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54화 (54/154)

54. 사투

세이온에는 예전부터 논란의 주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투구 이미지에 대한 찬반론이었다. 투구를 반대하는 이들은 투구를 쓰지 않더라도 머리에 대해 시스템으로 보호해 주기를 주장했다. 멋과 맵시를 포기할 수 없는 그들에게 투구는 최악의 걸림돌이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투구를 쓰지 않는 이들이다. 반대로 찬성의 입장은 인간의 모든 약점이 집약된 머리를 시스템이 보호하는 건 모든 고증에 철저한 세이온 입장에서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 전 온라인 게임부터 내려왔다는 이 논쟁의 승자는 당연히 투구파였고, 그 흔한 비키니 아머 한 벌도 허용하지 않는 세이온이기에 당연하게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투구를 착용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에든 투구 착용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처음에는 얌전히 투구를 착용했다가 고레벨이 되어 얼굴에 대한 방어가 확실해지면 마치 ‘고인물의 증명’이라는 양 투구를 벗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도 머리라는 게 달리긴 한지라 강력한 몬스터나 적과 싸울 때는 투구를 착용하지만, 그 외에는 가방에 넣어놓은 채 멋들어진 커스터마이징과 머리카락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명 ‘교통사고’라고 불린다.

“병신같이 대가리를 까고 덤비니 이 꼴이 되지.”

방금 내 데스레이에 뚜껑이 따인 이 녀석도 투구를 안 써서 뚝배기가 날아갔다.

손가락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데스레이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어느 자세에서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의 검과 광폭화를 쓰느라 50%까지 깎았던 생명력이 뱀파이어릭 오라로 슬금슬금 차오르기 시작한다.

“득템까지 했네.”

파밍하니 +8짜리 희귀급 창이 떨어졌다.

부활하면 피눈물을 흘리겠구만.

팍! 파팍!

화살이 날아왔지만 내 앞에 축 늘어진 머리 없는 기사 시체로 막아 냈다.

머가리만 따였을 뿐이지, 갑옷이 걸쳐진 시체는 훌륭한 방패 그 이상이다.

“다음은 너다 새끼야.”

내 옆구리에 바람구멍을 낼 뻔한 놈, 감히 나이트킬러 같은 비겁한 수단을 멋지게 사용하는 녀석! 그러나 녀석에게 단죄하기 전에 먼저 나를 향해 날아드는 세 명의 기사를 먼저 막아야 한다.

“이놈!”

“챠하!”

“죽어라!”

지이잉!

오러블레이드가 이글거리는 검을 치켜든 기사 셋이 내게 날아왔다. 난감하네.

사실 내가 여기 있는 놈들 중 가장 부담스러운 게 바로 이 셋이었다. 단순히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NPC 기사들이 사용하는 검술이 웬만한 유저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고급 검술이라는 것이다.

콰아앙!

쩌적쩍!

두어 차례 공격을 막아 내던 시체가 반으로 쪼개졌다.

몸을 뒤로 빼는데 시체를 다시 반으로 쪼개며 기사 하나가 날듯이 돌격해 들어왔다.

“얌마! 그래도 조금 전까지 너네 동료였는데! 그렇게 무참하게 쪼개냐!”

“닥쳐라!”

챙! 칵! 카카카칵!

마주한 듀렌달에 섬광이 튀긴다. 아무리 전설급 무기라지만 상대는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한다. 강화빨 덕분인지 오러블레이드는 사라졌지만 상대에게는 검술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츠칵! 츠카칵! 퍽!

“큭!”

검을 밀어 폼멜에 듀렌달을 걸어 돌리더니 밀고 들어와 팔꿈치고 머리를 후려친다.

내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서자 뒤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베어 올렸다.

챙! 퍽! 츠컥!

거침없는 연속 공격!

베어 오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후 가슴을 발로 차고는 곧장 날아 들어 듀렌달을 찔러 넣었다.

“큭!”

“윽!”

