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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스 스킬 쓴다-82화 (82/154)

82. 반격 준비

이틀이 흘렀다. 본래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인터넷에 해명하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놈들을 찾아가 모조리 찢어발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역공을 하기 전 블루 포레스트 퀘스트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이유도 있고, 좀 더 묵혀서 쓰레기들 더 나오면 다 같이 쓸어 담아 똥통에 처박자는 상도 형의 계획에 따라서 분을 삭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천천히 준비는 해야겠지.

그 시작으로 일단 아프리카에 쌓인 후원금을 싹 처리했다. 이제 완전히 정이 떨어졌으니 깨끗하게 마무리하려 정리해 버렸다. 그렇게 나온 돈이 세금 제하고 일억 칠천 정도……. 고작 두 달 반 정도 한 거치고 엄청나게 많이 받아 혜미 누나를 기함하게 만들었지만 그건 내가 요 며칠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는 전리품이었으니까.

“골드 얼마 정도 나왔어?”

“오십만 사천오백…….”

“우수리 떼고.”

“우수리… 하, 그래. 오십만 골드…….”

“현금으로 환전하면 5억 5천 정도네.”

“세금 떼서 5억이야.”

“그럼 후원금까지 대충 7억인가.”

“그렇지. 7억… 하…….”

7억을 중얼거리던 누나가 갑자기 세상 다 산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왜?”

“난 세이온에서 한 달 내내 꼬리 살랑이면서 지랄해도 500만 원 후원 넘기기 힘든데…….”

“누나는 얼굴 잘 안 까는 게임 방송 비제이잖아.”

가상현실 게임의 특성상 게임에 접속할 때는 얼굴 공개를 할 수 없다. 물론 누나 정도 되는 미모와 몸매를 지닌 비제이가 본격적으로 돈 벌려고 마음먹으면 한 달 수천만 원도 가능하겠지만 누나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 했다.

“그건 그렇지만 후원으로만 2억… 사람 잡아서 먹은 템만 처분했는데 5억… 진짜 박탈감 오지네. 거기에 사람을 천 단위로 잡았는데 약탈자도 안 되고… 하…….”

“나야 일부러 퀘스트 완료 안 하고 적대관계 유지해서 그런 거고…….”

난 적대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에픽 퀘스트를 일부러 진행 안 하고 질질 끌었다. 물론 약탈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일본 애들 잡아먹고 쌓은 경험치와 돈이 너무 쏠쏠해서 그런 거지.

특히 이번에 만난 진무십천인지 단무지인지 들이 아주 꿀이었는데, 천공제의 주무기를 제외하고도 전설급 아이템 다섯 개가 떨어졌다. 오십만 골드의 대부분이 그 다섯 개 중 당장 쓸모없는 거 두 개값이다.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는데 붙어 줄지 모르겠네.

“쯧…….”

아무튼 난 누나를 통해 이번에 NPC 군대와 중국 흑우들을 상대해 주며 얻은 아이템을 경매장에서 현금화시켰다. 참고로 알짜배기 아이템들을 빼고 팔았는데도 수익이 5억이 넘는다. 구 씨 삼 형제와 전설급 가방의 활약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꿀 금액이다.

통장이 빵빵해지니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실 개인 방송을 하며 몇십만, 몇백만 후원도 받아 봤지만, 실제로 체감되지는 않았다. 숫자로만 보던 돈과 손에 쥐어진 돈이라는 건 느낌이 다르다. 딱히 쓸 곳은 생각나지 않지만 플렉스한 기분이랄까?

“부럽네.”

“돈 빌려줘?”

“음, 한 1억 정도?”

누나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며 말했다.

“알았어. 계좌로 보내줄게.”

“어?”

내 대답에 누나가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진짜?”

“응.”

“야, 너…….”

처음에는 좋아서 눈이 반짝하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 돈 좀 생겼다고 그렇게 아무한테나 돈 빌려주는 거야?”

“무슨 말이야?”

“돈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냐고!”

혜미 누나가 버럭 하고 화를 냈다.

“누나가 아무나는 아니잖아.”

“어?”

“누나는 나한테 아무나가 아니라고…….”

