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36화 (36/154)

36. 비제이가 되자!

“팀을 결성하기에 앞서 우린 진지하게 정현이의 미래에 대해 논의해 봐야 해.”

“동감.”

“그건 그래.”

“…그걸 왜 형 누나들이…….”

“당사자 의견은 안 듣겠다. 첫째 안건, 36살 돌싱녀 입에 파릇파릇 20살을 넣으려면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가.”

“그 안건은 절대 기각.”

상도 형이 소리쳤다. 잘한다! 역시 우리 형!

“난 찬성.”

“이 자식아! 내 동생이야!”

“스템펑크에서 나오는 주문형 기계식 키보드 120만 원짜리 하나만 사 주면 형 편 해 줄게.”

“네 돈으로 사!”

상도 형이 광수 형 멱살을 잡아 짤짤 흔든다.

혜미 누나가 내 곁에 뱀처럼 미끄러져 오더니 선악과로 유혹하는 악마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36살인데 여배우 일렬횡대로 운동장 한 바퀴 세워 놓고 뺨치면서 뛰어도 될 정도로 예뻐. 돈도 썩어나게 많으니 인생 피는 거야. 어때 정현아.”

“절대 싫어요.”

“왜? 세상은 돈이 전부야!”

“요망한 것! 내 동생을 유혹하지 마라!”

상도 형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어째서! 재벌가 사윈데!”

“그게 사위냐! 기둥서방이지!”

“기둥서방이면 뭐! 대한민국 남자 백 명한테 물어봐! 성혜나 기둥서방 할 거냐고 물으면 백이면 천 명이 한다고 할걸? 반반할 때 팔아먹어야지.”

“너, 네 방 회장 할아버지한테 첩으로 팔아 버린다!”

“상구 오빠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저기요. 형… 누나… 그분 안 지 딱 두 시간 됐거든요?”

“사랑은 만난 시간이 중요한 게 아냐! 순간의 강렬함이지!”

“사랑 따위는 X문의 X나X이라는 염세주의녀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군.”

“아니, 왜 항X 오X홀의 확장판이라고 말을 못 해!”

이 인간들이 진짜…….

“장난 그만하고 적당히 좀 하세요.”

“음음, 그럴까?”

“호호호 알았어.”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그제야 장난을 멈추는 둘이다.

“그럼 이제부터 정현이의 남캠 컨텐츠에 대한…….”

“아! 진짜!”

이 인간들이랑 진짜 팀 짜야 하는 거야?

* * *

“혜나 누나.”

“왜?”

“그 비제이한테 관심 있으세요?”

캡슐에서 일어나 직원이 건넨 음료를 마시던 한결은 옆 캡슐에 비스듬히 앉은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성혜나에게 물었다. 게임 안에서야 다른 사람들 눈치가 있어 존대를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기에 편하게 반말하는 성혜나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평소 방송이나 비제이라고 하면 학을 떼셨는데 그런 비싼 아이템을 덥석 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죠.”

“뭐, 그거 얼마나 비싸다고. 어차피 선물 받은 건데.”

“누나…….”

아무리 돈이 썩어나도 기본적인 경제 관념은 같다. 다만 그들이 평범한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돈의 가용 범위가 다르다는 점뿐이다.

혜나가 피식 웃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와인색의 실크 미니원피스 밑으로 아찔한 하얀 다리가 절로 눈길을 끌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의 붉은 입술에 머물러 있다.

“어디가 마음에 드신 건가요?”

“풋풋한 매력?”

“농담하지 마시고요.”

“호호호… 왜? 난 풋풋한 거 좋아하면 안 돼? 그런 걸로 따지면 동생도 나랑 같지 않아? 비제이 방송 같은 거 취미 없는 걸로 아는데.”

“저는… 음…….”

입을 꾹 다문 그가 조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 있던 캡슐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거든요.”

“어머, 동생 설마 그런 취향?”

“하하하… 진짜 그랬다면 형이 좋아하겠네요. 지겨운 동생 놈 드디어 쳐내 버릴 수 있을 테니까.”

“호호, 한혁 오빠가 좀 독하기는 하지.”

“독하다뿐인가요? 아마 이번 일 잘못됐으면…….”

“…….”

한결의 사정을 알기에 혜나는 더 이상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도 자신만큼 집안 세력도가 복잡하니까. 잠시 후 한결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 말에 순종하며 하루 18시간 공부하면서도 캡슐을 보면서 꿈을 키웠죠.”

