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굇수대전
어색하다. 더럽게……. 난 오늘 처음 알았다. 머리를 다듬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머,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었어?”
내 머리를 깎아 준 헤어디자이너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쳇…….
자본주의 미소 가득 담긴 그 칭찬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깎은지 안 깎은지 애매하게 가위 대놓고서 고작 스프레이 몇 번 뿌리고는 대체 어째서 3만 원이나 받는단 말인가. 머리 감겨 줄 때 물 튀지 말라고 얼굴에 수건 덮어 주는데, 이 샵에는 그런 세심한 서비스도 없는지 머리 감는 내내 눈에 물이 튀어서 혼났다. 피부 관리를 받고 피트니스를 예약하고 누나와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새 누나의 소형차 뒷좌석은 옷으로 꽉 찼다.
“무료 봉사 했으니까 밥 사.”
“예.”
카페에서 케이크 다섯 조각과 보기만 해도 달아 죽을 것 같은 음료를 라지 사이즈로 해치우는 것을 보면 정말 먹방 비제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쟤들 봐라?”
“예?”
누나의 고갯짓에 시선을 돌려보니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내 쪽을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왜 저래요?”
“왜인 것 같아?”
“모르죠.”
하루 종일 누나한테 끌려다니느라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차라리 이 시간에 몬스터나 때려잡으러 가고 말지. 구씨 삼형제가 그립다.
“후, 눈치가 없는 거야. 없는 척하는 거야. 광수 오빠 말마따나 싸우는 머리는 좋다는데 이것도 그쪽으로만 스텟이 몰빵되었나.”
“욕이죠?”
“그건 구분하니?”
“끙…….”
“비제이 하려면 자기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잘생겼으면 어떻게 잘생겼는지, 못생겼으면 어떻게 못생겼는지도 알아야 돼.”
“무슨 궤변이에요.”
“궤변이 아니라 잘생긴 얼굴 엉뚱하게 쓸까 봐 걱정이다.”
“하하, 제가 그렇게 잘생겼어요? 정확히 어디가요?”
내가 피식 웃으며 누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혜미 누나의 볼이 붉게 물들더니 시선을 푹 숙인다. 이 누나는 또 왜 이래?
“그, 글쎄, 모르겠네.”
“아니, 말 잘하다가 왜 갑자기 입을 닫아요.”
“몰라. 아무튼 넌… 음… 주의해야 할 게 하나 있긴 하다.”
“주의할 거요?”
“응. 너… 눈웃음치면서 캠 똑바로 쳐다보지 마.”
“왜요?”
“몰라. 그냥 그러지만 마.”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혜미 누나가 얼음물을 원 샷으로 들이켰다.
* * *
“고생하셨어요. 형들…….”
“그래.”
“어우 죽겠다.”
“음료수 좀 드세요.”
“오냐.”
내가 나가 있는 동안 상도 형과 광수 형은 창고 방에 있던 캡슐을 안방으로 옮기며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집에서 가장 넓은 안방에 캡슐과 침대, 책상이 들어가자 그마저도 비좁아졌지만 창고 방보다는 세 배 정도 넓으니 환기는 잘될 것 같다.
“전기 공사 해서 벽에 콘센트 몇 개 만들어 달라니까.”
“그냥 멀티탭 써.”
“조명 달려면 선 길어지니까 그렇지. 그게 얼마나 지저분한데! 캡슐에 데스크탑에 조명에 여름에는 에어콘도 달아야 하고 전기 엄청 퍼먹어!”
누나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방 곳곳을 손가락질하며 음료수를 들이켜는 두 곰탱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어우, 숨 쉴 틈을 안 주네.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나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거든? 오빠 동생이거든?”
“알았어. 어휴 잔소리… 그래 가지고 널 누가 데려가냐.”
“나 데려가고 싶다는 사람 많아?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저거, 저거 빨리 마무리해!”
손에 채찍 하나라도 들려 주면 바닥을 찰싹찰싹 치며 소리칠 것 같다. 혜미 누나의 포스에 형들은 마지막 공사까지 마무리하고는 그대로 거실에 퍼져 버렸고, 누나의 잔소리는 그대로 나한테 옮겨왔다.
“오늘 얼공한다고 공지 안 올렸지?”
“네. 그럴 시간이 있었나요.”
“폰으로라도 했어야지!”
“그런 것도 돼요?”
“어휴, 진짜 오빠나 동생이나 하나하나 챙겨 줘야 돼!”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도 아니고, 누나는 추진력이 너무 좋다.
“7시에 그 야스마녀 님이랑 한겨뤼 님이랑 단체전 한다고 했지?”