벙 찐 표정의 누나를 보며 난 피식 웃었다. 돈 귀한 거 나도 잘 안다. 아니, 그 누구보다 더 절실하다. 보육원은 기본적으로 풍족한 생활이라는 게 불가능한 곳이었다. 마음 놓고 돈을 쓰는 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었고, 친구들이 부모님이랑 어디를 놀러 갔다느니 새로 나온 신발이나 가방을 샀다고 자랑할 때 난 언제는 누군가가 쓰다 물려준 것을 사용해야 했다.

합리적인 소비 따위를 배우기 전에 이미 안 쓰는 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는 뜻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돈 쓴 건 캐릭터 장비 살 때랑 컴퓨터 산 것밖에 없다. 그 외에는 집에서 간단히 입는 옷 정도랄까? 군것질도 잘 하지 않아 얼마 전에 새로 만든 카드는 그냥 지갑의 장식품이다.

그런 내가 돈을 아무에게나 준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누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건 모두 누나를 믿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 믿음의 근거는 바로 형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지만 형이 그만큼 신뢰하는 사람이 혜미 누나라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볼이 붉게 물든 혜미 누나가 내게 말했다.

“아, 아무튼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어. 그리고 노파심에 이야기하는데, 누가 잘해 준다고 돈 막 빌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

“하하, 알았어.”

왠지 기분 좋은 느낌에 난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덕분에 기분이 한층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래.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다음 날. 어제까지는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난 정말 개인 방송인들에 모든 종류의 환멸을 느끼며 그 분노를 가슴에 새겨야 했다. 왜냐고?

세이온을 하는 개인 방송인들에게는 독특하면서도 암묵적인 약속이 몇 가지 있다.

영화 케리비안 베이에 나오는 협정처럼 모두가 지켜야 하지만 외부에는 발성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 암묵적인 약속을 보자면 첫째로 같은 개인 방송인을 저격할 시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만 한다는 것이다. 경쟁자지만 한편으로는 동종업계 사람으로 상생하자는 의미다.

둘째로는 한국 유저들의 거점인 코리 왕국의 일에 관련해서는 적아를 두지 않고 협력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절대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새끼들 선 넘네.”

파킨은 끝내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와 같은 학교 다녔던 시청자의 제보였는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그 더러운 이빨로 나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 개념이 왜 없나 했더니 진짜 애미 애비 없는 놈이었네.

-형님, 그거 좀 너무 나간 거 같은데.

-너무 나가긴 나라도 이런 새끼는 키우기 싫었을 거야. 아주 싸가지가 밥 말아 먹은 놈이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죠. 헤헤헤.

-아주 사회 암적인 존재야. 안 그러냐. 얘들아?

평생 다른 사람 짓밟고 욕하고 어그로나 끌며 지금의 인기를 얻은 놈과 그런 쓰레기의 시청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욕하고 침을 뱉었다. 그러나 난 대응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위튜브 채널에 몰려와 온갖 쌍욕 댓글을 몇천 개씩 처박아도 입을 다물었다. 형이 전문가의 손길을 보여 준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이 더러운 기분을 풀 곳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 딱 내가 필요한 정보가 혜미 누나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내가 베소 왕국 쪽에 알아봤는데 귀문 길드가 하이 엘프 NPC를 비밀리에 잡아 둔 저택이 있다네.”

“정말? 어딘데?”

“블루 포레스트 국경 근처 베소 왕국 영지인데 경비가 엄청나게 삼엄한 곳이래. 어때 냄새가 나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혜미 누나다.

누나 정말 고마워요.

* * *

블루 포레스트 점령의 첨병 역할로 국경 영지에 위치한 한 호젓한 저택 정문에는 오십여 명의 유저들이 칼날 같은 기세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 서 있는 두 남자는 바로 귀문 길드의 귀문칠걸로써 각기 귀문자, 귀문도라는 이명을 지닌 이들이었다.

“야 우리 대체 언제까지 여길 지켜야 되냐?”

우측에 선 요란한 머리 스타일의 남자가 이죽이며 말했다.

거대한 태도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귀문도는 한 자루 태도만으로 엘프레인저 한 부대를 도륙 낸 바 있다.

“왜?”

“하는 일 없이 접속해서 애들 데리고 두 시간씩 경비 퀘스트나 하니까 좀이 쑤셔서 그렇지.”