“그랬어? 난 전혀 몰랐는데?”

“중학교 때까지였으니까요. 아버지가 제 캡슐을 정원 호수에 집어던지기 전까지였죠.”

“젠 인터내셔널 사장님이 좀 너무하셨네.”

“좀이요? 후후…….”

삼 형제 중에 막내인 한결은 머릿속으로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삼켰다. 회사를 물려받을 거라 생각했던 큰형이 음악에 빠져 집을 뛰쳐나가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아버지는 그때부터 둘째 형과 자신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로 만들었다. 다른 길을 아예 쳐다도 보지 못하도록 강제했고, 그렇게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이젠 너무 멀리 달려와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꿈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비제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졌어?”

“대리만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거죠. 뭐 덕분에 상혁이 자식한테 한 방 먹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구나.”

“예.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누나는 왜 그 비제이를 찍으신 거예요?”

“아? 음… 그건 여자의 비밀?”

“장난하지 마시고요.”

한결이 정색하며 말했다. 간만에 마음에 든 녀석이다. 어쩌면 자신의 꿈을 투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그리고 성혜나는 그런 사람과 가까이 두기에는 매우 위험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려 드는 소유욕의 화신이었다.

“호호호, 알았어. 한결이니까 특별히 말해 줄게. 사실 예전에 내가 그룹에서 노리고 있던 게 하나 있거든. 오빠나 언니들 눈치 때문에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었어.”

“노리던 거요?”

“응. 뭐 정확히는 말해 줄 수 없지만 간단히 말해서 그 케이라는 애를 잘만 키우면 내 마스터피스가 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어서 말이야.”

“그렇군요.”

결국 성혜나는 케이라는 비제이에게 사업적인 욕심으로 접근했다는 소리다.

그제야 한시름 놓는 한결. 성혜나와 사적인 부분으로 얽히는 게 아닌 이상 크게 다칠 일은 없으리라.

“네가 나한테 귓속말로 말했지? 규격 외 재능이라고. 전 세계로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 했을 때 딱 감이 왔지. 거기에 20살이라니 앞날도 창창하고… 투자 가치가 확실하니 미리 점찍으려고 그런 거지. 뭐, 그런 어린애들은 좀 잘해 주면 정신 못 차리잖아. 적당히 어장관리하면서 데리고 있어야지.”

어장관리라고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어장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일 정도로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한결의 형인 한혁도 그녀를 노릴 정도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그러다가 누나한테 빠져서 달라붙으면 어쩌려고요.”

“호호호, 그럼 뭐 내가 걔랑 사귀기라도 할까? 아무리 내가 얼빠에 금사빠라고는 하지만 풋내나는 어린애는 내 취향이 아냐.”

“하긴 누나가 16살이나 차이 나는 어린애랑 사귄다는 건 좀 그렇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결.

지속적인 관리로 36살은커녕 20대 중반으로 보일 미모와 몸매를 지닌 성혜나지만 케이와는 무려 16살의 차이였다.

“야! 내가 어때서?”

“제 예상이 맞는다면 걔는 최소 3년 안에 한국에서 원탑으로 뜰 애예요. 그럼 돈도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으로 벌 테고, 대한민국 얼굴 좀 반반하다는 애들은 죄다 달라붙을 텐데… 여러모로 누나가 밀리죠.”

프로게이머로서의 꿈은 접었지만 그쪽 업계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서 아마 이상의 지식과 안목을 가진 그였다. 그 허접한 장비를 가지고도 풀 장비의 준프로를 가지고 놀았다. 레벨이 같다고 하지만 억 단위의 장비를 갖춘 이를 손쉽게 발라먹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케이가 다른 게임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 세이온을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된 진짜 생초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케이가 경험과 레벨이 쌓이고 좋은 장비를 갖추게 된다면? 말 그대로 일반인은 건드릴 수 없는 진정한 세이온 최강자가 되리라.

“음……?”

문득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에 고개를 돌리자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 고혹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성혜나가 있다.

“한결아?”

“예?”

“다시 말해 볼래? 이 누나가 그렇게 밀리니?”

물어보고 있지만 답을 바라는 건 아니다. 서슬 퍼런 눈빛이 그의 위아래를 훑자 오싹함을 느낀 한결이 고개를 푹 숙였다. 눈 마주치면 죽는다.

* * *

“굳이 그런 걸 해야 해요?”

“어허, 위튜버로 제대로 성공하려면 컨텐츠 저변을 좀 더 넓혀야지.”

