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그냥은 못 나가지
“누나.”
“왜?”
“이게 뭐야?”
난 눈앞에 뜬 방송 정지 팝업을 누나에게 보여 줬다.
“에?”
황당하다는 표정의 누나가 자신의 계정으로 들어가 내 방송국에 접속했다.
[서비스 이용이 정지된 방송국입니다. 정지 기간: 3,000일]
“헐?”
방송국 게시판마저도 막혀 있다.
“누나, 내 방송 막힌 거야?”
“어어, 와… 졸라 어이없네. 이건 진짜 구독자 10명도 안 되는 하꼬 비제이한테나 할 짓을 너한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누나가 스마트폰을 든다.
“네. 실장님. 잘 계셨어요? 아… 그 문제는 제가 곧 해명 방송할 거고요. 네. 네. 감사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제 동생인 케이 방송이 막혀 있어서 그런데… 예? 예! 아니 그게 무슨…….”
실장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던 누나의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저기 실장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케이가 그런 식으로 다뤄질 비제이는 아니죠. 아뇨. 전 문제 없어요. 네? 제 처신이나 잘하라고요? 실장님! 어떻게 실장님이 저한테 그렇게 말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아직 그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밝혀지지 않은 거 아닌가요? 네네. 후우, 실장님. 그 일은요. 여보세요? 실장님! 이런 씨!”
퍽!
스마트폰을 내동댕이친 혜미 누나가 씩씩거린다.
“이 새끼들 세이온 덕분에 근래 꿀 빨아서 떡상했다고 미쳤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뉴스에서 말 나오기 전에 쳐내라고 위에서 지시 떨어졌대.”
“하?”
웃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후원과 방송을 통해 꽤 많은 돈을 벌어 준 나를 이렇게?
“누나, 이런 게 가능해요?”
“그러게. 나도 말이 안 돼서 전화했는데 내 처신 잘하라네. 나도 까딱하면 정지 먹는다고… 호호호호… 정 실장 이 돼지 새끼…….”
누나도 기가 차는지 헛웃음만 지었다.
아무리 요즘 세이온 덕분에 개인 방송 플랫폼이 우후죽순 성장하는 추세라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물론 내 콘셉이 좀 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얼굴 좀 반반한 실력파 세이온 비제이는 정말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막말로 폭발하듯 늘어나는 게 비제이였다.
플랫폼 메인 페이지에 들어가니 핫클릭에 파킨과 그의 크루들의 연합방송이 눈에 띈다. 실시간 동접자 수가 무려 6만에 달하는 거대 방송이다.
[폭행 비제이 그 더러운 실체를 파킨이 밝힌다!]
자극적인 섬네일이 눈에 띈다.
몽둥이 든 파킨이 모자이크된 남자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데 척 봐도 내 얼굴이다.
“이 새끼는 물 만났네.”
나랑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건수까지 생겼으니 아주 맘 놓고 두들겨 패겠다는 듯 노골적이다. 괜히 들어가면 기분만 상할 걸 알지만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드나 궁금하다.
딸칵.
방송에 들어가니 세이온 광고가 끝난 후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 세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이 새끼는 말이야. 아주 암적인 존재라는 거야. 안 그러냐. 병건아.
-그렇죠, 형님.
-아까 말했듯이 이 새끼는 아주 시작부터 X 같은 새끼였어. 왜냐! 이 새끼 얼마나 광렙했는지 알지? 여기 보면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20레벨을 찍어 버렸다니까. 근데 말이야, 여긴 아주 더러운 진실이 숨어있어.
-그게 뭡니까? 형님.
-이 새끼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20렙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전부 초보자들을 어마무시하게 죽여서라는 거야. 갓 세이온을 시작하는 파릇파릇한 초보자들을…….
-헐! 초보자요? 아니, 건드릴 게 없어서 초보자를 죽여서 레벨 업을 해요?
-그러니까 아주 X 같은 새끼라는 거지.
내가 사람 죽여서 레벨 업 하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뒤치기들이나 중국의 전문 작업장들이었다. 그 증거로 내가 단 한 번도 약탈자가 된 적이 없다는 것과 위튜브에 올려진 내 영상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그런 말을 타이핑 해 봤자 홍수처럼 쏟아지는 채팅에 묻혀 버릴 것이다. 그사이 수만에 이르는 시청자들은 그 비제이의 그 시청자 아니랄까 봐 온갖 더러운 욕설로 내 신경을 긁어 댔다.
