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76화 (76/154)

76. 잘 먹겠습니다

1억이라… 큰돈이다.

“콜”

“뭐?”

내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녀석의 눈이 커졌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녀석의 지시에 따라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 이 녀석 딴에는 시간 끌면서 포위진을 완성하려고 했는데 내가 긍정해 버리니 사고회로가 잠시 멈춰 버린 걸 거다. 그렇지만 나 또한 시간을 좀 벌려고 녀석과 말을 맞췄을 뿐이었다. 자기 딴에는 군대의 가장 강한 이들을 모아 나를 죽이려는 속셈 같은데 나 또한 가장 강한 녀석들이 모여 주기를 바랐으니까.

“1억 위안이면 기꺼이 너희 손을 들어주지.”

“……?”

“뭘 놀래? 1억 위안 말하는 거 아니었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1억 위안은 원화로 180억 정도 되는 돈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 어차피 죽어 봤자 부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냐?”

“어디 할 테면 해 봐.”

녀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치 마음대로 해 보라는 것처럼… 확실히 세이온에서는 목이 떨어진다고 끝이 아니었다. 게임은 게임. 죽었을 경우 10분의 타이머가 돈다. 10분 이내에 부활을 받으면 사는 것이고, 못 받으면 죽는다. 그리고 이 녀석은 내가 여기서 10분을 못 버틸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

“후후.”

왠지 웃음이 난다. 그러자 제갈량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웃지?”

“글쎄, 왜 웃을까?”

무려 삼천에 둘러싸였는데 전혀 겁이 안 난다. 아니, 오히려 이것들이 전부 내 경험치로 보인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근거는 상승한 스킬 티어도 있겠지만 새롭게 얻은 멸신검이라는 스킬 때문이다.

[멸신검]

-공격 속도 100% 상승

-반응 속도 100% 상승

-사용 시 10초당 오러 1 소모

무려 신화급 스킬의 위력이다. 물론 저 공격 속도와 반응 속도를 내가 온전히 끌어낼 수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아바타의 능력치가 아무리 높아도 사용자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면 빈 쭉정이 같은 능력치일 뿐이다.

그러나 알레그로와 싸운 난 한 달 전의 내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고양감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한 내 착각인지 아니면 정확한 평가인지는 이곳에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 한번 시작해 보지.”

“쳐라!”

“와아아아아!”

챙! 채채챙!

창의 파도가 나를 향해 밀려 들어온다.

사면초가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초나라 패왕 항우가 한나라 명장 한신에게 포위당한 것을 유래로 둔 이야기처럼, 난 지금 사방에 적들만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걸까?

[멸신검]

“하아아!”

가슴으로부터 솟구친 혈기가 단숨에 머릿속을 잠식했다. 마치 최신형 레이싱카의 부스터를 발동시킨 것처럼 맹렬히 차오르는 고양감에 정신을 놓을 것 같다. 아무리 신화급 스킬이라고 하지만 고작 1티어에 이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가?

찔러 들어오는 창들이 너무나도 느리게 느껴진다. 막을 필요도 없다.

츠컥! 쫘아아악!

피하고 벤다. 자르고 나아간다. 사방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온갖 공격들이 쇄도하지만 난 그것들을 모두 피하며 적들을 도륙하고 있다. 등 뒤로 찔러 들어오는 창이 느껴진다. 몸을 빙글 돌려 창을 옆구리에 낀 후 그대로 휘둘러 창을 든 놈을 돌진해 들어오는 놈들에게 던져 버린다.

“으아아악!”

옆구리의 낀 창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사방을 찢은 후 창의 원래 주인의 배에 꽂아 버린다. 몸에 닿는 것이 없느니 몸에 두른 방어 스킬이나 아이템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위이이이이! 콰아아앙!

그때였다. 맹렬한 폭발에 어깨에 푹 내려앉았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으악!”

“뜨거워!”

