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69화 (69/154)

69. 독 묻은 화살촉

보통 게임에서의 미의 기준이라는 건 상당한 상향 평준화를 그린다. 물론 자신의 개성이 한껏 들어간 커스터마이징이라든가 남들과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괴랄망측한 외형을 만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바타를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엘프라는 종족은 어떻게 표현될까?

헤븐즈 게이트 직원들은 완벽한 고증을 살리기 위해(실제 설화로는 키 작고 심술궂은 난쟁이지만) 정말 심혈을 기울여 엘프라는 종족을 창조해 냈다. 처음 어떤 일본 유저에 의해 엘프가 공개되었을 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열광했다. 그것은 유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아름다움이었으니까.

사실 세이온 내에서는 얼굴의 성형은 가능하지만 신장이나 인체 비율에는 큰 변화를 줄 수 없었다. 가령 예를 들어 실제 유저의 키가 170cm인데 인 게임 내 아바타를 190cm로 만들었다고 예를 들어보자. 플레이야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 아바타와 실제 사용자 간의 동기화율이 심각하게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뇌가 인식하는 신체 간의 괴리로 인한 것.

물론 팔다리가 없거나 심각한 고도비만은 어쩔 수 없다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동기화율을 위해 비율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기에 얼굴은 초미녀 초훈남이지만 신체 비율은 개똥망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엘프의 경우에는 환상적인 신체 비율을 자랑했다. 미남미녀의 외형에 거의 9등신에 가까운 신체 밸런스. 거기에 훌륭한(?) 미드와 완벽한 각선미까지 장착했으니 일본 유저들이 엘프라고 하면 환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모두의 선망은 NPC 엘프와 친밀도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엘프들이 현재 내 옆에 여섯이 달라붙어 있었다.

각자 뇌살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그들과 함께 걸으니 당연하게도 내 방송을 보는 남자들은 불타오르다 못해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으으, 부럽다.

-세상에 이게 사냥이야 소풍이야. ㅠㅠㅠㅠ

[라비옹 님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좀 데려가 주세요.;ㅁ;

-베소 왕국에서 한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진짜 신기하시네.

-맞다. 이번에 일본 애들 개판 쳐서 엘프들이랑 사이 다 틀어졌다는데 케이 님은 어떻게 거기 계심?

-혹시 케이 님도 그놈이랑 만나셨음? 엘프의 악몽?

ㄴ엘프의 악몽이 뭔데요?

ㄴ일본 엘프 사냥꾼만 전문적으로 조진다는데 진짜 어마무시한 이레귤러라고 함.

ㄴ에이, 이레귤러는 무슨;;

-일본 60레벨대 풀 공격대 혼자 짓밟아 버림.

ㄴㄷㄷㄷ

ㄴ설마 케이가?

ㄴ에이 그럴 리가요. 그 정도 죽였으면 약탈자 빼박인데 문양도 안 보이는구만. 걔 일본 유저래요.

ㄴ헐……? 일본 애들 중에 그 정도로 강한 애가 있었음?

ㄴ그건 또 신선하네.

ㄴ근데 혼자 공격대 하나 밟는 게 가능함?

ㄴ세스 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ㄴ그거야 당연한 건데… 남자라고 했음

분명 공격대의 대장한테 한국 유저라는 걸 들켰는데 그걸 외부에 퍼뜨리지는 않은 것 같다. 음… 한국 유저한테 밟혔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웠나. 내 생각에 저기 엘프의 악몽이라는 건 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부럽네. 일본… 그럼 일본은 랭커 두 명 보유인가?

ㄴ푸핫, 두 명은 천황 길드 길마 새끼는 그냥 만들어진 랭커잖아.

ㄴ만들어진 랭커든 뭐든 센 건 사실이잖아. 그렇게 따지면 안 만들어진 랭커 있냐?

ㄴ랭커는 아니지만 우리 케이 님은 곧 랭커가 되실 거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두 명이야!

ㄴ케이가 아무리 날고 뛰어도 세스 님이랑 비교하는 건 좀…….

-다른 거 떠나서 지금 케이 님이 가장 부럽……. 블루 포레스트 탐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히든 피스 천지라는데… ㅠㅠ

ㄴ일본 애들이 다 파헤치지 않음?

ㄴ파헤치기는요. 수박 겉핥기만 했지. 한참 잘 진행되다가 그놈에 엘프 사냥꾼들 때문에 친밀도 전부 지하실로 떨어졌구만…….

