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25화 (25/154)

25. 돈지컬!

“좋아. 전열이 잡혔어.”

디젤은 자신의 기지로 위기에 빠졌던 파티가 정상화되기 시작하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귓속말로 탱커에게 지시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빙다리 새끼를 클레이의 공격권 안에 밀어 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뒷말 안 나오게 그냥 뒈져 줬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살았다. 피해를 좀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죽은 것은 아니니 대충 얼버무리면 된다.

“복귀 완료!”

“좋았어! 딜 넣어! 빨리!”

빙다리 새끼에게 쏠린 클레이의 공격 덕분에 가슴이 꿰뚫렸던 원딜러 둘도 부상 치료를 가까스로 마치고 레이드에 복귀했다. 이제 극딜을 해서 이 레이드를 끝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봐요.”

조금 전 그가 기지를 발휘하며 제물로 쓴 빙다리 새끼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

“제대로 사과하세요. 그럼 봐줄게요.”

“뭐?”

“제대로 사과하시라고요.”

“하…….”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온다. 봐주다니 누가 누굴 봐준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밀려오는 분노를 한 번 참았다. 지금은 중요한 때다. 저 빙다리 새끼에게 세이온의 차가운 현실을 몸에 새겨 주기 위해서는 일단 레이드를 끝내야 한다.

“뭐, 알았다. 미안하다. 됐냐?”

“말이 짧네. 허참… 뭐가 미안한데요?”

“뭐?”

“뭐가 미안하냐고요.”

“이 새……. 후… 그냥 다 미안하다. 됐지? 이제 꺼져라.”

가뜩이나 레이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거니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녀석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그를 자꾸 도발했다.

“아무래도 사과의 자세가 안 된 거 같네요.”

놈의 말에 디젤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건 선을 넘었다.

“후, 사과? 그래. 좋다.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레이드 끝나는 순간 바로 멋지게 사과해 줄게.”

말로는 사과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 뜻이 아니라는 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법하다.

본래 의도대로라면 겁을 먹고 도망쳐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 그래. 레이드 끝나는 순간이라… 참 기대되네.”

빙다리 새끼의 말이 짧아졌다. 그리고 놈이 성큼성큼 레이드 지역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부터 그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야, 너 나 좀 보자.”

클레이의 3페이즈 패턴 공격 사이를 사뿐사뿐 걸어 들어온 놈이 한참 정신 집중 중인 힐러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이 새끼 뭐하는 짓이야!”

분노한 디젤이 소리쳤지만 놈은 못 들었는지 허리춤에 검까지 뽑아 들었다. 저건 명백한 공격 의사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신들은 피하는 것에 급급한 진흙 장판과 진흙의 창, 진흙의 파도를 손쉽게 피하며 힐러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스! 테일러! 놈을 공격해!”

디젤이 소리치자 한참 클레이에게 딜을 넣고 있던 원딜러들이 녀석을 향해 활대를 돌렸다.

파아앙!

보라색 이펙트를 뿜으며 날아가는 화살!

디젤은 원딜러들의 공격이 놈을 맞추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원딜러들의 공격은 거리가 가까울수록 피하기 어려운데, 지금은 거의 초근접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웃차!”

마치 화살이 날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허리를 뒤튼다. 딱 피할 만치의 가벼운 회피. 설상가상으로 그가 피해 낸 화살 하나가 힐러의 팔에 꽂혔다.

“악!”

“굿샷.”

“뭐하는 거야! 자식들아!”

“젠장! 죽인다.”

이를 갈며 두 원딜러가 다시금 화살을 연달아 쏘았다. 낮게 깔리며 날아오는 화살이 날카롭다. 그러나 그 화살마저도 놈은 가볍게 피해 버렸다.

“말도 안 돼!”

투사형 마법이라면 모를까 화살은 세이온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공격 수단 중 총알과 더불어 가장 빠른 공격 속도를 자랑했다. 그런데 그걸 피한다니 말도 안 된다.

“탱커 제외! 모두 놈을 공격해.”

* * *

-와, 이걸 반응하네.

-토할 거 같다. 좀 천천히…….

-대체 어떻게 피하는 거예요?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어떻게 피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안 맞을 방향으로 몸을 피했다라고밖에 설명 못 하겠다.

“그냥 피하는 거죠.”

뭐 대단한 스킬이 있어서 피하겠는가. 눈에 보이고 피할 만해 보여서 몸을 움직여 피한 것뿐인데 그게 대단한 건가?

-아니! 지금 클레이 광역기까지 피하는 중이잖아요.

-19레벨 맞음?

-채팅도 보고 계시네요?

-헉! 그러게…….

“그냥 채팅 보는 게 익숙해져서요.”

전에는 좀 불편했는데 화면이 익숙해져서인지 그냥 한눈에 들어온다. 나도 몰랐는데 멀티테스킹이 좀 되네.

-대답도 하네. 와 씨;;;

[세스 님 100,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케이 님, 재능 차이예요.

“앗! 세스 님 십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깜짝 놀라 맞을 뻔했다. 위험위험!

“근데 재능이요?”

[세스 님 100,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케이 님 동기화율 얼마나 되세요? 아마 최소 40은 넘으실 것 같은데…….

“아니, 또 십만 원을! 그냥 말씀하셔도 돼요. 동기화율이라… 음…….”

자꾸 십만 원씩 쏴 주니 부담스럽다. 근데 동기화율이라고 하니 예전 혜미 누나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누나 말로는 60%라고 했었지.

“60%요.”

-네?

-어?

-무슨?

-60%?

채팅창이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내가 뭐 잘못 말한 건가?

-지금 세계 최정상급 랭커인 ‘킬러’가 보인 최대 동기화율이 55%인데요?

