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61화 (61/154)

61. 같은 팀이잖아

예상대로 방을 팠지만 제대로 된 도전자는 없었다. 간혹 호기심에 들어오는 사람은 있지만 레디는 누르지 않은 채 기웃거리다가 나가기 일쑤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난 랭킹 1위인 천공제를 꺾었다. 중국 애들이 아무리 얼굴이 두껍다고 해도 캐삭빵을 해 놓고 도망친 천공제 때문에라도 덤비기 힘들 것이다. 현재 시청자들의 숫자는 무려 3만 명. 모두가 내가 500연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오네요. 파킨이 말한 대로 약한 유저 안 잡고 기다리는데…….”

-파킨? 그 개새끼 이름이 왜 나옴?

-그냥 빨리 500연승 찍으세요.

-무슨 일 있음?

-https://www.wetube.com/watch?v=vZBHk8Oodic

-헐, 이 색끼 지가 뭘 안다고 이따위로 말함?

-맞아요. 케이 님 위튜브 채널 조금만 봐도 죄다 중국 작업장 약탈자들이랑 싸운 것밖에 없는데.

-케이 님 상처 많이 받은 듯.

-그 새끼 어그로충임. 나이 먹어서 감 떨어지니까 입도발만 신나게 함.

-그래도 그 새끼 조심해야 하는데…….

“그냥 500연승 마무리 지을게요. 기다려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

파킨을 좀 더 씹고 싶지만 이상하게 반응이 없어 투기장에 들어가 곧바로 아무나 찍고 500연승을 달성했다.

파아앗!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예전에 업적을 얻었을 때보다 좀 더 강렬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역시 아무나 하는 업적이 아니기에 500연승은 특별하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500연승의 업적으로 내가 얻은 것은 투기장의 제왕만이 아니었다.

[업적 투기장의 제왕 [전설 등급]을 획득하였습니다.]

-단체전 100연승, 개인전 500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PVP 시 공격력 100% 상승

-PVP 시 방어력 100% 상승

무려 모든 공격력, 방어력이 100%씩 올라가는 업적이다. 내가 기쁨에 환호성을 터뜨리려 할 때였다. 다시 한번 빛이 터져 올랐다.

[업적 불멸자 [신화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사망하지 않은 채 단체전, 개인전 500연승을 달성했습니다.

-체질: 불사지체를 획득하였습니다.

-태고의 신비: 속성 저항이 자연력 저항으로 전환되며 항상 MAX가 됩니다.

-불사의 권능: 생명력이 1 이하로 떨어졌을 시 불사의 권능이 발현합니다. 60초간 모든 피해에 면역이 되며 회복 도구를 사용 시 사망하지 않습니다- 쿨타임 1시간

-불멸자의 사명: 사망 시 업적 삭제

“허…….”

투기장의 제왕 업적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멸자라는 업적까지 얻었다. 투기장의 제왕의 업적도 엄청났다. 무려 모든 공격력이 두 배씩 상승하는 거니까. 그러나 아무리 투기장의 제왕이라도 단 한 번도 죽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불멸자라는 신화 등급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도 있었어? 이건 거의 불사신이잖아.’

불사의 권능이라는 버프의 피해 면역이라는 건 생명력뿐만 아니라 아예 부상까지 당하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생명력이 1 이하로 떨어질 피해를 받았을 때 생명력을 1 이상으로 올리고 부상만 치료한다면 다시 살아난다는 뜻. 이 정도면 거의 밸런스 파괴급 업적이었다. 거기에 태고의 신비라는 건 얻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직업 중 드루이드 계열이 가지는 1티어급 효과였다.

자연과 소통하는 드루이드는 각종 속성들에 대해 자연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드루이드라는 클래스를 얻는 이유가 이 ‘태고의 신비’라는 직업 스킬 때문이었는데,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복잡하게 속성 저항을 올릴 필요 없이 태고의 신비 스킬만으로 속성 공격 방어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게 MAX라는 건 이제 각종 속성 공격에 거의 최대치의 방어력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의 단어가 거슬린다.

‘사망 시 업적 삭제’

사망하면 업적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스킬이터 때문에 죽는 것에 민감한데 업적까지 이런 게 떠 버렸다.

‘진짜 죽으면 말짱 황이구나.’

세이온은 사망하기 참 쉬운 게임이다. 막말로 눈먼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다수가 덤비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스킬이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운이 따라 줘서 가능했는데, 불멸자 업적 때문에라도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그때 사람들의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케이 님! 투기장의 제왕 옵션이 뭔가요?

-500연승 업적 옵션 좀 가르쳐 주세요!

-이봐요!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세이온에서 금기인 거 몰라요? 진짜 매너가 없어!

-왜요? 케이 님 밝히겠다고 했었음!

