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룬다인의 초보 모험가
“연금술 4레벨 퀘스트할 때 가장 중요한 재료라고요?”
-네. 매물도 거의 없고, 거기에 포디나의 지하수로라는 특수성 때문에 비싼 거죠. 15레벨 제한은 둘째치고 사려면 포디나까지 와야 하는데, 그거 하나 사자고 그 외진 곳까지 가기도 그렇고요.
“아하…….”
세이온 내의 경매 시스템은 통합이 아닌 지역마다 크게 나눠져 있었다. 각 지역마다 나오는 아이템이 달라 사려면 직접 그곳으로 가야 하고, 차익을 통해 이익 실현을 하는 장사꾼도 많다. 참고로 이건 귓속말에도 적용되어 지역이 다르면 대화도 안 된다.
-결과물 자체는 그렇게 안 비싸요. 놀 대족장의 오브로 만들 수 있는 비약보다 효과 좋은 게 100골드 정도에 살 수 있거든요. 한마디로 포디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비싼 걸 주으셨네요. 아… 배아파.
“내떵황곰색 님 말씀은 당장 팔아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가격은 솔직히 5,000골드는 저거 올린 놈이 미친 거고, 보통은 2,500골드에서 3,000골드에 팔려요. 이전 거래 내역 검색해 보면 나올 거예요.
“음, 확실히 그러네요.”
내떵황곰색의 말대로 이전 거래 내역을 보니 거의 그 정도 가격에 팔렸다. 젠장! 5,000골드라고 해서 엄청 두근거렸는데 저거 올린 놈은 진짜 양심 없는 놈이네.
“저는 양심적인 합리적 가격 4,000골드에 올리겠습니다.”
-와ㅋㅋㅋㅋㅋㅋㅋㅋ양심 없다
-한몫 잡으시려고?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재료템 하나 사천 골드 실화? ㅋㅋ 그 합리적이라는 놈의 양심은 현미경으로 보이나요?
“시끄럽네요.”
시청자들의 채팅을 무시한 채 놀 대족장의 오브를 4,000골드에 올렸다. 뭐 안 팔리면 나중에 낮춰서 다시 올려야지. 그렇게 경매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포디나의 서문 근처에 가니 퀘스트를 나타내는 느낌표들이 즐비하다.
“룬다인 레인저의 거점으로 간다고? 잘됐군. 마침 거기 전달할 보급품이 있는데 자네가 좀 옮겨 주지 않겠나? 그렇게 해 준다면 내가 룬다인산 근방이 그려진 지도를 한 장 내주지.”
1. 보급품 수송
-보급품 1개를 룬다인 레인저 거점으로 수송하시오.
보상: 거점 행보관 친밀도 10, 경험치 500exp, 중형 물약 x1
“룬다인 레인저 중에 맥스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어머니가 얼마 전 거리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치셨다네. 맥스에게 어머니 보러 좀 오라고 말 좀 해 주게.”
2. 신입 레인저 맥스
-레인저 맥스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전달하세요.
보상: 경험치: 500exp, 날카로운 화살 x100
“내 친구가 팔렌에 밀을 팔러 갔다가 산적 놈들에게 당했다네. 놈들을 죽여 내 친구의 유품을 찾아다 주면 내 사례하겠네.”
3. 친구의 복수
-포디나의 상인 윈그레드가 자신의 친구 팔렌의 유품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보상: 윈그레드 친밀도 30, 경험치: 1,000exp, 고급 야전식량 세트 x10
룬다인 레인저 관련 퀘스트들을 전부 받은 후 서쪽 관문을 나선 난 퀘스트 템으로 받은 지도를 따라 가도를 걸었다.
-말이라도 한 마리 사서 가세요. 일반 얼룩이는 10골드밖에 안 함.
-에이, 일반 등급 어차피 뛰는 거랑 차이 안 남. 탈것 뽑기 가즈아!
“이분들 게임 할 줄 모르시네. 이렇게 경치 구경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멍! 멍! 멍!”
내 말에 내 좌, 우, 앞에서 걷는 세 마리 구씨도 기분 좋은지 동시에 화답한다. 두 발로 걷는 개라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동네 산책이라도 나온 기분이다. 셋을 거느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으니 주변 풍경도 볼 수 있어 참 좋다. 그러나 어디든 불편해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아, 탈것 좀 뽑으라니까. 느려. 노잼.
-그럼 나가. 원래 이 비제이 자기 맘대로야.
-네가 뭔데 나가라 마라 지랄이야.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하는데.
-이놈의 세이온은 퀘스트 추적 기능도 없고, 워프도 없고. 진짜 이걸 누가 해.
-아, 불편충 좀 커트해 주세요. 케이 님.