나를 향해 검을 찔러오던 병사들이 불꽃에 둘러싸여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 나야 뭐, 500연승 보상으로 얻은 ‘태고의 신비’가 있어 영향을 덜 받는다. 아예 생명력이 안 깎이는 건 아니지만 주위에 뱀파이어릭 오라의 제물들이 널려 있으니 난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건 그렇고 같은 편에게도 마법을 쏴 대다니…….

“멋진걸?”

자고로 전쟁이라면 좀 처절한 맛이 있어야지. 뭐, 추측으로는 지금 내 발밑에 깔린 제갈량이라는 놈이 어서 빨리 나를 죽이라고 독촉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쉽게 죽어 줄 것 같으냐.

“주인공이 빠질 수 없지.”

죄다 삼국지 인물이니 마치 아두를 가슴에 품고 홀로 대군을 갈랐다는 조자룡이 된 기분이다. 물론 실제로는 많은 소설적인 과장이 가미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나중에 꽤 실망했지만.

뭐 어떤가.

파파파파팟!

난 병사들이라는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갔다. 베고 또 벤다. 간혹 날카로운 공격들이 찔러 들어오지만, 진흙 방패로 막아 가며 나아갔다. 지금 내가 노리고 있는 것은 마법사들이다.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방치할 수준은 아니다.

파카카캉!

“흡!”

처음으로 벽에 부딪혔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예의 그 기사단의 방패 벽이다. 처음에야 뛰어넘었다지만 이번에는 호락호락 보내 주지 않겠다는 듯 방패와 무기에 오러를 씌운 채 날 밀어붙였다. 어스 브레이크로 밀어붙여 볼 만하지만, 워낙 동작이 큰 공격이라 뒤와 옆이 빈다.

“이놈!”

채채챙!

설상가상으로 방패의 벽을 비집고 검들이 사납게 베어 들어왔다. 검들을 거둬 내며 카운터를 노렸지만, 또다시 방패에 막혔다.

“흠…….”

오러를 두른 검인데도 뚫지 못한다.

듀랜달을 휘두르던 난 동작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뭔가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다. 알레그로의 가르침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검 시작은 자유로운 의지다. 그것을 베고 베어 완전히 마음에서 지웠을 때 자신의 검이 만들어진다.’

‘마음으로도 베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이기기를 바라느냐. 의지가 곧 힘이 되어 극의에 다다르면 신조차 벨 수 있다.’

“설명 좀 잘 들어둘걸.”

뭔가 두서없는 선문답 같기는 한데 아직도 알 듯 말 듯하다. 어쩌면 멸신검이라는 스킬을 얻기 위한 기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래대로라면 그의 가르침이 다 끝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을 난 스킬이터를 통해 편법으로 가로챘다. 그러나 상관없다.

츠츠츠츳…….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데 몸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파카카캉! 카카칵!

“헉!”

오러가 뚝뚝 흐르는 검 세 자루를 파고들어 그 손목을 잘라 냈다.

날 향해 검을 뻗던 기사들이 헛숨을 들이켠다. 완벽한 허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혀서 놀랐나? 투구 속 눈이 동그래져 있다. 사실 나도 놀랍다.

츠컥! 쫘아악!

놀란 눈의 기사 셋의 머리가 사이좋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과거 부딪혔던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두 세수는 더 강해 보이는 이들인데 이제는 왠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좌우에 서 있던 녀석들이 물러났다. 당황하자 허점이 드러났다.

‘무술이란 생사를 걸고 맞부딪치며 껍데기를 깨뜨릴 때 그 진의를 깨우칠 수 있지.’

“여기만큼 어울리는 곳이 없네요.”

적진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어 몸을 웅크렸다. 지금 사용하려는 스킬은 두 가지다. 바로 산들바람 걷기와 어스브레이크! 하나는 보법이고 하나는 광역기로 얼핏 보면 전혀 연계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세이온의 스킬이라는 것은 단순히 독립된 것이 아닌 유기적으로 맞물려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처음 해 보는 거지만 성공할 것 같다.

“하앗!”

