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62화 (62/154)

62. 일본 사냥

“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뻗어 오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은 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장정 여러 명이 둘러싸도 다 안지 못할 굵은 줄기들 사이로 비치는 푸른빛으로 바닥에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블루 포레스트…….”

어째서 이곳이 푸른 숲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 흔히 이런 거대한 나무가 빽빽한 곳은 햇빛이 잎과 줄기에 가려져 일몰 때처럼 어둡기 마련인데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햇살이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며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가져다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조심해요, 케이 씨. 이곳의 몬스터들은 지금까지 당신이 상대한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까.”

“예.”

그 흔한 사슴 한 마리 보이지 않지만 카렌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서둘러 이동하죠. 아참, 따라올 때 내 뒤만 쫓아야 해요. 자칫 한눈팔면 아예 길을 잃어버리는 곳이니까.”

“안 그래도 느끼는 중이네요.”

타탁!

카렌이 앞서 달리기 시작하고 난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아 뛰었다. 그렇게 얼마를 뛰었을까 갑자기 두 명의 인영이 우리 앞에 뚝 떨어졌다.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긴 귀가 인상적인 엘프다. 전형적인 등장이기는 한데 느껴지는 살기는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다.

“돌아가라! 인간!”

“저는 코라왕국 포디나 백작님의 명을 받은 카렌 린드스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부하인 케이입니다.”

짧은 자기소개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카렌의 말은 의외로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카렌 린드스턴? 설마 예전 나비 계곡의 사이클롭스를 몰살시킨 거인 추적자?”

경고하던 여자 엘프가 성큼 다가섰다. 물빛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다가온 그녀가 카렌의 머리카락을 잡아 코에 가져다대고는 킁킁거린다. 왜 갑자기 냄새를 맡지?

순간 눈을 번쩍 뜬 여자 엘프가 눈이 반짝하며 외쳤다.

“맞구나. 카렌!”

“저를 아시나요?”

“나야. 루네!”

이번에는 카렌 씨가 놀랐다.

“설마 버섯둥지 마을 피리나무 루네?”

“맞아! 맞아!”

“어떻게 여기에!”

“너야말로 어떻게 온 거야!”

조금 전 살기를 뿜어내던 것이 무색하게 환한 표정으로 카렌을 반긴다.

“너무 변해서 못 알아봤어!”

“저는 인간이니까요. 루네는 예전 그대로네요.”

조금 전까지 화살을 겨눴으면서 무슨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서로 대화를 나누기 바쁘다. 내가 루네라는 엘프 옆에 서서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남자 엘프에게 슬쩍 고개를 숙이자 마치 오물을 본 것처럼 고개를 획 돌린다.

엘프들은 친구에게는 무척이나 살갑지만 그 외에는 경계한다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다.

“그런데 세계수를 지키는 센티넬인 당신이 어째서 문을 지키고 있는 거죠?”

“더러운 인간 남자들 때문이지.”

루네가 날 노려본다. 아니, 왜 인간 남자라고 말하면서 날 노려보는데?

루네의 말을 들어보면 오래전부터 블루 포레스트의 푸른바람엘프 종족은 누네 왕국과 교류해 왔다고 한다. 인접하기도 했거니와 누네 왕국의 건국왕인 누네 1세의 여인 중 엘프의 지도층인 하이엘프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누네 왕국은 대대로 이종족인 엘프에 대해 보호정책을 펼쳤고, 때로는 외적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다.

엘프의 보호를 위해 그들의 보금자리인 블루 포레스트는 인간의 출입 금지 구역이었고, 그것은 지금껏 잘 지켜져 왔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누네 왕국의 모험가들 중 일부가 서서히 블루 포레스트에 침투해 들어왔다. 처음에는 엘프들도 경계했지만 골치 아픈 몬스터들을 대신 처치해 준다던가 혹은 엘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해다 주자 점점 신뢰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엘프의 신뢰의 상징인 ‘엘프의 친구’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블루 포레스트를 출입하는 모험가들이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불미스러운 일들이 속속 터지기 시작했다. 여자 엘프에 대한 성희롱을 시작으로 아직 성인식도 거치지 않은 어린 엘프들을 성추행하는 놈들까지 나오자 푸른바람엘프는 뒤늦게나마 인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블루 포레스트로의 침입도 차단해 버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본색을 드러낸 모험가 무리들이 엘프 사냥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세계수를 지켜야 할 센티넬들이 외곽 경계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카렌, 그런 이유로 네 부하는 들어갈 수 없어.”

