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30화 (30/154)

30. 주워먹기는 언제나 달콤하다

“와우웅! 컹컹!”

빌어먹을 놀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이것들, 확실히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

‘그래 와라.’

협상조는 언제나 잘 튀어야 한다. 협상이 어긋나면 자신들의 고객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니까. 첫째는 다 죽여 버리겠다고 날뛰거나, 둘째는 네놈 먼저 죽이겠다고 칼 뽑아들거나. 그래서 자신은 네 번째 스킬로 ‘가속보’ 선택했다.

탁탁탁!

앞으로 3분… 빈민가에 있는 아지트까지만 유인하면 자신의 역할은 끝이다. 길드하우스가 아닌 분점이기는 하지만 아지트에는 자신보다도 훨씬 강한 정예들이 있다. 빈민가를 달리며 부길드장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3분 정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좋아. 이쪽도 준비 끝났다.>

<알겠습니다.>

“컹컹컹!”

빌어먹을 놀 새끼가 자신을 자꾸 재촉한다.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으로 이루어진 골목을 돌아 달리니 멀리 아지트가 보이고 그 앞에 부길드장과 도열한 길드 정예들이 거만하게 서 있다. 숫자를 세 보니 전부가 나온 모양이다.

“좋아.”

이제 이 지겨운 술래잡기에서 자신의 역할은 끝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신이 가까워질수록 길드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10여 미터 정도 남았을 때 부길드장이 외쳤다.

“튀어!”

“어?”

뜬금없이 튀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말은 자신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경비병이다!”

거만하게 서 있던 길드 정예들이 불구덩이에 던져진 메뚜기처럼 몸을 돌려 사방으로 도망친다. 달리던 자신보다 더 빨리 도망가는 정예들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따름. 그러나…….

“아니, 무슨 경비병이… 히이익!”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보인 건 빈민가의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달려오는 경비병 무리였다. 어째서 빈민가로는 오지 않는 경비병들이 이곳에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큰일은 그들이 뒤쪽에서만 달려오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모든 골목에서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도망쳐!”

“저항하는 즉시 즉결 처형이다!”

“예!”

“이런 제기랄!”

오른쪽 골목에서 불시에 쏟아져 나온 경비병들이 도망치려는 이들을 몸에 가차 없이 창을 박아 넣었다. 무자비한 그 공격에 길드 정예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평소 친분을 쌓았던 암흑가 NPC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몸을 숨기려는 이들을 몰아내며 경비병들의 창칼이 자신들에게도 향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이럴 수가… 컥!”

그때였다.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 있는 그의 가슴이 뜨끔하다. 내려다보니 낯익은 칼날 끝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검날이 슬쩍 비틀어지더니 쑥하고 빠져나갔다.

“이… 이게 아닌… 데…….”

* * *

“하, 일이 이렇게 풀리네.”

시체가 되어 버린 약탈자의 등에서 칼을 뽑아 버린 난 도망치는 약탈자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사실 지금 이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바란 건 단지 놈이 예전의 그 빌어먹을 고렙 약탈자처럼 빈민가로 향하기에 혹시나 하는 반격에 대비한 경비병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은 내가 경비병들의 습성에 대해 잘 몰라 생긴 헤프닝 같은 것이다.

“무슨 일이지?”

“약탈자를 추적 중이다.”

“뭐야?”

나와 함께 움직이던 경비병들에게 이유를 설명 받은 순찰 경비병들이 추격에 가세하자 어느새 곱절에 곱절로 늘어나더니 잠시 후 내 뒤로 수십 명의 경비병이 뒤따르고 있었다. 경비병이 무적은 아니라지만 그 숫자가 오십을 넘으니 거의 작은 군대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 틈에 경비병들 사이에 비상이 걸리고 도시 전체가 들썩거린다. 너무 일을 크게 벌여 나중에 카렌한테 뭐라고 변명할지 고민할 지경이었는데, 웃기게도 잘해야 두셋 정도와 더 싸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십의 약탈자들이 앞을 막아섰다는 것이다.

뭐, 지금 보이는 것처럼 미친 듯이 도망치는 걸 보면 상대 쪽 지휘자가 무척이나 유능하다는 뜻이겠지만 미안하게도 이 정도 숫자의 경비병들이 모인 이상 저들이 도망칠 곳은 없다.

“쫓아!”

