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34화 (34/154)

34. 듀렌달

이거 믿어도 되나.

사실 야스마녀를 설득하기는 했지만 한겨뤼 자신도 이 패기만만한 비제이가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즈니스에 필요하다는 말에 시작했던 세이온의 마력에 빠져 어느 틈에 작은 건물 한 채값을 투자했다.

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돈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실력의 척도 중 하나라는 건 웬만한 초보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칼 빼고는 다 합쳐서 백만 원도 안 할 것 같은데…….’

칼은 쓸만해 보이지만 기본 강화만 된 것 같은 개나 소나 다 입는다는 서민용 국민세트다.

자신이 쓰는 장갑 하나 가격도 안 될 것 같은 장비를 끼고 뭘 그렇게 여유만만한지 자신이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야스마녀에게 내린 지시는 하나였다.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고 뒤를 잡으면 전력으로 공격하세요.”

모든 오더를 자신이 하겠다기에 무슨 신통방통한 전술이라도 짜주는 줄 알았더니 지시는 저 한마디뿐이었다. 장비가 부실하니 자신의 서브장비라도 빌려주려 했건만 케이라는 비제이는 그것도 거부했다.

<한결! 많이 기다려 줬지? 큭큭큭 이제 붙어 볼까?>

<그래 새끼야.>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얄미운 새끼의 귓속말을 서둘러 치워 버린 후 깊게 한숨을 내쉰다. 분명 자신을 흔들려고 귓속말을 했으리라. 라이벌 회사의 사장인 저 녀석의 꼬드김에 넘어가 회사의 중요한 거래처를 내기에 걸어 버렸다. 고작 내기 때문에 회사의 중요한 거래처를 넘겼다고 하면 아버지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탱커 새끼만 아니었어도…….’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영입한 탱커 새끼가 맨탈이 터져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부실한 용병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경기 사회를 맡은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쿠쿠쿠-

이제 전투가 시작되려고 한다.

화면이 전환되면 콜로세움에 내려섰다. 빌어먹을 곳이다. 상대 쪽의 준프로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져 버린 탓인지 콜로세움의 NPC 관객들마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까딱까딱.

맞은편의 얄미운 새끼가 반갑다는 듯 손을 까딱거린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녀석과 자신의 실력은 오십보백보였다. 그렇기에 승리를 자신했건만 녀석이 데려온 저 준프로가 문제였다. 녀석의 뒤에 서 있는 궁수의 복장을 한 준프로는 자신이 영입한 탱커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다가 죽였다. 놈의 무기는 고강화의 전설급 활인데, 공격 속도가 일반 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화살에 적중당하면 넉백 효과로 몸이 밀려났다. 설상가상으로 놈이 가진 스킬과 합쳐져 감히 피할 엄두도 나지 않는데 데미지도 강력해서 탱커가 방패로 5초 이상 막아 내지 못했다.

그런 상대방 용병에 비해 자신의 앞에 선 이 케이라는 비제이는 그 강력해 보이는 소환수도 꺼내지 않고 그냥 맨몸뚱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서 있다. 상대측 용병에 대해 말해 줬는데도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은 채다. 화살 한 대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졌으니 무를 수 없다.

3… 2… 1… 시작!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없다.

극한의 네가 와 플레이다. 이쪽은 근접전밖에 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저 궁수의 공격을 뚫고 전진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실패했다.

“대기하고 계시다가 제가 신호하면 상대 힐러 먼저 치세요.”

“힐러요? 궁수가 아니라?”

야스마녀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천천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걷는 그 모습이 워낙 기가 막혀 만약 저것이 기만책이라면 성공입니다, 라고 말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상대 쪽도 이쪽과 마찬가지 생각인지 대체 뭔 꿍꿍인가 싶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케이가 경기장의 중간을 넘자 공격을 시작했다.

파아앙!

번개같이 날아온 화살이 팔뚝에 명중했고, 넉백 효과 때문에 뒤로 날아가 요란하게 쓰러졌다.

“하하하! 그것도 못 피해?”

녀석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고작 맛보기로 날린 화살 하나도 피하지 못하는 주제에 뭔 배짱으로 느물느물 걸어온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 한겨뤼와 야스마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머릿속에 ‘패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빨리 끝내!”

“네.”

퓨퓨퓨퓨퓻!

진짜 시작이라는 듯 다섯 발의 화살이 비척거리며 일어나는 그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전후좌우를 완벽하게 점하며 날아오는 저 궁수의 공격은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화살 공격이 3초마다 한 번씩 날아오는데 탱커나 좀 버티지, 자신과 야스마녀는 도저히 유효사거리 안으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타타탁!