공격을 주고받았다. 복부를 찔린 기사가 뒤로 주춤 물러서지만 그 뒤를 날아 두 기사가 나를 덮쳐왔다. 둘의 합공을 피하는데 나이트킬러가 날아와 머리를 노린다.

이것들이 정말!

[어스 브레이크]

콰쾅!

“큭!”

“으음!”

어스브레이크에 맞은 여파로 뒤로 물러선 둘이 자세를 잡는다. 회심의 한 방이지만 별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또다시 오러블레이드로 막아 낸 것! 거참 성가시네!

팟!

또 한 발의 나이트킬러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계속 신경 쓰여서 전투에 집중을 못 하겠다.

“끙… 이대로는 안 되겠군.”

한차례 격돌을 한 감상은 역시나 NPC 기사들과 검술로 부딪히는 건 손해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저들 중에서도 무기술을 익힌 이들이 많았지만 실전성 가득한 NPC 기사들의 고급 검술에는 한 끗발 떨어진다. 물론 지금보다 레벨이 올라가면 유저들의 수준도 급등하기는 하겠지만 이들에 미치지는 못한다.

예전에 포디나에 있는 NPC 기사에게 대련을 부탁했던 적이 있었는데, 스킬 다 빼고 붙었다가 진짜 죽을 뻔했다.

NPC 기사들의 검술에는 반사 신경으로만 피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나마 대련이라 다행이지, 거기에 웬만한 공격은 몸으로 막아 내는 판금갑옷까지 걸치고 싸우게 되면 정말 난공불락의 성이나 마찬가지다.

“죽어라!”

“으아앗!”

그리고 지금 그 기사 셋이 허공을 솟구쳐 내게 오러 블레이드를 꽂아 오고 있다.

위이이이이잉!

달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블레이드에 나를 단숨에 쪼개 버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어쩔 수 없나.”

여러 가지의 선택지가 있기는 하지만 난 가장 확실한 것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이 판을 완전히 뒤엎어 버릴 그런 것을 말이다.

찌이익!

“오냐. 새끼들아.”

애초에 이 물건은 경매장에도 나오지 않는다.

[마법스크롤- 익스플로전] [전설] [8레벨]

대단히 비싼 촉매와 상급의 부여술, 상급의 인첸트 스킬을 유저가 아주아주 드문 확률로 뽑아 내는 것이 전설급 스크롤이다. 그것도 무려 8레벨의 익스플로전이니 지금처럼 퀘스트를 통해 얻는 게 아니면 꿈도 못 꾼다. 본래는 청동상에 사용해야 할 물건이지만…….

“NPC 기사 셋이면 싸게 먹히는 거지.”

반으로 찢은 스크롤이 화르륵 타오르며 백렬하는 불꽃이 되었다.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앙!

화염 계열 폭발성 주문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익스플로전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 불꽃이 얼마나 강렬한지, 한순간 주위가 대낮같이 밝아진 기분이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던지고 미친 척 도망쳐야 하는데, 지금은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폭발에 휘말린 셋은 청동상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쿠쿵…….

“커어억…….”

익스플로전에 휩쓸려 전신이 검게 그을린 기사들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현재 난 그것을 감상할 틈이 없다.

[진흙 방패]

쉬이이이익! 파악!

화염을 뚫고 날아온 나이트킬러가 어깨에 꽂혔다.

그래. 너도 처리해야지. 난 지금껏 아껴 뒀던 스킬을 발동시켰다.

“친위대 소환!”

“컹! 컹! 크앙!”

친위대 소환은 강한 상대에게는 일회성 방패밖에 안 되지만 기습적으로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얘들아! 다굴의 힘을 보여 줘라!

“저 새끼 물어!”

내가 손가락질하자 백구, 황구, 흑구가 단숨에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앙!”

“크라라락!”

“으어엇!”

갑자기 등장한 놀 세 마리가 달려들자 활을 든 기사가 당황해 검을 뽑으려 한다. 그렇게는 안 되지!

[데스레이]

삐이이이이! 콰아아앙!

“컥!”