땡땡땡땡!

포디나는 작은 도시가 아니다. 도리어 초보자들이 머무는 도시라는 이유로 치안이 무척이나 좋은 편에 속했다.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에 성문이 닫히고 도시 전역의 경비병들이 몰려든다. 도망치던 약탈자들이 아비규환에 빠졌을 때 그 속에서 내가 취한 행동은 간단했다.

“주워 먹기지.”

푸칵!

“컥!”

[스킬이터의 티어가 상승하였습니다.]

[보유할 수 있는 보스 스킬이 +1 되었습니다.]

“오예!”

츠컥! 쫘아악!

“으허억!”

“오! 순간이동 주문서!”

백 골드짜리라는 순간이동 주문서가 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레벨 좀 되는 약탈자들의 소지품 중 무기와 골드를 제외하면 가장 짭짤한 게 바로 이런 종류다.

‘피를 머금은 칼날!’

쫘아악! 쫘악!

[뱀파이어릭 오라의 티어가 상승하였습니다.]

-흡수당한 상대에게 무기력의 저주 2레벨 부여

몬스터 잡을 때는 수백 마리를 잡아도 개미 눈곱만치 오르더니, 약탈자를 잡자 숙련도가 쭉쭉 차오른다. 아무리 저티어 구간에서는 원체 잘 오른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나타나 준 게 고마울 지경이다.

“이 새끼! 죽어!”

카캉!

묵직한 창이 내 뒤를 파고들었다.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찌르기지만 자동 발동인 진흙 방패가 그것을 받아 냈다. 역공을 가하려 했으나 나를 밀어 차며 그 반동으로 몸을 멀찌감치 뺀다. 능숙한데? 이것도 받아 봐라.

“황구!”

“크아앙!”

“으악!”

“크릉!”

내 옆을 호위하는 황구의 창이 녀석의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갔다. 동시에 흑구가 방패로 머리를 두들기고 백구의 단검이 배를 후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약탈자 하나가 요리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잘했어!”

“컹컹!”

셋의 공격은 완전한 하나처럼 이루어졌다. 룬다인 산 산적들을 통해 셋을 훈련시키며 내가 주입한 것은 일종의 합격술이었다. 셋이 하나가 되어 공격 혹은 방어를 하고, 절체절명의 순간 날 대신하도록 훈련시켰다. 물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퍼어엉!

“깨깽!”

화염구가 셋을 뒤덮었다. 방어구가 좋은 탓에 죽지는 않지만 대신 셋이 가진 물약이 소모된다. 염병… 한 대 맞았다고 개당 5실버짜리 소형 포션을 물처럼 빨아 대는 셋이다. 순식간에 2~3골드가 날아갔다. 대체 어떤 새끼냐. 나한테 골드 출혈을 강요한 놈이……!

슈욱! 팡!

무기를 교체하여 화살을 날리자 방금 화염구를 날린 마법사가 아, 뜨거 하는 표정으로 도망친다. 활 계열 스킬이 없으니 어림짐작은 맞지도 않네. 뭐, 그래도 괜찮다.

“물어!”

“크아앙! 크릉! 컹컹!”

화염구를 뒤집어쓴 덕분인지 열 받은 구씨 삼형제가 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저건 뭐 안 봐도 어떻게 될지 비디오고…….

“이런 젠장! 대체 어쩌다가! 으헉!”

경비병의 창을 능숙한 몸놀림으로 피하며 뒷걸음질 치는 이가 보인다.

근데 저 아저씨는 왜 자꾸 나를 힐끔거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 약탈자 무리의 우두머리 같은데 일이 생각대로 안 된 것 때문인지 당황하는 게 역력한데 나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다.

“근데 굳이 알 필요 없지. 쩝.”

굳이 남의 일에 신경 쓰면 병 된다.

약탈자 50/50

오, 구씨 삼형제가 마법사의 숨통을 끊었나 보다. 도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음 퀘스트에 도전하겠냐는 문구가 뜬다. 보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수락이다.

-결투 10연승 0/10

다음 퀘스트가 결투다. 약탈자 100명 잡으라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기는 한데 결투는 또 어떻게 하는 거지.

“도망쳐!”

“잡아라!”

슬슬 시가지 전투가 지루한 추격전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하나라도 더 주워 먹으려면 발바닥 땀나게 뛰어야지.

