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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29화 (29/154)

29. 공권력의 힘

경비가 삼엄한 포디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뒤따랐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경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경비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데 위협적인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어쭈? 한가하지? 얼른 안 걸어?”

“음…….”

단검이 내 허리춤을 찌르자 생명력이 줄어들었다. 보이는 약탈자는 넷… 그러나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최소 다섯이 주위를 포위한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긴 한데… 이상하게 할 만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왜 이렇게 만만하게 느껴지지.’

자만이나 얕보는 것이 아니다. 이게 새로 얻은 스킬인 오러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더 강한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이것들 해 볼 만하다. 문제는 그런 내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앞에 선 녀석이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는 것이다.

“이 새끼가 웃어?”

들고 있는 단검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온다. 한 방 먹이겠다는 것. 그때였다.

“전투조장 그만하십시오!”

포위하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나서서 단검을 들고 설치는 녀석을 제지하고 나섰다.

“뭐냐. 리스롱.”

“쓸데없이 자극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히 내가 하는 일을 막겠다고?”

“이봐요. 이건 원래 협상팀인 내 일이었습니다!”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어! 우리 길드가 이 새끼한테 개쪽을 당했는데 비켜! 넌 나중에 보자.”

지들끼리 뭔가 투덕거린다. 쯧… 뭔 헛짓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끼어들 필요 있나.

슬쩍 몸을 빼는데 조장이라는 녀석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딜 도망쳐!”

츠츳…….

마나가 잔뜩 응축된 단검이 아랫배를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단순한 위협이 아닌 제대로 한 방 먹이겠다는 건데…….

“도망치긴 뭘 도망쳐?”

[진흙 방패]

푹-

내 아랫배를 쑤시려던 단검이 진득하게 일어난 진흙에 파묻혔다. 당연하게도 내게는 단 1의 데미지도 없다. 치명적인 상처에 대해 자동으로 방어해 주는 진흙 방패 덕분이다.

“좋네.”

자동 방어니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스킬이터 만세! 죽으면 스킬 죄다 날아간다는 페널티가 있지만 그 전까지는 남들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로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신화급 스킬이다. 그건 그렇고 이 새끼들이 진짜…….

“이봐!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조장과 다투던 녀석이 끼어들었다.

“넌 빠져!”

“당신은 좀 닥치고 있어!”

또다시 둘이 투닥거리는데 이것들이 진짜…….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나.

“그런 건 칼질하기 전에 말했어야지. 친위대 소환!”

컹! 크릉! 크앙!

역소환 쿨타임이 다 끝난 백구, 황구, 흑구가 내 주위에서 일어났다.

“공격!”

내 명령에 셋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내 주위를 포위한 셋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앙!”

“헉! 이… 이것들 뭐야!”

당황한 셋이 들고 있던 단검을 어설프게 휘두르며 물러난다.

그러나 백구, 황구, 흑구를 단순한 소환수라고 보면 곤란하다. 기본 능력치는 내 1/5밖에 안 되지만 룬다인 산에서 나온 장비들을 죄다 이 녀석들에게 투자했다. +7 마비의 단검이나 +6 창 따위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그만큼 많은 제물들을 태워 가며 뽑은 장비들을 착용한 게 내 소환수들이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 입고 있는 방어구는 세스 님이 후원해 준 장비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입고 있는 룬다인 레인저 세트 전부를 다 합친 것만큼 방어력이 좋다.

아, 갑자기 눈물 나네. 세스 님 후원만 아니었으면 한 벌 정도는 빼돌렸을 텐데… 내 기분을 더럽힌 죄로 너희는 사형이다.

쫘아악!

불시의 기습은 언제나 옳다. 희생의 롱소드를 뽑음과 동시에 베어 올린 궤적을 따라 단검을 든 팔이 하늘로 솟구쳤다.

“으악!”

뒤늦은 비명을 토하지만 늦었다.

“죽어!”

“큭!”

반대편 손에 끼워진 작은 방패에서 푸른 기운이 솟구친다. 방어 스킬이냐? 근데 그걸로 막아지겠어?

