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크루 ‘룰러’의 탄생
파킨은… 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신나게 망해 가는 중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성토가 커뮤니티 메인을 장식하고, 덕분에 지상파와 케이블에서는 이미 잘렸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위튜버의 몰락.]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파킨이 가진 진짜 근간은 그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그를 지지했던 콘크리트 시청자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걱정 없는 게 아까 전 혜미 누나가 확인해 준 바로는 현재 시청자의 70%가 빠져나가고 위튜브의 구독자 수도 반 토막이 났단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가속 중이다. 왜냐고? 파킨에 의해 업계에서 매장당한 이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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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에 의하여 숨겨졌거나 조작된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그 사연에 입에 거품을 물고 파킨을 옹호하던 놈들도 입을 다물었다.
재미있는 건 파킨의 추악한 일면이 드러난 이 사건에서 나와 혜미 누나의 이름은 쏙 빠졌다는 것인데 이 모든 일들이 형들에 의해서 진행되었고, 난 완전히 무관한 제3자로 게임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진짜 대단하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던 형은 그걸 120% 수행해 버렸다. 맨날 하는 이야기가 의뢰 들어온 불륜 사진을 어떻게 찍느니 아니면 어디서 밤을 새우냐 그런 이야기만 하기에 별로 대단하게 보지 않았는데, 상도 형과 광수 형은 정말 이 부분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었다.
형들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는 말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했다.
상대인 파킨이 사건‧사고를 숱하게 벌였는데도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갔는지 분석했다. 결론은 꼬리 자르기가 주특기. 파킨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낸 형들은 상어들을 적극적으로 협박 및 회유했고, 그들을 통해 증거를 하나둘 완성했다.
그러나 나와 혜미 누나의 누명을 벗을 충분한 증거를 수집했음에도 형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먼저 우리가 가진 것을 분석했다. 충분한 증거 같지만, 우리가 가진 증거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부족했고, 광수 형이 누군가에게 연락하더니 다음 날 마지막 증거가 담긴 USB를 가져왔다.
“목사랑 끌어안고 모텔 들어가는 사진을 내밀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안수기도 받으러 들어간 거라고 바락바락 대드는 아줌마 상대한 후로 우린 완벽한 계획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와, 뭔가 이유가 병신 같지만 멋있어.”
“동감, 동감.”
나와 혜미 누나는 거들먹거리는 상도 형에게 물개박수를 쳐줬다.
“그것뿐인 줄 아냐? 증거 사진 찍어 달라고 돈 줘 놓고서 사진 주니까 마누라랑 다시 합쳤다고 프라이버시 침해로 고소한다고 하더라. 열 받아서 파 보니까 이 병신이 지 마누라가 고용한 흥신소한테 어린 애랑 뒹군 사진 찍힌 거야. 내가 그래 가지고…….”
“적당히 하고 얼른 앉아서 먹어. 식으면 맛없어.”
혜미 누나가 새로운 닭다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누나, 지금 다리만 네 개째인 거 알지?”
“어? 그래?”
“상도덕 좀 지킵시다.”
“흐흥, 그래. 물주 말이니까 내가 얌전히 들어야지.”
내 말에 피식 웃더니 한입 뜯은 닭다리에 혀로 핥는다.
“먹을래?”
“더럽게스리…….”
“더럽기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어! 시청자들한테 이거 먹을래요? 하고 물으면 자기가 먹겠다고 후원 막 쏟아졌다?”
“그걸 누가 먹어.”
“궁금하면 한번 먹어 봐. 먹어 봐!”
침을 잔뜩 바른 닭다리를 내게 쭉 내민다.
“더럽다고…….”
“더럽다니! 포상이라니까? 흐흐흐…….”
그 말을 하며 고양이처럼 샐쭉하게 웃는데 그때 테이블에 놓여 있던 누나의 폰이 울렸다.
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한 누나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더니 무음으로 하고는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누구야?”
“예전에는 김 실장… 지금은 개새끼”
“김 실장이 누군데?”
