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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75화 (75/154)

75. 네가 대가리냐

“네임드군.”

불타는 숲을 보고 패닉에 빠진 엘프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오판이었다.

강타자의 등장이다.

“카케야마! 군을 움직여라.”

제갈량의 명령조에 카케야마의 눈빛이 꿈틀했으나 이내 표정을 감추고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정렬하라!”

“정렬!”

“정렬!”

불을 지르던 베소 왕국의 병사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진을 갖춘다. 마법사단은 후위로 물러나고 그 앞으로 기사단이 도열했다.

“적을 포위하라!”

“포위하라!”

“포위하라!”

군령에 따라 수천의 개미가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 충천한 군기에 겁먹을 법도 하지만 셋의 목을 베어 버린 엘프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걸어왔다.

“흠…….”

강한 놈이다. 숫자는 고작 하나지만 여긴 현실이 아니다. 단 하나가 백 혹은 천의 전투력을 지닌 존재가 흔하게 굴러다니는 판타지 세상 속이다.

하물며 유비, 관우, 장비 삼 형제가 한 호흡에 목이 잘렸다는 건 최소 네임드 보스급 NPC라는 뜻! 그러나 동요하지는 않는다. 블루 포레스트를 불태우는 순간부터 푸른 바람 엘프들의 네임드 NPC가 나설 것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만약 이런 존재가 다른 엘프들과 함께 자신들을 공격했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공격!”

“쳐라!”

“우와아아아!”

병사들이 돌격한다.

그리고…….

콰가가가각!

놈의 칼질이 시작되었다.

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동강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치 추수철 농부의 능숙한 낫질을 만난 것처럼 속절없이 쓰러졌다. 병사들이 창과 방패로 포위진을 형성해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 의미는 시간 끌기밖에 없다.

그러나 이럴 것이라는 건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간옹! 마법사단 앞으로…….”

“예! 이미 준비 끝마쳤습니다!”

기사단에 보호받는 일백의 마법사들이 멀리서 반원형의 포위진을 갖췄다.

푸른 바람 엘프들의 바람의 정령들의 카운터로 바람과 땅 속성 마법의 마스터들이다.

“결계 마법으로 저 엘프 놈의 마나를 꽁꽁 얼려 줘라!”

“예! 모두 광역 결계 마법을 펼친다!”

간옹의 외침에 일백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지이이잉!

마법사들의 지팡이 끝 오브로부터 터져 나온 남색 마력이 전장을 휘감기 시작했다.

“후후후,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상극 속성에는 꼼짝 못하는 게 엘프들입니다.”

간옹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지금까지 덤볐던 모든 엘프들이 이 마법에 당해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대지의 분노!”

“대지의 분노!”

남색의 마력이 전장을 휘감으며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의 반경 300m에 이르는 거대한 반구가 생성되었다. 화염이 뿜어지거나 땅이 갈라지거나 냉기가 뿜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대규모 마법은 바람 계열 정령과 마법을 쓰는 푸른바람엘프들에게는 카운터 마법이었다.

대기 중에 마나를 땅속성으로 바꿔 땅속성 외의 마나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참고로 엘프들이 사용하는 마나는 바람 속성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네놈도 푸른바람엘프라면 이 마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지.”

푸른바람엘프들의 마나의 근원은 바람이었다. 정령을 쓰든 마법을 쓰든 혹 궁술을 쓰든 바람의 마나를 사용한다. 엘프들의 치명적이 약점. 그리고 그가 준비한 것은 그 바람의 마나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거미줄에 걸렸군. 기사단! 팔다리를 잘라 놔도 상관없다. 생포하라!”

“예!”

네임드급 NPC는 다루기는 어려워도 쓸모가 많다.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면 천군만마이며, 정 반항이 심하면 팔다리를 잘라 버린 후 머릿속에 든 모든 비전만 뽑아 내도 된다. 이미 그런 식으로 네임드 NPC들을 비밀리에 잡아들여 실험도 끝냈다. 현실이었다면 비도덕적인 행위로 지탄받겠지만 어차피 여긴 게임 속이다.

“가볍게 네임드 하나 접수구나.”

