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68화 (68/154)

68. 엘프 하렘이라고 알아?

난 그냥 퀘스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그것이 천황 길드라는 거대 조직의 행보에 돌부리가 되었을 줄이야.

“지금까지 일본 유저들이 소속된 베소 왕국은 치나 제국과의 전쟁에 미온적이었어. 우리 쪽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치나 제국이랑 맨날 치고받고 싸웠는데 말이야. 뭐 영토를 잃어버려도 자기들이 블루 포레스트가 안정화되고 본격적으로 나서면 뺏겼던 영토 다시 찾아온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문제는 블루 포레스트에 나타난 한 정체불명의 한국 유저한테 떼몰살을 당했다는 거지. 자존심 상하게.”

누나가 나를 가리키며 손으로 펑 하고 터지는 시늉을 했다.

“일본 애들 자존심이 상했다고? 근데 그게 천황 길드랑 무슨 상관이야?”

“지금까지 일본 애들 여론을 이끌어 온 게 천황 길드거든. 블루 포레스트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말이야.”

“그런데?”

“아까 너 엄청 조직적인 대규모 공격대랑 붙었다고 했지?”

“응.”

엘프들이나 사냥하고 다닌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조직적인 놈들이었다.

마지막에 나타난 엘프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죽었으리라.

“천황 길드 산하 귀문 길드에서 그것들 치운다고 공격대 모집했더라고…….”

“응, 그건 알고 있었어.”

나도 그 핑계로 엘프들을 떼놓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누나는 그걸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너 그럼 다 알고서 그 숫자에 부딪힌 거야? 세상에……!”

“그럴 리가 없잖아. 나라도 그런 미친 짓은 안 한다고…….”

물론 엘프들이 잡혀 간 것을 보고 바로 쫓기는 했지만 여차하면 튈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그다지 믿지 못하는 눈치 같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무튼 엘프와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를 어쩌구 하면서……. 근데 그걸 네가 혼자 처리해 버렸네.”

“그게 무슨 문제 돼?”

큰 틀에서 보면 나도 인간이니 저들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가 돼지. 네가 천황 길드의 명분을 없애 버렸잖아. 거기에 네가 걔들만 벤 건 아니지.”

“아니면…….”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누나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일반 유저들 말이야. 엄청 시끄럽던데? 웬 괴물이 돌아다니면서 혼자 학살한다고… 걔들도 입 달렸어.”

“아하…….”

난 걔들을 제외하고도 곱절이 넘는 일본 유저들을 블루 포레스트에서 베었다. 그들은 약탈자가 아니다. 그냥 엘프를 NPC가 아닌 몬스터 취급하며 사냥한 일반 유저들일 뿐이다.

“겉으로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은연중에 엘프들 사냥하는 걸 유야무야 봐주던 게 천황 길드라고. 근데 자기들이 엘프들한테 제대로 보여 준다고 광고 빵빵 터뜨리며 공격대를 끌어모았는데 웬 한국 유저한테 그것들이 전멸을 당했네? 도매금으로 엮여 죽은 일반 유저들이 들썩거려. 그래서 널 어떻게 좀 처리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블루 포레스트에 들어갈 엄두는 안 나고 엘프들 눈치도 보이지.”

“그렇구나.”

일본 애들이 블루 포레스트 안으로 못 들어오는 이유는 그곳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의 무적의 요새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내부로 들어가도 70~100레벨대 몬스터들의 서식처가 도처에 깔려 있기에 영역을 모르는 이들이 잘못 들어가면 그냥 떼몰살 당한다. 그 길을 아는 것은 엘프들뿐이고, 블루 포레스트에 엘프들의 허락 없이 들어가면 그들 또한 적이다. 숲에서 적대적인 대규모 엘프를 만나면? 나도 곧장 사망각 뜨는 거다. 오죽하면 일본도 침략이 아닌 친화 정책을 펼치겠는가.

“밥상 차려 놨는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들어와서 다 처먹고 죄 없는 종업원들까지 두들겨 팼는데 화도 못 내는 상황 정도인가?”

“으음,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한데 비슷하긴 하네.”

누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결론은 뭐, 잘 먹었습니다. 어쩌겠는가. 억울하면 나한테 반복 퀘스트를 준 라리엘한테 가서 따지던가.

“블루 포레스트 밖으로만 안 나가면 된다는 거네?”

“그렇긴 한데 걔들이 가만히 있겠니?”

“와 주면 나야 환영이지.”

경험치 조공으로 레벨이 목구멍에 차오를 지경이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아이템까지 좋으니 후원이라고 하면 감사할 지경이랄까.

“만만하게 볼 놈들이 아냐. 네가 아무리 세다고 해도 방심하는 사이에 훅하고 기습 들어온다고. 막아 내면? 셋이든 열이든 죽을 때까지 보낼걸?”

“음, 그런가.”

