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17화 (17/154)

17. 지하수로의 혈투 (2)

<보고! 목표의 커스터마이징과 장비가 일치하는 유저를 찾았습니다.>

<위치가 어디냐?>

<지하수로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뭐? 지하수로?>

<예.>

<지하수로면 15렙 제한이 걸려서 탐색에서 제외한 곳 아냐?>

<맞습니다.>

<염병, 만약 그놈이 맞다면 우리 삼 일 동안 삽질만 한 거군. 설마해서 외곽만 훑었는데…….>

<삽질 맞습니다.>

<후, 닥치고, 꼬리는 붙였지?>

<하나 붙였습니다.>

<좋아. 사진 올려 봐. 의뢰인한테 보여 주고 확인 받게.>

<알겠슴다!>

신록 길드의 길드마스터는 조금 전 들어온 귓속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초보자 도시에서 유저 하나 찾는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쉽게 봤다. 놈이 가면 어딜 가겠는가. 그러나 하루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지만 삼 일 동안이나 목표물을 찾을 수 없었다. 근데 용의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그들이 고심 끝에 수색에서 제외한 15렙 제한 초보 던전에서 말이다.

“하, 이게 사실이면 씨렉이가 15렙짜리한테 당했다는 말이네.”

도대체 뭘 얼마나 방심을 해야 50렙짜리가 15렙 찌끄레기한테 발린단 말인가. 물론 가능성은 몇 가지가 있다. 전신이 블랙아웃이 된 상태였거나 혹은 그 15렙짜리가 신화와 전설급 아이템으로만 도배를 한 핵고래던가. 그러나 그가 알기로 보급형 하이엔드템인 희생의 롱소드 말고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무장으로 알고 있다.

“쯧,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의 일은 그 유력한 용의자의 사진이 들어오면 의뢰인에게 확인 받은 후 ‘처리’하는 것이다. 잠시 후 용의자의 사진이 길드 의뢰 게시판에 올라오자 그는 그것을 의뢰인에게 전송했고, 그렇게 다시 약 20여 분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예. 놈이 맞습니다.>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예. 놈이 게임을 접게 만들면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세이온에서 상대를 접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접을 때까지 죽이는 것. 그 방법을 보자면 일단 상대를 저항 불능으로 만든 뒤 포획하여 부활하는 장소가 한정된 특정 지역으로 끌고 가 죽이는 것이다. 3일의 사망 페널티 끝에 다시 접속하면 부활하는 장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계속해서 죽인다. 간단하지만 그만큼 손쉽기 때문에 많이 애용되는 방법이다.

의뢰자와 연락을 마친 길드 마스터가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부길마야.”

“예.”

“대기 중인 애들 중에 15렙 이하로만 추리면 얼마나 되겠냐?”

“스무 명 정도입니다.”

“스물? 그것밖에 안 되나.”

“원체 의뢰가 없는 구간이니까요.”

“끙, 레벨이 너무 낮아도 문제구만.”

“스무 명은 좀 부족할까요?”

“50레벨을 몰아붙인 놈을 죽이지 않고 끌고 와야 해. 그게 쉬운 일 같냐?”

“그건 그렇죠.”

“침투로는?”

약탈자는 도시 내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 후드나 로브로 얼굴을 숨기면 되지만 까칠한 경비 NPC를 만나 얼굴 까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즉참이다.

“남쪽 빈민가 주점에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주인장 NPC한테 두당 1골드를 내면 들어갈 수 있고요.”

“좋아. 통로는 확보됐군. 그럼 이제 문제는 청소부 숫자가 너무 적다는 건데…….”

“음, 그럼 중국 애들을 쓰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뚫어 놓은 업체가 하나 있는데…….”

“중국 애들?”

“예.”

“그거 나중에 문제 되지 않겠어?”

전 세계 모든 세이온 유저들이 하나의 서버에서 플레이하기에 국가마다 세이온 내 활동 지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중국과 한 대륙권으로 묶이는 한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은 중국과 세력 구도가 겹치는 곳이 많았다. 항상 상대 국가 영토에 떼거지로 몰려 들어와 저레벨을 학살하거나 약탈을 일삼았기에 중국 플레이어에 대한 인식은 거의 민폐덩어리 수준이다.

“그건 맞지만 쌉니다. 두당으로 계산하는 게 아닌 건당으로 의뢰 받고, 의뢰가 완료될 때까지 무한으로 물량을 쏟아붓는다고 홍보하더군요.”

“호오…….”

거래에 있어 싸다는 건 절대 무시 못 할 메리트다. 쓰는 칼이 좀 더럽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칼만 잘 들면 됐지.

“단가가 얼마나 되지?”

“합의를 해 봐야겠지만 15렙짜리 하나 끌고 오는 거니 1,000골드 정도면 될 겁니다.”

