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보스 스킬 쓴다-83화 (83/154)

83. 반격 시작

살의와 광기가 어우러진 현장에 나를 던진다. 공포가 가득한 눈을 보니 즐거움이 용솟음친다.

“주, 죽여라!”

“없애 버려!”

‘산들바람 걷기.’

형형색색의 스킬들이 몸을 스쳐 지나간다. 피했음에도 생명력이 쭉쭉 떨어지지만 신체 버프와 뱀파이어릭 오라를 통해 다시금 차오른다.

“죽엇!”

카카칵!

귀문길드의 최정예라고 했던가.

난전으로 끌어들여 스킬의 사용에 제약을 걸었는데도 이 정도로 날아오는 걸 보면 어떻게든 나를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확실히 대가리가 잘린 마당에도 전의가 꺾이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정예는 정예지만…….

“느리네.”

내리쳐 오는 두 자루의 단검을 한 번에 쳐 낸 뒤 단숨에 내리긋는다.

쫘아아악!

“커억!”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머릿속이 후끈 달아오르며 반사 신경이 경계를 뛰어넘었다.

자주 쓰면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숙달이 될수록 익숙해진다.

촤아악! 촤악!

“으아악!”

“빌어먹을!”

한 걸음에 하나씩 속절없이 썰려 나가는 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스킬이며 움직임이 너무나도 느리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모든 동작은 간결하게 마무리한다. 정형화된 틀은 없지만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됨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차오르는 고양감과 함께 전신의 모든 감각이 극대화되어 마치 눈을 감고 있어도 주위에 모든 것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재미있다.’

움직일 방향을 굳이 내가 결정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건 적들 뿐! 벽을 쌓듯 나를 가로막았지만, 모두가 허점투성이들이다. 그 허점들을 하나로 이어 선을 만든다. 파고들어 면을 만들고 공간을 만들면 또다시 새로운 점들이 나를 반겨 준다. 내가 엘레그로에게 배운 것은 검술의 기초였다.

‘기초.’

누군가는 고작 기초냐고 하겠지만 그건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줬다.

이전에 내가 동기화율을 통한 피지컬에 기대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면, 엘레그로에게 기초를 배운 후로는 그 피지컬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하고 후속 공격의 연계가 자유로워졌다는 것!

파카캉!

“크헉!”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내 등을 노리고 접근하던 암살자들의 목을 그었다. 나름 은신으로 조용히 접근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소리만 죽이면 뭐 하나. 살의와 기감은 그대로 느껴지는데…….

“이노옴!”

챙! 카카칵! 푹!

“크헉!”

거대한 양손검을 내리긋던 중갑의 전사가 양 손목과 어깨 목으로 피 분수를 뿌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떻게든 나와 검을 마주쳐 내 행동을 저지하려 했던 것 같은데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굳이 내가 해 줘야 할 이유가 있나. 허점이 빤히 보이는데…….

“괴, 괴물…….”

“이 정도 가지고 뭘…….”

엘레그로는 자신의 몸에 허점이라는 이름의 함정을 수십 개를 파놓고 나에게 줄기차게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구분할 눈을 가지게 되자 다음으로는 가장 빠른 선을 긋는 것을 배웠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멸신검이야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지금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는 소리다. 게다가 난 이런 난전에 특히나 적이 많을수록 유리한 스킬도 가지고 있다.

‘광역 매혹.’

팟!

나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빛무리에 적중한 이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의 주위에 있는 동료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 나간다. 믿었던 동료가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자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명상을 허용한다.

촤아아악! 쫙!

“으아악!”

“뭐야! 왜 이래?”

“정신 차려! 히무라!”

거의 10여 명의 유저들이 매혹에 적중당했다. 이 매혹은 단순히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효용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유저가 마나 혹은 오러의 양을 계산하며 스킬을 사용한다면 매혹에 걸리는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들을 오러나 마나량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스킬 레벨도 올라 20% 확률로 13초간 주위 적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만드는 광역 매혹으로 내 주위는 난장판이 되었고, 난 그 틈에 혼란에 빠진 적들을 베며 앞으로 나갔다.