산들바람걷기를 하며 어스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본래라면 전방 부채꼴처럼 터져 나갔을 어스브레이크가 산들바람 걷기의 환보와 맞물리며 오러를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으아악! 피해!”

“빌어먹을! 으아악!”

마치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나를 중심으로 오러가 뻗어 나가고, 폭발에 휩쓸린 기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한순간 내 주위가 깨끗해졌다. 거의 반경 10m는 청소한 것 같은데 공포와 경악에 물든 기사들의 눈이 볼 만하다. 그러나 감상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겁먹어 초식동물이 된 것들은 물어뜯어 삼켜야 하니까.

챙! 채채챙! 쫘아악!

무차별적으로 베며 앞으로 나아간다. 정신 차린 몇몇이 저항해 오지만 내 일격을 막아내는 놈은 없었다.

크리티컬! 크리티컬! 크리티컬!

모조리 급소를 베어 일격에 끝장내자 기사들의 눈이 공포에 물들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중되는 혼란, 뒤를 쫓아 등을 벤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고레벨들이라서 그런지 레벨도 잘 오른다.

“후아…….”

난 내 한 손에 붙들린 제갈량이라는 놈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네가 살아날 수 있을 거 같니?”

시체는 말이 없다. 아니, 살아 있었어도 말 못 할 것 같다.

* * *

“쏴라!”

광기에 찬 외침과 함께 백여 명의 마법병단은 가진바 마나를 모조리 끌어내 화염 마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으아악!”

“저 미친!”

아군들이 초열 하는 불꽃에 휩쓸려 비명을 지르지만 그들의 마법은 그 비명마저도 무참히 삼키며 주위에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태우려는 괴물은 건재하게 서서 주위에 불타 쓰러지는 것들을 베어 넘기고 있다.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카케야마는 질린 표정으로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는 괴물을 바라봤다.

자신이었다면 체력 고갈로 이미 쓰러져도 수십 번은 쓰러졌을 것이다. 아무리 체력 관련 능력치가 높다고 해도 저 대군에 둘러싸여서도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다.

“크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병사들이 갈려 나가고 있다. 대부분이 NPC 병사들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사망한 숫자는 무려 500명이 넘었다.

물론 아직 2500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사기다. NPC 병사들은 유저들과 다르다. 유저들이야 죽어도 부활도 있고,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NPC 병사들은 이곳이 현실이었다. 겁을 먹으면 도망치고, 배신도 할 줄 안다. 가뜩이나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던 블루 포레스트를 공격하는 일이라 여론도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치나 제국에서 지원 온 마법 병단이 적아 안 가리고 저렇게 마법을 난사해 대니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더라도 좋은 말은 듣지 못할 것이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언제 오는거야.”

마음 같아서는 기사단을 움직여 놈을 밀어내고 싶지만, 기사단은 치나제국의 마법병단을 보호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 기사단은 지금 괴멸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 제갈량이라는 놈은 괴물을 퇴치할 비장의 무기가 오고 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란다. 그때였다. 그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이들이 전장에 출현한 것은…….

“진무십천이다!”

하늘에서부터 십 인의 남녀가 내려섰다.

멋들어진 등장이나 휘황찬란한 아이템도 눈이 부시지만, 진무십천이라는 그 이름은 절대 무시 못할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내에서의 평가지만 세이온 랭킹 100위권 중 수위권의 10인이다. 하나하나도 강한데 그런 이 10명이 모여 움직인다.

듣기로는 중국의 광전총국의 지원을 받아 움직인다는데 재능은 둘째치고 그 개개인이 웬만한 중견기업 수준의 장비와 스킬들로 무장한 괴물들이다.

“오셨습니까.”

카케야마가 극진한 예를 차린 채 말했다. 자신이 이 전장의 지휘관이라 해도 이들에게는 지시를 내릴 권한은 없다. 속으로는 더러운 땟놈 새끼들이라고 곱씹고 있지만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내보였다가는 목이 날아갈 것이다. 이들은 그 실력만큼 성격도 오만방자하기로 유명하니까.

“저놈인가? 우리가 처리할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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