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멸신검
[스킬이터의 티어가 상승했습니다.]
[스킬이터에 귀속된 모든 스킬의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사망 시 스킬이 사라질 확률이 사라집니다.
스킬이터가 7티어로 상승했다.
수백에 이르는 유저를 죽일 때도 높아지지 않았던 것이 알레그로라는 보스급 NPC를 잡은 것으로 상승한 것이다. 6티어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7티어가 되자 드디어 스킬이터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사망 시의 스킬이 사라진다는 문구가 없어졌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이터에 귀속된 모든 보스 스킬들의 레벨이 크게 상승했다.
그만큼 알레그로가 엄청난 강자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가방에서 물약을 꺼내 삼키며 알레그로가 죽어 버린 곳을 바라본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레그로.’
비록 NPC였고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근 한 달간 그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스킬을 얻은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 진짜 검술을 배웠다. 체계적인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도 체득했다.
그뿐인가. 그와 싸우며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는지 모른다. 세이온에서 만난 가장 강한 존재가 한 달 넘게 나와 싸워 줬으니 스승이라면 스승인 셈이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세서 그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준이었다면 난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알레그로는 너무 강했다. 죽이는 것. 유일한 하나의 선택지만이 내게 주어졌던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
“음……?”
그때였다. 난 당장 알레그로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더 직접적인 위기가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왜 회복이 안 되지?”
전투가 끝나자마자 회복 물약을 빨았다. 본래대로라면 부상이 치유되면서 조금씩 생명력이 차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다. 불사의 권능이 점점 끝나 간다.
7… 6… 5… 4…….
“죽겠네.”
박살 난 방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서 있는 세계수가 보인다. 남아 있는 열매는 고작 하나.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떨어져 형편없이 깨져 있다. 세계수의 열매는 딴 즉시 먹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열매를 따려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빌어먹을…….”
좀비처럼 기어가 간신히 열매를 따 입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웬만한 상처나 생명력은 끝까지 채워 주는 열매인데도 생명력 1에서 변하지 않았다. 전에 한번 불사의 권능을 발현했을 때는 회복 물약과 붕대로 금세 회복했는데, 불사의 권능이 오러블레이드는 완벽하게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큰일이네.”
가방을 열어 회복 물약을 퍼마시고 아무리 붕대질을 해도 생명력은 오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쿨럭…….”
아직 불사의 권능이 활성화되어 있음에도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마치 몸 안으로부터 붕괴되는 느낌이랄까? 꽤나 끔찍한 그 느낌이 전신을 잠식하는 가운데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0이 되었다.
츠츠츳…….
불사의 권능이 사라지자 전신이 빳빳하게 굳어오기 시작한다. 상태창을 열어 보니 전신이 시커멓게 변해 있다. 일명 블랙아웃 상태로 이대로라면 그대로 두면 몇 초 안에 사망이다.
내가 속으로 쌍욕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내 머리 위에 손 하나가 놓여졌다.
“녀석, 기껏 날 이겨 놓고 이게 무슨 꼴이냐?”
“헛!”
손의 주인을 올려다본 난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곳에는 내게 심장을 꿰뚫렸던 알레그로가 인자한 웃음을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
게임 시작하고 이렇게 놀라기는 처음이다. 내 표정을 바라보던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대화를 하려면 살려 놔야겠지. 엔다이론.”
슈르르르…….
알레그로의 등 뒤로 물로 이루어진 뱀 한 마리가 불쑥 일어났다.
“이 녀석 좀 치료해 주겠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엔다이론이라는 뱀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자 청량한 느낌의 물안개가 내 몸을 뒤덮었다.
[상급 재생이 발현됩니다.]
“오러블레이드는 단순히 몸을 베는 것이 아니다. 그 주인의 의지가 죽음의 칼날이 되어 살고자 하는 의념마저도 베어 버리는 거지. 그 앞에서는 칼이든 마법이든 저주든 상관없다.”
알레그로가 내 상태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는 가운데 블랙아웃이었던 부상이 천천히 사라지면서 생명력이 차올랐다. 엔다이론이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정령인지는 모른다. 아직 유저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미지의 정령이었으니까. 그러나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알레그로는 살아 있다.
“다, 당신은 제 검에…….”
“아? 그거 말인가?”
그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툭툭 두들겼는데 듀렌달로 냈던 구멍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안쪽에 보이는 피부에는 상처는커녕 피조차 보이지 않는다.
“엘프가 이천 년 정도 묵으면 반은 나무나 마찬가지라네. 보통의 생명체가 가져야 할 감정들이 세월에 파묻혀 버리게 되지.”
“나무요?”
“그렇지. 그렇지만 반은 생명체라서 나도 슬슬 미쳐 가고 있었는데 네 녀석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휴우, 그렇군요.”
내가 안심하여 한숨을 내쉬자 내 말을 오해했는지 알레그로가 혀를 쯧 차며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이번 건 꽤 짜릿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역시 자네가 신화 속 이계인이군.”
“……?”
신화 속 이계인이라는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알기로 세이온의 배경에 이계인 같은 건 없었다. NPC들에게 유저들은 철저히 토착민과 같이 취급된다. 그렇지 않으면 강대한 NPC 세력이 유저들을 그냥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계인이요?”
내 물음에 알레그로는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엔다이론이라는 물뱀의 머리를 슥슥 매만졌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그건 아직 허락되지 않은 대답일세. 게다가 의도했든 아니든 자네에게 내 비의가 전수된 것도 꽤 많이 선을 넘어 버린 터라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
선을 넘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알레그로가 방 한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쿠쿠쿠…….
