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48화 (48/154)

48. 레인저가 되었습니다

“레드섹이라는 위튜버 알지?”

“당연히 알죠.”

레드섹은 본래 프로게임단 2군으로 있다가 위튜브 방송으로 전업하여 잘생긴 외모와 괜찮은 실력, 상대를 도발하는 찰진 입담으로 인정받고 있는 구독자 200만 위튜버였다. 물론 난 그 입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꿱꿱 소리 지르며 쌍욕을 하는 게 밈 같은 녀석인데 공부 좀 할 겸 봤다가 눈만 버렸다.

“걔가 얼마 전까지 우리 5세대 캡슐 광고 모델하기로 구두 합의까지 되었던 상태였거든. 우리 쪽에서도 이번 캡슐에 사활을 걸고 있던 터라 꽤 거액을 제시했지. 걔 소속사랑도 이야기 다 끝나서 일정까지 다 잡고 정식 계약서만 쓰면 끝나는 거였는데, 그 새끼가 갑자기 우리랑 계약 안 한다고 퇴짜를 놓은 거야. 알고 봤더니 우리랑 계약하기 직전에 상성 쪽이랑 계약을 해 버렸더라고… 개새끼.”

“좀 괘씸하기는 하네요. 그런데 그런 일은 종종 있지 않나요?”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안다. 내 물음에 이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 정도였으면 그냥 욕 한번 하고 끝냈겠지. 근데 그 새끼가 예전에 우리 회사에 방문해서 광고할 5세대 캡슐 써 보고는 최고라고 극찬을 하더니, 상성이랑 계약한 후로는 우리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생겼는지 방송에서 우리 회사를 자꾸 까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 알고 보니까 처음부터 그 새끼 우리랑 계약할 마음도 없었으면서 그냥 상성이랑 계약하는데 몸값 더 받으려고 이용한 거지. 덕분에 우린 일정이 죄다 밀려서 지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빌어먹을 놈, 내가 그 새끼한테 먹인 게 얼만데…….”

뿌드득…….

“아하…….”

이 부장님은 레드섹에게 원수라도 진 것처럼 이를 갈았다.

“근데 왜 저예요? 저보다 검증된 사람 많을 텐데…….”

제이텍이 그렇게 잘나가는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인지도 있는 업체다.

캡슐 협찬 걸고 모집하면 날고 기는 위튜버들 다 군침 흘릴 텐데, 그런 것을 나에게 제시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레드섹 그 새끼가 실력이 좋잖아.”

좋았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는 이 부장님이다.

“그래. 지금 그 반응이 내가 원하던 거야. 내가 보기에 넌 레드섹 정도는 발라 버릴 것 같거든. 어때? 대회 나가서 우리 회사 광고 달고 그 새끼 한 번만 밟아 주면 내가 책임지고 계약금 듬뿍 안겨 줄게.”

“하하하…….”

수천만 원짜리 캡슐 협찬에 계약금이라……. 이거 안 할 수가 없잖아.

“뭐, 그렇게 잘 봐주셨으니 거절할 수가 없네요. 그럼 가면서 세부 사항이나 조율하시죠.”

“좋아!”

* * *

“얘들아.”

“아빠!”

“아뿌아!”

레미와 레나가 달려와 테오 씨의 품에 안겼다.

“흐아앙! 아뿌아 미어! 열 밤 자고 온댔짜나아!”

레나가 조막만 한 주먹으로 아빠의 가슴을 연신 두들겼다.

“그래. 레나야.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 흐흑…….”

테오 씨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두 아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음… 콧등이 살짝 시큰하다.

덜컥!

“테오!”

문이 세차게 열리며 두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인 카렌 씨가 나타났다.

“여, 여보… 흑…….”

“흑… 흑…….”

떨면서 다가온 그녀가 테오 씨의 팔에 안기고 네 식구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조금 진정이 된 카렌 씨가 흑마법사의 폐허에 대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내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케이 씨, 이이를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카렌 씨가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레미와 레나의 아빠를 찾기 위해 움직였을 겁니다.”

내가 두 아이의 머리를 슥슥 문지르며 말하자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마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데 이 부장님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락이 내 허리를 쿡쿡 찔러 왔다. 거참 이 아저씨 어련히 말 안 해 줄까 봐.

“아참, 이쪽은 이번에 테오 씨를 구하는데 두 팔 걷고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아마 이분들 없었으면 흑마법사의 손에서 테오 씨를 구하는 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그러셨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포디나의 레인저 스트라이더 카렌 린드스턴 님을 도울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희 용병단은…….”

톡 건드렸을 뿐인데 누가 제이텍 영업 부장님 아니랄까 봐 말은 참 잘하신다. 아주 방언 터졌네.

“형, 아빠를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레미가 내 손을 꾹 잡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부럽구나.’

우리 가족을 파탄의 길로 이끌고 끝내 자살로 삶을 끝맺은 아빠라도… 날 보육원으로 등떠밀던 엄마도… 가끔은 보고 싶다.