“내가 보증한다고 해도 안 될까?”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장로 회의의 결정이야.”

장로 회의의 결정은 절대적이다. 천 년 이상을 살았다는 하이엘프로 구성된 장로 회의에서 막말로 오늘부터 인간을 보이는 대로 학살하라고 명이 떨어지면 그날로 이 근방은 피바다가 된다고 알고 있다. 물론 오픈한 지 고작 반년 된 게임에 진짜 천 년을 산 하이엘프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결론만 보면 내 에픽 퀘스트는 심대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 분명하다. 빌어먹을… 일본 변태 새끼들…….

“으음…….”

난처한 표정의 카렌이다. 우리가 포디나로 돌아가려면 포탈을 사용할 때 푸른바람엘프족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카렌만 아니었으면 난 여기서 벌집이 되어 쓰러졌을 것이다. 게다가 카렌은 포디나 백작의 명을 받고 온 몸이다. 나 때문에 그것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인 거다. 난감해하는 카렌에게 내가 말했다.

“카렌 씨,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여긴 케이 씨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사는 곳이에요. 이런 곳에 케이 씨를 혼자…….”

말끝을 흐리는 카렌이다. 그렇지만 이건 카렌이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블루 포레스트의 몬스터 레벨이 100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근방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평균 레벨은 50레벨이었다. 블루 포레스트의 심부로 들어가면 100레벨대의 몬스터가 나온다는 거지, 전부 100레벨은 아니라는 소리다.

“걱정 마세요. 명색이 포디나 레인저 아닙니까. 이 근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내 대답에 잠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무기인 활과 활통을 내게 건넨다.

“받으세요. 저는 안에 들어가면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활을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웬만큼은 쓸 수 있지만 엑티브 스킬이 없는 이상 활은 보조무기일 뿐이다. 그러나 카렌 씨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주는 거예요. 이 활로 그동안 실력을 쌓아 주세요. 참고로 이 활통은 1분간 형상이 유지되는 무한의 화살을 생성시켜 줘요. 보급 받기 어려운 곳인데 화살이라도 넉넉해야죠.”

으음,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무기들인데… 설마 탈나는 건 아니겠지.

“명령입니다.”

“예.”

명령이라고까지 하는데 안 받을 수는 없잖아?

[+10 푸른바람의 장궁][전설급][거래 불가]

-푸른바람엘프족의 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명품이다.

-공격력 50(+50)~200(+200)

-내구도 200/200

-옵션: 가이디드 에로우

-발사된 화살이 주변의 적을 추적하여 공격한다.

-추적 가능 거리 300m

-소모 마나: 200

-쿨타임: 30초

[무한의 활통][희귀급][거래 불가]

-코라 왕국의 마법사 에스더가 만든 마법의 활통

-옵션: 1분간 유지되는 마법의 화살 무한 생성

-소모 마나: 화살 1개당 1

이전에 받았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들이다.

그때 카렌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루네라는 여자 엘프가 자신의 망토를 벗어 내게 건넸다.

“카렌이 자신의 무기를 줄 정도로 신뢰하는 인간이라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받아라. 이걸 걸치고 있으면 최소한 엘프들과 정령들의 공격은 받지 않을 거다.”

이전의 표정이 ‘벌레 보듯’이었다면 이젠 그래도 ‘분리수거쓰레기’ 정도의 표정이다. 뭐, 그래 봤자 오십보백보지만…….

[푸른바람엘프족의 망토][희귀]

-방어력 50

-푸른바람엘프족이 사용하는 망토다.

-옵션: 은신 효과 +50%

이전에 사용하던 경멸의 망토보다 방어력은 낮지만 그 자체의 의미와 옵션은 훨씬 괜찮은 망토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흥. 네가 죽으면 카렌이 슬퍼할 것 같아 주는 것뿐이야.”

콧방귀를 뀐 루네가 카렌의 어깨를 툭 치며 턱짓을 한다. 고개를 끄덕인 카렌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엘프들을 만나 제 이름을 대세요.”