“참아. 천황에서 충격 먹고 전선을 후퇴시킨 뒤로 경비 1급으로 올렸잖아.”

“빌어먹을… 어차피 엘프 그것들이 쳐들어올 것도 아닌데…….”

“쉿, 천황 분위기 안 좋다. 가뜩이나 지원 왔다가 싸그리 몰살된 치나 제국 쪽 새끼들이 이번 일을 ‘엘프의 악몽’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은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어서 골치라더라.”

“미친… 고작 한 명한테 당해 놓고 지들이 약해 빠진 걸 왜 우리 탓해.”

“글쎄, 고작이라고 치기에는 NPC군대 1/3이 갈려 나가고 비장의 마법 병단이랑 기사단은 절반이 전멸, 거기에 치나 제국에서 좀 친다는 놈들까지 발라 버린 놈을 고작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냐?”

“흥, 우리 귀문혈이 그곳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걸?”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50인으로 구성된 귀문혈은 길드 마스터의 친위대로써 길드의 명운이 걸린 일에만 투입되는 정예였는데, 블루 포레스트의 푸른 바람 엘프족들에게서 납치한 하이 엘프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렇지. 빌어먹을… 괜히 전력 소모 줄인다고 중국 놈들을 끌어들여서 일본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만들다니…….”

문제는 중국 놈들뿐만 아니라 자신들까지 도매급으로 묶여 같이 욕을 먹는 것이다.

이번 일은 너무 부끄러워서 외부에 발표도 못 할 정도의 수치였다. 한 명의 유저에게 모조리 끔살 당했다. 물론 각국에는 그런 힘을 지닌 네임드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게임 유저층이 두터운 치나 제국 또한 랭킹에 속하지 않은 고인물들이 득실거리니까.

재미있는 건 한국의 반응이었다. 보통 자기 나라 유저들 중 이런 존재가 나오면 국뽕이 골수에 차오를 때까지 광고하기 마련인데 한국은 아예 모르는 듯 잠잠했다. 덕분에 위에서도 조용히 묻자고 합의한 듯하고…….

“그런데 그놈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지?”

“그거 전부 엘프 놈들 덕분이라더라.”

“엘프 놈들?”

“그래. 걔들 비전으로 전투력 뻥튀기 한 거지.”

“근거 있는 말이야?”

“그 안에 잡아 둔 하이 엘프가 그랬다더군. 고대 엘프로부터 내려오는 비전의 힘이라고…….”

“아하.”

“우리가 기를 쓰고 블루 포레스트를 점령해야 하는 이유야. 사실 위에서 보면 엘프 노예 따위는 부차적인 거지.”

“그렇지. 후우… 음?”

동료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귀문도는 문득 자신들을 향에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귀문 길드원이 아니면 그 누구도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물론 1진인 천황 길드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어디를 봐도 천황 길드의 표식인 욱일승천기는 보이지 않는다.

챙!

“어이, 멈춰라.”

태도를 뽑아 든 그가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검 끝을 세웠나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귀문도가 자신의 애검인 태도를 치켜들었다. 단숨에 베어 버릴 요량… 그러나 그는 그 검을 내리그을 수 없었다.

촤아악!

상대가 그를 지나친 순간 도를 든 두 팔이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커억… 너 대체 누구냐.”

“알아서 뭐 하게?”

빙글 돌아 목을 베어 버리자 공중으로 빙글빙글 떠오른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적이다!”

* * *

경험치 잘 들어오네. 빙룡도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 주니 옆에 있던 놈의 두 팔이 순식간에 검게 물든다.

“죽어라!”

두 손을 교차시키며 앞으로 뻗자 악령의 형상을 한 뭔가가 나를 뒤덮으려 한다.

‘진흙 방패.’

파파파팍!

자동 방어인 진흙의 방패가 악령을 튕겨 내 버렸다.

“헉!”

악령을 뿜어낸 상대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주춤 물러난다. 곱게는 못 보내주지.

넌 아이템이 좀 화려하니까 센 거로 죽여 주지.

‘피의 검.’

파아악!

빙룡도에서 핏빛의 오러가 쏟아져 나와 녀석의 머리를 순식간에 양단해 버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0.1초……. 이제 막 무기를 뽑아 드는 놈들의 눈이 공포와 절망에 물들어 갔다.

“놀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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