[피를 머금은 칼날]

후우우웅! 쩌억!

어설픈 방어 스킬로 막으려 했지만 내 공격은 그 방어 스킬째로 녀석을 두 동강 내 버렸다.

구씨 삼형제에게 밀리던 녀석들이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린다. 내 공격이 너무 세서 놀랐냐? 뭐 어쩌라고? 칼 들었으면 칼 맞을 마음가짐도 있어야지.

롱소드를 떨쳐 검 날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는데 눈앞에 반가운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도전 퀘스트 12- 약탈자- 31/50

“오, 너희 약탈자들이었구나?”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외곽을 포위하고 있던 녀석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도망치려고?

룬다인 산에서 몇 명 썰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숫자가 아닌지라 계속 불만이었는데 카운터가 올랐다.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약탈자다! 약탈자!”

“뭐? 약탈자?”

내 외침에 조용하던 시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 * *

놈이 쫓아온다. 그리고 이게 죄다 그 전투 조장 개새끼 때문이다.

‘협박은 왜 해서!’

본래 이번 일은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하려던 건 오히려 꽤 점잖은 것이었으니까. 길드 수뇌부는 청부가 실패한 후 청부자와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다. 잘못된 정보 전달로 죽은 길드원들이 3일간 접속을 하지 못하게 된 건 길드에 큰 손해였으니까.

신용이라는 게 깎여 나갔지만 어차피 자신들을 이용하는 고객은 많았다.

그리고 운 좋게 놈이 포디나에 깔아 둔 정보망에 걸렸을 때 수뇌부에서 내린 명령은 청부자에 대한 정보를 역으로 팔아 손해를 벌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레벨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명이 수십 명을 죽였으니 돈이 썩어나는 핵고래 중에 핵고래일 테고, 말만 잘하면 정보료로 이삼천 골드는 가뿐히 낼 거라고 예상했다. 한마디로 그냥 청부한 놈들에 대한 정보만 팔면 끝인 일이다.

문제는 본래 협상팀인 자신과 부하 하나만 나서는 거였는데, 저 미친 전투조장 놈이 따라붙은 거다. 그러더니 지가 적당히 구슬려 보겠다고 나서더니 결국 이 꼴이 났다. 이유야 뻔했다. 아무리 놈이 잘나 봐야 자신들은 40레벨이 넘는 길드의 정예였다. 그런 이들이 무려 10명이 투입되었으니 놈이 반항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리라.

전투조장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저번 일로 윗선으로부터 엄청나게 개까였으니까. 아무리 저렙 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평소 길드원 전투력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떼몰살 당하냐고 문책을 당했다. 그래서 위신 한번 세워 보겠다고 나선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조장 새끼가 선을 넘어 놈이 빡돌았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레벨이 40이니 제깟 놈이 열 받으면 어쩔 거냐는 계산이었는데, 그 작은 오판 하나로 인하여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돈을 미친 듯이 지르는 놈은 레벨의 한계도 우습게 뛰어넘는다는데 저놈이 바로 그런 놈이었다.

“크아아앙!”

“크르릉!”

눈에 줄기줄기 흉광을 뿌리며 완전무장한 놀 세 마리가 날뛰는데 입고 있는 장비들을 다 합치면 족히 수천 골드는 될 것 같다. 그뿐인가.

“쫓아라!”

“잡아 죽여!”

하나둘 슬금슬금 나타나 자신들을 뒤쫓는 유저들의 숫자가 눈덩이 굴리듯 늘어나는 중이다. 필드라면 모를까 약탈자 주제에 저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 경비병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니까. 문제는 놈이 벌써 동료 다섯을 베어 넘겼다는 것이다.

“대체 레벨이 몇이야?”

보통 상대가 사용하는 스킬의 숫자를 가지고 레벨을 파악하는데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야! 어디 숨었냐~!”

뒤쪽에서 들려오는 여유 가득한 목소리에 리스롱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는 숨어 있던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리스롱! 지금 전투조가 계속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뜨는데!>

귓속말을 건 것은 자신에게 이번 일을 지시한 부길드장이다.

