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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32화 (32/154)

32. 복수전은 언제나 격하게 환영합니다

츠컥!

“빌어먹을!”

퍼억!

“씨바알!”

욕이 찰지다. 무음 모드가 있기는 하지만 세이온에서는 말 대화 또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훈련 겸해서 그냥 켜 뒀다. 겐세이훈이라는 이 녀석은 초장에 내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다가 손목이 날아갔다. 그러게 왜 도발 따위를 하니…….

허리 한번 베어 주고 엉덩이를 후려치자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땅에 꽂는다.

쿠쿠쿵!

녀석의 주변 3m 땅이 움푹 꺼지는 걸 보면 광역기인 것 같은데 그렇게 뻔한 타이밍에 써 버리면 맞아 주기도 힘들다. 잠시 물러났다가 다가가서 드러난 뺨을 후려쳤다.

쩌어억!

“네가 낚시질을 그렇게 잘한다며?”

“씨발 새끼야!”

후우웅! 후웅!

따귀 맞은 게 기분 나쁜지 방어를 도외시한 채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카카칵!

“크헉!”

초보적인 흘리기에도 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에 정신 차리라고 다리를 걸어 줬다.

음… 바닥을 뒹구는 걸 보면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손목 날렸을 때 표정이 딱 당장 포기할 것 같아 좀 버티라고 도발 좀 했는데 조금만 더 하면 얼굴에서 스팀 올라올 것 같다.

-와… 겐세이 가지고 노네.

-찐실력이네.

-겐세이 불쌍하닼ㅋㅋㅋㅋㅋㅋㅋ

-겐세이방 지금 터졌다 ㅋㄷㅋㄷㅋㄷ

“죽여 버린다!”

파파파팟!

구르듯 몸을 일으키더니 녀석의 검에서 솟구친 세 줄기의 청광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꽤 빠르기는 한데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위! 아래! 우측!

-와, 이걸 피해?

-이거 삼절참 아님?

-어떻게 피하는 거야!

어떻게 피하냐고 물어도 딱히 대답할 수 없는 게 그냥 피할 수 있으니 피하는 거다.

누나 말로는 순수 재능의 영역이라 상대 입장에서는 참 억울할 거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겠고. 내가 지금까지 세이온을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스킬은 그냥 전투의 일부분일 뿐이고 굳이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스킬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것.

쩌억!

“경직?”

“큭!”

가벼운 앞차기가 영 좋지 못한 급소에 적중하자 그곳을 손으로 가리며 연신 물러난다. 현실이었다면 반칙이겠지만 여긴 뭐 게임이니까.

“블라인드.”

푹!

“악!”

손가락으로 눈을 후비자 얼굴을 가린 채 연신 도망친다. 상대 눈을 멀게 만드는 마법 중에 블라인드라는 게 있다는데 그게 뭐 별건가. 눈만 안 보이게 하면 그게 블라인드지. 적당히 가지고 놀며 시간을 확인하니 막 3분이 지났다. 일단 미션 1차 목표를 완수하긴 했는데…….

“앞으로 7분 버틸 수 있겠냐?”

“뭐?”

“10분 버티면 10만 원 미션이거든.”

“으아악!”

내 말에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잘려 버린 왼 손목이 좀 애처롭다. 쯧… 역시 못할 짓이네.

“그냥 죽어라.”

푹!

“컥!”

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녀석의 가슴에 검을 꽂고 땅에 박아 버렸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목 베어 죽이나 심장 찔러 죽이나 그게 그거지 뭐.

“끄으으…….”

“다음에 보자.”

“너, 너!”

죽일 듯이 노려보지만 뭐 어쩔 텐가.

Win!

결투장 점수 +7

브론즈 달성!

-공격력 1% 상승

승리 메시지와 브론즈 등급이 되었다는 알림이 들린다. 지금이야 고작 공격력 1% 상승이지만 단계마다 얻는 버프와 5레벨마나 달라지는 리그를 생각하면 나중에는 엄청난 전투력 버프가 된다.

콜로세움이 사라지고 다시금 네모난 창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뭔가 멋진 말을 하고 싶은데 딱히 안 떠오르네.

“죄송합니다. 10분 해 보려고 했는데 역시 힘드네요.”

-와, 실화? 겐세이를…….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심? 스킬 하나도 안 쓴 거 같아.

-레알? 스킬 안 씀?

-스킬도 안 쓰고 이겼다고?

채팅창이 물음표가 주르륵 올라간다. 아니… 스킬 안 쓴 게 별거인가.

“그러게요. 그다지 필요 없어서 안 썼네요.”

-허…….

-찐이다! 찐이 나타났다!