“네.”
“그럼 한 시간 정도 남았네. 지금에라도 공지 올려. 4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한다고 그사이에 내가 얼굴 좀 만져 줄게.”
자신의 화장품 가방까지 가져와서 내 옆에 턱 하니 앉는다. 근데 이 누나 왜 이렇게 하이텐션이지.
“화장도 해요?”
“화장 아냐. 넌 피부는 좋은 편인데 너무 말라서 좀 환하게 해 주려는 거야. 여기다가 조명 몇 개 비추면 돼.”
그러더니 뭔가 엄청난 것들로 얼굴을 열심히 두들긴다.
“좋아. 100%는 아니지만 95% 완성이군. 하얀 쇄골에 보라색 난방은 필살기지. 목걸이랑 귀걸이 하면 좋을 텐데… 쯧.”
“그거 누나 취향이죠?”
“당근이지.”
“후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뭔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누나를 내가 빤히 올려다보며 묻자 갑자기 볼이 빨개지더니 내 뺨을 후려쳐 버렸다.
“꺅!”
짝!
“왜 때려요!”
“내, 내가 똑바로 쳐다보지 말랬지!”
“아니, 그렇다고 왜 뺨을!”
“눈깔아!”
짝!
* * *
볼이 화끈거린다.
“끙…….”
방송을 하려 의자에 앉으니 어느덧 공지를 한 네 시 반이다.
“뭔가 이상해.”
입고 있는 보라색 난방이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얼굴에 얕게 발라진 비비크림의 느낌이 어색하다. 일주일에 딱 두 시간만 하기로 했지만 괜히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방송 제목도 마음에 안 든다.
[케이의 세이온/남캠/얼평]
누나가 룰렛이라는 것도 넣자고 했지만 그 내용을 듣고는 진절머리를 치며 절대 불가를 말했다. 세상에 돌림판으로 춤 따위를 추라니……. 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난 드디어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무척이나 낯익은 분이 곧장 들어왔다.
[열혈팬 세스 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어제는 안 보이던 세스 님이다.
-…….
“세스 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첫 손님이라 조금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줬는데 답이 없다.
-케이 님 여전히 잘생기셨네요.
“네? 으음… 감사합니다.”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마치 예전부터 날 알았다는 듯 들린다.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는데 시청자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개존잘…….
-게임도 잘하는데 얼굴도! [부끄][부끄]
[케이짱바라기 님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ㅠㅠ 케이의 얼굴은 나만 간직하려고 했는데… 근데 이렇게 잘 꾸미시니까 예전에 가지고 있던 건 진짜 의미가 없어져 버렸네요.ㅠㅠㅠㅠㅠㅠㅠ
“하하, 감사합니다.”
자잘한 후원들이 연이어 터진다.
내 얼굴을 수십 명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땀이 난다.
-꺅! 땀에 살짝 젖은 모습 너무 멋있어! /짱좋아/
-케이 님 이렇게 잘생기셨어요? 근데 게임만 해요? 얼굴이 아깝다!
-셔츠가 땀에 젖어서 달라붙으면… /심쿵//심쿵//심쿵/
[MM민현♥률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 오늘부로 민현 님에서 케이 님으로 갈아타요!
인게임 방송할 때는 남자들이 많이 들어오더니, 지금은 거의 대부분 여성 시청자들이다. 얼굴에 금칠해 주니 고맙기는 한데 얼른 끝내고 게임이나 하고 싶다. 그렇게 내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자니 처음 들어와서 말 한마디 없던 세스 님이 폭탄을 터뜨리셨다.
[세스 님께서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조기 방종하면 오백만 원.
-와… 500만 원… 역시 회장님 스케일…….
-여자 시청자 더 들어오기 전에 케이 님 숨기려는 건가!
-킹리적 갓심이닷!
“음…….”
나 또한 얼른 방종하고 싶었기에 그냥 이 제안을 받아들일까 고민된다. 그때였다.
[야스마녀 님이 대화방에 참여하셨습니다.]
-안녕… 케이 님 게임만 하는 줄 알았… 어라?
“야스마녀 님 오셨네요.”
어제 수억을 후원해 주신 큰손이기에 재빨리 일어나 야스마녀 님에게 인사를 했다.
-네. 그런데 케이 님… 잘생겼네요? 무척?
“아, 네. 감사합니다.”
-이건 정말 예상외인데요. 정말…….
어제는 누나라고 부르라더니 왜 갑자기 존대를 하는 걸까.
[세스 님께서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조기 방종하면 5,000,000원
세스 님의 전자녀가 다시 채팅창을 떠올랐다. 얼른 방종하라고 재촉을 한다.