“얘들아 가자!”

“컹컹컹!”

* * *

“푸하…….”

캡슐에서 나오니 예의 그 매스꺼운 감각이 몰려온다. 적당히 즐기면 이런 일이 없다는데 한번 접속하면 거의 8~9시간은 하니 어쩔 수 없는 반작용이다. 거실로 나가자 상도 형과 혜미 누나가 소파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짓한다.

“와서 계란 좀 먹어.”

“조금 있다가… 지금 속이 좀 안 좋아.”

손을 절레절레 저은 후 정수기에서 냉수 한 컵을 원샷하고 나니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소파로 다가가 털썩 눕자 누나가 말했다.

“열심히 하네. 몇렙?”

“21이요.”

거의 막바지가 되어 잡은 약탈자 덕분에 21레벨이 되었다. 나름 혼전 속에 집중해서 그런지 한계가 느껴져서 바로 숙소로 이동해 로그아웃했다.

“와, 그냥 쭉쭉 올리는구나. 한 달도 안 됐는데 21레벨이야?”

“그냥 어쩌다 보니 잘 오르네요.”

“그래? 뭐 하긴 너 몬스터 때려잡는 거 보면 이게 살아 있는 오토 매크로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작업장 경력이 좋긴 좋아.”

“그거 욕인데요?”

“뭐 어때. 당장 도움만 되면 됐지.”

얄밉게 웃으며 계란을 베어 먹는데 여자만 아니었으면 한 대 때려 줬을 거다. 그건 그렇고 슬슬 나도 배가 고프네.

“먹어.”

형이 껍질 깐 계란 하나를 쑥 내민다.

“나도 손 있어.”

“먹어. 임마.”

“감사.”

받아서 한입 베어 물자 계란 노른자의 퍽퍽함이 느껴진다. 음… 난 노른자 싫어한다.

그래도 까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야지.

“냠냠, 근데 웬 계란?”

“많이 먹으라고 다섯 판 사다 놨다. 캡슐 오래 하는 인간들 햇빛을 너무 안 봐서 비타민 D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더라.”

“영양제로 때우지 뭐.”

“먹어 버릇 해. 하도 안 먹고 약으로 버티니까 죄다 변비 걸리지.”

“난 잘 싸는데?”

“너 말고 이쪽.”

“아아…….”

“이것들이… 먹을 거 앞에 두고.”

혜미 누나가 으르렁거린다. 변비셨어?

나야 항상 쾌변이니까 그 고통을 모르지만 듣기로는 매일 변기가 핏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 말 꺼냈다가는 계란으로 맞을 것 같네. 음음… 화제를 돌려야지.

“아참, 형 그거 어떻게 됐어?”

“뭐?”

“편집.”

“아아, 그거? 하기로 했어. 근데 처음에 컨셉은 대충 상의해도 나중에 결과물 컨펌은 안 받는다네.”

“컨펌을 안 받아?”

컨펌을 안 받겠다는 건 컨셉이라는 최소한의 테두리 안에서 내 영상을 가지고 제 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뭐야, 똘아이야?

“어, 하나 편집해서 보내줄 테니까 맘에 안 들면 자르라더라.”

“자신감이야?”

“몰라. 내가 얘기했잖아. 광수 그 새끼가 좀 괴짜라고…….”

“쩝…….”

저번에 들었을 때는 그냥 좀 돌아이 기가 있다는 뜻으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진짜 돌아이인 것 같다. 뭐 아무튼 일단 실력을 보면 알겠지.

“그럼 내가 저번에 준 영상으로 편집 중이겠네?”

예전에 황금 거대쥐를 잡는 레이드 영상을 그 광수라는 사람에게 보여 주라고 형의 클라우드에 보내 놨었다.

“어, 어젯밤부터 작업 시작한다고 했으니… 어라… 와 있네?”

스마트폰을 톡톡 두들기던 형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럼 줘 봐.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보게.”

“그렇게 해.”

형이 스마트폰을 내게 넘겼다. 깨톡 대화창에 영상을 클릭하자 잠시 후 내 황금 거대쥐 레이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누나도 궁금한지 내 뒤로 와서 같이 시청했다. 그리고 영상을 켠 지 3분 정도 지났을 무렵 혜미 누나가 말했다.

“뭐야? 이 편집 괴물은?”

그러게요. 뭐 이런 편집이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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