“어차피 저는 게임 위튜버로 성공하려는데… 남캠은 좀…….”

“얘 좀 봐. 남캠이 뭐 어때서? 그리고 너 롱런하는 위튜버의 특징이 뭔지 알아?”

“뭔데요?”

“다양한 무기를 가졌다는 거야. 다양한 무기! 하나만 잘해서는 절대 크게 될 수 없다는 거지.”

“으음…….”

혜미 누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지만… 역시 남캠은 싫다. 멋있게 꾸미고 나와 시청자들에게 후원해 달라고 애교나 아양을 떨거나 춤을 추거나…….

“으으으윽…….”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진다. 난 죽어도 그런 건 못한다.

“남캠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돼요?”

“다른 거?”

“예.”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좀 물어볼게. 너 요리 잘해?”

“…음, 라면은 잘 끓여요. 후라이… 도?”

“먹방은? 짜장면을 예로 들어서 한 자리에 몇 그릇 먹니?”

“한 그릇?”

“춤 잘 춰?”

“개다리춤은 안 되나요?”

“후우, 캠핑 해 본 적 있어?”

“으으음…….”

뭔가 누나 눈빛이 자꾸 썩어 가는 것 같은데…….

“큭큭, 쟤 공원에 던져 놔도 길 못 찾아. 길치야. 완벽한 길치!”

광수 형이랑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이던 상도 형이 피식피식 웃으며 말한다.

“연예 고민 상담은?”

“지 연예도 못해서 20살 모태솔로인데 뭔 상담을 해 쟤가…….”

“아! 형!”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틀린 말은 아닌데 30살 모태솔로한테 그런 소리 듣기는 싫은데?”

“이, 임마! 연예 해 봤거든?”

“원장님 걸고 맹세?”

“윽… 그건…….”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안 돼요, 라고 사랑과 매로 교육받아 온 터라 원장님을 걸면 형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어머? 오빠? 아직 연애 한 번도 못 해 봤어?”

“아, 아냐! 나도 연애해 봤어!”

“2D?”

“이런 씨이!”

새로운 놀림거리를 찾은 듯 혜미 누나의 눈이 반짝거리자 상도 형이 울먹이며 화장실로 도망가 버렸다. 방해꾼을 제거한 혜미 누나가 고개를 돌려 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게임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기계는 어느 정도 만질 줄 알아요.”

“시청자들 컴퓨터 고쳐 주러 다닐래? 게임한다며?”

“싸움도 좀 하는데…….”

“전설의 주먹?”

“끙…….”

“어휴, 게임 피지컬이 왜 역대급인가 했는데 넌 그냥 스텟이 게임에 몰빵되었구나. 너 게임 아니었으면 뭐 먹고 살려고 했니?”

“고, 공장이요.”

“아… 그래. 게임 잘하는 예비 공돌이 새싹이었군.”

누나의 신랄한 비판에도 대꾸할 말이 없다.

“아무튼 결론은 넌 그나마 그 반반한 얼굴이 무기라는 거지. 그렇다고 남캠 위주로 하라는 게 아니야. 남캠은 입을 잘 털어야 하는데 넌 말재주도 없잖아. 그러니 그냥 일주일에 서너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네가 가진 게 게임만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라는 거지.”

“후, 알았어요.”

누나의 말 중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위튜버 중에 시청자 100만이 넘는 이들은 대부분 하나 이상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얼굴이 잘생겼거나 혹은 말을 잘하거나 아니면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재능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일단?”

“그 목 다 늘어난 티 좀 버려. 잠옷인지 일상복인지 구분 안 되는 옷들은 전부.”

“알았어요.”

“그리고 화장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세수하고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머리도 좀 다듬어! 너 지금 머리 언제 어디서 깎았어?”

“세 달 전에 브루크럽에서…….”

“내일 내가 가는 샵에 가서 머리도 좀 다듬고 관리도 받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는 바라지도 않아. 세련된 옷도 좀 사고 아, PT도 끊어야지.”

“PT요?”

“걸어서 10분 정도 나가면 괜찮은 피트니스 센터 있어. 거기 가서 관리 좀 받아. 키만 크면 뭐해? 멸치 새낀데… 그러고 보니 식단 관리도 해야 하니. 넌 부족한 것투성이구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찌르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젠장…….

그때 얌전히 새우깡을 먹던 광수 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 더 잘하는 것 있어.”

“뭐?”

“게임 지능. 그리고 이 녀석 진짜 싸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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