-와, 개소름! 스킬도 안 쓰고 가지고 노네; 님 왜 여기 계세요.

-그러게 이 정도 VR피지컬이면 프로로 가야지.

[겔푸스 님 50,000원 감사드립니다.]

-10분이 안 됐으나 충분히 만족스럽기에 5만 원 드릴게요.

“겔푸스 님 오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3분 만에 오만 원이면 분당 만 칠천 원 정도인가. 좋네. 이런 좋은 일자리 놔두고 내가 왜 프로로 가는가. 어차피 난 고아라서 군대도 면제다.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다시금 투기장 창을 바라본다. 아직 4승이 더 필요하지만 이 정도 난이도라면 그렇게 크게 힘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어디 다음 분을 골라 볼까요?”

-간만에 생태계 파괴자 나왔다.

-낚시꾼들 죄다 긴장해야 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HIBIKI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천안호구과자! 3분 가지고 놀다가 죽여 주면 오만 원!

[전국노예자랑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교회스님 저 새끼! 5분 가지고 놀다가 죽여 주시면 십만 원 드립니다.

아프리카에서 뜨는 건 한순간이라더니, 메인에 노출되는 핫이슈에 들자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500명으로 늘어났다. 본래 있던 시청자에 내가 죽인 낚시꾼들 방송국에서 넘어온 이 그리고 핫이슈 등극으로 유입된 시청자들까지 뒤섞여 채팅창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케이짱바라기가 있었으면 매니저 권한이라도 줬을 텐데, 아직 저녁이라서 그런지 들어오지 않는다.

[제모니모 님 1,000원 감사합니다.]

-여기가 지하에서부터 낚시꾼들만 잡아 족치면서 올라오고 있는 맛집인가요?

[고박호구마 님 1,000원 감사합니다.]

-컨텐츠도 좋지만 같은 비제이끼리 너무한 거 아니냐.

[교베르만 님 1,000원 감사합니다.]

-일반인 죽이면서 깔깔거리며 좋아하다가 막상 지들이 당하니까 열폭 오지죠. 남의 눈에 눈물 짜게 만들었으면 니들 눈에 피눈물 날 각오도 했어야지.

시청자들끼리 후원 메시지로 열심히 싸우는데… 나야… 뭐 좋다.

“딱히 죄송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 말했듯이 저격은 격하게 환영합니다.”

-패기 보소. 지린다.

-ㅋㅋㅋㅋㅋ 억울하면 점수 올려서 따라와!

[오서방빈라뎅 님 1,000원 감사합니다.]

-케이 님. 방 한번 파시죠. 제가 죽여 드릴게요.

-오… 도전자인가?

-ㅎㅎㅎㅎ케이 님 이거 거부하면 쫄 되는 거임.

-쫄? 쫄? 쫄?

세이온의 투기장에서 상대와 매칭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먼저 방을 파고 결투자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매칭 상대를 보고 고르는 것이다. 참고로 먼저 방을 파고 있으면 상대를 고를 수 없는 대신 투기장 점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뭐 나야 10연승 퀘스트를 완료했으니 상관없지만 이대로 나가자니 나한테 당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겠지.

“알겠습니다. 억울하신 분들 많은 것 같은데 오서방 님 말씀대로 지금부터 방 파겠습니다. 대신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니 후원글로 대전 신청하시면 귓속말로 비번 알려 드리겠습니다.”

-ㅋㅋㅋㅋ대전 받는 것도 돈 받음? 양심 실화?

-위에 병신이냐? 비번 안 걸고 방파면 개나 소나 들어와서 레디 안 하고 장난질 칠 텐데 천 원이면 혜자다!

-와, 이제 방어전 ㄱㄱㄱ?

-낚시꾼들 지금 이 갈고 풀무장으로 들어올 준비 중 ㅋㅋㅋㅋㅋ

-브실골 대전이닷!

[겐세이훈 님 1,000원 감사합니다.]

-1빠 갑니다.

-오! 겐세이훈! 복수전 가나요?

-이 악물고 덤비네.

-지금 겐세이훈 시청자 20% 이쪽에 털렸으니 명예 회복 해야 함ㅋㅋㅋㅋ

첫 도전자는 내게 가장 먼저 털렸던 겐세이훈이라는 낚시꾼이다. 겐세이훈에게 비번을 가르쳐 주자 잠시 후 장비가 상당히 달라진 겐세이훈이 내게 도전을 신청했다. 낚시질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풀 무장이다.

“바로 레디 하지.”

쌍욕부터 박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네.

“시작할까?”

“그래.”

슉!