“우리가 계약한 게 3,000골드지?”

“예.”

“좋아. 그럼 넌 그 업체에 연락해서 의뢰 넣어 봐. 시간은 2시간이다.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숫자 알려 달라고 하고, 지금부터 애들 풀어서 지하수로 통제해.”

“통제요?”

“그래. 중국 놈들 풀어놓으면 분명 온 사방 쑤시고 다닐 텐데 괜히 우리 이름이라도 나오면 골치 아파질 거 아냐.”

“알겠습니다.”

* * *

“흠, 이상하네.”

어느 순간부터 던전 안에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하수로 2층이 워낙 넓기에 그리 자주 부딪히는 건 아니지만 놀 대족장이 주로 출몰하는 구역에는 항상 파티 하나는 있었는데, 웬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 좀 버겁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좋다. 놀 대족장만 노리는 놈들이 사냥은 않고 돌아다니며 몰이를 해 대는 통에 위기에 빠진 게 몇 번이던가. 덕분에 난 지금 놀 대족장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는 구역을 혼자서 통째로 먹은 채 신나게 사냥을 하는 중이다.

촤아악! 쫙!

놀 스트라이더의 목이 날아가며 시야 한구석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도전 퀘스트 9단계를 완료하셨습니다.]

-놀 스트라이더 10마리 잡기 10/10

[놀 스트라이더 10마리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1,500exp 일반~전설 아이템 뽑기권 x3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현재의 보상을 포기하면 더 큰 보상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실패 시 보상은 없습니다.]

“도전 퀘스트도 드디어 10단계네.”

사흘간 죽어라 사냥하면서 계속 도전만 누르다 보니 어찌어찌 9단계까지 완료를 해 버렸다. 물론 내가 심심해서 9단계까지 찍은 건 아니다. 위튜브를 보니까 이걸 최고로 높게 찍은 사람이 22단계였는데, 비록 실패했지만 21단계 보상이 무려 전설급 장비 뽑기권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2단계에 도전하는 위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고작 한 달이 지났음에도 무려 2억……. 만약 내가 22단계까지 성공한다면 최소 1억 정도의 조회수도 가능하다고 본다.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도전]

-과제 10. 약탈자 30명을 사냥하세요.

-성공 시 보상 2,000exp, 강화석x100, 고급~전설 액세서리 뽑기권 x3

-사망 시 보상 없음

처음으로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잡는 퀘스트가 나왔다.

“약탈자 30명이라… 쳇.”

절로 혀가 차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약탈자들이 덤벼 줄 때까지 기다리는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예상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정도는 걸리리라. 머릿속으로 퀘스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크르르… 억… 울하도다……!”

어디선가 가래가 끓는 듯 탁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그 소리에 난 생각을 멈추고 곧장 무기를 가다듬었다. 이 소리는 이곳에 출현하는 어떤 몬스터만의 고유한 목소리다. 이곳에서 사냥하는 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음성 원픽! 그것은 바로…….

‘놀 대족장!’

사흘 동안 지하수로 2층을 헤매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를 들어 버렸다.

“어디냐!”

츠츠츳!

주위를 둘러보니 약 30m가량 떨어진 곳에 몬스터의 리젠을 알리는 검은 오오라가 일렁거린다. 그 크기를 볼 때 필시 놀 대족장. 그리고 약 10초 내로 리젠이 완료될 것이다.

‘급하다!’

이때를 위해 가방에 가지고 다니던 것이 있다.

-[프리미엄 모카라떼★★★]

-[마법 스크롤- 헤이스트★★★★]

-[마법 물약- 스트라이킹★★★]

다 합쳐서 무려 100골드나 하는,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최상의 버프 조합이다. 혹시나 운 좋게 놀 대족장을 혼자 만나면 쓰려 했던 그것들을 단숨에 사용했다.

-프리미엄 모카라떼

-생명력 회복 +50%

-마나 회복 +50%

[59:59]

-헤이스트

-이동 속도+30%

-공격 속도+10%

[59:59]

-스트라이킹

-모든 능력치 +5

[59:59]

순간적으로 능력치가 급등한 여파인지 힘의 고양감이 장난 아니다. 마치 광폭화를 써서 동기화률이 치솟을 때의 기분이랄까?

“크륵! 억울하도다! 일족의 배신자여, 신의 저주를 받을지어다!”

슈우우욱!

검은 오오라가 걷히며 마침내 놀 대족장의 거대한 몸집이 나타났다. 놀 족장보다 1.5배는 커서 마치 다른 개체로까지 보이는 그것은 한 손에는 거대한 창을, 다른 한 손에는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오브를 쥐고 있다.

[녹화 시작]

준비는 끝났다.

“간다!”

* * *

탁! 타탁! 타탁!

약 30여 명의 유저들이 지하수로 2층을 빠르게 걷는 중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선두에서 앞장서던 유저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정지.”