“알겠습니다. 아! 카렌 씨 물어볼 게 있는데요.”

“물어보세요.”

“혹, 제가 블루 포레스트에 침범하는 인간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확히는 푸른바람엘프족을 위협하는 인간들이요.”

코라 왕국과 베소 왕국은 동맹으로 맺어진 국가였다. 아무리 블루 포레스트를 침범한 이라도 동맹의 국민을 죽이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예 점수가 깎이는 일이다. 그러나 내 물음에 카렌 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죽이세요.”

“예.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카렌이 잠시 후 루네라는 엘프와 함께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 * *

혼자가 되었다. 그것도 무려 포디나도 아닌 전혀 생소한 곳의 100레벨대 지역에 혼자 고립되었다. 인간의 마을도 멀고, 간다고 해도 환영받을지 의문이다. 난 32레벨의 쪼렙 간신히 넘긴 유저일 뿐이니까. 포디나에서 비싼 돈 들여 사 온 반영구적인 안전지대가 있기는 하지만 사방이 적이다. 엘프들이 공격하지 않는다지만 그 외에는 모조리 적인 것이다.

“뭐, 나쁘지 않네.”

장비를 수리할 도구도 잔뜩 사 왔고 소모품도 한가득이다. 게다가 카렌 씨에게 받은 활과 활통 그리고 루네라는 엘프가 준 망토는 내게 지대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걱정한 건 하나뿐이었고, 그 걱정의 대한 답을 조금 전 카렌 씨가 해 줬다.

“약탈자가 안 된다는 소리지.”

약탈자에서 자유롭다는 건 앞으로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아주 편해진다는 소리다.

지잉~

“와우, 역시 5세대.”

시야 한쪽에 곧바로 열리는 파란색 창에 난 빙그레 미소 지었다.

5세대 캡슐에는 수많은 기능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인 게임 내에서 현실과 마찬가지의 인터넷을 포함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난 누나가 새로 작성해 준 공략집을 열었다.

‘약탈자 고인물 되는 법’

난 이제부터 약탈자가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경험치 약탈자로써 말이다.

“후후후…….”

누네 왕국은 일본 유저들이 가장 많이 스타트로 시작하는 나라였다. 당연하게도 일본 유저가 가장 많았고, 일본의 국민성이 드러나는 사건사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위튜브를 장식하는 게 베소 왕국이었다. 세이온이야 원래 모든 것이 자유인 성인 게임이니 성행위야 그렇다 치자.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AV 선진국 국민 아니라고 할까 봐 세이온을 하는 유저들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각종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컨텐츠가 넘쳐나는 게 일본이었다. 강간이 애교에 불과할 지경이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유저&유저 or 유저&NPC or 유저 & 몬스터 or 몬스터 & NPC 별의별 설정극에서부터 범죄, 사냥까지……. 아주 창의력 대장들의 세상이 세이온의 일본 유저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위튜브에서 쫓겨난 일본 비제이들은 성인 방송 플랫폼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들어가 보면 수백 개의 세이온 라이온 성인 방송이 눈을 어지럽힌다.

“무려 100만 원을 썼단 말이지.”

세이온에서 벌어지는 온갖 변태적 영상을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VVIP 정액권을 사느라 피 같은 돈 100만 원을 썼다.

검색: #블루 포레스트#푸른바람엘프

스크린 키보드의 엔터키를 누르자 수백 개의 LIVE 방송이 검색되었다.

“어딜 먼저 가야 하나.”

내가 지독한 길치기는 하지만 이럴 경우를 대비해 가져온 게 있다.

[길 찾기 막대] [100/100]

-원하는 지역의 이름을 적어 막대를 바닥에 떨어뜨리면 해당 장소로 안내해 준다.

유료 상점에서 5만 원에 파는 소모품이다. 유저 개고생하라고 그 흔한 오토맵도 안 만들어 준 주제에 이딴 걸 5만 원이나 받고 팔다니. 그 분노를 고객센터에 욕 한 됫박 퍼붓는 것으로 풀고 싶지만 그래 봤자 CTRL-C, V 한 안내문이나 받을 테니 그 분노는 나를 이 외진 동네까지 오게 만든 일본 유저들에게 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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