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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72화 (72/154)

72. 알레그로 레이드 완료

내가 이 엘레그로라는 늙은 하이엘프를 상대하며 파악한 정보는 이렇다.

미친 듯이 오래 살다 보니 가치관이나 생각 자체가 나무 같은 이 종자들은 반 정도는 미치광이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는, 좋게 말하면 어린아이 같고, 나쁘게 말하면 소시오패스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장로라는 직위를 지니고는 있지만 반쯤은 그냥 재앙 취급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 엘레그로라는 노망난 엘프를 제어하기 위해 푸른바람엘프들의 무력 절반이 이곳에 뭉쳐 있다. 지금 난 그런 엘프에게 납치를 당해 강제로 히든 퀘스트를 하는 상태다.

물론 그것이 이렇게 위험천만하지만 보상 좋은 퀘스트를 만들어 낸 이유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목숨이 아슬아슬한 순간이 적어도 열 번 정도는 있었으니까.

파파파팡!

연속으로 공기가 터지는 소음을 뚫고 난 엘레그로에게 검을 날렸다. 나뭇가지가 검을 가볍게 막았지만 이전처럼 여유롭지는 않다. 그의 나뭇가지가 내 목과 눈, 관자놀이 왼쪽 가슴에 꽂힌다. 즉사 판정으로 죽어야 마땅하지만 모두 아슬아슬하게 급소만은 피했다.

지겹게 붙으면서 엘레그로가 사용하는 쾌검에 대해 고민했다. 흔히 어떤 무술의 달인이 되는 과정은 이러했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것.’

쾌검의 요체라는 후발선지(늦게 검을 뽑아 먼저 상대에게 닿게 한다.)라는 건 극도의 집중력과 머리가 아닌 지독한 훈련을 통해 근육에 새긴 검술을 뿌려 대는 것이었다. 무공에 초식이 존재하는 이유는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닌 몸에 익은 초식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구분 동작을 하나로 만든 것이고, 변초가 존재하는 이유는 초식이 의의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초식에 융통성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이온은 이미 뇌파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근육이라고 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반응일 뿐이다. 그나마 내가 얻은 작은 단서 하나는 모든 것이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의지… 세이온의 모든 것은 의지의 상호작용이다. 의지를 통해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낼 수 있고, 오러를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의 값이 클수록 얻는 반작용도 강하다. 그리고 엘레그로와 싸우면서 난 능력치를 얻음과 함께 의지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빌어먹을… 개소리는 그만하자. 난 지금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상태니까.

파아앙!

팔을 할퀴는 공격을 무시하고 들어간 내 듀렌달이 쏘아져 들어간다.

그와 똑같은 동작으로 공격할 수는 있지만 그와 같은 속도를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데 그것은 내가 오러를 폭발시켜 공격을 쏘아내는 법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신을 다해 뻗어낸 그 공격은 마침내 엘레그로의 옷깃 끝을 스쳤다.

탁!

공중을 휙 하고 돌다가 듀렌달의 검 면을 밟고 사뿐히 내려선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재미있군.”

재미있다는 그의 말에 머릿속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이런 말이 나온 뒤로 항상 그의 공격은 한 차원 더 위험해졌으니까.

“이것도 한번 막아 봐라.”

위이이잉!

나뭇가지가 풍차처럼 회전하며 내 전신을 노려온다. 얼핏 보면 느려 보이지만 이번에는 속지 않는다. 이건 느린 게 아니라 잔상마저도 진짜인 공격이다. 며칠 동안은 허와 실을 구분하겠다고 지랄하다가 바람구멍 여러 개 뚫렸다.

참고로 이 미친 노인네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진짜 게임 오버 당할 뻔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넘기고 나면 능력치를 올려주니 진득하게 붙어 있었지,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탈출했으리라.

아무튼 내가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에도 나뭇가지는 다가온다. 그리고 이 공격에 대한 해답은…….

따다다다당!

파파파팍!

피해를 감수하고 같은 방법으로 마주 쳐 나가는 것이다. 상승한 능력치와 의지의 운용을 통해 그의 공격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막아 내는 것이 아닌 견뎌 내는 것!

콰아앙!

“하아!”

공격이 무산된 후 초근거리가 되었다. 과거 유저들과의 싸움에서 초근접거리라는 건 나의 우세였지만 이 노인네와는 달랐다. 내가 더 불리하다.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지만 저번에 대책 없이 물러났다가 하반신에 바람구멍이 여러 개 났다.

퍼어억!

변칙적으로 뻗은 돌려차기를 손바닥을 들어 여유롭게 붙잡는다.

빌어먹을 노인네! 그렇지만 막히는 것도 계산한 나다. 막힌 발을 축으로 하여 반대편 발로 노인의 머리를 노리면서 거의 한계까지 계산한 마지막 일 검을 꽂았다.

쿠웅! 퍼어어어억!

“컥!”

노인네의 비명 소리면 좋겠지만 이건 내 것이었다. 마치 팔극권의 철산고처럼 강력한 진각과 함께 등으로 내 가슴을 두들긴다.

퍼퍼퍼퍼퍽!

진짜 발차기는 이런 거라는 듯 잔상이 일어날 정도로 빠른 발차기가 내 전신을 누빈다.

염병, 판타지에 대체 몇 개의 무술이 섞인 거야!

쾅!

걸레가 되어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니 생명력이 거의 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

“의도는 좋았네.”

반으로 부러진 나뭇가지를 흔들며 엘레그로가 피식 웃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난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지?

“아…….”

시선을 내려다보니 나뭇가지가 내 왼쪽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다.

그 짧은 순간에 내 가슴을 찌른 건가. 정말 반칙 같은 속도다.

“어디 보자.”