학우선을 천천히 흔들며 제갈량이 한가롭게 중얼거렸다. 죽은 셋이야 부활하면 된다. NPC 병사는 어차피 소모품. 결론은 피해는 없다.

그러나… 만약 그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면 그는 웃기지도 않는 광역 결계 마법이 아닌 광역 전멸기를 사용하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리고 전멸기를 통해 삼천에 가까운 병사들이 다 죽는다 해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절그럭! 철컥!

방패를 앞세운 채 걸어오는 기사들의 앞으로 포획만을 전문으로 하는 병사들이 손에 쇠그물과 마름창을 들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력한 네임드 NPC라도 수십 개의 쇠그물에 묶이면 끝장이다. 그러나 그들이 쇠그물을 던질 틈이 없었다.

씨아아아앙! 콰콰콰쾅!

잔상을 일으키며 돌진해 들어온 뭔가가 스치자 마치 거대한 톱날이 썰고 지나간 듯 그들의 허리가 양분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병사들로는 막을 수 없다. 마나를 차단했음에도 적의 움직임에는 전혀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

“으아아악!”

“크아악!”

“기사단! 방패를 들어라!”

처처처처처척!

엘프의 앞으로 거대한 방패의 벽이 나타났다. 두께가 한 뼘은 될 법한 무식한 사각 방패다.

팟!

기사들을 향해 돌진하던 엘프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때를 노렸다는 듯 기사단장이 외쳤다.

“쏴라!”

방패의 벽 뒤에 숨어 있던 백여 명의 궁수가 번개같이 일어나 그물이 묶인 특수 화살의 시위를 당겼다. 벽을 우습게 뛰어넘는 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톱니바퀴처럼 짜여진 합격술이다.

파파파콰콰콰쾅!

수십 발의 그물 화살이 엘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제갈량은 이번에야말로 엘프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공중을 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든 바람의 마나를 모두 마비시킨 상태다. 정령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고 그럼 끝이다. 그러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쉬이이잇! 파파파팟!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공중을 밟으며 신묘한 움직임으로 그물들을 모조리 피해 낸 엘프가 궁수들의 중심으로 떨어져 내렸다.

“쪼개져라!”

쿠쿠쿠쿠콰콰쾅!

피로 이루어진 파도가 사방으로 찢어지며 기사와 궁수들이 있던 곳은 피떡이 된 시체 밭으로 화했다. 합격술을 완전히 박살 낸 엘프는 곧장 제갈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어오르는 혈무 속 두 눈이 호랑이처럼 빛난다.

“이놈!”

분노한 기사단장이 달려들었지만…….

지이이잉!

엘프의 손가락에서 쏘아진 붉은 광선이 기사단장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호오, 제법…….”

바람의 마나를 틀어막았음에도 이 정도의 신위를 보인다. 지금껏 사로잡았던 NPC들과 비교해 봐도 수위권에 들 공격력! 정말 탐이 나는 놈이다!

“사대신마 나서라.”

“예!”

처처처척!

그를 호위하는 사대신마가 앞으로 나섰다. 치나 제국 내에서 서열 100위권에 드는 이들로 구성된 그의 친위대다. 각자 검마, 신마, 도마, 권마로 불리는 그들은 모두 80레벨에 신화급 스킬을 지니고 있다. 차후 대한민국의 최강자인 세스를 잡기 위해 육성한 비장의 패다!

“사지를 잘라도 좋다. 사로잡도록!”

“예!”

제갈량의 말에 대답한 그들이 달려오는 엘프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 나갔다.

가장 앞서나간 것은 신화급 보법을 지닌 신마다. 그의 손에 들린 반월도가 빛난다.

파파파파팟!

신마의 몸이 순식간에 여덟 개로 쪼개졌다.

“나의 팔신보를 따라올 자는 없다.”

허상 같아 보이지만 여덟 개 모두가 본체와 같은 힘을 지닌 진짜다. 물론 진체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지금껏 신마와 맞선 이들 중 그 진체를 파훼한 이는 없다.

“사지는 내가 가져가지.”

여덟의 분신이 일시에 엘프의 전신을 베어 갔다.