* * *

“이것은 우리 위대한 신조길드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맞습니다! 이대로 좌시할 수 없습니다!”

“당장 우리의 오백 길드원을 움직여 놈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옳습니다. 끝까지 놈을 쫓아 추살해야 합니다!”

중국의 황실을 연상시키는 신조길드의 회의장에는 약 30여 명의 신조길드의 수뇌부들 성토의 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에 누군가는 가슴이 벅차오를지 모르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입장인 신조길드의 길드마스터 냥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후우, 그래서… 지금 오백 길드원 데리고 한국 세력권으로 진격해서 놈들을 죽이자고? 왕정,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나? 일레인. 최근 한국 놈들이랑 영지전 했던 거 교환비가 얼마였냐?”

그가 곁에 시립해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1:5였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5지?”

“예.”

“그래. 저번 영지전에서 한국 놈 하나 잡는데 동일 레벨 동일 장비 갖춘 우리 중국 유저 다섯이 필요했다는 통계가 있다. 근데 그놈들 잡으러 한국 놈들 영역으로 오백 길드원들을 돌격시키자? 그러다 놈들한테 찍혀서 계속 죽게 되면?”

보통은 숙소에 세이브 포인트를 마련하지만 야전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가 죽었던 자리에서 부활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온갖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긴 왕정 장로는 그런 경험이 있지.”

“그건 그때 륭 장로가 무리하게 깊이 들어가 고립되어 발생한 일 아닙니까?”

“아니! 내가 무슨 무리하게 들어갔다고 그럽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어서 들어갔는데 당신이 별동대로 받쳐 주지 않아 발생한 일 아니오!”

“당신? 륭! 네가 감히 나를 당신이라고 말한 거냐?”

그대로 놔두면 한바탕할 기세다.

한숨을 푹 내쉰 냥과가 태사의를 내리치며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만! 지금 우리가 싸우자고 모인 건가! 신조길드가 대국의 위상에 먹칠을 했다고 우리를 퇴출시켜야 된다고 다른 길드 놈들이 여기저기서 성토하고 있다! 그러니까 개인전 돌리는 놈들한테 다른 나라 자극하는 짓 좀 자제시키라고 했지?”

“험험…….”

“흠…….”

냥과의 호통에 할 말이 없는 그들이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자신들도 그것을 즐기던 이들 중 하나니까. 물론 길드를 빨리 키우고자 하는 욕심에 중뽕 이미지를 좀 써먹었을 뿐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 또한 그러하고… 문제는 지금 그 반대급부가 단순한 파도가 아닌 쓰나미가 되어 길드를 휩쓸었다. 케이라는 단 한 놈에게 인해 20렙 바닥부터 25렙까지 모조리 털리는 것으로…….

냥과는 무너진 길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놈에 대한 척살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백에 가까운 길드원들을 동원해 천라지망을 펼쳤다. 근데 고작 25렙 정도 되는 놈 잡으려다가 레벨 40대 길드원 스무 명 정도가 몰살당했다. 그것도 놈이 아니라 근처에 지나가던 한국 유저 놈들과 시비가 붙어서 말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는 경쟁자들이 이때다 하고 달라붙어 그를 물어뜯을 거다.

“골치 아프군.”

냥과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을 때였다.

콰아아앙!

맹렬한 폭음과 함께 길드하우스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린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이 침공했습니다. 으아악!>

<막아! 헉! 저것들은 뭐야!>

<기사단! 기사단을 불러라!>

<큭, 기사단은 전멸!>

<적이! 적이! 길드 하우스로 접근한다! 막… 으아악!>

길드 말은 이미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적이 대체 누구야!>

고작 일 분여가 지났을 뿐인데 길드말은 이미 아비규환에 빠져 있다.

기사단이 전멸하고 적이 길드하우스로 접근한다는데 아직 적의 정체도 파악을 못했다.

그때 귀신을 본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가 길드말을 통해 들려왔다.

<학살… 학살 공주… 달의 눈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맹렬한 폭음이 그들을 덮쳤다.

콰아아아아앙!

“으아악!”

“허억!”

중국 전통 양식으로 지은 길드하우스의 가장 심처에 위치한 간부회의실의 천장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아니… 그건 소멸되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리라.

쩌적… 쩍쩍… 쿠쿠쿠쿠…….

“허어…….”

“허…….”

간부회의실은 총 5층으로 이루어진 길드하우스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지붕이 사라지고 하늘이 보인다? 세이온 최강의 몬스터라 불리우는 마왕이라면 모를까 유저라면 이런 파괴력을 보일 수 없다.

“아니, 한 명 있지.”

조금 전 길드말을 통해 들려온 한 유저의 아명… 세계 모든 유저들의 적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 이름.

“학살공주 세스가 어째서…….”

타탁-

“글쎄? 어째서일까?”

“허어억! 다, 당신이 어떻게…….”

어느새 그의 옆에 내려선 아리따운 미녀가 그 하얗고 고운 섬섬옥수를 냥과의 머리 위에 올렸다. 그리고…….