일본 애들은 기습이 주특기였다. 거기에 상대를 속여도 속은 놈이 병신이라고 말하는 국민성이 어우러져 아주 꼴사나운 짓을 해댈 때가 있는데, 화해하자고 부르고는 등에 칼 꽂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을 상대할 때는 사지를 다 끊어 놓거나 완전히 굴복하기 전까지는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이 있다.

도게자라는 게 왜 생겼겠는가.

하도 약속을 안 지키고 뒷구멍으로 더러운 짓을 해 대니 상대에게 내 목숨을 내놓는다는 굴욕적인 전통이 생긴 거다. 하긴 그 도게자 중에 칼을 뽑아 상대를 죽이는 것까지 무슨 비장의 필살기로 여기는 일본이니까.

“그래도 걱정하지 마.”

“에휴, 태평하긴……. 에이,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확 나서서 밝혀 버리고 싶은데 그 파킨 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그 새끼 너한테 현상금 걸었다.”

누나의 말에 상도 형과 광수 형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떤 새끼가 감히 내 동생한테 현상금을 걸어!”

형도 처음 들은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현상금이라니 거참, 대체 내가 왜 현상금까지 걸려야 하지?

“현상금 건 이유가 뭔데?”

“이유 같은 게 있겠니. 그냥 너 마음에 안 든다고 개인 방송에서 씨발씨발 거리면서 열폭하다가 ‘사장님들 저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하더니 너 죽이는 거 영상 한번 찍어올 때마다 백만 원씩 준다고 공지 딱 올리더라.”

“백만 원? 걔가 그렇게 돈이 많아?”

“걔가 많은 게 아니라. 걔 마누라가 부자야. 원래 방송 왕회장이었는데, 어떻게 사귄다고 하더니 결혼하더라고. 이제 한 일 년 됐나? 개새끼, 결혼하기 전에는 하꼬 여자 비제이들한테 합방 미끼로 찝쩍거리다가 애까지 뗀 주제에…….”

혜미 누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파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왜 이쪽 길로 들어섰나 하고 후회될 정도로 더럽고 추악했다.

“그 이야기들 확실한 거야?”

“당연하지. 나한테도 접근했었는데…….”

누나가 소름 끼친다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런 새끼가 어떻게 케이블 방송에 나오는 거야? 아니, 그런 쓰레기랑 결혼할 사람이 있어?”

“워낙 사건사고가 많기는 했는데 자극적인 걸로 인기가 너무 좋으니까 플랫폼에서 묻어 주고 데려가더라고. 걔가 워낙 철두철미하게 입막음을 한 것도 있고. 그리고 그 왕회장 여자애가 죽고 못 살기도 했고, 파킨 새끼가 직접 나서서 지 치부 외부로 퍼지면 자기가 어떻게든 폭로자 알아내서 죽여 버린다고 협박하고 다녔지.”

진짜 인간 말종이구나. 개취야 존중한다지만 난 도저히 그렇게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너한테 시비 거는 거 네 인기에 숟가락 올리려는 거야. 아니, 이 경우에는 숟가락이 아니라 밥주걱인가? 아무튼… 어디 좀 뜨겠다 싶은 유망주만 골라서 시비 틀고 방송으로 계속 괴롭히는 거야. 그럼 그 유망주가 방송에 부각될 때마다 자기 이야기도 저절로 같이 나올 테니까. 아주 살살 교묘하게 방송 선을 안 넘기면서 괴롭히는 악질이야.”

“시청자들이 가만히 있나?”

“몇 번 자숙 기간 가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정이 들어서 진짜 걔가 어떤 미친짓을 해도 봐주는 시청자만 남은 거지. 그리고 솔직히 따지면 계속 시청자가 빠져서 파킨도 케이블 방송 나가서 온 사방에 어그로 끌고 다니는 거야.”

“그렇구나.”

비제이가 가장 눈치 봐야 할 시청자도 자기 편이라니.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부러워하지 마. 그런 새끼한테 남은 시청자는 비슷한 놈들뿐이니까.”

“그런가. 아무튼 내가 적극적 대응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그게 오히려 그 새끼가 바라는 거야. 가만히 안 있어 주는 거. 그러다가 여론이 진짜 안 좋아지겠다 싶으면 너랑 합방해서 화해하는 거 한번 찍고 우리 잘 지내요 지금까지 전부 방송이었어요 하고 똥꼬쇼 한번 하는 거지.”

“그걸 내가 왜 찍어?”

“찍게 만드는 거야. 계속 압박하고, 못살게 굴고, 사람 좋은 애들 시켜서 사탕도 주고, 채찍질도 하고. 그 부분에서는 걔가 아주 베테랑이야.”

“하…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더러워도 대형 비제이니까. 걔가 그렇게 방송질 한 게 10년이야.”

할 말이 없다. 그런 더러운 놈이 나를 찍다니…….

음… 그런데 꼭 파킨이랑 어울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은데…….