피할 곳 하나 보이지 않는 완벽한 공격! 그러나 그의 공격은 엘프의 몸에 털끝만큼도 생채기를 내지 못했다.

채채채채채챙!

유려한 움직임으로 여덟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내며 엘프의 입술이 달싹였다.

“광역 매혹.”

“헉!”

엘프에게서 뿜어진 기이한 마력에 그의 여덟 분신이 일시에 멈춰 섰다. 마치 군중제어기에 당한 것처럼 움찔거린다. 아주 찰나일 뿐이지만 상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쪼개져라.”

츠컥! 콰콰콰쾅!

여덟의 분신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날아오르는 신마의 육편을 뚫고 엘프가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어?”

이제 상당히 가까워져서 엘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제갈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엘프가 아니다. 상대는 유저다.

“빌어먹을…….”

마법사들을 이용해 기껏 바람의 마나를 얼렸는데 상대가 엘프가 아니다. 지금까지 허공에 삽질하며 좋아한 꼴이다. 신마가 당했다. 아직 셋이 남았지만 뇌리에 불안함이 스친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를 악문 그의 눈에 상대가 머리 위로 치켜든 검이 붉은 아지랑이가 보인다. 그리고 일순간 폭발하듯 피어오른 그 핏빛 광채를 마주한 순간 그는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그놈이다!’

3초살… 투기장 무패의 괴물! 대륙 랭킹 1위의 천공제를 꺾은 대륙의 악몽! 최근 한 달 넘게 방송을 하지 않아 게임을 접었다느니 본주가 죽었다느니 소문이 횡횡했는데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말뜻은…….

“피해!”

지금 놈의 손에 응축된 저것은 투기장에서 모든 도전자를 3초살 시켜 버리던 무지막지한 공격이라는 소리다.

* * *

[피의검]

[광폭화]

극한으로 치환된 공격력이 듀랜달에 맺혔다. 꽤 오랜만에 생명력을 바닥까지 끌어모았더니 두 손이 윙윙거린다.

“옳지.”

나를 향해 솟구치는 세 놈이 보인다. 앞서 덤볐던 놈처럼 오만함에 절여진 멍청한 표정이다. 나야 와 주면 아주 생큐베리머치다. 이건 내 극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이니까.

“팔황천검!”

“패도천하!”

“금강천권!”

중국 놈들답게 자신들의 스킬명을 요란하게 외치며 덤벼든다. 거참… 부끄럽지도 않나? 난 죽었다가 깨어나도 스킬명을 입으로 외치며 쓰지는 못할 것 같은데…….

얘들은 걸핏하면 스킬명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도 아주 거창하다. 그런데 죄다 ‘천’ 자가 들어가는 걸 보면 천이 유행인가. 뭐 스킬이라는 게 가진 사람 마음대로 이름 바꿀 수 있으니 개취는 존중하겠지만 저런 낯 뜨거운 스킬명은 진짜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 손발을 오그라들게 한 죄다.”

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세 줄기의 오러에, 한껏 충전된 듀랜달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어스 브레이크]

파앗!

듀랜달에서 시작된 반월형의 오러가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세 줄기의 오러를 향해 나아갔다.

콰콰콰콰콰쾅!

스킬들이 정면으로 맞붙은 영향으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고, 잠시 후 스킬이 쏟아진 곳에는 반경 20m는 될 법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 어스브레이크에 용맹하게 덤벼든 셋의 사체가 흩어져 있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빙고.”

역시 레벨 업에는 사람 사냥이 짱이다. 게다가 더 즐거운 건 주위에 경험치들이 가득 몰려 있다는 것이다.

[뱀파이어릭 오라]

지이이잉…….

붉은 아지랑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적들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어 갔다. 이건 티어가 오르면서 새롭게 생겨난 효과인데, 뱀파이어릭 오라에 노출된 이들은 공포 효과에 빠지며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된다고 되어 있다.

“효과 좋은데?”

자고로 겁먹은 적만큼 요리하기 손쉬운 게 없다. 그렇지? 이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야!

“컥!”

난 싸움터에서 재수 없게 부채질이나 하던 놈의 목을 움켜쥐었다.

“네가 대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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