마치 자신이 만든 예술품을 감상하려는 듯 뒷짐을 진 채 다가오는 엘레그로는 진짜 미친놈 같다. 젠장, 나름 그들을 공격해 오는 일본 공격대들을 함께 격멸하고 엘프들의 은인이라는 칭호를 가진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한번 구해 줬다고 스토커처럼 따라붙던 여자 엘프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엘프들은 죄다 상종 못할 것들이라는 것을……. 그때였다.

“그럭저럭 쓸만했다. 크크크.”

[소드 마스터 엘레그로에게서 인정받았습니다.]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 달 넘게 끌어온 퀘스트를 완료한 거야 기분 좋지만 정말 길지 않은 세이온 생활 중 정말 역대급으로 지랄 맞은 퀘스트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난 눈을 크게 떴다.

보상: 오러블레이드의 단서

“네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마.”

지이잉…….

그의 손으로부터 피어오른 푸른 오러가 한 자루의 칼처럼 곧은 모양이 되었다. 손끝에서 세 뼘 정도 길어진 빛의 검에 상서로운 서기가 흐른다.

“오러 블레이드…….”

그 누구도 실체를 본 유저는 없다. 오픈 당시 세이온의 디렉터가 쇼케이스에서 이름으로만 밝힌 궁극의 스킬들 중 하나였으니까.

오러를 사용하는 모든 클래스가 가질 수 있는 궁극의 스킬.

그 주인이 쓰러지지 않는 한 꺾이지 않는 한 절대 파괴할 수 없으며, 세상 그 무엇도 베지 못할 것이 없다고 알려진 명실공히 세이온에 존재하는 모든 공격 스킬 중 최고봉을 다투는 스킬이라고 알려져 있다.

굳이 등급을 따지자면 신화급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유저들에게 밝혀지지 않은 스킬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오러블레이드 스킬을 뽑기 위해 수억에서 수십억을 썼다. 오죽했으면 저 중동의 부호 중 하나는 수백억을 쓰고도 나오지 않아 헤븐즈 게이트에 부르는 대로 가격을 치르겠다고 백지수표를 내밀었단다. 그러나 헤븐즈 게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대답했다.

‘오러 블레이드는 기획한 저조차도 습득 방법을 모릅니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자격이 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었다. 기획한 이조차도 모른다니……. 물론 세이온을 통제하는 근간이 슈퍼 양자 컴퓨터이며, 그 모든 코드가 양자암호로 보호되기에 창조자인 헤븐즈게이트 또한 시스템의 허락을 맡고 간섭한다고 알려졌지만 세계 모든 게임 시장을 집어삼킨 세이온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스킬에 대한 정보였기에 한동안 떠들썩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오롯이 NPC들만이 보유했다고만 알려진 오러블레이드를 실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건 오러 블레이드를 실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감격보다는 당장 초 단위로 깎여 나가는 생명력이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생명력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즉사 판정인 심장을 관통당했으니 이제 곧 사망하리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게임을 시작하고 맞이하는 첫 죽음이다.

마침내 시야가 붉게 물들고 생명력이 0이 되었다. 그리고 굳어 가던 몸이 풀렸다.

불사의 권능: 생명력이 1 이하로 떨어졌을 시 불사의 권능이 발현합니다. 60초간 모든 피해에 면역이 되며 회복 도구를 사용 시 사망하지 않습니다.

시야 한구석에 검은색 해골이 떠오르며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다.

불사의 권능을 사용하는 건 오늘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일본 공격대와 싸울 때였는데, 가급적이면 불사의 권능을 쓸 정도로 위기에 몰리는 걸 피했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한바탕 도박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때 내 앞에 멈춰선 엘레그로가 나를 내려다본다.

엘레그로가 단숨에 내 머리를 뽀갤 것처럼 손을 들었다.

“죽어라.”

퍼어억!

오러블레이드는 쇄골에서부터 겨드랑이까지 완벽하게 베어 내며 내 상체를 반 토막 냈다. 섬뜩한 고통이 느껴진다. 아무리 불사의 권능이라도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 그러나 난 이번만큼은 엘레그로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는 것에 고통보다는 희열을 느꼈다.

꽈악!

“허……!”

본디 내 머리를 쪼개려던 오러블레이드가 맺힌 팔이 어느새 내 손아귀에 붙잡혀 있다. 모든 피해에 대한 면역이라더니 오러 블레이드마저 무시할 줄은 몰랐다. 난 내 반대손에 들린 듀렌달이 엘레그로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커어… 억…….”

엘레그로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흔들린다.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붙잡힌 팔을 마구 뒤흔들자 오러블레이드에 내 팔과 옆구리가 난도질된다. 그러나 모든 피해 면역인 난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다시 한번 듀렌달을 밀어 넣었다.

“크으윽… 큭… 컥……!”

뿌드득……!

손잡이까지 밀어 넣어진 듀렌달을 비틀자 피가 후드득 쏟아졌다.

지이이잉!

알레그로의 전신에서 푸른 막이 뿜어져 나와 주위에 닿는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푸른 촉수가 사방으로 터져 나갈 때마다 지진이 난 듯 사방이 뒤흔들린다. 불사의 권능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수십 번은 죽었을 엄청난 공격이다.

“크아아아!”

알레그로가 괴성을 내지르자 그가 입고 있던 옷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의 전신에는 푸른 문신들이 빼곡히 자리해 있었는데, 그가 괴성을 내지를 때마다 점점 빛이 강해지더니 마침내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으로 화해 사방을 뒤덮었다.

[보스 ‘미쳐 버린 소드마스터 알레그로’를 레이드 하셨습니다.]

[보스 알레그로의 보스 스킬 멸신검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마침내 알레그로를 레이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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