 좀 나갔다 오마.”
아무래도 이 집은 뭔가 입에 넣어줘야 퀘스트가 제대로 진행될 것 같다.
* * *
두 걸신들린 꼬마가 커다란 빵을 하나씩 안고 정신없이 뜯어먹고 있다.
“냠냠…….”
“천천히 먹어라. 뺏어 가는 사람 없다.”
탁자 위에 한가득 쌓인 하얀 빵을 정신없이 먹는 두 남매를 바라보며 난 새로 사 온 커다란 냄비에 스프를 끓였다. 잠시 후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향긋한 냄새를 풍기자 빵에 달라붙어 있던 두 걸신이 코를 킁킁거리고는 냄비 옆에 달라붙어 끓고 있는 스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야채 스프를 완성하셨습니다.]
-야채스프★: 각종 야채와 밀가루, 우유로 만든 죽이다. [3시간 의지 +2]
야채 스프가 완성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난 가방에서 새로 사 온 그릇을 꺼내 스프를 한가득 담고 숟가락을 꽂아 남매 앞에 내려놓았다.
“레미 너는 엄마 깨워서 먹여 드려.”
“감사합니다. 어르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데 자꾸 보육원 동생들이 떠올라 기분이 안 좋다.
“어르신이 뭐냐 형이라고 불러.”
“혀, 형.”
형이라는 단어가 어색한지 미적거리며 입을 여는 레미와 달리 레나라는 이 작은 꼬마는 내 바지를 조막만 한 손으로 꾹 쥐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능…….”
“넌, 흠흠… 오빠.”
“오… 뿌아…….”
그 작은 입술이 오물거리며 오빠라고 하니 뒷목이 간질거린다.
아, 젠장… 내가 이런 눈빛에는 약한데……. 머리를 슥슥 문질러 주자 방긋 웃으며 커다란 숟가락을 붙잡고 후후 불면서 스프를 입에 밀어 넣는다. 나 또한 한 그릇 떠서 먹어 보니 가상현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맛이 난다.
“맛있네.”
세이온은 통각인 매운맛을 구현하기 위해서 감각 시스템과 관련된 특허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맛의 표현이 완벽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는데 왜 굳이 19세 이상 딱지를 받게 만드는 통각 시스템을 구현했는지 알겠다. 게임에 바빠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어 보니 과연 그 평가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빵을 찢어 스프에 담가 먹자 그걸 본 레나도 나를 따라 빵을 스프에 적셔 먹어 보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고는 한 손에는 숟가락을, 다른 한 손에는 빵을 든 채 정신없이 스프를 퍼 먹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세 가족의 조촐하지만 풍성한 식사가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슴다.”
“감사합니다.”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는 두 아이가 너무 귀여워 절로 시선이 간다. 설마 NPC가 너무 많이 먹어서 설사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
따끈한 게 뱃속에 들어가서인지 레미 엄마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그러나 밥 한 끼 먹이는 건 퀘스트가 원하는 해결 방법이 아닌지 완료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 뭔가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레미야.”
“예?”
“잠시 나와 봐.”
“예.”
난 레미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
“어머니 무슨 병이시니?”
“…….”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 듯 땅을 바라보던 레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엄마는… 저주에 걸리셨어요.”
“저주?”
“네. 레나가 막 태어나고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 아빠랑 엄마는 포디나에서 엄청나게 이름난 모험가셨어요. 어느 날 아빠가 시청 의뢰로 동료 아저씨들이랑 놀 군락을 소탕하러 떠나셨다가 실종되셨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돌아오시니까 엄마가 아빠를 찾겠다고 레나랑 저를 맡기시고 실종자들을 찾는 수색대에 따라가셨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크게 다치셔서 돌아오시고 그날부터 저렇게 되셨어요.”
“그게 저주라고?”
“네. 같이 돌아오신 사제분이 말씀해 주셨어요. 아빠의 흔적을 쫓다가 큰 놀 부락을 찾았는데 엄마가 무리하게 흔적을 쫓아 들어가시고 놀 대족장과 마주쳐서 저주에 걸리셨다고요.”
“놀 대족장이라…….”
“네. 그 놀 대족장이 피의 저주라는 걸 걸었는데 생명력을 천천히 말려 죽이는 저주랬어요. 워낙 세서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엄마는 원래 강하셔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티신 거라고 하셨고요.”
“푸는 방법은 알고 있니?”
“놀 대족장이 저주를 건 매개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부셔야 한다고 하셨어요. 근데 후에 더 큰 공격대가 놀 군락을 완전히 소탕했는데 놀 대족장은 찾을 수 없었대요.”
“그렇구나.”
레미의 설명이 끝나자 지하수로의 놀 대족장 퀘스트가 떠올랐다. 지하수로 2층 깊숙한 곳에 랜덤하게 나타나는 대족장을 잡는 건데 놀 족장보다 훨씬 강해서 어지간한 파티로는 도전해선 안 된다는 퀘스트다.
그때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히든 퀘스트-2 “소년가장 레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중급 물약 x3, 10골드, 일반~전설 스킬 뽑기권x1 히든 퀘스트-3 “레미의 소원”
[히든 퀘스트-3 레미의 소원]
-놀 대족장을 처치하고 저주의 매개체를 파괴하세요.
-보상: ?
“역시나…….”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놀 족장도 이제 파티로 딱 한 번 잡아 봤는데 그보다 강한 놀 대족장을 잡아야 한다.
“뭐, 당장 잡으라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좀 더 레벨업과 장비 업그레이드를 한 후 도전해도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또 뽑기권이네.”
이젠 그냥 다른 걸로 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아무거나 나와라.”
찌익!
마음을 비우고 뽑기권을 깠다. 어차피 뽑기권에서 뭐가 나올 거라는 기대는 깔끔하게 접었다.
펑!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퍼펑!
어라?
쿠쿠쿵!
공중으로 떠오른 카드가 화려한 빛무리를 뿜어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색 파란색 하얀색이 어우러지더니 마침내 그것들이 하나로 뭉쳐 꿈틀거린다.
이거 이펙트가 이렇게 화려했나?
[빰빠라밤~! 축하드립니다! 전설급 스킬 획득!]
[뱀파이어릭 오라] [전설 등급] [1티어]
-근력+10 의지+10
-오라 발동 후 공격 시 생명력 흡수
-30초간 공격력의 50%만큼 생명력으로 흡수하며 흡수당한 상대의 무기력 저주 [1레벨] 부여
-쿨타임 1분
-필요 마나 100
“시… 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