엘프들과 관련된 이슈가 워낙 화제다 보니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랭커라… 내가 그 정도 실력이 되나. 랭커라는 건 일종의 세이온 유저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최강자들을 이야기한다. 순위는 없다. 나라마다 순위는 다 제각각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세스 님이 있었다.

워낙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탑 10에 든다고 인정받는 최강의 플레이어. 음, 뭐 나한테 후원을 해 주는 분 아이디가 세스 님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 학살공주 세스 님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세이온은 아이디 중복이 가능하고 본인이 직접 밝히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아무튼 당장 밝힐 수도 있지만 난 좀 더 유저들에게 정보를 얻을 겸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꽃놀이패 같은 NPC 엘프들과의 소풍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어스브레이크]

콰콰쾅!

2층 건물 높이만 한 곰이 바닥에 쓰러진다. 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나무를 밟고 내리꽂히며 곰의 후두부에 듀렌달을 쑤셔 넣었다.

“꾸어어억!”

곰이 앞발로 버티며 일어서려고 하지만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이 하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자 다시금 바닥에 주저앉았다.

쉬이이잉! 쉬잉!

거대한 갈고리가 달린 곰의 앞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큭……!”

[일반] [마기에 오염된 자이언트 블랙베어] [85레벨]

85레벨짜리라서 그런지 한 방 한 방이 무시무시하다.

내가 아무리 업적으로 능력치가 버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PVP 상황일 때고, 지금으로서는 엘프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잡을 엄두가 안 나는 놈이다.

화아악!

“꾸어억!”

엘프들의 정령이 블랙베어의 눈을 마구 공격해 댄다.

[친위대 소환]

“컹! 크앙! 크르릉!”

소환된 백구, 황구, 흑구가 블랙베어의 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블랙베어가 마구 발버둥 쳤지만 셋은 요리조리 피하며 요령 있게 블렉베어의 상처들을 후벼 팠다.

“크아앙!”

퍼어어억!

“깨갱!”

블랙베어가 휘두른 앞발에 흑구가 걸렸다. 방패로 막아 내기는 했지만 포탄처럼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다행히 즉사는 면해 비척비척 일어나는 흑구에게 물러설 것을 지시한 나는 두 손에 힘을 줬다. 끝을 보자!

[어스 브레이크]

몸 안에서 터지는 어스 브레이크는 더 치명적이다.

쿠쿠쿠쿠콰콰쾅!

[어스 브레이크]

쾅쾅쾅!

“꾸어어억!”

“컥!”

다시 한번 어스브레이크를 블랙베어의 몸 안에서 폭발시키려 할 때였다.

후우우웅!

날 그대로 깔아뭉개 버리겠다는 듯 블랙베어가 앞으로 앞구르기를 한다. 졸지에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뒷다리를 박차고 뛰어 블랙베어의 배에 칼을 꽂아 넣었고…….

“꾸어어엉!”

마침내 블랙베어를 눕혔다.

“후우…….”

[블랙베어의 심장]

[강화석 x40]

[블랙베어의 영혼]

하마터면 그대로 압사당할 뻔했다.

기분이 좋은 건 강한 몬스터라 그런지 떨어지는 전리품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거기에 도축을 하면 가죽이나 뼈 발톱 등을 얻을 수 있는데, 85렙대 몬스터의 것들은 골드 단위로 팔린다.

“케이 님 괜찮으세요?”

그때 공중에서 뛰어내린 라리엘이 내 몸을 부축하며 걱정스레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 풍만한 미드가 팔에 뭉클하고 잡히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케이 님! 너무 멋있었어요!”

발육미달 꼬마 엘프도 도르르 달려와 내 어깨에 매달리고 나머지들도 달려와 나를 둘러쌌다. 조금 헐벗은 옷을 입은 미녀들에 둘러싸이니 눈 둘 곳을 못 찾겠다.

-와… 썅…….

-미녀 군단에 미소녀에… 세상 불공평하네.

-쓰레기 회사

-씨발…….

-이게 게임이냐.

-우리도 가고 싶다! 블루 포레스트!

-우우우! 우리도 보내줘라!

채팅창에 욕이 가득 찬다. 어그로 만땅이네.