수백만 원은 될법한 도네이션이 채팅창을 폭격한다.
-시청자 여러분, 저 파킨 여기서 맹세합니다. 이 새끼 다시는 세이온 하지 못하도록 영혼까지 찢어 놓겠습니다. 저와 저를 따르는 모든 비제이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케이 이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 이런 놈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요!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돼. 애미 애비한테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 제가 해 주겠습니다!
[깡철TV 님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파킨 형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엘프년들 혼자 먹고 다니는 거 눈꼴 시려웠는데 잘됐네.
[씨렉 님 1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라는 놈 이제부터 눈에 보이면 무한 척살 들어갑니다.
[큐이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혼자 블루 포레스트 먹고 약 올리더니 이참에 다 찢어 버립시다.
[비제이아뵤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파킨 오빠와 함께 가즈아! 아뵤는 오빠를 응원해요!
[까부리TV 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케이 놈 포디나에서 작위 받음. 그 색히 잡으려면 포디나부터 까부셔야 함.
“지랄들을 하네.”
블루 포레스트를 독식한 건 맞지만 난 엄연히 퀘스트를 통해 정당한 출입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저따위 마인드를 지닌 비제이들을 블루 포레스트에 들여놨다간 멀쩡한 내 친밀도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아이디 하나하나 기억해 둔다. 내가 쉴 틈 없이 떠오르는 후원 메시지를 노려보며 살생부를 정성스럽게 적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형.”
-어, 그래. 정현아. 하나 물어보자. 너 혹시 김민수라는 놈 아냐?
“김민수? 아니, 전혀 모르는 이름인데?”
-그래? 그럼 이 새끼들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네. 광수야. 다시 매달아.
철컹! 드르르르르륵!
뭔가 살벌한 쇠사슬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비명소리도 좀 섞인 것 같은데… 뭐지?
-흐어어엉, 파! 파킨! 파킨! 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예요!
-진짜야? 아니면 평생 기저귀 차게 만든다.
-진짜예요. 흐흑… 전부 파킨 그 새끼가 시킨 거라고요.
“파킨?”
* * *
오후가 되자 상도 형이 혼자 돌아왔다. 광수 형은 흥신소 사무실에서 상어 두 마리를 감시하고 있다는데, 혼자서 둘을 괜찮겠냐고 물어보니 씨익 웃으면서 그러면 광수가 무척 즐거워할 거라고 하더라. 아무튼 그렇게 모인 우리 셋은 지금까지 모인 정보를 종합했다.
“결론은 나를 매장시키려 했다는 거네.”
“그렇지.”
“근데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대? 비제이들 주소는 플랫폼 내부자도 알기 어려운 정보 아닌가?”
과거 일부 극성 시청자들이 개인 방송인의 주소를 알아내 스토킹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개인 방송인의 개인정보는 플랫폼 내에서도 대외비에 속했다.
물론 주소를 오픈하고 활동하는 개인 방송인도 많았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참고로 혜미 누나도 나도 개인정보를 오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파킨 녀석 크루에 병건이라는 놈이 가르쳐 줬다더라. 병건이라는 놈은 플랫폼 내부자한테 정보를 얻은 것 같고…….”
“뭐? 플랫폼 내부자?”
형의 말에 난 아프리카에 가지고 있던 일말의 정마저 뚝 떨어지는 걸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본사로 찾아가 깽판을 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기에 앞서 손봐줘야 할 놈은 바로 파킨 그놈이다.
“대체 왜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 인간에게 뭐 엄청난 피해를 줬던가? 아니다. 물론 접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어그로 먹으려고 날 방송에서 까기에 블루 포레스트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맞장구 한번 쳐 줬을 뿐이다. 뭐, 사심을 좀 담은 메시지 하나 남기긴 했다. 블루 포레스트에 오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것 빼고는 파킨에게 원한 살 짓을 한 적 없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혜미 누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현아.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선택지는 많다. 나야 원래부터 결백했고 증거도 많으니까. 깨끗하게 청산하고 플랫폼에 복귀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건 기각이다. 정떨어졌으니까. 제대로 대우도 해 주지 않은 주제에 나를 이따위로 대접한 플랫폼을 떠나는 방법도 있다. 아니 조금 악하게 마음먹으면 아프리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지에는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바로 혜미 누나다. 그때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누나가 마치 내 속이 훤히 보인다는 듯 말했다.
