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자낳괴
시청자가 30명을 넘기는 처음이다. 황금 거대쥐 잡을 때도 11명이 최고였는데…….
“백구, 황구, 흑구입니다.”
“왕! 왕! 왕!”
소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절도 있게 우는 구씨 삼형제다. 아, 구씨 삼형제는 내가 지은 게 아닌 시청자들이 지어 준 애칭이다. 구씨가 아닌데 왜 구씨냐고 묻지 마라. 나도 시청자들 네이밍 센스는 모르겠다.
-와, 놀이 이렇게 귀여운 놈들이었어?
-내가 지금껏 잡아 댄 놀들이 갑자기 불쌍해지네.
-소환 스킬 이름이 뭔가요?
-님 매너 지키세요. 스킬 내용 캐는 거 비매너인 거 모름?
[공구리 님 3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옛날에 키우던 백구가 생각나네요. 사료값입니다.
“와, 제가 지금껏 받은 도네 중 가장 많은 금액이네요. 공구리 님 감사합니다.”
후원에 항상 감사해야 할 비제이지만 난 아직도 이런 것에 몇만 원씩 던져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도네 액수가 펫한테 밀리는 거 실화 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 게 최고야~ 짜릿해~
-근데 놀 데리고 도시 돌아다녀도 괜찮나요?
-소환술사 도시에서 풀어놓고 다니면 걸리는데…….
“저도 그거 걱정했는데 의외로 괜찮더라고요.”
처음에는 몬스터라고 공격당하면 어쩌나 하고 조금 걱정했는데, 퀘스트4를 완료하며 호레이스 경비병한테 보여 주니 ‘조심해서 데리고 다니게’ 같은 소리만 하더라. 물론 마냥 괜찮은 것도 아닌 것이 자꾸 접근해서 만지는 것들이 문제다.
“으르르릉!”
“크르릉!”
“으르릉!”
“와앗! 이빨 좀 봐!”
또 누가 와서 만졌는지 백구, 황구, 흑구가 일제히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못생겼다면 모를까 뽑기 운이 있는 건지 죄다 훈훈한 외모다.
“남의 펫 좀 만지지 마세요.”
“에, 죄송합니다. 너무 귀여워서 그만…….”
눈에서 하트가 뿜뿜거리는 아가씨 하나가 백구를 향해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한 번만 만져 보면 안 될까요?”
“하아, 예. 백구야. 가만히 있어.”
“으앙, 너무 좋아.”
한번 만져만 본다더니 대놓고 비비적거리는데도 진짜로 가만히 있는 거 보면 머리가 진짜 좋다.
문제는 이렇게 사람들이 뜬금없이 와서 한 번씩 만져 대는데 대책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역소환하고 싶은데, 문제는 방송에서 얘들 인기가 너무 좋다는 거다.
[샷다맨 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맨날 재미없는 사냥 ASMR만 하시다가 구씨 삼형제 나타나니 채팅창이 미어터지네요.
재미없는 사냥만 해서 죄송합니다.
[호로로록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먹는 건 뭘 먹나요? 펫사료 따로 먹이나요? 사람 먹는 것도 다 먹나요?
“일단 육포 먹는 거 보면 구분하지 않고 먹여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와, 그럼 버프 음식도 먹음? 버프 적용도 되요?
-버프 적용되면 대박인 건데?
“노코맨트 하겠습니다.”
[검은마음황구 님 2,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황구 얼굴 좀 보여 주세요! 황구! 황구! 황구가 젤 멋있어요!
[하얀화살 님 3,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는 흑구요! 쟬 야성적이야!
[케이둘린 님 5,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료값 투척이요.
내가 방송할 때는 잘 터져야 천 원짜리 도네였는데, 기본 이삼천 원짜리가 뻥뻥 터져 대니 역소환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 또한 같이 다니면 기분이 좋아져서 집어넣고 싶지 않고…….
아무튼 그렇게 말 많은 구씨 삼형제를 데리고 빈민가 안쪽으로 들어가니 레미의 판자집이 보인다. 예전과 같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집이지만 예전 같은 죽음의 냄새가 아닌 밝은 희망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앗, 나으리!”
동생 레나와 놀아주고 있던 레미가 절뚝이며 내게 다가와 허리를 꾸벅 숙인다.