-하, 세린이들 더럽게 많네. 저기요. 블루 포레스트 들어가려면 일단 엘프들을 만나서 퀘스트하면서 천천히 친밀도 쌓고 ‘엘프들의 친구’ 호칭 달아야 그나마 외곽이라도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 전에 괜히 블루 포레스트 접근하면 엘프 레인저한테 화살 밥 돼 버림. 일본 애들 중에 그 호칭 딴 애들 거의 전부 한 달 걸림.

-지금 그 방법도 막힘. 일본 애들이 개판 쳐 놔서 엘프 만나면 대놓고 활질부터 시작함.

-일본 개새끼들아… ㅠㅠ

-근데 제가 알기로 케이 님. 여기 온 지 이틀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들어옴?

-그거야 케이 님이 다른 경로로 뚫으신 거겠죠.

[인벤시블 님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 님! 어떻게 들어가셨는지 정보 공개 좀 해 주세요!

-하… 고작 십만 원에 정보 공개라니 얼척없네. 진짜 양심 출타한 듯…….

-맞음. 그런 특급 정보는 보통 수백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데 그걸 고작 십만 원에 가르쳐 달라니…….

-니들이 뭔데 껴들어. 케이 님이 가르쳐 주지 너희들이 가르쳐 주냐!

시청자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사실 엘프들 정보를 고작 후원 따위에 공개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 반증으로 지금 내 쪽지함도 불타오르는 중이다.

[에니올라- 케이 님. 저는 현재 구독자 5만의… 괜찮으시다면 합방을…….]

[씨렉- 케이 님 저는 케이 님과 같은 플렛폼에 있는… 중략… 함께 합방을…….]

한글을 포함에 일본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등 진짜 온 세계 쪽지는 다 온 것 같은데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난 현재 아주 인기 만점이다. 뭐, 원래 목적도 이것이었으니까 그럼 이쯤에서 슬슬 떡밥을 풀어 봐야지.

“다른 시청자분이 말한 대로 아시다시피 여긴 들어오려면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물론 제가 위에 다른 분이 언급한 방법으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저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죠.”

-역시인가. 우…….

-지금 블루 포레스트 들어가면 진짜 위튜브각 1년 동안 뽑는다는데…….

실망하는 시청자들. 이제 바늘을 넣는다.

“그렇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얻은 업적은 좀 특별하거든요.”

난 확인시켜 줄 겸 내가 가진 업적들 중 ‘엘프들의 은인’을 공개했다. 세이온에는 방송을 위한 여러 가지 옵션을 제공하는데, 그중에는 상태창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보여 주는 기능도 있었다.

[업적 엘프들의 은인 [희귀 등급]을 획득하였습니다.]

-낯선 엘프와의 교류 시 친밀도 보정을 받습니다.

-어? 엘프들의 친구 칭호랑은 다른 거네?

-엘프들의 친구는 해당 엘프와의 친밀도 보정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시청자들은 내가 가진 ‘엘프들의 은인’에서 다른 점을 곧바로 찾아냈다. 그렇다.

내가 가진 건 엘프들의 친구라는 것과는 다르게 낯선 엘프들에게도 적용된다.

“아시다시피 친밀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친밀도도 같이 높여 줄 수 있죠.”

물론 이건 개구라다. 시험해 보지도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게 세이온의 NPC들은 단순한 스크립트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각자 고유의 AI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에서도 나타난다. 한마디로 내가 어떤 유저를 NPC에게 소개시켜 주면 그 NPC에게는 내 친밀도가 함께 적용되어 낯선 유저라도 친밀도 시작점을 높게 잡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은 힘들지만 한 네다섯 명은 제가 바로 ‘엘프들의 친구’는 달아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블루 포레스트에 누구 데리고 들어올 생각 따위는 없다. 이곳의 비밀은 나 혼자 다 벗겨 먹을 거니까.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저 구독자 10만 쪼양이라고 해요!

-쪼양 님은 지금 씹덕군이랑 합방 중이잖아! 케이 님! 저는 레트로라고 하는데 이번에…….

비제이로 추측되는 화려한 아이디들이 채팅창을 도배했다. 모두 나와 합방을 바라는 모습이다.

“다른 비제이님들과 합방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네요.”

-……?

-……?

“다른 분들과 같이 블루 포레스트를 탐험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파킨 님이 저한테 백만 원짜리 현상금을 걸어 놓은 상태거든요. 괜히 저 노리는 분들 데리고 들어왔다가 블루 포레스트에서 개판 치면 저까지 쫓겨날 거 같아서요.”

나도 파킨에게 독 묻은 화살 한 방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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