구씨 삼형제 때문인지 시청자가 계속 늘어 어느덧 40명이 되었다. 채팅창이 풍성해져서 좋긴 한데 간혹 거슬리는 글들이 몇몇 보인다. 뭐 저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다른 게임은 유저가 몬스터‘만’ 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배려하니까. 그러나 세이온에는 그런 것 없다. 마치 세이온은 몬스터만 잡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듯 곳곳에 소소하게 즐길 거리를 많이 만들어 놨다. 가령 지금 걸어가며 멀리 보이는 룬다인이라는 산의 풍경이라던가 혹은 미지의 장소를 지도 한 장으로 찾아가 보는 작은 모험 따위 말이다. 고난을 헤치고 나가는 걸 재미로 추구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때 후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케이짱바라기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 님! 케이 님! 채팅창 시끄러운데 저 매니저 권한 주세요! 제가 싹 쳐 드릴게요!
“케이짱바라기 님도 계셨네요. 뭐 님 정도면 제가 오히려 부탁드려야죠.”
케이짱바라기는 내가 처음 방송 시작했을 때부터 들어준 시청자다. 모두가 재미없는 ASMR 방송이라고 떠날 때도 계속 있어 줬다. 잠시 후 매니저 권한을 받은 케이짱바라기가 불편충들을 칼같이 쳐내기 시작했다.
“케이짱바라기 님 감사합니다.”
-아뇨. 뭘요. ㅎㅎㅎㅎㅎ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 양반 은근히 아프게 하네.
“뭐, 조만간 사람은 늘어날 겁니다. 저도 준비하고 있는 게 있으니까요.”
-준비요?
-오… 비제이 얼공이라도 하심?
-나도 케이 님 얼굴 궁금한데… 목소리는 일단 합격인데+_+
-면상을 보자! 보여 주면 만 원!
시청자들이 집요하게 얼굴 공개를 원하는데, 솔직히 지금은 좀 그렇다.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 씻지 않아서 얼굴 상태가 너무 엉망일 것 같다.
“으음, 얼굴 공개는 나중에 하고요. 위튜브에 제 영상 몇 개 올리려고요. 아직 편집자를 못 구했지만 영상 올리면 늘어나겠죠.”
게임을 시작하고 찍어 놓은 영상은 모두 혜미 누나에게 보냈다. 문제는 혜미 누나도 처음에는 자기가 해 준다더니 바쁘다고 자꾸 미루는 형편이고… 어쩔 수 없이 쓸 만한 영상 한 10개 정도만 건지면 전문 편집자한테 의뢰를 넣을 생각이다. 그런데 이놈에 시청자들이 또 초를 친다.
-에이, 위튜브에서 떡상하는 건 어지간한 대형 위튜버가 도와주기 전에는 힘든데…….
-그냥 얼공이나 합시다. 그럼 우리가 얼평해서 소문 많이 내줄게.
-목소리는 합격이니까. 얼굴만 ㅆㅎㅌㅊ만 아니면 됨.
아니, 얼굴 공개는 아직 부끄럽다니까.
위튜브 홍보는… 붓산아이 님이나 혜미 누나한테 은근슬쩍 빌붙으려고 했는데 그걸 여기서 말할 수는 없고. 에휴… 이럴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벗어나야겠네요.”
-가도 벗어나면 몬스터 마주치는데요?
“네. 팔렌 퀘스트하면서 얘들이랑 사냥 한번 해 보려고요.”
“멍! 멍! 멍!”
내 말을 이해하기라도 했는지 허리에 찬 마비의 단검을 뽑은 놀 세 마리가 기세 좋게 우는 구씨 삼형제다. 그렇게 조금 걷자니 드디어 필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지역에 도착했다.
[일반][룬다인 산적][15레벨]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산적이군요.”
우락부락한 체격에 다 낡아빠진 가죽 상의에, 만들어지고 단 한 번도 빨지 않았을 것 같은 바지, 도끼와 창을 든 두 마리의 산적이 어슬렁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행여 어그로 끌릴 다른 산적이 있는지 확인한 내가 구씨 삼형제에게 외쳤다.
“왼쪽에 창 든 놈에게 일제히 공격!”
“멍!”
내 명령에 백구, 황구, 흑구가 마비의 단검을 뽑아 들고 채 곧바로 창을 든 산적에게 달려들었고,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희생의 롱소드를 뽑아 도끼를 든 산적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적이다!”
곧바로 어그로가 잡혔는지 무기를 곧추세운 산적들이 내게 무기를 찔러왔고 난 창을 피한 후 몸을 한껏 뒤로 당기고는 검을 내리쳤다.
“쪼개져라!”