“다리 아직 안 나았니?”
“나으리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어찌 감히…….”
“와, 멍머이다, 멍머이!”
레나가 도도도도 달려와 백구의 허리를 답삭 안았다. 백구는 조금 싫은 기색을 보이기는 하지만 덜 위협적인 상대라고 생각하는지 거부반응이 덜하다. 백구의 털을 잡고 얼굴을 비비적거리는데 레미가 레나를 백구에게서 떨어뜨리며 말했다.
“레나야! 나으리께 인사 드려야지.”
“오, 오뿌아 안녕.”
“하하, 그래.”
머리를 슥슥 매만져 주자 헤에, 하고 웃는다.
“어머니는? 안에 계셔?”
“아뇨. 아침에 갑자기 몸이 좋아지셨다면서 어디 좀 다녀온다고 잠깐 나가셨어요.”
“그래? 다행이네. 저주가 풀렸나 보구나.”
“저주… 아! 혹시 그럼 나으리가 놀 대족장을 죽이신 건가요?”
“응.”
가방에서 놀대족장의 귀를 꺼내 레미에게 내밀자 그것을 받은 레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흑… 그럼 드디어 아버지의 원수를…….”
퀘스트의 정해진 스크립트인지 아니면 레미의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가슴이 조금 울컥하다. 어머니가 쓰러져 있는 동안 가장의 역할을 했던 레미였다.
“케이 님, 오셨어요?”
그때 뒤쪽에서 여성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레미의 엄마가 내게 걸어오고 있었는데, 심하게 마른 건 그대로지만 그 몸에서는 밝은 생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엄마! 이거, 이거!”
레미가 놀 대족장의 귀를 가지고 다가가자 그것을 받아 든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저희 가족을 도와주신 것도 모자라 아이 아빠의 원수까지 갚아 주시다니……. 은인이시여.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네요.”
[히든 퀘스트-3 “레미의 소원”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카렌의 활 x1, 카렌의 활통 x1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내게 말한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한 자루의 활과 활통을 가지고 나왔다.
“제가 예전에 쓰던 무기입니다. 남편의 복수를 위해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제 필요가 없어졌네요. 부디 받아주세요.”
푸른색 나무로 된 활대에 붉은빛 가죽으로 마감된 롱보우다.
[카렌의 활][희귀급][거래 불가]
-푸른 바람 엘프 일족의 활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품이다.
-공격력 5~50
-내구도 80/80
-옵션: 공격 시 소음이 30% 줄어듭니다.
[카렌의 활통][희귀급][거래 불가]
-푸른 바람 엘프 일족의 활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품이다.
-옵션: 공간 확장 마법이 적용되어 최대 500발의 화살을 저장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마침 활 한 자루 사려고 했는데 돈 굳었다. 활은 거의 어떤 상황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만능 병기였기에 원거리 투사 수단이 필요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나 또한 놀의 활을 한 자루 가지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 활과 비교하면 쓰레기나 마찬가지의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사용하지 않던 차다.
-와, 포디나에 저런 거 주는 퀘스트 있었음? 딱 봐도 희귀급인데?
눈썰미 좋은 시청자 하나가 말했다. 아이템의 옵션은 보이지 않지만 눈치로 맞춘 모양이다.
-히든 퀘스트 같은데요? 케이 님 방송 안 하시는 동안 히든 퀘스트 하셨나 보네.
[폭풍의불고기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퀘스트 공유 좀 해 주세요!
-히든 퀘스트는 단발성이라 공유 안 되는 거 모름?
-아, 그런가요? ㅠㅠ저 활 진짜 탐나는데…….
-닥치고 백구 좀!
-황구 좀 봐 주세요!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채팅창이 또 들썩거린다.
“그런데 이제 가시나요?”
“예. 서쪽으로 좀 가 볼까 합니다.”
위튜브로 검색한 결과 파티나 페어의 경우 북쪽으로 가고, 솔플을 즐기는 사람은 남쪽으로 간다고 했다. 서쪽은 사람들이 좀 꺼려 하는데 조직적으로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인간형 몹이 많고 상대적으로 비싼 전리품을 많이 떨어뜨려 약탈자도 많다고 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도전 퀘스트도 그렇고 최근 얻은 업적도 인간형을 상대하기 편할 것 같아 서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걸 가져가세요.”