파아앗! 파팟!

“정신 차려! 적은 하나다!”

“우리는 귀문혈이다! 전열을 갖춰!”

“우와아아아아!”

“모두 일제 공격!”

정신을 차린 적들이 하나둘 강력한 스킬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음…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피의 검.’

‘광폭화.’

어스 브레이크는 듀랜달이 박살 나서 사용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빙룡도가 있다.

‘빙룡지력.’

빙룡지력: 빙룡도에 깃든 빙룡의 혼은 자신보다 낮은 격의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힘을 가졌다. 신화 등급 이하 모든 공격을 100% 반사시키는 방어막을 3초간 생성한다.

3초 동안이지만 거의 무적에 가까운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스킬 빙룡지력이다.

위이잉!

하얀 우윳빛 방어막이 생성됨과 동시에 전방위로 쏟아져 들어오던 모든 스킬들을 적들에게 반사시켜 버렸다.

콰콰콰쾅! 콰콰쾅!

“으아악! 돌아온다!”

“커억! 피해!”

자신들이 날린 스킬에 얻어맞은 적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아무리 최정예에 갖가지 보조 스킬로 자신들의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공격을 모조리 반사시키는 빙룡지력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긴 나도 예전에 천공제를 상대하며 가장 성가셨던 게 바로 이거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확실히 이화접목이라는 뜻이 맞는 것 같다. 뭐, 여하튼…….

“슬슬 탈환해 볼까.”

본래의 이유인 하이 엘프 공주에 대해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으나 모든 것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멈춰라아앗!”

벼락같은 기합과 함께 적들의 머리 위로 암록색의 그림자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린다. 암록색 닌자복에 양손에는 단검을 든 열두 명의 유저다. 바닥에 내려선 그들은 나를 견제하든 사방으로 퍼져 넓은 반원의 공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터로 한 인영이 내려섰다.

타탁!

눈만을 드러낸 투구에 암록빛의 전신 가죽 갑옷을 걸친 사내…….

그의 갑옷에 연결된 두 자루의 하르페가 내게 겨루어 진다.

차르륵…….

“저, 저분은……!”

“설마! 천황 길드 서열 15위! 미스틱 핸즈 사이토 님과 이가 닌자들이다!”

“우린 살았어!”

거의 다 끝나가는 와중에 뜬금없이 천황 길드라는 변수가 나타났다. 아주 재수 없는 형태로…….

* * *

“힐러들 부활! 부활!”

“전열을 가다듬어라!”

천황 길드라면 일본 제1의 길드로, 막말로 일본에서 강한 이들은 대부분 천황 길드 소속이었고, 그중에 서열 15위라면 결코 만만하게 볼 수준이 아니다. 사이토라는 이가 마스크를 내리자 날렵한 인상의 턱선이 나타났다.

“당신이 엘프의 악몽이군요.”

낮게 읊조리며 나를 노려보는데 확실히 이전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랐다. 허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자세랄까? 게다가 함께 온 이가 닌자라는 이들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혼자서는 힘들겠네.’

원 계획은 빠르게 치고 들어가 하이 엘프 공주를 구출하여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평범한 계획이지만 저택 자체의 구조가 정문 빼고는 침투할 구석이 없게 설계되었고 솔직히 말하면 정면으로 들이쳐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상대가 바보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항은 포기하시죠. 당신이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그런가?”

“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도망칠 마지막 기회도 사라졌습니다. 진을 펼쳐라!”

“존명!”

사이토의 말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이가 닌자들의 몸으로부터 붉은 선들이 뿜어져 나와 하나로 엮이기 시작했다.

“임! 병! 투! 자! 개! 진!”

빠르게 교차하는 수인에 따라 이리저리 교차하던 붉은 선들은 이윽고 하나의 큼지막한 마법진으로 화하더니 나를 둘러싼다. 그리고…….

위이이이이잉!

“십이육합귀진! 개진!”

마법진에서 뿜어진 수백 개의 붉은 선들이 나를 감싸자 마치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사이토가 다가왔다.