-밝히든 안 밝히든 그건 케이 님 의사잖아요! 막말로 웬 약탈자가 와서 당신 레벨 몇이야 하고 물으면 말해 줄 거예요?

-그건 에바쎄바참치꽁치…….

-아, 모르겠고 빨리 업적 옵션 밝혀라!

하나같이 500연승 업적을 알고 싶어서 아우성이다. 하긴 지금까지 얻은 사람이 나까지 세 명뿐이고, 또한 얻은 두 명이 업적 옵션을 알리지 않았으니 궁금하기도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내 500연승은 그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다. 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까. 물론 가장 먼저 500연승을 한 우리나라 린지 길드의 ‘제왕’ 또한 나와 비슷하지만 그는 세이온에 빌딩 한 채값을 쏟아부은 것으로 유명했다. 두 번째 500연승의 중국 1위 길드의 신령이라는 놈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노골적으로 밀어 올려진 것으로 유명하고. 아무튼 예전에 투기장의 제왕 옵션을 공개한다고 밝혔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물론 가볍게 밝힐 수는 없다. 이게 얼마나 귀한 정보인데…….

“투기장의 제왕 옵션은 위튜브에 올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올릴 테니 구독과 좋아요 부탁 드려요.”

-으아아아!

-씨발! 궁금해 죽겠다고!

각종 후원이 폭탄처럼 터지며 내 입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미안하게도 지금은 위튜브를 키워야 한다. 아… 10만 구독자 실버 버튼이 곧 도착한다고 하던데……. 실버로는 성이 안 찬다. 흠, 그건 그렇고 파킨은 왜 잠잠한지 모르겠다.

* * *

파킨이 왜 잠잠했는지는 다음 날 알 수 있었다. PT를 다녀온 내게 혜미 누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현아. 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왜요?”

“나한테 이런 메일이 왔거든.”

누나는 내게 메일 하나를 열어 보여 줬다. 보낸 이는 파킨이었는데 그 내용은 아프리카 비제이들은 세이온에서 나와 합방을 하거나 컨텐츠를 진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완전히 협박성 단어로 가득 찬 메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누나는 집에 다녀온다고 방송을 쉬어서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어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누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멍청아. 그냥 듣고 넘기면 되지. 왜 그걸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그 사람이 공중파에서 있지도 않은 사실로 물어뜯으니까.”

“바보니? 그런 일은 이 바닥에서 흔해.”

“흔하다고 해서 나까지 당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상대를 좀 보고 덤비라는 거야! 걔가 마음만 먹으며 너 생매장시킬 수 있는 거 몰라?”

“비제이들끼리 이런 짓도 해?”

“후… 그보다 더한 짓도 하고 파킨 그 새끼가 그런 짓의 선두주자야. 파킨이 원래는 뻐킹이라는 단어였다고… 온갖 더러운 짓거리 다 하고 다니면서 걸리면 죄송하다 석고대죄 똥꼬쇼 하고, 며칠 방송 정지당하고 슬그머니 복귀해서 또 그런 짓 하고……. 오죽했으면 플랫폼에서도 걔 못 건드려.”

“몰랐네.”

진짜 몰랐다. 솔직히 내가 게임 방송이라는 것을 시작할 줄도 몰랐고, 진로를 이렇게 잡을 생각도 없었기에 평범하게 위튜브 보면서 공부한 게 다다.

“설마 누나한테도 피해가 가는 거야?”

내 물음에 혜미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내가 너랑 관련 있는 게 안 밝혀져서 그렇지, 파킨 쪽 라인에서 알게 되면 나도 방송 생명 끝이야. 예전에도 그렇게 밉보인 애들 걔가 다른 애들한테 압력 넣어서 방송 인생 끝장낸 거 여러 번 듣기도 했고 내가 직접 본 것도 있으니까.”

“하… 진짜 속 좁은 새끼네.”

자기는 공중파에서 말도 안 되는 루머로 나를 음해해 놓고서 방송에서 자기를 몇 번 언급했다고 방송이 아니라 인맥들을 동원해 나를 말려 죽이려고 한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방송을 켜고 이 사실을 폭로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짓은 오히려 놈이 바라는 것이다.

잠시 나무윅키로 녀석에 대해 검색해 본 결과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팬덤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팬덤 자체가 파킨의 그런 행동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폭로를 해 봤자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타격은 받지 않는다는 것.

“내 잘못이네.”

요즘 좀 잘나간다고 헛바람이 들어서 적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날을 세웠다. 상대가 가진 무기가 뭔지도 모르고 덤벼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가소로웠겠는가. 그러나 그 전에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다.

“미안, 누나.”

“뭐가.”

“내가 진짜 멍청한 짓을 했어.”