“음, 그럼 회장님 말대로 조기 방종을… 할까요?”
솔직히 두 시간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핑계가 좋다.
내가 슬슬 조기 방종의 밑밥을 깔려 할 때였다.
[야스마녀 님 5,0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잠시 스탑…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쿨럭…….”
세스 님만이 홀로 무쌍 찍던 전장에 새로운 장수가 나타났다.
-오오옷! 단숨에 열혈! ㄷㄷㄷ
-새로운 회장님?
-야스마녀 님이 조기 방종을 막아 버리셨어!
채팅창이 들썩거린다. 야스마녀 님도 한 번에 몇억짜리를 후원해 준 큰손.
그러나 세스 님도 만만치 않다.
[세스 님께서 10,0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 님 피곤해 보이셔서 조기 방종 시켜 드리려고요.
[야스마녀 님 20,0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는 좀 더 보고 싶은데…….
-굇수대전이닷!
-회장 쟁탈전인가?
-ㄷㄷㄷㄷㄷ
뭔가 분위기가 과열되었다. 후원이 싫은 건 아니지만 세스 님과 야스마녀 님이 자존심 싸움으로 가는 건 싫다.
[비제이가 후원을 닫았습니다.]
-……?
-엇? 케이 님 왜 후원 닫으셨어요
-한참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회장 탈환을 막으시네! 역시 본처인 세스 님 편?
“후우, 누구 편이 아니라요. 두 분이 자존심 싸움이 되실까 봐 닫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오늘 처음 얼공 했는데 많이 부담스러워서 조기 방종하고 싶었거든요.”
-오옷… 자존심까지 챙겨 주는 매너!
-음 그럼 세스 님 승인가.
-역시 회장님 뜻대로 조기 방종?
“네네. 그리고 어차피 야스마녀 님이랑 다른 한 분이랑 일곱 시부터 세이온 단체전 계속 돌릴 예정이라 일찍 나가서 저녁도 먹어야 할 것 같고요. 좀 배고프네요.”
조금 구차한 변명이지만 배고프다고 하니 모두 선선히 수긍해 준다. 그때 세스 님의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저분이랑 단체전 하세요?
“네. 세스 님.”
-…….
뭔가 분위기가 싸늘하다. 마치 크게 실수한 기분인데 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오늘 방송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 * *
“뭐지.”
성혜나는 일방적으로 종료된 방송 창을 바라보며 고운 아미를 일그러뜨렸다. 비제이 방송에 처음 들어와 본 그녀이기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파악이 안 된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그녀의 전투적 후원을 지원하던 이를 호출했다.
“이 비서…….”
“네.”
깔끔한 오피스룩의 여인이 한 걸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내가 진 거야?”
“지셨다기보다는 저 케이라는 비제이가 현명한 것 같습니다. 분명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으면 큰돈이 걸리게 될 테니까요.”
“고작 삼사천이?”
“큰돈이죠.”
“흐음…….”
그녀에게 그 정도는 푼돈이었다. 그녀가 지금 걸치고 있는 옷이나 신고 있는 구두가 그보다 훨씬 비쌌으니까. 그런데 기분이 무척이나 멜랑콜릭하다. 마치 아주 오랜 옛날… 어리고 순진했던 자신으로 돌아간 것처럼 감정의 파문이 일었다.
“후우,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네.”
처음 방송에 들어갔을 때 케이가 정말 예상외로 너무 잘생겼던 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자신이 얼빠이며 금사빠이기에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경계해 왔는데, 거의 무저항으로 그의 매력에 저격당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세스라는 시청자의 편을 들어줬을 때 잊고 있었던 아주 특별한 기분을 느꼈다.
‘질투? 내가?’
너무 오랜만이라 내성조차 없는 그 감정에 그녀는 충동적으로 세스라는 시청자와의 후원 대결에 들어갔다.
‘케이는 내 거야.’
그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꼭 필요한 마스터피스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것이다.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내 것을 빼앗겨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길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케이에 의해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가지고 싶은데 당장 어떻게 가질 방법이 없다.
“문제는 그래서 더 탐이 난단 말이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그녀가 이 비서에게 말했다.
“세스라는 년에 대해서 조사해.”
“예. 사장님.”
“3시간 내로 가져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 비서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성혜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 새로 장만한 캡슐로 걸어갔다. 아직 그와 자신의 실마리는 굳건하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속에서 느낀 건 그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7시부터 그와 단체전을 함께하기로 약속이 잡혀 있다.
“이 내가 집착하게 하다니… 의도한 거라면 너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