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65화 (65/154)

65. 대량학살전

“보고하도록.”

“음살대는 블루 포레스트 근처에서 대기 중이고 공격대는 네다섯 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좋아. 방송을 통해 공격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건?”

“무난합니다.”

“계획은 숙지하고 있겠지?”

“예. 음살대가 엘프들을 공격하고 있을 때 귀문과 유저들이 모인 공격대가 음살대를 괴멸시켜 엘프들을 구하고, 그 엘프들을 통해 푸른바람엘프족과 대화를 시작한다. 이 일의 사죄의 뜻으로 엘프들에게 많은 물품을 공여하고, 그것을 시작으로 거래를 터서 궁극적으로 엘프들과의 거래선을 확립한다는 것입니다.”

“좋아. 확실히 알고 있군.”

현재 길드 차원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대장님.”

“뭐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사용하는 겁니까? 어차피 엘프들과의 우호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고, 계속 진행되었으면 충분히 평화로운 방법으로 푸른바람엘프들과 교류할 수 있었을 텐데…….”

“음, 자네 이쪽 공작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됐나 보군.”

“예. 나호른 자작령에 지원 나가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모를 만하지.”

대장이라고 불린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부하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정상적인 방법이었다면 그대로 흘러가게 놔뒀을 것. 그러나 여기에 엘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길드의 이익이라는 요소와 빠르게 친밀도를 올리는 심리적인 방법이 끼어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 천황 길드가 베소 왕국 내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일반 유저 놈들이 푸른 바람엘프족들을 우호도를 높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지. 그래서 놈들이 엘프들과 쌓은 친밀도를 떨어뜨림과 동시에 그걸 이용해 우리 길드의 우호도를 단숨에 올리려는 거다.”

푸른바람엘프족과의 교역은 돈이 된다. 지금도 조금씩 베소 왕국으로 흘러들어오는 푸른바람엘프족이 블루 포레스트에서 생산하는 각종 희귀 재료들이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교역이 가능한 건 ‘엘프의 친구’라는 칭호를 지닌 소수였고, 천황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그들을 배제하고 길드가 푸른바람엘프족과의 제1 교역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음살대가 쫓는다 해도 그 엘프 토벌대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블루 포레스트 외곽이라고 해도 숲입니다. 만약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후후, 숲에서는 엘프를 쫓을 수 없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맞는 말이야. 그렇지만 그 음살대의 대주 녀석은 엘프들을 추적할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스킬을 하나 보유하고 있지.”

“치명적인 스킬 말씀입니까?”

“그래.”

대장은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 일은 철저한 기밀이다. 특히 엘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저들과 우리의 관계는 최악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정보의 통제에 최선을 다하도록!”

“알겠습니다.”

* * *

“케이 님.”

“히잉…….”

엘프 꼬맹이가 내 바짓단을 붙잡았다. 설정상으로야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지만 꼬마가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바라보니 가슴이 따끔거린다. 하긴 생각해 보니 라리엘이 없으면 반복 퀘스트도 못한다. 물론 이제 끝물이라 반복 퀘스트가 더 뜰까 싶기도 하지만

“같이 가죠.”

“헤헤…….”

“그렇게 알고 저는 잠시 쉴게요.”

“넷!”

이야기를 마친 난 로그아웃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쩝, 맨날 혼자 먹네.”

누나도 지금 한창 방송을 할 때고, 상도 형이랑 광수 형은 흥신소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에 이 시간에는 항상 나 혼자만 집에 있다. 뭐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혼자 밥 먹는 것으로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돈 벌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역시나 우리 크루가 하루 한 번쯤은 같이 모여서 밥 먹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나 세이온 안에서 빨리 강해져서 인지도를 쌓아야 한다.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고 물을 부은 후 게임에 접속했다. 푸른 거목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보이는데 이상하게 주위가 웬일로 조용하다. 안전지대에 있어야 할 엘프들이 안 보이는 것.

“음?”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싶지만 안전지대를 펼쳐 놨기에 몬스터가 꼬일 리 없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콰콰쾅! 쾅! 콰쾅!