“아…….”

야스마녀가 탄성을 터뜨렸다. 그대로 사망이라 생각했는데 케이라는 비제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간결하게 피해 냈다. 순간이동 스킬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피했다. 저렇게 잘 피하면서 왜 첫발을 맞아 줬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피해?”

날아오는 속도까지 따지면 계산할 시간이라고는 0.01초도 되지 않을 텐데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섯 발을 무리 없이 피해 버렸다.

퓻! 퓨퓨퓨퓨퓻!

상대도 당황했는지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탁!

또 피했다. 다섯 발의 화살 중 단 한 발도 그의 몸에 유효타를 꽂지 못했다. 아니, 달라진 게 있긴 하다. 걷는 속도가 아주 조금 빨라졌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 피하는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움찔거리는 야스마녀 님과 함께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상대측에 도달했다.

파앗!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던 둘이 급하게 케이를 공격했다. 3억을 주고 샀다는 휘황찬란한 검이지만 그가 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어엇!”

“큭!”

둘 중 오른쪽에 서 있는 놈을 방패처럼 끼고 돌자 공격하던 둘의 손이 엇갈리며 서로 몸에 무기를 박아 버렸다. 단순한 관전자라면 웃음보가 터질 상황이지만 자신들이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후방에 서 있던 궁수가 그나마 머리가 좋은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위쪽에서 화살 공격을 날렸지만 광역기로도 맞추지 못한 걸 명중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악!

어느 틈에 무기를 바꿨는지 화살 한 발이 공중으로 쏘아졌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게 자충수가 되어 화살에 맞은 궁수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츠컥! 푸칵!

“아악!”

느물느물 자신을 도발하던 녀석의 어깨에서 피 분수가 터졌다. 완벽한 치명타! 대체 그 허접한 검으로 어떻게 공격을 성공시켰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지만 더 엄청난 것은 그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파파파파팟!

그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치더니 엄청난 속도로 둘을 베기 시작했다. 오라 계열 스킬 같은데 당하는 순간 움직임이 느려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뒤늦게 궁수가 끼어들었지만 그도 공격에 휩쓸려 버렸다. 활을 포기한 채 단검을 뽑아 들었는데 연신 막기에 급급하다.

<이제 공격하세요!>

그의 파티말이 들려온다. 그냥 둬도 혼자 셋을 찜 쪄 먹을 것 같긴 하지만 몸이 달았는지 야스마녀가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호호호호호호!”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눈에 줄기줄기 혈광을 뿌리는 그녀에게 버프 스킬을 부여하며 한겨뤼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비제이들에게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수백 수천만 원을 꽂아 넣는 녀석들을 이해 못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자신도 그 하나가 될 것 같다.

승리!

* * *

그 후 두 번의 전투가 더 있었지만 이변은 없었다.

궁수가 공략당하자 떨거지 둘은 자중지란에 빠졌는지 내 접근을 막아 내지 못했다.

“와아! 동생! 너무 멋있어!”

언제부터 동생이었다고 야스마녀가 날 덥석 안았다. 아까는 무슨 벌레 보듯이 쳐다보더니 이제 와서 친한 척하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지만, 뭐… 고갱님이니까 서비스를 해 줘야지.

“누님도 멋지셨습니다.”

“어머, 누님이 뭐야! 누나라고 해야지! 누나!”

“아… 네.”

극한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서 누님이라고 해 줬는데 누나라고 불러 달란다. 뭐, 못 부를 건 없다. 잠재적 큰손들이니까. 입 한 번 더 놀려서 좋은 관계 만들 수 있는데 뭘 망설이겠는가.

“누나.”

“호호호, 그래! 아까는 미안했어. 이렇게 실력이 좋은 줄 몰랐지 뭐야.”

“아닙니다.”

“아니, 겸손하기는!”

야스마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날 안고 연신 비비적거린다.

“대단하네요. 덕분에 이겼습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별거 아니긴요. 저거 못 뚫어서 탱커가 도망쳤는데, 그걸 다 뚫고 들어가셨잖아요. 왜 뒤를 치라고 하나 하고 궁금했는데 케이 님한테 신경 쓰느라 죄다 뒤를 신경 안 쓰더군요.”

“하하. 네.”