“플랫폼 옮길 생각이지?”
“어? 어.”
“그런데 뭘 망설여?”
“그게…….”
누나가 나의 걸림돌이라는 것에 부담감을 가지게 될까 봐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럽다. 입을 다물고 있자 내가 망설인 그 대답을 누나가 대신 말했다.
“혹시 나 때문이면 그럴 필요 없어. 나 이참에 플랫폼 옮겨 버릴 거니까.”
“어째서?”
누나 방송의 근간은 아프리카였다. 나야 시작한 지 두 달 좀 넘어가서 아는 비제이도 없으니 상관없지만, 누나는 나보다 훨씬 오래 방송했기에 이리저리 얽힌 게 많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한다니…….
“사실 예전에도 파킨이 새끼 껄떡이는 것 때문에 몇 번이고 옮기려고 했었는데, 그래도 똥이야 피하면 그만이다 하고 버텼거든. 그런데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하는 짓 보니까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참에 그냥 속 편하게 플랫폼 갈아탈래.”
“누나 시청자들은?”
“내 시청자? 상관없어. 많이 떨어져 나가긴 하겠지만 이제 속 편하게 살래. 그리고…….”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누나가 날 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 힘들면 랭커들도 황금 고블린 취급하는 네가 먹여 살려 주지 않겠어? 으음, 그냥 이참에 해명 방송하지 말고 그대로 남친 할까?”
“저 누나.”
“왜?”
“나 연상은 별로인데…….”
아무리 누나가 플랫폼 내 여자 비제이 외모 순위 탑에 든다고 해도 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야! 나 스물넷밖에 안 되거든?”
“나 스무 살인데…….”
“아, 놔……!”
도끼눈이 되어 내 머리채를 붙잡으려는 누나를 상도 형이 지그시 막아선다.
“자, 헛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오빠! 헛소리라니! 나 심각하거든?”
투덜거리는 누나를 뒤로한 채 형이 나에게 물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냥은 안 나갈 거지?”
“응.”
이대로 나가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파킨 때문이라도 녀석의 방송에서 날 욕했던 놈들만큼은 모조리 짓밟고 화려하게 나가야겠다.
“크큭… 하하하!”
내 얼굴을 바라보던 형이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왜 웃어?”
“너, 그 얼굴 오랜만이다.”
“무슨 얼굴?”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아, 너 예전에 굴다리 애들 기억나냐?”
“어.”
굴다리 애들……. 예전 보육원 근처에 공업 고등학교를 다니던 양아치 무리들이다. 넷 정도가 몰려다니며 굴다리를 지나가는 약한 애들 삥을 뜯던 놈들…….
“걔들이 왜?”
“너 예전 중학교 때 승주가 걔들한테 맞고 이빨이랑 코뼈 부러져서 왔을 때 지금 딱 그 눈빛이었지.”
“그래?”
“응. 그리고 아마 다음 날 굴다리 얘들 전부 병원에 실려 갔지? 걔들 자주 다니던 노래방 화장실에서 뒤통수에 벽돌을 맞았다던가?”
“알고 있었어?”
“모를 수가 없지. 네가 마룻바닥에 숨겨 놓은 벽돌처럼…….”
“어떻게 알았어?”
“원래 내가 하려고 했거든. 네가 한발 빨랐지.”
당시 그 일로 시내가 꽤 시끄러웠지만 결국 범인은 못 잡았다. 앙심을 품은 사람이 한둘이었어야지.
“아무튼 이번 일은 나한테 맡겨라. 지금 눈빛 보니까 닥치는 대로 부수고 다닐 것 같은데, 형이 좀 더 전문가의 손길을 보여 줄게.”
“알았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꼬리를 삐죽 올린 형이 스마트폰을 들어 광수 형에게 전화했다. 잠시 후…….
“광수야. 걔들 어때? 오호… 그래? 그럼. 슬슬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