멀리서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꽤나 먼 거리 같은데 문제는 블루 포레스트 쪽이 아닌 반대쪽에서 들려왔다는 것이다. 여섯이 가진 전투력은 상당하다. 웬만한 유저 파티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텐데 밀렸다는 건 그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라는 뜻이다.

“꺄아악!”

멀리서 발육부진 꼬맹이 엘프의 비명 소리가 들린 순간 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뛰어 올랐다.

* * *

“몰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하하하, 생포해라.”

여섯의 엘프를 둘러싼 원형의 바리케이트가 서서히 좁혀 들어온다. 가볍디가벼워 나무 위를 평지처럼 뛰어다닐 수 있는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의 머리 위에는 거미줄 같은 하얀 빛무리가 뒤덮여 있었다.

“으윽! 어떻게……!”

무릎 꿇은 라리엘은 품안의 작은 엘프를 감싸며 자신의 안일함을 자책했다.

인간들이 접근하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다른 엘프들과 함께 곧바로 몸을 숨겼다. 기습을 당한 것이라면 모를까 숲에서 엘프가 몸을 숨기고자 마음먹으면 찾을 수 있는 이는 얼마 없다. 그러나 그녀의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믿을 수 없게도 인간들은 자신들을 정확히 추적하고 있었고, 퇴로마저 차단한 상태였다. 거무스름한 가죽갑옷을 입은 날카로운 눈빛의 사내가 뚜벅뚜벅 앞으로 나섰다.

“감히 나 귀문의 일인인 혼다의 눈에서 벗어나려고 하다니 가소롭구나. 후후후…….”

“맞습니다. 엘프들이 숲에서 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혼다 님의 손바닥 안이죠.”

간사한 표정의 사내가 혼다의 옆에 다가서며 말했다. 음충맞은 눈빛으로 엘프들의 전신을 훑는 것이 마치 독사의 그것 같다.

“어떻게 할까요? 대주.”

“당연히 즐겨야지. 이것들이 오늘 음살대의 목숨값이니 말이야. 크크큭.”

지금 이곳에 있는 오십의 음살대는 길드의 시나리오에 의해 척살을 당할 입장이었다.

귀문 길드의 주도로 만들어져 곧 이곳으로 출발할 공격대에 포함되어 있는 푸른바람엘프족 장로의 딸인 세리엘이라는 엘프가 그 증인이 되어 줄 것이고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자신이 푸른바람엘프족을 납치하는 일명 ‘엘프사냥꾼’들을 귀문 길드와 함께 척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천황 길드의 간교한 계략이었다.

“흐흐흐, 그럼 어디 맛 좀 볼까?”

쫘아악!

“꺄악!”

성큼 다가선 혼다의 칼날 손톱에 라리엘의 상의가 찢어지며 뽀얀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다가섰다.

“크크큭…….”

“우리 음살대 오십 인을 상대하려면 고생 좀 할 거야.”

“난 이쪽 귀여운 녀석을 맡지.”

라리엘이 끌어안고 있던 어린 엘프에게도 음습한 욕망의 손길이 다가간다.

“더러운 인간…….”

라리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모든 것을 체념하는 순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엘프를 향해 손을 뻗던 음살대의 머리가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퍼어어어어엉!

“어…….”

“어?”

강렬한 충격파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가 되었다.

단 한 방에 머리가 박살 났다. 이곳에 있는 음살대가 아무리 시나리오상 희생양으로 꼽힌 2진이라고 해도 레벨 50에서 60대에 일본 제일 길드의 일원이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를 한 방에 박살냈다는 건 그만큼 적이 강력하다는 반증!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것은 음살대의 대주이자 귀문삼걸의 일인인 혼다였다.

“멍청한 것들! 적이다!”

그를 중심으로 투명한 원이 퍼져 나갔다. 그의 전설급 스킬인 ‘마나 체이서’를 발동시킨 것.

마나 체이서는 주변 300m 내의 마나를 지닌 생명체를 모조리 스캔해 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그의 마나 체이서보다 높은 등급의 은신 스킬이 아닌 이상에는 모두 캐치 당한다. 분류는 전설급이지만 그 희귀성과 유틸성 덕분에 신화급으로 분류되어 보유 자체를 극비로 취급하는 인물이다.