“음, 전에 너 영정 당했을 때 전화했던 인간.”
“아하…….”
내가 영정 당한 것을 물어보려 전화했는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해서 누나가 신경질을 부렸던 게 떠오른다.
“그 사람이 왜?”
“너랑 같이 본사로 와서 파킨이랑 오해 풀고 해명 방송 좀 해 달라잖아. 미친 새끼가…….”
“뭐?”
뭔 가당찮은 소린가. 오해라니. 난 녀석에게 당한 기억밖에 없는데?
“뭐, 지들도 켕기는 게 있는지 해명 방송만 잘해 주면 너 영정도 풀어 주고 파비도 달아준다는데 웃기는 소리지.”
“하.”
누나 말대로 웃기지도 않는다. 어차피 정떨어져서 후원금도 모두 빼 버렸다. 그리고 단순히 기분만으로 그런 게 아니다. 문제는 저작권이었는데, 아프리카의 경우 일반 비제이는 상관없지만 베스트 비제이나 파트너 비제이의 경우는 동시 송출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세이온을 할 때 아프리카 외에는 방송을 열 수 없다는 것. 예전에는 영상보다는 후원을 통해 버는 돈이 더 많아서 상관없었는데, 세이온이 뜨면서 영상을 통한 수익 창출이 더욱 커지자 타 플랫폼과 영상을 공유할 수 없도록 철저히 막혔다.
거기에 영상 제작을 통한 수익은 아프리카가 위튜브를 절대 따라올 수 없기에 난 매우 합리적인 판단으로 아프리카를 그만둔 것이다. 그런데 파트너 비제이를 달아 준다니……. 얼마나 나한테 관심이 없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보다 하나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그런데 그 정도 사고를 쳤으면 파킨을 잘라 버리는 게 정상 아니야?”
내 말에 닭다리를 맛나게 뜯던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냠냠, 그렇지. 예전에도 이번이랑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도 아프리카가 나서서 해결해 줬거든. 그래서 파킨이 대표 동생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어.”
“정말이야?”
“아니, 헛소문이지. 뭐, 파킨이 대표 치부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찌라시 같고, 내 생각에는 세이온 길드 때문인 거 같아.”
“웬 길드?”
“그게… 아프리카 비제이들이 플랫폼 협찬받아서 만든 길드가 있는데 파킨이 거기 길드 마스터거든. 꽤 알짜 영지까지 하나 먹어서 파킨이 퇴출되면 무지하게 곤란해질걸.”
“아아.”
세이온의 영지 시스템은 세이온이 가진 경쟁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길드를 이루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 강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혹은 친목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꼽자면 단체를 이뤄 더 강해지기 위한 것이고 종국에는 그 힘으로 영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영지.’
과거 린xx라는 게임에서는 영지를 차지하면 세금을 걷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영토를 가졌을 때 얻을 수 가장 기초적인 소득, 그러나 세이온의 영지는 단순히 세금만 걷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NPC가 지닌 영지를 길드가 차지할 경우 길드 마스터는 영지의 왕과 같이 군림할 수 있었다. 세금은 물론이고 모든 영지민의 생살여탈권을 지닌다. 영지 내의 던전이나 사냥터, 고유 퀘스트까지 길드의 소유이며 개발된 기술들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 능력 있는 NPC들을 고용하고 영지의 상업과 농업, 군사력 등을 발전시키고 다른 영지를 공격하여 병탄한다. 그렇게 꾸준히 영지를 넓히면 왕국으로부터 더 높은 작위를 얻어 주변의 영지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영지를 차지한 길드 마스터는 단순히 모임의 대표가 아니었다. 모든 영지의 일이 길드 마스터의 결정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기업의 수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파킨이 길드 마스터 자리를 얌전히 다른 사람한테 승계시키면 다행이겠지만 길드 자체가 파킨이 녀석 크루의 비제이들이랑 추종하는 놈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야. 아프리카에서는 큰돈 들여서 밀어줬는데 파킨이 꼴 받아서 영지 개판 쳐 버리면 대책 없게 되는 거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플랫폼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징계를 하긴 하겠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계륵 같은 게 파킨이라는 것도……. 쯧, 그럼 여기까지인가.