검으로 황구를 베려던 기사의 검이 데스레이에 맞아 뒤로 날아갔다. 이로써 마나를 모두 써 버렸지만 아직 나한테는 듀렌달이 있다. 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세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스 브레이크]

내 어스 브레이크에 등짝을 맞은 기사 둘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뱀파이어릭 오라의 티어가 상승했습니다.]

[진(眞) 광폭화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오냐!”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메시지 알람을 들으며 비척거리고 일어나는 기사의 머리에 듀렌달을 꽂았다!

츠컥!

“후우…….”

가장 성가신 세 기사를 완전히 처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다.

“크앙! 크아앙!”

“깨깽!”

“캬아앙!”

구씨 삼형제는 NPC 기사를 필사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근본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놀이라는 종족이라 그 한계는 어쩔 수 없다지만 셋은 정말 열심히 NPC 기사를 공격했다. 고맙다 자식들아. 내가 빨리 멋들어진 장비 구해서 입혀 줄게.

팟!

“깨갱!”

NPC 기사의 검을 막아 내던 흑구가 끝내 반갈죽이 되어 역소환되었지만…….

콰직!

“큭!”

나 또한 놈의 가슴에 듀렌달을 꽂는 것으로 흑구의 원수를 갚았다.

“후우…….”

한숨을 돌리자니 군사지구 쪽에서 요란한 폭발과 함께 검은 화염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콰아아앙!

“잘 타네.”

화염 슬라임 기름의 효과인지 아니면 때마침 불어온 바람 때문인지 화제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쿠쿠쿠쿵…….

“응?”

그때였다. 가만히 잘 서 있던 청동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까 기사들이 익스플로전에 맞아 날아가 부딪혔는데 그것 때문인가?

쩌저적…….

“어라? 목이 박살 났네?”

띠링!

[히든 퀘스트] 카머슨 남작령으로 침투하여 카머슨 영지에 폭파공작을 수행하라. [완료]

-보상: 30,000exp, 100골드, 영지 공헌도 +100

-특별한 보상: 폭파 공작의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 [성과 집계 중]

[레벨업 하셨습니다.]

“오…….”

목이 부서진 것도 폭파로 인정되었는지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그럼 슬슬 도망쳐 볼까?”

임무를 모두 완수했으니 이제 탈출만 남았지만…….

“저기다!”

적들은 나를 호락호락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찾았다!”

척척척척척척!

내성 입구 쪽에서 남작의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다.

“하아, 너무 시간을 끌었나.”

추정 레벨 40~50대의 기사 다섯을 처리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할 정도의 전과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칭송해 줄 놈은 없어 보인다. 순식간에 몰려든 병사들이 나를 포위한다. 숫자는 어림잡아 수십은 될 것 같다. 다행히 기사는 보이지 않지만 병사도 이 정도면 사망 확정이다. 그때 한 병사가 내 주변에 널브러진 기사들의 시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럴 수가! 기사님들이!”

“기사님들이 당했어!”

“어떻게!”

나를 노려보는 병사들의 눈이 두려움에 물든다.

“히이익!”

내가 찌릿하고 노려봐 주자 뒤로 우르르 물러난다. 짜식들 겁먹었네.

하긴 지금 내가 꽤 건방지게 앉아 있기는 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가오는 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니까.

그건 그렇고 구씨 삼형제에게는 참 미안한다. 오랜만에 소환해 줬는데 아무래도 역소환될 것 같다. 그래도 뭐… 발악은 해 봐야지.

챙!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라.”

“크르릉… 컹컹!”

나와 함께 백구, 황구가 천천히 다가서자 병사들의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한다.

흠, 확실히 겁먹었네. 그렇다면…….

[광역 매혹]

팟!

날 중심으로 분홍색의 빛이 번쩍하고 퍼져 나가더니.

“으아악!”

채챙!

“뭐, 뭐야!”

광역 매혹에 걸린 다섯의 병사들이 주위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거침없이 창을 휘두르며 나를 포위하고 있던 전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좋아!”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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