그의 명령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자리에 멈춘다. 주위 지형을 빠르게 훑은 그가 길드 말을 시작했다.

<2팀! 3팀! 여기는 수석팀장이다. 목표 위치에 도착했나?>

<3팀 도착했습니다.>

<2팀 도착했습니다.>

<좋다. 그럼 사전 브리핑한 대로 수색을 시작한다. 2팀은 남쪽, 3팀은 서쪽, 난 북쪽에서 압박해 들어가며 목표 발견 시 선제공격하지 말고 포위가 완성될 때까지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작 13~15레벨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조직된 군대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2팀으로부터 길드 말이 들려온다.

<발견했습니다. 목표 위치는 지하수로 2층 놀 대족장 출몰 지역 3번 남쪽 회랑입니다.>

<목표 상태는?>

<목표… 현재 놀 대족장을 솔로 레이드 중입니다.>

<뭐? 솔로 레이드? 혹시 목표가 위험한가?>

수석팀장이 놀란 목소리로 2팀장에게 물었다. 목표가 대족장에게 죽어 버리면 오늘 의뢰는 모두 나가리돼 버린다. 그러나 이어진 2팀장의 대답에 수석팀장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아닙니다. 전혀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허… 그래?>

<예. 버프 상태나 이것저것 따졌을 때 충분히 레이드 가능해 보입니다.>

의뢰자로부터 상당한 장비와 실력을 지녔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놀 대족장을 솔로잉할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획이 달라질 건 없다. 지금 목표를 포획하기 위해 이 던전에 투입된 숫자만 무려 60명이다.

<좋다. 놈이 레이드하는 건 신경 쓰지 말고 현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괜히 난입했다가 보스 어그로가 끌리면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1팀장은 2팀장이 말한 남쪽 회랑으로 이동했고, 잠시 후 목표가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에 멈춰 섰다.

“잘 싸우는군.”

목표가 보인다. 놀 대족장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롱소드로 하체를 집요하게 베어 가는데, 그 모습이 아슬아슬하면서도 감탄이 나올 정도다.

“친위대 나와라!”

놀 대족장의 외침에 주위에 검은 오오라가 피어오르더니 6마리의 놀들이 소환된다. 놀 대족장의 메인 스킬인 ‘친위대 소환’인데 저것들은 나타나는 즉시 파티의 힐러나 원거리 격수를 먼저 공격하기에 까다로운 패턴 중 하나다.

“크아앙!”

놀 대족장이 오브를 들어 올리며 하울링을 터뜨리자 오브에서 뻗어나간 검은 오오라가 놀들을 감싼다. 놀 대족장의 광역 버프 스킬로 소환된 놀들의 공격력을 증가시킨다. 여차하면 나서서 목표가 죽지 않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수석팀장이지만 그는 곧 그 생각을 곱게 접어 버렸다.

쫘아악!

일 검으로 두 마리 놀의 목을 단숨에 친 목표가 놀들의 포위를 뚫고 대족장을 공격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능적이군.”

목표는 놀 대족장에게 놀들을 유인함으로 오히려 대족장과 놀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도 놀 대족장 솔로잉에 써먹어 보고 싶을 정도다. 아무튼 목표의 솔로 레이드는 순조로워 보인다.

<3팀 위치는?>

<1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좋다. 포획 시작은 목표가 레이드를 끝마치는 순간이다. 레이드가 막 끝나 생명력이 얼마 없을 테니 각 팀의 마비독 쓰는 놈들은 행여 급소 안 찌르게 조심하고, 목표가 순간이동 스크롤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마비를 걸어라.>

<포획은 어떻게 합니까?>

<포획은 우리 1팀에서만 들어갈 테니 나머지는 포위망을 구축한 뒤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쿠아아아악! 분하다!”

놀 대족장의 비통한 울부짖음과 함께 마침내 목표의 놀 대족장 솔로 레이드가 끝났다. 잘 아는 지인이라면 축하의 말이라도 날리겠지만 지금 그들은 목표를 포획하기 위해 온 몸이다.

그의 손에 한 자루 활이 들렸다. 희귀급 활로써 데미지는 약하지만, 마비 공격 옵션이 달린 녀석이다. 목표를 향해 조준한 그가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비조!>

<예!>

<옛!>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각 팀에 흩어져 있던 마비조가 일제히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포획조 따라붙어!>

<예!>

수석팀장이 이끄는 1팀의 포획조가 마비조의 뒤를 따랐다. 마비조가 목표를 마비시키는 사이 그들은 특수 아이템인 밧줄로 목표를 꽁꽁 옭아매면 게임 끝이다. 그러나…….

“뭐지?”

순간 목표와 눈이 마주친 수석팀장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웃어?”

수십 명의 약탈자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데 목표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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