-케이 님이 60%?

-그럼 케이님이 신기록 쓰신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은 적당히 ㅋㄷㅋㄷㅋㄷㅋㄷ

-구라쟁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웃었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농담을 했다고… 구라쟁이라니! 와앗! 장판 밟을 뻔했네.

억울한 마음에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 갑자기 공격이 거세졌다. 이젠 클레이보다 나를 더 우선순위로 삼았는지 딜러들 또한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다. 뭐 어쩌라고? 새끼들아. 늬들이 헛짓거리해서 백구, 황구, 흑구가 역소환되는 바람에 난 내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고!

제대로 사과만 하면 넘어가 줄 생각이었는데 대가리 수만 맏고 도리어 협박을 해 대는 주제에!

“죽어!”

“죽여 봐.”

“개새끼가!”

시퍼런 이펙트를 뿜어내며 롱소드가 내 머리를 베어 오고 짙은 청광의 단검 두 자루가 내 복부를 노리고 들어왔다. 피하는 것까지 계산된 것 같은 노련한 찌르기! 음… 이럴 때는…….

“도망.”

녀석들의 공격에 맞대응해 줄 생각이 없었기에 난 그대로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순간 벙 찐 표정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이를 갈며 달려온다. 그런데 너희들 너무 나한테만 신경 쓴 거 아니냐?

“쿠오옹!”

마치 이 판의 주인공을 잊은 거 아니냐는 듯 크게 울부짖은 클레이의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어…….”

“피해!”

세 개의 패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콰가가각! 쾅쾅! 콰가각!

“아악!”

“으아악!”

땅이 찢어지고 바위로 폭발한다. 나야 뭐 미리 눈치채고 멀찌감치 도망치는 중이었지만 나에게 정신 팔려 있던 놈들은 그대로 그것에 휩쓸려 버렸다. 결론은…….

“너 새끼 두고 보자!”

“어, 그래. 또 보자.”

악다구니를 치며 쓰러지는 것을 가뿐히 무시해 주고는 클레이의 반응 범위 밖으로 멀찌감치 벗어났다.

콰가가각! 쾅쾅! 쾅!

최후까지 버티던 탱커까지 클레이의 내려찍기에 묵사발이 나며 레이드는 싱겁게 끝났다.

-지네들이 한 짓은 생각도 안 하네. 케이 님은 그렇다 치고 감히 우리 황구 님을 죽게 만들어?

-죽은 건 아니죠. 케이 님이 역소환이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안 됨. 우리 황구 님은 죽으면 안 됨.

-우리 백구 님도 그래요.

-흑구 님을 무시하지 마라!

“저기, 근데 왜 저는 그렇다 치고인가요? 어째 나보다 백구, 황구, 흑구가 더 인기 있는 것 같네.”

-ㅋㅋㅋ꼴 받았네.

-케이 님 꼴 받으면 은근 귀엽…….

[케이짱바라기 님 1,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근데 케이 님 괜찮겠음? 두고 보자는데?

“케이짱바라기 님 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뭐,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의도한 바도 있었어요.”

-의도한 바요?

-설마, 이 모든 게 케이 님의 설계?

-…일 리가 없잖아요.

-역시 그렇죠?

이 사람들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물론 설계는 아니다. 내가 미쳤다고 선공 당하는 설계를 했겠는가. 그냥 시비 걸리면 피하지 않고 싸우기로 방침을 정했을 뿐이지.

“그냥 싸울 만하면 싸우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세이온이 서로 예의 지키면서 싸우는 게임은 아니잖아요?”

-하긴 그렇지.

-무법약탈게임 세이온…….

-약해 보이면 바로 물어뜯기죠.

“예. 아무튼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 다시 산의 주인 퀘스트 솔로 레이드 시작하겠습니다. 마침 이야기 들어보니 클레이 솔로 레이드가 업적 하나 있더라고요?”

-설마 클레이 솔로 레이드 업적 노리시나요? 위험하실 텐데?

-클레이 엄청 쎄요. 방금 7인 레이드 망하는 거 못 보심?

-실패하실 거 같은데 저 근처에 있는데 도와드릴까요?

“아뇨. 절대 오지 말아 주세요.”

사람들이 우려를 보냈지만 난 가볍게 웃어 보이며 희생의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이건 단순한 자신감 따위가 아니었다. 할 만하니까 하는 것뿐이다.

[샷다맨 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미션 겁니다. 클레이 클리어 시 100,000원 겁니다.

초창기 시청자는 아니지만 꽤 오래 내 방송을 봐주신 샷다맨 님이다.

“샷다맨 님 오천 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미션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세스 님 100,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도 미션 걸게요. 클레이 솔로 레이드 노히트 성공 후 귀여운 포즈로 ‘세스 님 사랑해요’ 외치면 1,000,000원!

-와; 100만 원?

-100만 원 실화?

-머기업들도 받기 어려운 100만 원 미션!

“헉…….”

나도 모르게 헛바람이 나왔다. 무려 100만 원짜리 미션이 떴다.

“도전! 그럼 이제부터 빡겜해야 하니 채팅창은 잠시 접어 두겠습니다.”

-[프리미엄 에스프레소★★]

-[마법 스크롤- 헤이스트★★]

-[마법 물약- 스트라이킹★★]

예전에 빨았던 3종 버프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지만 50골드짜리 버프를 단숨에 찢었다. 무려 노히트에 100만 원이다. 절대 맞을 수 없다. 아니, 맞아도 안 맞은 척할 거다!

-와, 케이 님… 기합 빡 들어갔네.

-케이 님도 어쩔 수 없는 자낳괴…….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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