사실 내가 별거 아니라고 한 것은 궁수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궁수를 제외한 둘을 말하는 것이다. 기세가 꺾여서인지 충격 받은 건지 접근한 나에게 바보같이 대응했다. 아마 내가 지시를 내리는 입장이라면 둘이 아닌 하나만 보내서 날 견제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시야가 확보된 궁수가 굳이 무리하게 공중으로 뛰지 않았으리라. 한 명은 뒤에서 대기 중인 둘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고 말이다.

사전에 팀워크를 훈련한 게 아니라면 합격(合格)은 난이도 있는 공격 수단이다. 막공 파티 플레이에서 역할을 구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겹치는 클래스끼리 섞으면 공격이 엉켜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뭐, 어쨌든 결론은 우리 팀이 이겼다는 것이다.

“근데 케이 님.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그 화살 공격은 어떻게 피한 겁니까?”

“그냥 피했는데요?”

“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햔겨뤼다.

“그냥 피해요?”

“네. 잘 피하면 됩니다.”

“흐음…….”

아무래도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좀 더 풀어 설명해야 하나.

“한겨뤼 님, 만약에 누군가가 한겨뤼 님한테 총을 겨누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네.”

“거리도 어느 정도 있고 상대는 곧 한겨뤼 님을 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총구가 한겨뤼 님의 어디를 노리는지도 알고 있고 방아쇠 당기는 것까지 볼 수 있으면 어떨까요? 총알을 완전히 피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피하는 시늉은 할 수 있겠죠?”

“그렇죠.”

“그렇게 피한 겁니다.”

“에…….”

좀 더 풀어서 말해 줬는데 아무리 상대가 어딜 노리고 언제 쏘려는지 안다고 해도 피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점만 남는 눈치다. 바보 같은 양반일세.

“총알이 아니고 화살이잖아요.”

“아.”

“다섯 발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그건 점이냐 면이냐 문제입니다. 어차피 목표는 저니까요. 조금 잔머리를 써서 첫발을 일부러 맞아 경계심을 흐트러뜨리기는 했지만 그것만 알면 피할 수 있습니다. ”

“그렇군요.”

궁금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한 눈치다. 쯧… 어째 설명하는 게 더 어렵다.

“그럼 이제 결승이네요. 언제 시작하나요?”

“저쪽 팀에서 작전타임 걸었네요. 아무래도 케이 님 때문에 충격 먹고 전략을 다시 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쯧…….”

오늘은 형이 광수라는 형과 같이 집에 오기로 했다. 빨리 끝내고 나가야 함께 저녁을 먹을 텐데 이대로라면 영 글렀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기다리기 지루해서요.”

“하하, 그렇죠. 저는 긴장해서 조급해하시는 줄 알았는데…….”

“긴장할 게 뭐 있나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만 엄청나게 투자했지, 실력은 그저 그렇다고 한다. 차라리 그 준프로 한 명이 더 어렵지, 셋은 별거 아니다.

공격력이 아무리 좋아도 안 맞으면 그만이고, 방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방어구 틈새를 찌르면 그만이다. 오히려 스킬적인 면에서는 내가 유리하다. 레벨은 같으니 아무리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장비를 가지고 있더라도 나보다 스킬 숫자는 적을 것이다. 그때였다.

“동생?”

“아, 네. 누나.”

“이거 받아.”

야스마녀가 내게 한 자루의 검을 내밀었다. 내가 쓰는 희생의 롱소드보다 살짝 짧은 롱소드였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화려한 문양이 가득한 검이다.

“이걸 왜…….”

“내 동생이 그런 허접한 무기를 쓴다는 건 나에 대한 모독이야. 이걸 써. 내가 서브로 가지고 다니는 거긴 하지만 쓸 줄 몰라서 묵혀 두던 거야.”

“음, 꽤 비싸 보이는데요.”

“비싸 봤자 2~3억이지. 얼른 받아. 팔 떨어져.”

무려 2~3억을 고작 2~3억이라고 말하는 스케일의 차이에 얼어붙어 엉겁결에 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검의 이름과 그 능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 버렸다.

+10 [듀렌달] [전설 등급]

-샤를마뉴의 12기사 중 수좌인 롤랑의 검으로, 사지에 몰린 롤랑이 이 검을 부러뜨리려 바위에 내리치자 오히려 바위가 쪼개졌다. 요정족 대장장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 명검으로 일격에 산을 쪼개는 위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공격력 120(+120)~180(+180)

-내구력 500/500

옵션

-어스 브레이크: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내는, 공격력 1,000% 증폭된 사정거리 2m의 반월형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다.

-제한 조건: 연공술 스킬 보유자만 사용 가능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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