그녀가 품에서 하나의 반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아이템이 아닌지 별다른 옵션은 달려 있지 않은 단순한 은반지다.
“이게 뭔가요?”
“서쪽이면 룬다인 레인저들이 맡고 있을 텐데, 이걸 보이고 카렌의 소개로 왔다고 하면 좋은 일거리를 줄 거예요.”
“뭘 이런 걸 다…….”
“아뇨. 은인께 더 해 드릴 게 없어서 죄송할 뿐이죠.”
“으음…….”
없는 집 자꾸 뜯어먹는 것 같아 좀 미안해서 그렇지. 퀘스트일 뿐이지만 현실적으로 이입이 되니 받기가 미안하다. 당장 다 쓰러져 가는 판자집에 사는 사람이 뭘 이런 걸 다 가지고 있대. 그러나 그녀의 뒤이은 말에 이런 내 걱정은 기우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돌아오시면 꼭 찾아주세요. 이번에 포디나의 레인저 스트라이더를 맡았으니 적잖은 도움이 될 거예요.”
“예?”
레인저라는 건 가도를 정비하거나 치안을 담당하는 NPC들로 스트라이더는 그들을 모두 지휘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이 여리여리한 아줌마가 스트라이더라는 건 상당한 고위 NPC라는 뜻.
-카렌… 카렌… 설마… 카렌 린드… 스턴? 진짜! 카렌 린드스턴? 이거 카렌 스토리였어?
-저 아줌마가 누구임?
-거인추적자 카렌! 궁술 관련해서 세이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NPC예요!
-저 비실한 아줌마가요? 근데 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가 예전에 궁수 스킬 진화 걸린 히든 퀘스트 할 때 들었거든요.
시청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장 오늘내일하던 레미 엄마가 알고 보니 상당한 실력자란다. 아무튼 그렇게 카렌과 레미, 레나와 작별 인사를 한 후 나는 경매장에서 그동안 올려놨던 아이템들의 정산금을 받았다.
“350골드라… 많이 벌었네.”
지금까지는 크게 끌리는 게 없어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어느새 350골드가 되었다. 혜미 누나가 지원해 준 100골드를 빼고서도 250골드니 꽤나 많이 모았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번 약탈자들과의 싸움 이후 하나의 품목에 꽂혀 버렸다.
18001146 섬광탄 2개
시작 가격: 1골드
즉시 구매가: 2골드
올린 이: ghkdrnchlrh
“더럽게 비싸네.”
섬광탄은 잘만 쓰면 광역으로 실명을 유발시켜서 일발역전이 가능한 소모품이다. 그러나 역시나 가격이 걸림돌. 상점에서 파는 것이 아닌 유저 메이드여서 그런지 가격이 좀 나간다. 세이온은 생활 스킬에 대해서는 거의 개수에 대해 제한 없이 배울 수 있는데 섬광탄을 만드는 생활 스킬은 기계공학이었다. 물론 배운다고 금방 만들 수 있다면 개나 소나 생활 스킬로 상태창을 도배하겠지만, 그게 또 힘든 것이 생활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제작으로 숙련도를 쌓거나, 속성으로 배우려 한다고 해도 해당 생활 스킬의 장인 NPC에게 막대한 수업료를 줘야 가능했다. 결론은 지금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20개만 사자.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약탈자들 상대할 때 기분대로 던지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아낄 걸 하며 후회되지만 또 그렇게 던지지 않았으면 꽤나 위험했었던 상황도 많았던 터라 소모품에 돈을 아끼는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비의 단검은 예비품으로 들고 다니고… 아차, 이거 올려야지.”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하나의 은색 구슬이 눈에 들어온다.
[놀 대족장의 오브] [희귀] [제작 재료]
-놀 대족장의 혼이 담겨 있다.
처음 획득했을 때 장비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확인해 보니 제작 재료라 실망하고 신경을 껐었다.
“한 50골드만 해도 좋을 텐데…….”
제작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제작 재료니 아무리 희귀급이라도 장비보다는 싸겠지.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놀 대족장의 오브 가격을 검색한 순간 멈춰 버렸다.
9905311 놀대족장의 오브
시작 가격: 3,000골드
즉시 구매가: 5,000골드
올린 이: 비공개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