“크크크, 엘프의 악몽… 치나 제국의 진무십천과 귀문 길드의 마법 여단, 베소 왕국의 은혈기사단을 박살 낸 이치고는 너무 싱겁군요. 엘프의 악몽… 아니, 케이… 당신은 너무 나댔습니다.”

톡톡.

내게 다가온 사이토가 내 볼을 톡톡 두들겼다.

“고작 우리 천황 길드의 2부 격인 귀문 길드와 치나 제국의 꼭두각시들 멍청한 NPC 따위들을 이긴 주제에 말이죠. 후후후.”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하긴 왜 아니겠는가. 아무리 게임이라도 세이온은 죽음의 페널티가 심한 편이었다. 단순히 레벨이 떨어지거나 아이템 드랍이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세이온 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사회적 위상과 권력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왜 대답이 없죠? 설마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까? 아니면 겁먹으셨나?”

그는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조롱하듯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초반에 죽인 이들을 제외하고는 귀문 길드원들 또한 대부분 부활하여 나를 둘러싼 채 살기를 흘리는 중이다.

그러나 실상 내가 그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 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혼자 처리하겠다고 기세 좋게 나섰는데 좀 쪽팔리긴 하지만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다. 뭐, 경험치야 충분히 얻었으니까… 나도 버스 좀 타 볼까?

-카렌 님.

난 내 곁에 붙어 있던 바람의 정령의 주인에게 말했다.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죠. 후후후… 응?”

썩은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하르페의 날을 내 목으로 가져다 대던 사이토가 흠칫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뭔가 느낀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이 허공의 한 곳으로 고정되는 순간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퍽!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십여 대의 검은 화살이 그의 머리와 상체에 돋아났다.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사이토의 몸이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허공을 훨훨 날아간다.

“어… 어어?”

너무나도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사이토의 사망에 대해 반응하지 못했다. 아니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천황 길드 서열 제15위인 사이토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망했으니까. 그러나 난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이토를 벌집으로 만들어 버린 화살이 블루 포레스트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센티넬 10인이 쏘아낸 것이라는 것과 잠시 후 센티넬과 함께 매복 중이던 100명의 엘프 레인저들이 이곳으로 화살의 비를 퍼부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쉬이이이이익!

씨아아아악!

하늘로부터 내리꽂히는 바람의 정령의 힘이 담긴 수백에 이르는 화살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관통하기 시작했다.

퍼퍼퍽! 퍼퍽! 퍼퍼퍼퍽!

“으아악!”

“커어억!”

* * *

시내 외곽 허름한 2층 건물에는 상도와 광수가 운영하는 형제 흥신소로 위치해 있었다.

입구의 철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상도가 안쪽에 있는 또 다른 철문의 자물쇠를 연다.

끼이잉… 철컹!

기분 나쁜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빛 한 점 들지 않던 작은 골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낮지만 음울한 그 소리에 마치 사신의 목소리를 들은 양 소스라치게 놀란 둘이 고개를 돌리는 두 남자가 있다.

“다 했냐?”

“거, 거의 다 끝냈습니다!”

“거의? 이 새끼들이…….”

낮게 으르렁거린 상도가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정신봉’이라고 적힌 야구 배트로 손을 가져가자 둘의 눈동자가 공포에 물들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분! 아니, 5분이면 완벽하게 끝납니다!”

“진짜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발… 제발… 흐흑…….”

이미 구타에 대한 두려움에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둘이다.

“자식들이 겁은 많아 가지고…….”

‘정신봉’의 피 묻은 손잡이를 툭툭 친 상도가 입꼬리를 쭉 끌어올린다.

“이따 저녁때 풀 거니까 제대로 만들어라.”

“예!”

“혹 마음에 안 들거나 영상에 헛짓거리해 놓으면 어떻게 할 줄 알지?”

“예!”

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상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둘이 한창 작업 중이던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슈 세상- 파킨! 그 더러운 실체를 밝힌다!]

[팩트방송국- 충격 고백! 그날의 일을 고백합니다. feat. 풀영상]

[팩트TV- 한 개인 방송인을 생매장시킨 악의 카르텔을 고발한다.]

“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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