“뭐, 앞으로 나나 누나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지.”
“맞아. 나도 이참에 방송 좀 쉬면서 재충전 좀 하고… 으으으윽.”
혜미 누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누나가 방송에 나와 눈물을 줄줄 흘린 것은 사실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고 하더라. 처음 반 정도 호기심에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즐거웠는데 그것이 전업이 되고 매일 무슨 콘텐츠를 할까 고민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되었다고 한다.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다이어트나 피트니스는 문제가 아니다. 인지도가 쌓이자 마음 편하게 누군가를 만나기 힘들어졌고, 그 정도 외모면 여캠으로 적당히 벗방만 해도 지금보다 수배는 더 잘 벌 거라고 주위에서 자꾸 꼬드겨서 힘들었다더라.
외모보다는 게임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미션으로 섹시댄스를 추라느니 애교를 떨라느니 할 때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하고 자괴감이 들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누나는 한동안 방송을 쉬며 게임도 하고 내 일도 돕기로 했다. 뭐 누나한테도 나쁘지 않은 게 나름 내 뒷바라지 하면서 수익이 쏠쏠하다.
요 며칠 누나가 내가 얻은 전리품들의 처리를 맡았는데,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상업 관련 업적을 다섯 개나 얻었다더라. 거기에 전리품 처분하고 나온 골드의 1%를 누나가 가지는데 그것도 엄청 쏠쏠하단다.
“정현아. 나 먼저 접속한다.”
“왜? 좀 더 쉬다가 들어가지.”
“안 돼. 네가 어제 맡긴 거 오늘 다 팔아 버리고 나도 블루 포레스트 들어갈 거야.”
“어?”
누나의 말에 난 조금 난감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왜? 블루 포레스트 아니야?”
“아니, 맞기는 한데…….”
“맞는데?”
“아침에 물건 한 번 더 보냈거든.”
“뭐? 야! 너 그 많은 아이템 바리바리 싸 들고 큰 도시까지 왕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으음, 미안.”
누나가 고생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고가의 아이템을 판매하려면 경매장이 있는 대도시까지 가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베소 왕국의 대도시까지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베소 왕국과 코리 왕국이 적국이 아닌 상황이기에 다행인 것이지 만약 적국이었다면 코리 왕국까지 왕복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 전설급 가방 사 줬는데도 힘들어?”
“적재 용량은 무한이지만 무게가 있잖아. 무게가! 근력 옵션 달린 상인용 장비로 떡칠을 하고 걸어도 힘들어 죽겠어.”
“음, 나는 그렇게 안 무겁던데…….”
“너랑 나랑 같니? 레벨은 내가 더 높지만 넌 그냥 캐릭터 자체가 괴물이잖아. 게다가 누구누구 덕분에 코리 왕국민이라고 하면 NPC들이 도끼눈을 뜨기 시작해서 움직이기도 힘들다고…….”
“쩝.”
그 누구누구가 누군지 알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알았어. 어차피 이제 거의 끝나 가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 줘.”
“쳇, 알았어.”
혀를 차면서도 싫다는 말은 안 한다.
“그리고 형.”
“어.”
“우리 집 좀 옮기자.”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이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모습을 보며 누나와 난 같이 씨익 하고 웃었다. 일부러 놀래키기 위해 형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스마트폰에서 은행 앱을 실행했다. 누나에게 말해 내가 가진 골드의 절반 정도를 현금화하여 계좌에 입금한 상태다.
[403,451,450원]
난 형에게 내 계좌를 열어 내밀었다. 그리고 화면 속에 찍힌 숫자를 본 형은…….
“헉!”
탁!
놀라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 이게 뭐냐?”
“뭐긴 투자금 배당이지.”