‘피를 머금은 칼날.’
파아아앙!
“크헉!”
온 힘을 다해 내려치기를 가하자 내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 낸 도끼 든 산적이 비틀하고는 뒤로 쓰러졌다. 창을 든 산적이 바닥에 내려선 내게 다시금 창을 찌르려 했지만 녀석의 상대는 따로 있다.
“크앙!”
“크르릉!”
내가 어그로를 잡은 사이 백구, 황구와 흑구는 그 틈을 파고들어 창을 든 산적에게 마비의 단검을 찔러 댔다. 특수능력 빼고는 보잘것없는 데미지지만 여섯 개가 찌르면 이야기가 다르다.
“컥! 이것들이!”
“크아앙!”
“캬릉캬릉!”
떨쳐내려고 하지만 3:1의 상황에 셋이 들고 있는 건 마비의 단검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소모품창에 있는 마비독을 마비의 단검에 발랐다는 것이다. 여섯 개의 마비의 단검이 춤을 추자 창을 든 산적은 마비가 중첩되어 가는지 종국에는 완전히 굳어 버렸다.
“꽤 쓸 만한데?”
1회당 10% 느리게 만들고 그것이 10중첩이 되니 이론상으로는 100%다. 물론 저항이라는 게 존재해서 완전히 굳혀 버리지는 못하지만 저렙 몬스터에게 저항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그때였다.
쑤우우웅!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도끼가 내 머리가 있던 곳을 베고 지나갔다. 쓰러졌던 산적이 일어나서 나를 공격한 것. 그러나 나 또한 경계를 풀고 있지 않았기에 도끼를 휘두르며 드러난 옆구리를 깊게 베어 낸 후 치명상에 경직된 놈의 머리를 두 동강 내 버렸다.
“쉽네.”
혼자였다면 지금처럼 곧바로 허점을 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백구, 황구, 흑구 쪽을 바라보니 아직도 창 든 산적을 열심히 찌르는 중이다.
“공격력은 확실히 어쩔 수 없나.”
뭐 당장에는 마비의 단검 데미지가 워낙 구려서 마비 외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앞으로 구씨 삼형제랑 손 맞추는 건 꾸준히 연구할 테니까 별 상관 없다.
츠컥!
“컥!”
거의 마네킹처럼 굳어 있는 산적의 목을 베어 버리고 루팅까지 마친 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마비의 단검을 든 채 칭찬해 달라는 듯 두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는 세 마리 놀에게 육포를 하나씩 던져 줬다.
“또 가 볼까?”
“왕! 왕! 왕!”
* * *
슈우우우욱! 팍!
“크악! 이 자식!”
화살에 어깨를 얻어맞은 산적 녀석이 내게 욕설을 하며 달려왔다.
“쳇…….”
머리를 노렸는데 어깨를 맞은 걸 보면 이 카렌의 활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민첩을 꽤 많이 올려야 할 것 같다. 섬세함이 민첩 스텟 영향을 받던가. 그건 그렇고 몬스터는 인간형이라도 AI가 그리 뛰어나지 않네. 지 친구가 맹견들한테 둘러싸여 난도질당하고 있는데 용감하게 ‘혼자’ 뛰어오는 거 보면…….
쫘아아악!
“아아악!”
공격을 비켜 내며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대각선으로 베어 버리자 산적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즉사 판정 최고!
“그만하고 얼른 와라.”
“왕왕!”
내 말에 열심히 칼질하던 구씨 삼형제는 날카로운 이빨로 산적의 목을 물어뜯어 죽여 버렸다.
“크르릉!”
“크릉!”
“으아악!”
전신이 마비된 채 놀 세 마리에게 팔과 목을 물어뜯긴다고 생각하니 시키는 입장에서도 좀 징그럽다.
-쟤들 뭐야 무서워…….
-저거 아까부터 먹고 있는 거 같은데요?
-쓰임새는 먹방인가. 아니면 사료값 아끼는 건가.
-귀여움이 반감되었어ㅜㅜ
“…….”
잠시 후 입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돌아온 셋에게 육포 하나씩 물린 난 죽어 버린 산적에게서 퀘스트 아이템인 ‘친구의 유품’을 찾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소형 안전지대를 펼쳤다.
“일단 필드 퀘스트는 끝냈는데…….”
완료는 포디나 서문에서 하는 거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똥개 훈련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
-……?
-나니?
“지도 보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레인저 거점을 도저히 못 찾겠네.”
염병… 레이더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나마 지도에 내 위치가 점으로 표시되긴 하는데 눈에 익지 않아서인지 지형지물을 못 보는 건지 자꾸 헷갈린다. 내 세이온 갬생 첫 번째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