잠시 후 나와 겐세이훈은 콜로세움 중앙으로 이동했다. 전에는 오만하게 서서 내게 손가락을 까딱이더니 이번에는 자세를 낮추며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아까처럼 당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 보이네.”

입고 있는 장비가 심상치 않다. 경장갑이지만 목이나 각 관절부가 꼼꼼하게 마감된 붉은빛의 갑옷이다. 상당한 고강화의 장비라는 뜻이다. 음… 이번에는 나도 가볍게 상대할 수 없겠네.

3… 2… 1… 시작!

팟!

차차창!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세 줄기 청광이 날아온다. 겐세이훈은 그 뒤를 따라 검을 곧추세운 채 날아왔다. 피하는 것을 전제로 몰아붙이겠다는 뜻! 그러나 이런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쉽다.

팟!

뒤로 몸을 날리자 내가 서 있던 곳이 터져 나갔다. 흙먼지를 뚫고 겐세이훈이 내게 파고든다.

“죽엇!”

스킬은 아니지만 나를 반갈죽 해 버리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공격이다.

‘피를 머금은 칼날.’

챙!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스킬을 걸었지만... 확실히 강하다. 내가 아무리 재능 빨로 무쌍을 찍었다지만 비제이들도 실력이 없어서 썰린 건 아니었다. 그들이 초보자들을 낚기 위해 허름한 장비를 꼈기 때문.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겐세이훈이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떠냐!”

“강하네.”

“후후, 그렇지? 그렇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어. 난 이제부터 널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까.”

음, 꿈이 꽤 야무지네. 조금은 그 꿈을 응원해 주고 싶지만 그 주체가 날 해체하는 거니 아무래도 호응해 줄 수는 없다.

“그럼 나도 조금은 진심으로 대해 줄게.”

“뭐?”

“제대로 한다고… 친위대 소환.”

“컹! 크앙! 크르릉!”

내 주위로 세 개의 검은 기운이 뭉쳐 들더니 이내 세 마리의 완전 무장한 놀이 나타났다.

“뭐, 뭐야? 전사 아니었어?”

당황한 겐세이훈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물었지만 굳이 그 말에 답해 줄 필요는 없겠지.

난 땅을 박차며 셋에게 말했다.

“가자!”

“크르르! 크앙! 크아아앙!”

내 뒤를 따라 구씨 삼형제가 몸을 날렸다. 날 중심으로 완벽한 다이아몬드 진형을 이룬 채 달리는 셋의 두 눈에 줄기줄기 혈광이 흐른다.

“어… 어어……”

어떻게 대응할지 감을 못 잡겠다는 듯 검만 세운 채 뒤로 도망치는 겐세이훈이다.

어디 한번 다굴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까?

‘피를 머금은 칼날!’

“하앗!”

콰아앙!

“크윽!”

내 내려치기에 어설프게 방어한 겐세이훈의 자세가 무너졌다. 마주 칼날을 맞대며 밀어붙이자 신음을 삼키며 검에 힘을 주지만… 내 공격은 하나가 아닌데?

푹! 쾅! 츠컥!

“큭! 윽! 아악!”

황구의 창이 겐세이훈의 오른쪽 옆구리를 쑤시고, 백구의 마비의 단검이 하반신을 난도질하며, 흑구의 방패가 머리를 두들긴다. 룬다인산 산적들을 대상으로 숱하게 연습한 단일 포메이션인데 역시 아무리 실력 좋은 비제이들이라도 만고불변의 법칙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으아앗!”

셋의 공격을 몸으로 감수하며 땅에 검을 박아넣으려는 겐세이훈! 광역기를 사용하려는 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 되지. 스킬이라는 건 어떤 특정 조건이 만족돼야 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동 조건을 중간에 방해하면 스킬은 실패한다. 바로 지금처럼…….

“흑구 물어!”

“크아앙!”

무기를 사용하지만 백구, 황구, 흑구에게는 보통의 유저들은 사용하지 않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이빨!

“으아악!”

흑구가 대뜸 팔목을 덥석 물자 겐세이훈이 비명을 내지르며 팔을 뒤흔들었지만 떨어질 리 만무하다. 산적들을 상대로 실험해 본 결과이기는 하지만 셋의 무는 공격은 단순히 근력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고유 스킬처럼 보였는데, 한마디로 얘들이 한번 물면 내가 명령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셋의 머리는 웬만한 대형견 못지않게 컸는데, 치악력도 대단한지 겐세이훈의 팔목을 갑옷째로 그대로 씹어 부러뜨렸다.

“으… 으아아아!”

흑구의 고갯짓에 덜렁거리는 팔목을 보니 조금 미안하다. 이러다가 트라우마 생기는 거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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