파카카칵!

“으아아악!”

그녀는 마치 병뚜껑을 따듯 냥과의 머리를 뽑아 버렸다.

푸슉… 푸슈슈슉…….

뜯겨 버린 목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왜일까? 왜? 내가 여기 왔을까? 너희도 궁금하니? 그럼 우리 같이 알아볼까?”

그녀의 두 눈이 붉게 빛났다.

* * *

띠링~

[전직 퀘스트2- 테오 린드스턴을 구출하라] [완료]

-보상: 레인저 직업으로의 전직, 경험치 10,000exp, 100골드, 명예 점수 100점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함께 대량의 보상이 들어왔다.

“저 카렌 린드스턴은 포디나의 레인저 스트라이더로서 케이를 현 시간부로 포디나 레인저로 임명합니다.”

-직업: 레인저를 얻었습니다.

-레인저는 수색 정찰이나 매복, 선봉 공격, 색적, 기습 타격 등에 특화된 스킬과 능력치를 보유하며 가벼운 방어구와 검, 활, 함정에 특화된 클래스입니다.

[직업 보너스 능력치]

근력 +5

민첩 +10

지능 +5

의지 +10

생명력 +500

마나 +500

[직업 스킬] [전투 은신] [희귀 등급] 티어: -

-전투 중 30초간 투명화 상태가 되며 공격, 피격, 아이템 획득 시 투명화가 해제됩니다.

-이동속도 30% 저하

-쿨타임: 10분

-마나 소모: 없음

[직업 스킬] [검 마스터리] [희귀 등급] [패시브]

-검 계열 사용 시 공격력 10% 증가

[직업 스킬] [활 마스터리] [희귀 등급] [패시브]

-활 계열 사용 시 공격력 10% 증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케이 님이 해 주신 것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보답일 뿐이죠.”

테오 린드스턴과의 해후로 인해 아직도 눈물이 살짝 맺힌 카렌이 내게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포디나의 레인저는 포디나의 치안을 담당하며 평민들에 대한 법제적 특권을 가집니다.]

[포디나에 소속되어 활동할 경우 매달 20골드의 녹봉이 지급되며 포디나 내에서 상점 이용 시 20%의 할인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카렌 린드스턴의 휘하에 소속되었을 시 민첩 +10의 능력치 보정을 받습니다.]

‘엄청나네.’

레인저 관련 직업 스킬 세 개와 직업 보너스 능력치를 받고 나니 어째서 사람들이 좋은 직업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다.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없는 사람과 거의 10레벨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레인저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상당히 쓸모 있는 능력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게다가 직업이라는 건 원한다고 다 얻는 게 아니다. 세이온의 직업은 자리가 있어야 얻을 수 있다.

‘하, 전투 은신이 대박이네.’

위튜브에서 레인저 직업에 대해 찾아본 결과 레인저 직업을 얻는 이유 중 절반이 바로 이 전투 은신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스킬은 쓸모가 많았다. 흔히 은신 계열 스킬이 비전투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전투 은신은 전투 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은신 스킬이었다. 말마따나 불리한 전장에서 이탈해야 할 때 이보다 더 효율적인 스킬은 없다시피 했다.

또한 그 포디나에서의 혜택 무시 못 하는데, 만약 내가 포디나에 소속되어 레인저로 활동할 경우 평민에 대해서는 경찰과 같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거기에 녹봉도 지급되고 상점 할인 효과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만약 내가 포디나라는 도시영지를 근거지 삼을 생각이라면 이보다 좋은 건 없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난 포디나에 묶여 있을 수 없다.

‘포디나는 초보자 도시라서 주위에 고렙 몬스터 존이 없다. 30레벨까지는 어떻게 키운다지만 그 이후로 성장하려면 고렙 몬스터가 나오는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물론 내 선택이 정답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초보자 도시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퀘스트나 원정을 통해 경험치를 수급할 방법은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난 그런 정도(正道)를 걸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포디나 소속 딱지를 떼느냐가 문제구나.’

내 욕심이겠지만 난 카렌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포디나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날 임명한 카렌과의 관계는 십중팔구 나빠지리라. 내가 어떻게 하면 카렌과의 관계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 포디나 소속이라는 딱지만 떼어 낼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타탁… 탁탁탁!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카렌 님,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백작 각하의 영애께서 납치를!”

“뭐? 어떻게 그런 일이!”

“영애께서 몰래 성 밖으로 빠져나가셨다가 납치당하신 듯합니다.”

“적의 정체는?”

“치나 제국 놈들입니다!”

“이런!”

띠링~

[영지 퀘스트] 납치당한 소녀

-백작 각하의 영애 비앙카가 치나 제국의 첩자들에게 납치되었다. 치나 제국의 첩자들을 추적하고 영애를 구출하시오.

-보상: 경험치 5,000exp, 10골드, 명예 점수 100점

“가죠!”

“예!”

어쩌다 보니 영지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