콰쾅! 쾅! 콰쾅!

폭격같이 쏟아지는 화살을 방패로 막았던 음살대원 하나가 방패째로 찢겨 날아갔다. 엘프들을 둘러싸느라 몰려 있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산개! 산개!”

“막지 마! 나무 뒤로 피해!”

“센티넬이다!”

각 조장들의 외침에 음살대는 빠르게 거목 뒤로 몸을 숨겼다.

혼다의의 시야 한쪽 레이더에 네 개의 붉은 점이 찍혔다. 거리는 약 200미터!

“적은 넷! 센티넬이다. 1, 2, 3, 4, 5조는 엘프들을 감시하고, 6조, 7조, 8조, 9조는 나무에 엄폐하여 적들에게 접근한다. 각 조의 목표를 빠르게 정리한 후 다른 조를 지원한다! 움직여!”

그의 지시에 따라 음살대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예 중의 정예인 센티넬이라고 해도 상대는 고작 넷이었다.혼다는 차라리 지금 센티넬을 만난 게 잘됐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야 나중에 자신들을 섬멸할 공격대가 더 주목받을 테니까. 그러나 약 3분여가 지났을 때 그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았다.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뭉쳐?”

엘프들은 접근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숲이라는 지형적 이점과 활과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엘프는 철저한 원거리 게릴라 전법을 취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집요하게 이쪽을 괴롭히는 게 늘 하던 짓이었고, 그런 패턴에 맞춰 조를 파견했다. 그런데 상대가 도망치지 않는다.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콰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8조를 뜻하는 푸른 점 다섯 개가 레이더에서 동시에 사라졌다.

“뭐야?”

혼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음살대 다섯이 일격에 당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이 정도면 센티넬 이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콰콰쾅! 쾅! 콰쾅!

폭음이 연달아 울리며 푸른 점들이 빠르게 삭제된다. 무려 절반에 달하는 스물다섯을 투입했는데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푸른 점들 중 무려 일곱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 붉은 점은 적이라는 뜻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 *

“아싸 대박!”

20%의 확률로 10초간 우군으로 만드는 광역매혹에 잭팟이 터졌다. 어스브레이크를 사용한 후 모여든 놈들에게 매혹을 썼는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놈들이 아군으로 변한 것이다. 매혹에 걸린 놈들이 사방으로 미친 듯이 칼질을 해 대기 시작한다. 싸워라, 싸워!

채챙! 채채챙!

“헛! 뭐야!”

“으악! 무슨 짓이야!”

같은 음살대원들에게 뜻밖의 기습을 당했다.

대비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

적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는 무조건 크게 베어물어야 한다.

“가라!”

구씨 삼형제가 놈들 사이에 파고들어 물어뜯고 찢어발긴다.

셋은 내 PVP공격력의 1/5를 승계한다. 한마디로 유저들을 상대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 공격력을 가진다는 뜻. 그리고…….

[뱀파이어릭 오라] [전설급] [4티어]

-오라 발동 후 공격 시 생명력 흡수

-30초간 공격력의 54%만큼 생명력으로 흡수하며 흡수당한 상대의 무기력 저주 [3레벨 부여]

-쿨타임: 1분

-필요 마나: 150

주위의 생명력을 흡수함과 동시에 무기력의 저주라는 디버프까지 걸어주는 내 전설급 오라인 뱀파이어릭 오라는 범위 내의 아군에게도 효과가 적용된다. 레벨이 딸려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하지만 당황하고 있는 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주공(主攻)은 바로 나니까.

“잘 뭉쳤구나!”

[어스브레이크]

콰콰콰콰콱!

“으아악!”

풀파워의 어스브레이크가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난 레벨만 딸릴 뿐이지 실제 스펙은 웬만한 고레벨 뺨친다. 어스브레이크 한 방에 밀려 쓰러진 놈들 사이에 파고들어 듀렌달로 확인사살을 한다. 뒤늦게 광역매혹 지속시간이 끝났지만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를 무차별적으로 썰어 대니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벨업 하였습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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