잘하면 나한테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때였다. 이상하게 등골이 오싹하다. 돌아보니 상도 형의 눈꼬리가 푸들푸들 떨리고 있다. 저거… 위험한데…….

“그 새끼 내가 처리한다.”

왠지 으스스한 느낌. 난 순간 속으로 엿 됐네… 하고 중얼거렸다.

저 눈빛 정말 오랜만에 본다. 옛날 매미산 17대1 사건 때나 보여 줬던 눈빛이다.

옛날… 내가 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날 고등학교 다니는 누나가 옷이 찢어진 채 울면서 보육원에 돌아왔다. 원장님이 이유를 다그쳤지만 누나는 말하지 않았다. 후에 밝혀진 거지만 누나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은 시의원의 망나니 아들이었다. 행여 보육원에 해를 끼칠까 입을 다문 거지만 그 사실을 알아낸 상도 형은 참지 않았다.

상도 형은 놈과 그 친구 녀석들을 매미산으로 불렀고, 그날 열일곱을 떡으로 만들고는 소년원으로 끌려갔다. 아무튼… 이럴 때는 말려서는 안 된다.

“형.”

“왜?”

“마음은 고마운데 내 거를 왜 형이 침 바르려고 해?”

내가 형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자 한참을 마주 응시하던 형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래도 혹 필요하면 말 해.”

“응. 그리고 형.”

“왜?”

“…고마워.”

“뭐가?”

“그냥.”

난 그냥 말을 얼버무렸다. 피를 나눈 가족도 나를 버렸지만 보육원에서 난 형이라는 가족을 얻었다. 그리고 항상 내 뒤를 형이 지켜 줬기에 똑바로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뒤에는 언제나 나를 위해 나서 줄 형이 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언제나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난 말을 돌릴 겸 누나를 바라봤다.

“누나.”

“어?”

“오늘부터 방송 다시 시작할게.”

“파킨 새끼가 지금 한창 너 찾고 있는데? 굳이?”

현상금이 걸렸으니 더 깊게 숨어들어야 할 타이밍에 굳이 방송을 시작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그러나 나 또한 무모한 계획으로 일을 망치는 어린애는 아니다.

“계획이 있어. 그리고 어차피 일본 애들이랑 부딪히다 보면 내 정체는 금세 밝혀질 거야.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내 스킬이나 펫 같은 게 방송을 타면 금방 알아볼 거고.”

“그거야 그렇지만…….”

못내 미더운지 말끝을 흐린다.

“괜찮아. 차라리 나한테 덤비는 걸 후회하게 될걸?”

“어째서?”

“일단 블루 포레스트 내부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힘들어. 유일한 방법은 퀘스트를 해서 칭호를 얻는 것뿐인데, 일본애들 덕분에 그 방법은 한동안은 못 쓰게 될 거야.”

NPC 엘프들은 친밀도 자판기 따위가 아니다. 칭호라는 것은 친밀도를 쌓으면 그 상징으로 주는 것이지, 칭호가 있다고 저절로 친밀도가 쌓이는 게 아니라는 것. 설상가상으로 기존에 엘프들에게 칭호를 얻은 일본 유저가 있다고 해도 엘프 장로 회의의 결정으로 그들은 현재 엘프들에게 도매금으로 배척당하는 중이다. 현재 블루 포레스트는 요새나 마찬가지고 ‘은인’ 칭호를 가진 나는 거의 인간 중에는 유일하게 이곳에 머물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블루 포레스트의 엘프들은 자신들이 은인으로 인정한 인간이 공격당하는 걸 호락호락 보고 있지 않아.”

“방송에서 뭐 할 건데?”

“파킨 새끼 시청자들이 거의 남자라고 했지?”

“그렇지.”

“후후, 누나 그거 알아?”

“뭐?”

“은인 칭호가 가진 힘이면 엘프들의 친구 호칭을 달 만한 친밀도를 다른 엘프들에게 줄 수 있다는 거야.”

“……?”

녀석들에게 엘프 판타지 플렉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 줄 거다.

부러워서 넘어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케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블루 포레스트 라이프 feat. 엘프 하렘~]

제목을 걸고 단 5분 만에 시청자 1만이 위업이 달성되었다.

-우와아아아!

-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낚시인 줄 알았는데!

-이거 뭐야! 이거 진짜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 사실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라리엘을 위시한 여섯 엘프가 나를 둘러싼 채 웃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fajlffasdlfj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님님님님님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공룡뼈댜구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와! 세상에 엘프 하렘이라니! 여섯 엘프라니! 그것도 취향(?)별로 다 모인 엘프들이라니!

[세상에마상에 님 12,5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세상에 엘프 여섯을 한 번에!

후원이 폭발적으로 튀었다. 이럴까 봐 이미 만 원 이상만 음성이 되도록 했는데도 시끄러워서 방송 진행이 안 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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