덕분에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모조리 망쳐 버린 전투조장이 떠올라 부하가 치민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그는 목표와 자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일러바쳤다. MSG를 좀 치기는 했지만 사실만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부길드장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니! 다짜고짜 칼질은 왜 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미쳐서 날뛰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렇게 강하다니. 잘하면 큰손이랑 거래 틀 수 있는 기회였는데…….>

고작 일주일 전에 레벨 15제한 초보 던전에서 놀던 유저가 레벨 40짜리들을 베고 다닌다? 엄청난 현질러라는 뜻이다.

<그보다 어떻게 할지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지금 저 죽이겠다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빈민가 아지트로 데려와. 정예들 전부 소집해 둘 테니까. 일단 잡아두고 대화로 풀어 봐야지.>

<알겠습니다.>

<젠장, 이 새끼 캡슐 나오기만 하면 광에 처넣어야지.>

자신을 무시하고 날뛴 전투조장은 오늘부터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동안 채광만 시킨다는 광부로 당첨되었다.

* * *

“레벨업도 잘되네.”

고작 다섯을 죽였는데 레벨이 쭉쭉 차오른다. 도전 퀘스트 카운터도 차근차근 올라가니 아주 그냥 보약들이다. 난 죽인 이들을 차근차근 루팅하며 다녔다. 약탈자답게 장비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지만 지금 죽인 놈에게는 대박이 떨어졌다.

“이야. 50골드!”

방금 루팅한 놈한테서 골드가 쏟아졌다. 세이온은 돈도 아이템으로 판정되기에 재수 없으면 들고 있던 돈이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놈이 그 재수 없는 놈이다. 고맙다. 일용할 양식으로 써 줄게.

“이제 한 녀석 남은 것 같은데…….”

다 잡았는데 한 놈이 안 보인다.

어디로 숨었는지 도통 찾을 수도 없다.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봐! 너 멈춰라!”

고개를 돌려보니 소란을 듣고 몰려든 경비병들이 날 노려보고 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당장 찔러 버리겠다는 듯 한 손에는 묵직한 창도 들고서 말이다. 난 곧장 두 손을 든 채 자리에 멈췄다.

위튜브나 공략집에서 누차 강조된 말이 있다. 경비병한테는 반항하면 안 된다. 경비가 센 것도 센 거지만 경비병이 진짜 무서운 건 그들이 공권력이기 때문이다.

경비병을 공격하는 순간 그 경비병이 있는 도시에서는 절대 마음 놓고 다닐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잘못 공격해 경비병을 죽이기라도 하게 되면 명예 점수가 무지막지하게 깎인다고 했다.

“무슨 일이지?”

“약탈자들이 공격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약탈자?”

“예.”

내 말에 내가 뒤진 시체 하나를 돌려본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약탈자군. 그러나 시내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은 큰 범죄다. 연행할 테니 순순히 따르도록!”

경비 둘이 내게 다가온다. 내가 슬금하고 뒤로 물러나니 눈매가 사나워지는 게 뛰면 곧바로 공격할 것 같다. 아니, 난 정당방위였는데 왜 날 잡아. 그런데 순순히 연행 당하자니 그다지 좋은 꼴 못 볼 것 같고, 도망치자니 뒷감당이 무섭다. 아… 혹시?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한번 해 볼 만하다.

“저는 레인저 스트라이더인 카렌 린드스턴 님의 명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가 카렌의 이름을 팔자 다가오던 경비병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경비병들의 우두머리가 내게 물었다.

“증명할 수 있나?”

“여기 있습니다.”

내가 카렌에게서 받은 활과 활통을 들어 보이니 그것을 꼼꼼히 살피던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미안하네. 자네 공무 중이었구만.”

조금 전까지는 허튼짓하면 창 꽂이로 만들 것 같더니 이젠 웃음까지 띠며 사과를 하냐.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인맥이 최고구나. 카렌 린드스턴과의 관계가 확인되자마자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네.

“음, 혹시 우리가 뭐 도와줄 일 있나?”

도와줄 일이라… 많죠.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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