원래 내가 붙잡혀 있던 곳에는 문 자체가 없었는데 문이 생겨났다.
“자, 이제 나가면 돼.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
“그렇게만 알고 있게. 빌어먹을 신은 속이 좁아서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건 절대 그냥 두지 않거든”
슈우우우…….
내가 뭐라고 말을 더 걸기도 전에 알레그로는 물뱀과 함께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뭐야?”
알 수 없는 말만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퀘스트도 아니다.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알레그로에게는 일반적인 NPC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현묘함이 느껴졌다. 마치 세이온이라는 세계가 가상현실이라는 것과 내가 유저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리고 굳이 확인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지금 당장 다행인 건 알레그로가 죽지 않았다는 것. 왠지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상태창이나 열어 보자.”
박살 난 방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난 기분 전환을 할 겸 상태창을 열었다. 알레그로의 레벨이 워낙 높아서인지 무려 5레벨이나 상승했다. 미분배 능력치는 지능과 의지에 분배했다. 알레그로와 싸우면서 능력치가 랜덤하게 오르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지능과 의지는 오르지 않아 다른 능력치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다.
[캐릭터 상태창]
이름: 케이
레벨: 48
종족: 인간
직업: 무직
신분: 평민
명예: 617점
능력치
근력: 65 (+15)(+20)
민첩: 60 (+20)(+40)
지능: 55 (+25)(+30)
의지: 70 (+20)(+20)
오러: 103 (+15)
생명력: 2500/2500
마나: 2950/2950
미분배 능력치: 0
스킬
1. 스킬이터 [신화급] [7티어]
-진(眞) 광폭화 [7레벨]
-친위대 소환 [5레벨]
-진흙 방패 [7레벨]
-데스레이 [4레벨]
-광역매혹 [3레벨]
-멸신검[1레벨] (new) [한정 사용 가능]
2.뱀파이어릭 오라 [전설급]
-오라 발동 후 공격 시 생명력 흡수
-30초간 공격력의 54%만큼 생명력으로 흡수하며 흡수당한 상대의 무기력 저주 [3레벨 부여]
쿨타임 1분
필요 마나: 150
3. 푸른 바람 일족 오러 연공술[희귀 등급][4티어]
-능력치 오러 생성
-오러 공격 시 공격력 130% 증가
-즉사 판정 수치 20% 하락
-모든 피해의 30%를 오러 피해로 전환
4. 산들바람 걷기[전설 등급][3티어]
푸른 바람 일족의 수호자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비전 보법이다.
-30초간 이동 속도 100% 상승, 회피율 100% 상승
소모 마나: 100
쿨타임: 1분
“한정 사용 가능?”
멸신검이라는 문구 말미에 적힌 문구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정 사용 가능이라……. 스킬이터에 이런 것도 있었나. 하긴 같은 신화급의 오러블레이드를 다루는 스킬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멸신검이라는 글씨를 클릭하자 밑으로 멸신검에 대한 설명이 주르륵 나타난다.
멸신검
-푸른바람엘프족의 소드마스터 알레그로가 고대의 검술인 멸마류에서 영감을 받아 창안한 절대 검술이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초상승의 검술로, 준비되지 않은 자가 사용했을 시 큰 화를 입게 된다.
오러 블레이드 [신화 등급] [사용 불가]
사용 필요 조건
-레벨 60이상 [미달성]
-오러 능력치 200 [미달성]
-푸른바람일족 오러 연공술 10티어 [미달성]
-산들바람 걷기 10티어 [미달성]
-업적: [신화 등급] 폭풍 학살자 [미습득]
-소드마스터 알레그로의 가르침- 현자의 돌 필요(0/1)
“와…….”
무려 필요 조건이 여섯 개나 필요한 스킬이다. 다행이라고 할 것은 푸른바람일족의 오러 연공술과 산들바람 걷기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최악인 것은 뭔지도 모르는 신화 등급의 업적이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얼마나 배웠는지 가늠도 안 되는 알레그로에게 아직 배울 것이 까마득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림의 떡이라는 뜻이다.
“60레벨이라… 까마득하네.”
레벨도 문제였다.
내가 알기로 현재 레벨 랭킹 1위가 91레벨이었다. 오픈하자마자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달성한 게 고작 91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엄청난 광렙을 했는데 고작 60레벨이 무슨 대수냐고. 그런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세이온은 10단위로 레벨업의 난이도가 갑절로 높아진다고 들었다.
“일단 나가 보자.”
알레그로에게 계속 붙잡혀서 외부에 나가지를 못했다.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높네.”
잡혀 올 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어디인지도 몰랐다.
탁… 타탁…….
나뭇가지를 밟으며 밑으로 내려온 나는 이상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엘프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바람의 정령들도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유령마을에 있는 것 같다. 그때였다. 나무 위에 있었는지 날렵한 남자 엘프 하나가 바닥에 내려 앉은 것은……. 전에 몇 번 같이 외부에 나갔던 엘프레인저다. 이름이 카미엘이던가.
“케이 님! 이제 나오신 건가요?”
“네. 카미엘 님. 그런데 마을에 어째서 아무도 없는 거죠?”
“그게…….”
내 물음에 잠시 분노한 표정이 되었던 카미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전 베소 왕국과 치나 제국이 쳐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