“알긴 아네. 이제 파킨 녀석이 자기 추종하는 애들 선동해서 계속 네 방송 방해할 거야. 그뿐이면 다행이게. 걔 말 한마디면 60대 70레벨 약탈자 놈들이 네 현상금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덤벼들걸. 어제 반응 없었지?”

“응.”

“사람들은 파킨이 다혈질적이고 성격이 급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고를 많이 치고 또 그걸 수습하면서 피드백 해서 신중하게 움직여. 아마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너 죽이려고 들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 혼자서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누나 말대로라면 파킨은 묵을 대로 묵은 구렁이다. 세이온에서 붙는다면야 갈기갈기 찢어서 깃대에 걸어 줄 자신이 있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면에서 밀린다. 그러나 내게는 함께 고민해 줄 사람들이 있다. 내 물음에 툴툴거리던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어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미친 듯이 레벨업.”

“음, 레벨업?”

“그래. 쉬워 보이니? 전혀 안 쉬울걸? 파킨이 너한테 현상금 걸고 특급 살수를 보낼 거야. 네가 어디로 도망가도 널 추적할 인맥이 있는 게 파킨이야. 넌 그런 놈의 견제 속에서 커야 한다고. 최소한 50레벨, 최대 60레벨 찍기 전까지는 미친 듯이 레벨업만 해. 아프리카 방송도 잠시 접고. 그 새끼 네 방송 보면서 널 세포 단위로 분석해 댈 테니까.”

“알았어. 근데 돈은?”

난 가장 중요한 것을 입에 올렸다. 시청자를 돈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방송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꽤 많이 벌기는 했지만 50~60레벨까지 올리려면 아무리 미친 듯이 레벨 업을 해도 서너 달은 걸릴 것이다.

“아프리카 방송은 자제하는 대신 위튜브로 수익 창출을 해 보자. 그건 편집을 통해 전력 노출을 최대한 줄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나 상도 오빠나 광수 오빠가 너 레벨업 하는 동안에 최대한 뛰어 볼 테니까 넌 걱정 말고 레벨업만 해.”

“알았어. 고마워 누나.”

“뭘, 우린 같은 팀이잖아.”

“팀…….”

누나의 팀 말에 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 실수로 자신의 밥줄이 흔들릴 위기인데도 날 생각해 주는 누나다. 그리고 그건 상도 형이나 광수 형도 다르지 않다.

“방송에 공지는 올려. 파킨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하지는 말고 간접적으로만 슬쩍 흘리고…….”

“흘려도 돼?”

긁어 부스럼 만들었는데 거기를 다시 긁으라는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네 시청자 큰손분들도 움직일 명분을 드려야지. 특히 아주 무서운 분 하나 계시잖아.”

“아.”

누나의 말에 난 아이디 하나를 떠올렸다. 음음… 확실히 그분이 움직인다면 파킨도 긴장 좀 하리라.

* * *

“준비는 끝났나요?”

“네.”

카렌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의 장거리 원정이니 만큼 난 돈을 아끼지 않고 가방을 채웠다. 특히나 이제 내 전투에는 사망이라는 선택지가 완전히 사라진 만큼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소모품으로 가득 채웠다. 덕분에 내 골드가 두 자릿수가 되어 버렸지만 상관없다. 500연승을 달성했던 신화급 업적을 얻었건 지금 내게 놓인 과제, 바로 레벨 업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렌과 나는 내성 지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좁디좁은 통로를 지나 얼마를 걸었을까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방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영지 마법사가 에메랄드가 박힌 지팡이를 든 채 중앙에 그려진 마법진 옆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카렌 씨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영지 마법사는 대부분 영지를 지배하는 귀족의 조언자로써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말론’이라는 마법사 또한 그런 인물로 남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 마법진은 블루 포레스트로 이동시켜 줄 포탈로 포디나 백작의 명이 아니면 절대 운용되지 않을 보안 시설이다.

“포탈에 가서 서게.”

“예.”

말론에 말에 따라 카렌 씨와 난 가운데 그려진 마법진으로 걸어 들어갔다.

“포탈을 기동하는 중에 혹 원에서 벗어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니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말론의 주의를 들은 난 카렌 씨와 함께 마법진 중앙에 꼿꼿이 섰다.

“아슈람 다 카브람…….”

말론의 지팡이 끝에 박힌 큼지막한 에메랄드에서 빛이 뿜어지며 포탈이 환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가운데 박힌 육각형의 선을 둘러싼 세 개의 원이 천천히 엇갈리듯 회전하더니 잠시 후 공중으로 떠올라 카렌 씨와 나를 감쌌다.

“드아룬 네 카마네 옴!”

말론의 목소리가 공간을 왕왕 울리더니 어느 순간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슈우욱!

내 몸은 어느샌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거대한 고목들 중앙에 위치한 마법진 가운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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